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3. 군후가 오시어 영척을 반기니(1/2)
관중의 애첩, 청
관중은 제환공에 앞서 송나라로 떠나면서 수레에다 청이란 여인을 데리고 탔다.원래 제환공은 어디고 멀리 출행할 때는 궁중 희빈을 수레에 태우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관중도 출행할 때가 되면 곧잘 그녀를 자기 수레에 태워 데리고 나섰던 것이다. 이는 제환공의 호색을 눈가림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것이기도 했지만, 관중에게 청은 뛰어난 참모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원래 종리(鐘離) 땅 출신으로 고금의 역사와 인물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지혜가 출중했다. 관중은 그녀를 첩으로 맞이하여 몹시 아끼고 귀여워했다. 그날 일꾼을 거느리고 임치성 남문을 나선 관중이 약 30여 리쯤 진군하여 요산(瑤山) 아래에 있는 들판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침 한 시골 사내가 짧은 바지에 홑옷을 입고 부서진 삿갓을 쓰고 산 밑 둔덕에서 소를 놓아 먹이며 소뿔을 두드리면서 무슨 노래인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관중은 수레를 타고 지나가며 그 사람을 살펴 바라보니 보통 사람이 아닐 성싶었다. 이에 관중은 수레를 멈추고 사람을 시켜 술과 음식을 그에게 보내 예를 갖추어 대접하라고 일렀다. 그런데 그 시골 사내는 가져간 술과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말했다.
"내 중부를 만나 뵙고자 하노라."
음식을 갖다준 사자가 대답했다.
"우리 상군(相君)의 수레는 이미 지나가 버렸소이다."
시골 사람이 머리를 끄덕인 뒤 물었다.
"내 할말이 있으니 상군에게 전해 줄 수 있겠소?"
"무슨 말이오?"
그러자 이 시골 사람이 단 한마디를 전해달라고 말했다.
"넓고 넓도다. 백수여!"
이 말을 듣고 사자가 급히 관중의 수레를 뒤쫓아갔다. 그리고 사자는 관중에게 시골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을 그대로 옮겨 전했다. 관중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청에게 물었다. 그녀가 아뢰었다.
"첩이 듣자오니 옛날 시(古時)에 백수시(白水詩)란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에 보면,
넓고 넓도다 백수여
많고 많은 송사리 떼로구나
군후가 오시어 나를 부르니
내 장차 자리에 앉으리라
하였은즉, 그 시골 사람은 자신의 재능있음을 은연중 밝히며 벼슬 자리를 찾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관중은 청이 하는 이 말을 듣자 깨닫는 바가 있어 즉시 그 자리에 수레를 멈추게 하고 사람을 시켜 백수시를 전한 그 시골 사람을 불러오도록 했다. 시골 사람은 그 때 소를 몰고 집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사자가 와서 전하는 말을 듣자, 소를 놔두고 관중을 만나기 위해서 사자를 뒤따라왔다. 그는 사자를 따라와 관중의 수레 앞에 왔음에도 읍을 할 뿐 절하지 않았다. 관중이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서 먼저 물었다.
"뉘시오?"
"나는 위나라 출신으로 성은 영(寧)이며 이름은 척(戚)이라 하오. 관정승께서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글하는 선비를 예의로써 대한다 하기에 항상 사모하는 차라, 그래서 산 넘고 물 건너 제나라로 왔다가 요행히 이 곳에서 관정승의 모습을 뵙게 되었으니 소원을 이뤘구려. 나야 소 먹이는 시골 목자에 불과하오."
관중은 그 사람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았다. 영척의 대답은 청산유수처럼 막히는 데가 없었다. 관중이 크게 감탄했다.
"영걸이 진흙길에서 곤욕을 당하고 계시니 만일 이끌어 주는 자가 없으면 어찌 스스로 그 참다운 재질을 발휘할 수 있으리오. 우리 주공께서 지금 군사를 거느리고 뒤에 오시니 수일 안으로 이 곳을 지나실 것이오. 내 서신 한 통을 써서 그대에게 주리니 그대는 이 곳에서 기다렸다가 주공이 지나실 때 이 서신을 바치고 배알하시오. 우리 주공께서 반드시 그대를 중히 쓰시리라."
관중은 말을 마치자 곧 서신을 한 통 써서 봉한 뒤 영척에게 내주고 떠나갔다.
영척, 대부가 되다
관중을 먼저 떠나 보내 진 . 조 두 나라 군세와 합세하게 한 후, 제환공은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대군(大軍)을 통솔하여 며칠이 지나 임치성을 출발했다. 제환공도 앞서 간 관중과 마찬가지로 요산 아래를 지나게 되었다. 그 때 한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滄浪之水白石爛
中有鯉魚長尺半
生不逢堯與舜禪
短褐單衣裳至
從昏飯牛至夜半
長夜漫漫何時旦
푸른 물에 횐 돌은 현란하게 빛나는데
그 속에 길이 척반(尺半)의 잉어가 노닐도다
아직 요순의 선위를 만나지 못하여
짧은 바지 홑옷이 종아리를 가리지 못했도다
저녁 무렵부터 소를 먹여 한밤중에 이르렀으나
밤은 길고 더디어 언제라야 아침이 될 것인가
제환공이 바라보니 짧은 바지에 홑옷을 입은 시골 사람이 부러진 삿갓을 쓰고 길가에 서서 쇠뿔을 두드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