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5장
공자의 비유:에식에 쓰이는 신성스러운 그릇
제사 그릇을 생각해 보자. <논어> 원문에서 공자는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의식과 관련하여 곡식을 담는 데 쓰이는 옥으로 만든 특정 유형의 제사 그릇의 이름(호련)을 언급했다. 그와 같은 그릇은 거룩하며 신성스럽다. 그 그릇의 외형-청동 재료나 조각이나 옥 색깔-은 우아하다. 그것의 내용물인 풍성한 곡식은 풍요를 표현한다. 그러나 그 그릇의 신성함은 청동이라는 귀중한 재료에도, 장식의 아름다움에도, 옥의 희귀성에도, 곡식의 먹음직스러움에도 있지 않다. 어디에서 그 그릇의 신성함은 오는 것일까? 그것은 그 그릇이 예식을 올리는 데에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신성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예라는 거룩한 의식에 참여하는 덕분에 신성한 것이다. 그 그릇을 우리가 예식에서 갖는 역할과 분리하여 생각해 본다면, 그 그릇은 그 안에 곡식만 가득 채워 있는 값만 비싼 항아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점이 바로 (제사 그릇이) 그릇으로서 가지는 자기 모순이다. 왜냐하면 이 그릇은 일반적인 그릇들과는 달이 예식 자체와 무관하게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쓰여질 수 없으며, 오로지 예식과 연관되는 기능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예식용 항아리는 실용적 가치보다는 차라리 예식적인 가치를 강조하기 위하여 항아리에 실상 여러 개의 구멍들이 뚫려 있는 것도 있다) 유비 추리를 해본다면, 개개의 인간 존재 역시 예식이나 의례 즉 예 속에서 그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에 의해 궁극적인 존엄성 즉 신성한 존엄성을 갖게 된다는 의미 함축을 공자가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종교적 의식에만 관련된 예라는 단어의 의미를 공자가 사회 자체를 예의 모델에 바탕을 두고 (새롭게) 그려 보는 방식에까지 확장시켰음을 우리는 이제 상기해야만 한다. 예에 관한 가르침이 이런 식으로 일반화된다면, 자공과 에식용 그릇 사이의 유비를 철저하게 따져 나가 그것을 일반화하는 일이 합당하다고 하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앞서의 이런 비유적 표현이 인간이나 인간관계에 관한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 리해를 얼마나 심화시켜 주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사회적 예의 범절 일반이나, 부자 관계, 형제 관계, 군신 관계, 친구 관계와 부부 관계 등 말하자면 개개 인간들과 그들의 관계들은 궁그그적으로 예 안에서 그것들 각각이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사회라는 것이 사람들의 관습이나 도덕적 의무감들에 의해서 규제되고 유지되는 한 공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는 (각종의 에식들이 집행되는) 하나의 거대한 예식 수행의 현장이며 또한 사회는 정교하고 치밀한 종교적 의례들이 지니는 온갖 신성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예식, 말하자면 영감적인 의례의 집행을 우아하게 해주는 장엄성과 동시에 경쾌한 마음이 함께 어울어져 진행되는 예식으로 되어간다. 인간의 궁극적 존엄성을 마련해 주고 그것을 떠받치는 충분한 조건은 단지 개별적 인간 그 자체도 아니며, 또한 라나의 집단 그 자체도 아니다. 그 조건은 바로 에식 집행에서 한 몫을 하고 있는 인물들이나 행위들이나 대상물들을 신성스러운 것으로 보게끔 해주는 인간 삶의 예식적인 측면인 것이다.
공자는 개인을 (자기 완결적으로 고립된) 궁극적인 원자로 보지 않았고 또한 (자기 밖의 권위에 의해서 다만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이나 기계 조작의 유비를 통하여 인간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 사회를 (기독교적 관념에서처럼) 영생을 누릴 영혼을 가려낼 시험장이나 또는 개별적 인간들의 쾌락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사회 계약적 또는 공리주의적 산물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는 <논어>에서 사회와 개인을 (대립적인 두 개의 독립적인 범주로) 논의하지 않았다. 그가 논의한 것은 사람됨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였다. 공자는 사람이란 예에서 연원하며 그 바탕에 뿌리를 둔 (오직 인간에게만) 독특한 존엄성과 (스스로를 자율적, 능동적으로 규율하는) 힘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고 보고 있다. 단지 태어나서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촉감적 만족을 즐기고 물리적 고통이나 불쾌감을 피한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동물들도 이런 짓은 다 한다. 문명됨이란 단순히 물리적, 생물적 또는 본능적이 아닌 (즉 자연 상태 이상의 고상한) 관계를 확보함을 말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제반 관계, 즉 본질적으로 상징적인, 전통과 인습에 의해 규정을 받으면서도 경외심과 의무감에 뿌리를 박고 있는 그런 제반 관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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