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오족 공자의 추방
이 날 남궁장만은 송민공의 종제(從弟) 공자 유(遊)를 군위에 올려 모셨다.그리고 무공(武公), 선공(宣公), 목공(穆公), 장공(莊公), 역대 임금의 족속(族屬)을 모조리 추방했다.오족(五族)의 모든 공자들은 남궁장만에 의해 추방되어 소읍(蕭邑) 땅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공자 어설(御說)은 박 땅으로 도망쳤다. 남궁장만이 아들과 맹획을 불러놓고 말했다.
"어설(御說)은 학문이 있고 재주가 있으며 바로 송민공의 친동생이다. 그 놈이 지금 박 땅으로 도망쳐 가 있으니 장차 변(變)을 일으키고야 말 것이다. 어설만 죽이면 다른 공자들이야 걱정할 것 없다."
이에 남궁장만의 아들 남궁우(南宮牛)는 맹획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박 땅을 쳤다. 한편 소읍의 수령 숙대심(叔大心)은 오족(五族)의 모든 공자들을 받들어 모시고, 이웃 조(曹)나라에서 군사를 청해 가지고 박 땅을 구원하러 갔다. 이에 공자 어설은 크게 기운을 얻어 박 땅의 백성을 일으켜 남궁우의 군사를 협공했다. 이 싸움에서 박 땅의 백성들은 열심히 싸워 끝내 남궁우를 죽이고, 송군들은 모두 공자 어설에게 항복했다. 맹획은 돌아갈 면목이 없어서 위나라로 달아났다. 대숙피가 공자 어설에게 계책을 말했다.
"항복한 군사를 이용해서 도성의 남궁장만에게 거짓 귀환케 하고 승리했다는 보고를 올리게 하십시오. 그런 후에 그들 군사 속에 오족의 공자들과 우리측 사람들을 끼워 보내서 들이치면 남궁장만이 제 아무리 힘이 센들 어찌 견디겠습니까?"
공자 어설은 대숙피의 계책대로 항복한 군사와 이쪽 병사들을 위장시켜 보냈다. 성문을 지키는 자는 이쪽 병사들이 숨겨진 것을 모르고 병사들을 맞이했다. 그러자 도성 안으로 들어간 오족(五族)의 공자들이 외치고 다녔다.
"역적 남궁장만 그 놈만 잡으면 된다. 다른 사람들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일이 이쯤 되고 보니 남궁장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급히 궁으로 달려가 공자 유를 모시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궁중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한 내시가 말했다.
"임금께서는 이미 군사들에게 피살되었습니다."
남궁장만은 이미 대세가 기운줄 알고 크게 탄식했다. 그는 진나라로 도망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팔십이 넘은 노모(老母)가 한 분 있었다. '내 어찌 인륜을 어기고 늙으신 어머니를 두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칠 수 있으리오.' 그는 집으로 가 늙은 어머니를 수레에 태우고, 한 손엔 칼을 뽑아 들고 한 손으론 수레를 밀면서 지키는 군사들을 헤치고 나갔다. 그는 성문을 벗어나자 바람처럼 달아났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뒤쫓는 자는 없었다. 송나라에서 진나라까지는 2백60리였다. 그런데 남궁장만은 수레를 끌고서 하루 만에 진나라에 당도했다. 이런 신력(神力)은 고금에 보기 드문 것이었다.
송환공의 즉위
이리하여 공자 기(旣)는 공자 유(遊)를 죽이고 공자 어설을 받들어 임금으로 모셨다. 그가 바로 송환공(宋桓公)인 것이다. 이에 대숙피(戴叔皮)는 대부가 되고 오족(五族)중에서 이번 거사에 공로를 세운 자는 모두 공족 대부(公族 大夫)가 됐다. 그리고 숙대심(叔大心)은 다시 소읍으로 돌아갔다. 송환공은 사자를 위나라로 보내어 맹획을 넘겨달라고 했다. 그리고 사자를 진나라로 보내어 남궁장만도 잡아 보내 주기를 청할 계산이었다. 이 때 공자 목이(目夷)는 나이가 어렸다. 마침 송환공 곁에 앉았다가 말했다.
"진나라는 남궁장만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송환공이 물었다.
"왜 그런가?"
공자 목이가 대답했다.
"사람들은 용력(勇力) 있는 자를 공경합니다. 우리 송나라는 남궁장만을 버렸지만 진나라는 반드시 그를 보호할 것입니다. 그러니 빈 손으로 가서 청하면 진나라가 어찌 우리 송나라를 위해 힘쓰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송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사자에게 귀중한 보물을 많이 내주었다.
"이걸 진나라에 주고 잘 부탁하여라."
이리하여 사신들이 진 . 위 두 나라로 갔다. 우선 위나라로 간 송나라 사자를 보자 위혜공(衛惠公)은 사자로부터 송나라의 청을 듣고서 모든 신하에게 물었다.
"맹획을 돌려달라는데, 보내는 것이 좋겠느냐? 안 보내는 것이 좋겠느냐?"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위급을 면하려고 우리에게 도망 온 사람을 어찌 되돌려보내 죽게 할 수 있겠습니까? 상대가 도적질을 했거나 살인 강간범이 아닌데 말입니다."
대부 공손 이(耳)가 간했다.
"천하의 악(惡)은 어디 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송나라 악이 우리의 악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을 저지른 사람을 이 곳에 두어 우리 나라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더욱이 우리는 송나라와 마찰없이 지내왔습니다. 이번에 맹획을 잡아 보내지 않는 일로 송나라와 사이가 멀어진다면 결코 좋은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위혜공은 송나라에서 보낸 보물도 탐나려니와 공손 이가 간하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군부에 명하여 맹획을 결박지어 송나라 사자에게 내주게 했다. 한편 진나라에 간 송나라 사자는 진선공(陳宣公)에게 귀중한 보물을 바치고 자기가 온 뜻을 말했다. 진선공 역시 그 보물이 탐났다. 그래서 쾌히 응낙했다.
"과인이 남궁장만을 잡아 보내리라."
그러나 진선공은 남궁장만의 용력을 아는지라 한 가지 계략을 꾸몄다. 하루는 진나라 결(結)이 남궁장만에게 말했다.
"우리 주공은 그대를 얻은 것이 참으로 기쁜지라 송나라에서 아무리 그대를 보내달라고 요구해도 그대를 내주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송나라 입장도 있을 것이니 무작정 떼쓰듯이 안 된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겠소. 그러니 우리 둘이서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몇 달 시간을 보내며 놀다 오면 상황도 바뀔 테니 어떻겠소?"
남궁장만이 감격하여 대답했다.
"이렇듯 생각해 주시니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말씀대로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에 공자 결은 남궁장만과 밤새워 술을 마시며 형제의 의까지 맺었다. 이튿날이 되었다. 남궁장만은 공자 결의 집으로 가서 사례했다. 공자 결은 미리 준비해 둔지라 남궁장만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침부터 술상이 들어오고 비첩들까지 나서서 너도나도 남궁장만에게 술잔을 권했다. 남궁장만은 사양않고 계집들이 권하는 대로 술을 받아 마시며 즐기다가 크게 취했다.
붙잡힌 남궁장만
마침내 그는 크게 취하여 쓰러졌다. 공자 결이 문을 열고 바깥을 향해 신호하자 난데없는 역사(力士)들이 들어와 서피(犀皮) 포대에 대취해 쓰러진 남궁장만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은 질긴 쇠심줄(牛筋)로 남궁장만을 넣은 서피 포대를 단단하게 묶었다. 이리하여 진선공(陳宣公)은 그 늙은 어머니까지 함께 잡아서 송나라 사자에게 내주었다. 송나라 사자가 남궁장만 모자를 잡아넣은 함거(檻車)를 몰고 돌아가는 도중에 그는 술이 깼다. 남궁장만은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바둥댔으나 단단하기가 무쇠 같은 서피 가죽과 쇠심줄(牛筋)로 된 질긴 포승줄에서 결코 벗어날 순 없었다. 거의 송나라 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 워낙 남궁장만이 용력을 쓴지라 서피 가죽이 여기저기 찢어져서 남궁장만의 손과 발이 다 포대 밖으로 삐져 나왔다. 이를 보자, 압송하던 군인들은 손발을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쇠뭉치로 치고 찌르고 짓이겼다. 마침내 송환공의 명령(命令)으로 맹획과 남궁장만은 시정(市井)으로 끌려나갔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백정이 휘두르는 무수한 쇠망치에 맞아 고기덩어리로 변했다. 송환공은 다시 백정에게 명하여 처치한 남궁장만과 맹획의 살점을 떠서 소금에 절이게 하고 그 고기를 모든 신하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었다.
"신하된 자로서 능히 임금을 섬기지 못하는 자는 이 소금에 절인 고기를 보아라."
남궁장만의 팔십 노모도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처리한 후 송환공은 숙대심의 공로를 높이 사서 소읍을 부용(附庸: 屬國이란 의미)으로 승격시키고 숙대심을 소(簫)의 주인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번 난에 죽은 화독의 아들에게 사마(司馬) 벼슬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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