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1. 관중, 드디어 재상의 자리에
흉사와 길사
포숙아는 관중을 우선 당부(堂阜)에 있는 행관에 머물면서 쉬도록 하고 임치로 돌아갔다.
"이 곳에서 당분간 심신(心身)의 피로를 풀게나. 나는 도성에 가서 주공을 뵙고 돌아오겠네."
포숙아는 도성에 당도하자 곧바로 궁으로 가서 제환공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다.
"이번 흉사(兇事)를 조상(弔喪)하는 동시에 길사(吉事)를 축하드립니다."
제환공이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무엇을 조상한단 말인가?"
포숙아가 대답했다.
"공자 규가 경쟁자였지만 사사롭게는 주공의 형님이십니다. 주공께서 나라를 위해 사사로운 정(情)을 물리친 것은 부득이한 일이지만, 신하로서 어찌 그 죽음을 조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렇다 치고 과인에게 길사가 있어 축하한다는 건 또 무엇인가?"
포숙아가 다시 대답했다.
"차차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만, 이번에 우리 제나라는 천하의 인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주공께 천하 제일의 정승감을 추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환공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었다. 이제 나라는 안정되었고, 제환공은 모든 신하의 공로를 표창하기 위해서 벼슬과 토지를 제수했다. 포숙아를 가까이 부른 후 분부했다.
"포숙아는 상경(上卿)이 되어 앞으로 과인을 도와 이 나라 정사를 도맡아 보시오."
포숙아가 사양했다.
"주공께서 신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심은 더할 수 없는 광영입니다. 하지만 신은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결코 상경 벼슬 자리를 맡을 수 없습니다. 신은 헐벗고 배고프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제환공은 머리를 흔들며 분부했다.
"과인은 누구보다도 경을 잘 아노라. 사양하지 말고 과인 곁에 있어 보좌하라."
포숙아가 대답했다.
"주공께서 신을 잘 아신다 하지만, 신은 매사에 서둘지 아니하고 조심하여 큰 실수를 안하는 정도의 인물에 불과합니다. 그저 주공의 행차에 말고삐를 쥐고 앞장서서 나아갈 만할 뿐입니다. 결코 주공을 보좌하고 국가를 다스릴 만한 인재가 아닙니다. 대저 국가를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안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를 무마하고, 공훈을 주왕실에 세우고, 모든 나라의 제후에게 덕을 펴고, 나아가서는 주공께서 한량없는 복을 누리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정도 수준의 인재는 되어야 이 나라 정사를 도맡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환공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자신도 모르게 포숙아에게 몸을 숙여 물었다.
"경이 말하는 그런 인재가 오늘날 이 세상에 있겠소?"
포숙아가 아뢰었다.
"주공께서 그런 인재를 구하시지 않는다면 몰라도 반드시 그런 인물을 구하실 의향이시라면 우리 제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관중 그 사람입니다."
제환공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중은 과인에게 독화살을 쏘았소. 과인이 그대와의 옛 정분을 생각하여 그의 목을 치지 않았을 뿐이오. 어찌 원수를 정승으로 등용하란 말이오?"
어떤 인재를 찾느냐?
포숙아가 대답했다.
"신하된 자로서 그 누가 자기 주공을 위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주공을 쏜 것은 공자 규만 알았지 주공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공께서 그를 등용하시면 아마 주공을 겨누었던 그 활로써 이번에는 주공을 위해 천하를 겨냥하여 쏠 것입니다."
제환공은 대답이 없었다. 속으로는 아직도 관중에 대한 짐짐한 기분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날 독화살로 죽이려 한 인물인데.......'포숙아가 계속 아뢰었다.
"감히 비교한다면 우리 제나라의 시조이신 태공망에 필적할 만한 비상한 인물이 바로 관중입니다. 신은 불세출의 정승감을 천거하고 있는 것이지 과거에 누가 주공에게 무례했는지 또는 주공에게 독화살을 쏘았는지 그런 인물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환공은 그제서야 약간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경은 그를 불러오시오. 과인이 직접 그의 식견을 시험해 보겠소."
포숙아가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아뢰었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천한 몸으로는 능히 귀(貴)에 나아갈 수 없으며, 가난한 자는 부자(富者)를 부릴 수 없고, 가깝게 대하지 않으면 설령 낳고 기른 부모라고 할지라도 옳은 말로 간할 수 없다 하더이다. 그러니 주공께서 관중을 등용하실 생각이시면 곧 정승의 직인을 내리시고, 부형(父兄)에 대한 예로써 영접하십시오. 정승이란 임금의 다음 가는 자리라 이를 가볍게 여기면 임금 또한 스스로 가벼워집니다."
제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숙아가 자세를 바르게 한 후 계속했다.
"대저 비상한 인물에게는 반드시 비상한 예로써 대우해야 합니다. 그러니 주공은 우선 택일부터 하시고 교외에다 영접할 준비를 한 후에 만나십시오. 주공께 비록 독화살을 쏜 원수일지라도 상대가 어진 사람이면 존경하고, 식견이 높은 선비면 예의로써 대한다는 소문이 사방에 널리 퍼지면 천하에 뜻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주공을 우러러보고 우리 제나라에 등용되기를 진심으로 원하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제환공이 대답했다.
"과인은 그대가 시키는 대로 하겠소."
제환공은 곧 태복(太卜)에게 명하여 길일을 잡게 하고 교외 공관에서 관중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드디어 제환공이 관중을 정승으로 영접하는 그날이 됐다. 관중은 세 번 목욕하고 세 번 향유를 몸에다 발랐다. 그날 격식을 위해 관중에게 내려진 의복과 허리띠는 상대부(上大夫)의 복식보다 더 나았다. 제환공은 친히 교외까지 나가서 관중을 영접했다. 그리고 함께 나란히 수레를 타고 궁으로 향했다. 길 양편에 가득히 모여 구경하던 임치성의 백성들은 이 성대한 임금의 행차와 새 정승의 영접을 보고 놀라지 않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남문 밖 광장 활쏘기 대회에서 명궁으로 꼽혔던 소년이 바로 정승 관중이다."
"저잣거리에서 생선을 팔고 주점을 경영하던 그 청년이 바로 정승 관중이다."
"소백 공자를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노나라에서 잡혀온 죄수가 바로 정승 관중이다."
사람들은 생선 장수라는 천한 신분에서 일약 정승의 지위까지 오른 관중을 선망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독화살을 쏘았던 상대에게 복수의 감정을 버리고 인재로 기용하여 마치 부형(父兄)처럼 모시는 제환공의 아량과 정성을 더욱 우러러보았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관중과 제환공은 나란히 궁으로 수레를 타고 들어왔다. 궁 안에 이르자 관중이 수레에서 내려 제환공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앞서 있었던 일을 사과했다. 제환공은 친히 관중을 일으키고 자리를 내어 앉게 했다.관중은 극구 사양했다.
"신은 사로잡힌 죄수의 몸으로 죽음을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과도한 대접을 받는다면 이는 분수에 벗어납니다. 주공께서는 이를 살펴 주시옵소서."
제환공이 정성으로 말했다.
"과인이 그대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있소. 그대가 자리에 앉지 않으면 내 어찌 물어보겠소. 자리에 앉으시오. 그리고 내 물음에 말씀해 주시오."
관중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숙배하고 자리에 앉았다. 제환공이 물었다.
"우리 제나라는 천승(千乘)의 나라요, 과거부터 산동의 큰 나라였소. 또한 지난날 희공께서 여러 나라 제후들에게 위엄을 떨치셨기 때문에 작은 패업의 성취가 있었소. 그런 것이 요전 양공 때부터 정사(政事)에 질서를 잃더니 결국 큰 변고가 일어나고 말았소. 이번에 과인이 종묘 사직을 맡았으나 인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고 국위 또한 말이 아니오. 앞으로 나라 정사를 다스리고 기강을 세우려면 장차 무엇부터 먼저 해야겠소?"
관중이 아뢰었다.
"나라의 4가지 근본은 예(禮)·의(義)·염(廉)·치(恥)입니다. 이 4가지 근본부터 뚜렷이 펴고 백성을 다루면 나라의 기강이 저절로 펼쳐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능히 백성을 다룰 수 있소?"
"백성을 다루고자 하면 먼저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백성의 나아갈 길을 열어 줘야 합니다."
"백성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항시 백성과 함께 손을 잡고 일하며, 그 이익을 나눠주면 백성과 서로 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나간 죄를 용서해 주고 옛 법을 닦게 하고 자손이 없거나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부부의 짝을 짓도록 주선해 주면 백성은 늘고, 형벌은 줄고, 세금 부담은 감소되어 백성은 부자가 됩니다. 그리고 어진 선비를 등용하여 대신을 삼고 그들로 하여금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게 하면 자연 백성들은 예의를 배우게 됩니다. 또 일단 선포한 법령은 함부로 고치지 않아야만 백성은 모리(謀利) 협잡질을 않고 정직한 사람들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제환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또 물었다.
"그러면 백성의 나아갈 길을 열어 줘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오?"
"사(士)·농(農)·공(工)·상(商)을 사민(四民)이라고 합니다. 선비의 아들은 선비가 되고, 농군의 아들은 농사짓고, 공인(工)과 장사(商)하는 사람의 아들은 공상(工商)을 하되, 늘 익히고(習) 안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백성은 자기 직업을 자꾸 바꾸지 않고 만족할 수 있도록 해 줘야만 편안할 수 있습니다."
"백성이 안정되었을지라도 전쟁에 쓸 무기와 병사가 부족하면 어찌하오?"
"무기와 군사를 충족하려면 속형(贖刑)하는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중죄를 범한 자로서 형벌을 면하려면 서피(犀皮) 갑옷과 창 한 벌을 바치게 하고, 죄가 가벼운 자에겐 질긴 가죽 방패와 창 한 벌을 바치게 하고, 사소한 죄인에겐 벌금을 물게 하고, 그 죄가 분명치 못한 자는 용서하고, 소송을 거는 자에겐 쌍방(雙方)마다 화살 일 속(一束: 十二矢)을 바치게 합니다. 그리고 채광(採鑛)을 허가합니다. 철물(鐵物)을 모으되 좋은 것은 칼(劍)과 창을 만들고, 좋지 못한 것은 연장이나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 데 쓸모 있게 하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잘 됩니다."
제환공이 또 물었다.
"무기는 이미 정해졌을지라도 재화가 부족하면 그 때는 어찌하오?"
"산을 녹여 돈(錢)을 만들고 바다를 이용해서 소금을 구으면 그 이익이 천하에 유통합니다. 그리고 천하의 모든 물품을 거두어 두고, 때 맞추어 무역(貿易)하게 하는 동시에 창기(唱妓) 3백 명을 두어 행상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며, 모든 재화도 따라서 모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로부터 적당한 세금을 징수해서 군용(軍用)을 돕는다면 어찌 재용이 걱정되겠습니까?"
제환공이 또 물었다.
"군사가 많지 못하고 무장이 빈약하여 위세를 떨칠 수 없을 땐 어찌하오?"
"원래 군사란 것은 그 정예(精銳)한 것을 중시할 뿐 수효 많은 것을 목적으로 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군사는 힘보다 정신이 강해야 합니다. 만일 주공께서 관사를 기르고 무기를 준비하시면 다른 제후들도 모두 다 군사를 기르고 무기를 준비하리니, 그렇게 해서 승리하는 예를 보지 못했습니다. 주공께서 만일에 군사를 강하게 하고자 하실진대 그 내용을 튼튼히 하십시오. 신은 청컨대 내정(內政)을 지어 이에 기여하되 군령으로써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