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이제 우리는 심적인 의도와 태도라는 주관성을 띤 언어와, (그것에 대한) 논리적, 언어적 분석을 모두 배제하고, 인을 이해하는 공자 자신의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인을 보는 공자의 방식을 분명하고 진실되게 반영하는 이미지는 행위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미지는 그 사람의 <내심>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하는 행위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인한 힘을 외부에 드러낸 행위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그 대신 인이 지향하는, 즉 인한 힘이 지닌 목표의 성격은 (인하려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실제 도달한 과정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런 구분점이 (인이라는) 말과 이미지에 의해 강조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일 뿐, 실제로 이 두 분명한 사건들 (인하려는 의도와 실제로 하는 인한 행위)을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위 또한 어떤 의도의 맥락에서 해석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힘은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힘이어야 한다. 즉 (진정한 인간일 때 갖게 되는) 인간 존재의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인간 존재들을 향해 있으며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공자가 쓴 한문에는 고유성, 성질, 정의, 본질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은 한 개인과 자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요, 그 개인이 소유해야 할 것으로 제시되엇다고 하겠다. 가장 도움이 되는 서양적 이미지는 물리학에서 빌려 온 벡터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인의 경우 우리는 공개된 시간과 공간에서-시초의 원인점에 또 다른 사람이 서 있고, 그 힘이 가해지는 끝지점에 한 사람이 잇다고 가정하고-실제 행위를 일으키고 있는 방향성 있는 힘(즉 벡터 역량)의 작용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 힘들은 물론 인간의 힘이며 기계적인 힘이 아니다. 공자가 강조한 덕목들은 모두 정말로 <역동적이고> 사회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면서 (인간 관계에서의 상호 존중), 충(충성), 신(타인에 대한 믿음)과 같은 것들은 원래부터 타인들과의 역동적인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다른 한편 순수성이나 결백과 같은 <정직이고>, <내적인> 덕목들은 <논어>에서 별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예를 밖으로 드러난 도라는 이미지의 맥락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인도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인의 이미지는 행위자의 자세, 즉 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일정 공간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즉 우리가 예식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관찰할 때, 그 힘이 우리를 향해 <발산된다>고 음미할 수 있다. <임금이 남쪽을 향해 예식에 맞게끔 앉아 있으면 모든 일이 (적절히)되어 갔다> 예식에 정해진 바로 그 역할을 정말로 참되게 해낸다고 느껴지는 그 사람이 예식을 올릴 때, 예식의 몸짓(혹은 마치 최면술사와 같은 그 몸짓)으로부터 발산되어 나오는 것이라고 우리 모두가 느끼는 마술적 힘을 음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에 대하여 느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리고 인은 갈라져 있는 백터들-완전한 충성심과 신의, 인간 존엄에 대한 완전한 존중 등등-의 완전하게 집중된 힘이다. 이들 각각은 그 나체로 볼 때, 내심의 상태가 아니라 본래적 의미의 덕-(각각의 덕을 발산하는) 그 사람으로부터 발산되는 힘, 즉 인간다은 힘을 들여서 마침지 그 일을 해냈을 때, 일찍이 안연이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홀연히 내 앞에 우뚝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마침내 인이 발산하는 힘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이끌어 낼 일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
사람이란 예 안에 자기 자리를 잡음으로써 인하게 되든지, 그렇지 않든지 할 수 있다. 인하게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오직 그렇게 하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종종 결정의 순간에 인간의 힘에 대한 믿음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사람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물리적인 힘과 동물적 힘에 의지하여 살아 왔다. 그러나 인은 바로 인간적인 방식에 대한 완전한 자기 헌신이다. 그리고 그 벼랑 끝까지 걸음을 계속해 가는 것이다.
두려움과 전율 속에서
신중과 걱정 속에서
마치 깊은 연못가에 있듯이
마치 얇은 살얼음을 밟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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