관자요록
3. 군후가 오시어 영척을 반기니(2/2)
제환공이 좌우 사람에게 분부했다.
"저 사람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시신(侍臣)들이 달려가 그 사람을 데리고 왔다. 제환공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성은 영이며 이름은 척이라고 합니다. 그저 들에서 소 먹이는 일꾼입니다."
제환공이 정색하고 꾸짖었다.
"너는 한갖 소 먹이는 신분으로서 어찌 시국과 정사(政事)를 풍자하여 노래하느냐?"
"신은 시골 촌부에 불과하거늘 어찌 시국과 정사를 비방할 리 있겠습니까?"
"천자께서 지금 위에 계시고 또한 과인이 모든 제후를 거느리고 천자를 도와 이제 만백성은 모두 맡은 바 직업에 만족하고 산천 초목도 봄빛의 혜택을 받고 있도다. 요순 시대라 할지라도 이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요순의 선위를 만나지 못했다'느니 하고 노래하는 것은 시국을 빗대어 풍자하고 있는 게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고?"
영척이 대답했다.
"신이 시골 사람이라 선왕의 정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오나 감히 요순 시대의 일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열흘마다 한 번씩 바람이 불고 닷새마다 한 번씩 비가 내려 백성은 밭을 갈아 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임금의 덕을 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기강은 떨치지 않고 교화는 실행되지 않건만 걸핏하면 요순의 세상과 다름없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소인은 참으로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또 들으니 요순 시대에는 백관이 바르므로 제후들이 순종하고, 오랑캐는 평정되고, 천하는 태평하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서로 믿고 의지하여 마침내 관리들이 노하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위엄이 섰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군후께선 어떠하십니까? 한 번 거사함에 송나라가 맹회를 배반하고, 두 번 거사에 노를 협박하여 억지 동맹을 맺었습니다. 군사는 쉴 새가 없고 백성은 피로하고 재정은 어지럽습니다. 그런데 백성은 생업을 만족하고 산천 초목도 혜택을 받고 있다 하시니 소인은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또 요나라 임금은 그 아들 단주(丹朱)에게 위(位)를 물리지 않고 순에게 전했건만, 순은 받지 않고 남하(南河)에 피했으나 모든 백성이 달려가 성심껏 받들어 모셔서 할 수 없이 제위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합니까? 군후는 형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했으며, 주나라 천자를 방패삼아 모든 제후를 호령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소인은 요 임금이 순 임금에게 천하를 양도한 풍습을 오늘날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제환공이 몹시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촌부의 몸으로서 어찌 이다지도 경망하단 말인가. 여봐라! 저 놈을 끌어내어 참하거라!"
좌우 군사들이 즉시 영척을 끌어내어 묶고는 칼을 뽑았다. 그러나 영척은 조금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옛날 폭군 걸(桀)은 충신 용방을 죽였고, 주(紂)는 비간을 죽였다. 오늘 영척은 죽는다만 그들과 함께 이름 하나는 천추에 빛나겠구나!"
습붕이 영척의 이런 모습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즉시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저 시골 사람의 기상을 살펴본즉 죽음에 임해서도 전혀 두려움 없이 늠름합니다. 결코 평범한 목자가 아닌 듯합니다. 주공께서는 그를 한번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환공도 사실 그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서 호령했던 것이므로 곧 노기를 풀었다. 좌우에 다시 명하여 그 결박을 풀도록 했다.
"과인이 그대를 잠시 시험했을 따름이다. 그대는 진실로 훌륭한 선비인지라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리오."
이렇게 말하며 제환공은 예를 갖추었다. 영척은 그제서야 품속에서 한 통의 서신을 꺼내어 제환공의 시자에게 내주는 것이었다. 제환공이 받아 그 서신을 보니 중부의 것이라 놀라며 읽었다.
- 신이 군명을 받잡고 출사하여 요산에 이르러 위나라 사람 영척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보통 평범한 목자가 아니며 진실로 어진 인재입니다. 주공께서는 그를 우리 제나라에 머무르게 하고 벼슬을 내려 도움을 받으십시오. 만일에 그가 다른 나라로 간다면 다음날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제환공이 다 읽고 나서 서둘러 물었다.
"그대는 이미 중부의 서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과인에게 내보이지 않았는가?"
"듣건대 어진 군후는 사람을 가려서 쓰는데 항상 믿으며, 어진 신하는 주인을 골라서 섬기는데 목숨으로 모신다고 하더이다. 만일 군후께서 바른말을 싫어하고 아첨하는 것만 좋아하시어, 오로지 노기로써 신을 대하셨다면 신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상군의 서신을 군후 앞에 결코 내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환공은 감동한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영척에게 말했다.
"뒷수레에 타시오."
제환공은 계속 행군하다가 날이 저문 뒤에야 하채하고 군사를 쉬게 했다. 제환공이 횃불을 밝혀 대낮처럼 밝게 하라고 분부하고 수작에게 명령했다.
"속히 일체의 대부 의관을 준비하여라."
수작이 물었다.
"주공께서는 영척에게 대부 벼슬을 주시려 하십니까?"
제환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작이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위나라까지는 여기서 과히 멀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의 옛날 일을 조사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과거가 더럽혀지지 않았고 과연 어진 사람이면 그 때에 벼슬을 줘도 늦지 않습니다."
제환공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그 사람은 사소한 범절에 구애될 성격이 아닌 대범한 인재인 듯싶다. 혹 그가 위나라에 있을 때 조그만 허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걸 들추어내고 나서 벼슬을 주면 그의 영광이 빛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작은 허물이라도 찾아내 벼슬을 안 준다면 이는 마땅한 대접이 결코 아니니라."
제환공은 영척을 대부로 삼았다. 이리하여 그는 관중을 도와 제나라 국정을 돌보았다. 이는 나중의 일이고.......마침내 제환공이 이끄는 제나라 대군이 송나라 경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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