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4. 남궁장만의 난동
송민공의 죽음
제나라가 이렇듯 부국 강병을 죄하고 있을 때, 천하는 크게 변모하고 있었다. 주나라에서는 장왕(莊王)이 병으로 죽고 태자 호제(胡齊)가 뒤를 이었다. 그가 주희왕(周僖王)이다. 이 때를 전후로 송나라, 채나라, 초나라 등지에서 크고 작은 일이 다투어 벌어졌다. 이야기는 송나라로 돌아간다. 노나라에 포로가 되었던 남궁장만이 풀려나서 궁으로 가 귀국 보고를 했다. 그 때 송민공이 그를 놀려 웃으며 말했다.
"내 지난날 그대의 용력(勇力)을 높이 보았는데 이제는 노나라 죄수이니 낮게 보아야겠노라."
이 말을 듣고 남궁장만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곁에서 대부 구목이 송민공에게 말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 희롱이 있으면 안 됩니다. 희롱하면 공경하지 않게 되며, 공경하지 않으면 태만하며, 예의가 없어지게 됩니다. 심지어 패륜과 시역까지도 일어납니다. 그러니 주공은 더욱 삼가십시오."
그러나 송민공이 웃고 대답했다.
"과인과 남궁장만은 서로 무관한 사이이니 어찌 그가 감정을 두겠소."
이 때가 주장왕 15년이었다. 이 해에 왕이 죽었고 주희왕이 즉위했다. 그 소식이 송나라에도 전해졌다. 그 때 송민공은 여러 궁인들과 함께 몽택이란 곳에서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송민공은 남궁장만에게 척극(擲戟)놀이를 시켰다. 원래 남궁장만은 창(戟)을 공중으로 던져 올리는 재주가 있었다. 창이 몇 길이나 솟아오르다가 떨어지면 그는 그것을 번번이 손으로 받되 백 번에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 모든 궁인이 그 재주를 보고자 원했기 때문에 송민공은 남궁장만을 불러 함께 놀게 된 것이다. 이에 남궁장만은 분부를 받고 여러 사람 앞에서 한바탕 척극 재주를 부리는데 그 솜씨가 참으로 대단했다. 이를 보자 모든 궁인은 박수 갈채를 보내며 칭찬했다. 송민공은 슬며시 남궁장만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겼다. 송민공이 박국(博局)을 가져오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남궁장만과 내기를 하되 이긴 자는 진 자에게 금(金)으로 만든 말(斗)에다 술을 가득 부어서 먹이기로 했다. 원래 박국은 송민공의 장기(長技)였다. 그러니 남궁장만이 송민공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남궁장만은 다섯 판을 겨뤄 다섯 번을 다 졌다. 동시에 벌주(罰酒) 다섯 말을 마셨다. 몹시 취한 남궁장만은 몸을 계속 비틀거리면서도 송민공에게 항복할 뜻이 없었다.
"이번은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즉시 한 판만 더 두십시다."
송민공이 또 놀렸다.
"그대 같은 죄수는 지는데 이력이 난 사람이다. 어찌 과인에게 이길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말을 듣자 남궁장만은 몹시 부끄럽고 당황해서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때 궁시(宮侍)가 달려와 아뢰었다.
"주왕실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무슨 일로 왔다 하던가?"
"장왕(莊王)이 붕어하시고 새 왕이 등극하셨다고 합니다."
송민공이 말했다.
"주(周) 왕실에 왕이 붕어하시고 새로 왕이 즉위하셨다면, 마땅히 사자를 보내어 전왕(前王)을 조상(弔喪)하는 동시에 새 왕에 대해서 경하(慶賀)할 일이다."
이 때 남궁장만이 아뢰었다.
"신은 아직도 왕도(王道) 낙양의 거리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사명(使命)을 받들어 제가 낙양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송민공이 웃으면서 또 그를 놀렸다.
"우리 송나라에 아무리 인물이 없다 한들 어찌 죄수를 사자로 보낼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들은 모든 궁인은 크게 웃었다. 남궁장만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이미 술까지 취해 있던 그는 지독한 망신을 당하자 임금과 신하의 분별을 잊고 말았다.
"이 무도한 임금아! 죄수, 죄수 하는데 죄수가 어떻게 사람을 혼내는지 아느냐?"
송민공이 이 말을 듣자 크게 노했다.
"이 죄수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어찌 이다지도 무례한가? 어서 이 놈을 끌어내어라."
그 순간이었다. 남궁장만이 송민공에게 달려들었다. 송민공은 몸을 피하려다가 나동그라졌다. 남궁장만은 즉시 쓰러진 송민공 배 위에 올라타더니 무쇠 같은 주먹을 휘둘러 얼굴이고 가슴이고 가리지 않고 송민공을 계속 내리쳤다. 송민공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모든 궁인은 질겁하여 뿔뿔이 도망쳐 달아났다. 남궁장만은 송민공을 죽인 후 크게 분기하여 궁 쪽으로 향해 가는데, 때마침 구목이 그를 보았다.
"주공은 지금 어디 계시오?"
"무도한 혼군(昏君)이 예법을 모르는지라 내가 이미 저승길로 보내 버렸소."
구목이 웃으며 말했다.
"장군이 심히 취하셨구려."
"난 취하지 않았소. 자 내 손을 보시오."
남궁장만은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보였다. 그제서야 구목은 남궁장만의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님을 알고 기겁하여 정색하면서 꾸짖었다.
"시역한 도적놈아! 하늘이 있다면 네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라."
구목은 손에 들고 있는 홀(笏)로 남궁장만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남궁장만은 까딱하지도 않고 오히려 두 팔을 쩍 벌리고서 구목에게 덤벼들었다. 남궁장만은 번개같이 왼손으로 구목의 홀을 쳐 떨어뜨리고 동시에 오른손으로 구목을 쳤다. 남궁장만의 주먹은 바로 구목의 정수리에 들어맞았다. 순간 구목의 두골이 부서져 피가 쏟아졌다. 단숨에 주먹으로 해골을 부수고 얼굴을 모조리 바수어 버렸으니 남궁장만의 괴력을 어찌 천하 제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구목은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남궁장만은 눈 한번 깜박거리지 않고 창을 집어들고 유유히 걸어가 수레에 올라타더니 궁 쪽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송민공은 즉위한 지 10년 만에 쓸데없는 한마디 농담으로 역신(逆臣)의 주먹을 맞고 생을 마쳤다. 이 때 화독(華督)은 주공에게 변이 생겼다는 기별을 받고 즉시 궁성으로 달려갔다. 화독이 궁으로 가서 동궁(東宮) 서쪽을 돌아가다가 남궁장만과 만났다. 남궁장만은 아무 말도 없이 곧 창을 들어 화독을 찔렀다. 화독은 피할 틈도 없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졌다. 남궁장만은 다시 한 번 쓰러진 화독의 몸을 찔렀다. 화독은 그대로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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