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5장
5. 마침내 제환공 즉위하다
소백을 활로 쏘다
관중은 노나라에서 제나라 임치성까지 가는 사잇길을 익히 알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거나라에서 공자 소백이 귀국할 것으로 예상되는 길목에서 그들을 막을 대책도 생각해 두고 있었다. 한편 거나라에 피신해 있는 공자 소백과 포숙아는 어떠했는가. 본국에서 변란이 생겨 끝내 제양공이 살해당하고, 무지가 군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백이 포숙아에게 물었다.
"이 기회에 귀국하면 어떻겠소?"
포숙아가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직 이릅니다. 무지가 군위에 올랐다 해도 여러 대부들의 진정한 뜻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형님되시는 공자 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자세히 모릅니다. 그러니 좀더 지켜보십시오."
시간이 흘렀다. 국내에서 들려오는 것은 공자 규도 외국으로 피신했고, 연칭과 관지부가 국정을 제맘대로 주무른다는 반갑지 않은 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부 습붕으로부터 심부름하는 사람이 찾아와, 무지가 죽었고 대부들이 곧 군위를 정하려 하는데 노 나라에 가 있는 공자 규보다는 어서 빨리 귀국하여 대부들과 만나 새로운 군위에 관해 의논하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는 것 이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포숙아가 더 서둘렀다. 그는 거후( 侯)에게 달려가서 병차 백 승을 빌리고는 곧바로 모아놓고 그들에게 엄한 명령을 내렸다.
"공자를 도와 임치성에 빨리 도착할수록 큰 상을 내리리라. 모두들 날쌘 말을 준비하고 먹이도 충분히 준비하여 일각 후에 이 곳에 집합하라."
한편, 노나라를 떠난 관중은 밤낮없이 본국을 향해 달렸다. 마침내 즉묵 땅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소백을 모신 거나라 군사가 자신보다 한발 앞서 지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젠 소백을 잡았다. 여기서 막아야 한다.' 관중은 더욱 재촉하여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며 수행하는 병사들을 채근했다. 병차는 풍우처럼 달려 앞서 거나라 군사들이 지나간 길을 뒤쫓았다. 마침내 추격하는 관중과 노나라 병사들은 거나라 군사들이 병차를 세우고 휴식하는 대열을 만날 수 있었다. 관중이 바라보니 공자 소백이 수레 위에 단정히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관중이 수레 앞으로 나아가 깍듯이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공자께서 그 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공자 소백이 대답했다.
"형후가 세상을 뜨셨고 그 원수 또한 죽었다. 하기에 형후의 영전에 배례하러 가는 길이오. 그런데 그렇게 묻는 관중, 그대는 어디를 서둘러 가는 것이오?"
관중이 다시 말했다.
"공자 규께서는 공자의 형님이시고 궁중의 장자이십니다. 그러니 공자께서는 잠시 이 곳에 머무셨다가 형님이 오시면 함께 입국하시지요."
그 때였다.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새 포숙아가 달려와 냉랭하게 쏘아댔다.
"관중은 더 이상 나서지 말라. 나라의 임금은 덕있고 용기있는 사람이 앉아야 풍파가 없는 법. 선군께서 맏형이었지만 임금 자리를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여 오늘의 이 변고가 있음이니 여러 말할 것 없도다."
관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나라 군사들이 눈썹을 치켜 뜨고 노한 눈으로 자기를 노려보지 않는가. 그들은 병차도 백 승 가까운데다 여차하면 즉시 한바탕 피바람도 사양하지 않을 기색이었다. 관중은 자신이 데리고 온 노나라 병차 10승으로는 도저히 겨룰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시다면 하는 수 없지요. 나는 물러나겠소."
관중은 뒷걸음을 치며 자신의 병차 쪽으로 갔다. 그러나 속으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 단 한 대로 끝장을 내야 한다. 일국의 주인이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갈림길이다.' 관중의 손에서는 진땀이 났다. 그러나 그는 이미 몇 번이고 실수없도록 연습했고 준비해 두었다. 그는 슬그머니 화살촉에 씌워 두었던 가죽 마개를 벗겼다. 절대로 실수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화살촉에 지독한 독(毒)을 발라 두었던 것이다. 관중은 어느새 활을 들었고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휘-익!"
화살은 사정 없이 소백을 향해 날았다. 수레에 앉았던 소백이 다급하여 몸을 굴리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아악!"
외마디 소리와 함께 화살은 소백의 복부에 꽂혔다. 그 모습은 모든 사람들 눈에 똑똑히 보였다. 화살은 분명히 소백의 허리 부분에 꽂혀 있었다. 살짝 피부를 찢고 피에 닿기만 해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절독(絶毒)이 발린 화살이었다. 소백은 수레에서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포숙아는 황급히 소백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 어인 변인가!"
소백의 곁으로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어떤 이는 땅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소백이 마침내 죽었구나!' 남달리 신중한 관중은 도망치듯 하면서도 몰래 소백 진영의 기색을 살펴보았다. 영구차에 실리는 소백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었다. '성공이다. 이제 경쟁자는 없다.' 관중은 의기 양양하여 철수했다. 그리고 감격에 겨운 나머지 외쳐댔다.
"우리의 공자 규께서 복이 참으로 많구나! 그가 제나라 임금이 될 팔자로 태어났기에 내가 쏜 한 대의 화살에 소백이 죽고 만 것이로다."
관중은 곧 뒤따라오는 공자 규와 노장공을 향해 갔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는 모두 공자의 복입니다."
그들은 모두 공자 규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덧붙여 권했다.
"이제부터는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르는 곳의 마을 백성들과 읍장들을 위로하면서 가시지요."
그러나 꿈엔들 생각이나 했으리오. 관중이 쏜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 걸쇠에 있는 두꺼운 가죽에 꽂힌 것을.......그 때 소백은 재빠르게 헤아렸다. 그는 예전부터 관중의 활솜씨가 대단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은 척하지 않으면 또다시 화살이 날아올까 두려웠다. 그래서 즉시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리며 죽은 듯이 수레에서 굴러 떨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포숙아가 달려와 자신을 껴안았을 때 재빨리 낮은 목소리로 명령하고는 죽은 듯이 위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곧 영구차를 준비하여 내가 죽은 듯이 꾸미시오. 그리고 어서 우시오. 병사들에게 통곡하게 시키시오."
참으로 그 순발력과 위기 대처 능력을 볼 때 군후가 될 자질이 충분했다. 이리하여 소백은 관중과 노나라 병사들은 물론이고 거나라 병사들까지 모두를 속였다. 마침내 관중이 안심하고 물러나자, 포숙아는 소백을 시체처럼 위장하여 작은 수레에 송장 실리듯 태워 작은 길만 골라서 임치성을 향해 달려갔다.
"관중은 신중한 사내다. 언제 다시 돌아와 시체라도 내 달라고 할지 모른다."
포숙아는 더욱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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