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5장
4. 새 임금이 누구냐
무지, 옹름에게 죽다
한편 옹릉은 연칭과 관지부가 서둘러 고혜의 부중으로 달려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 비수 한 자루를 품에 감추고 궁중으로 갔다. 그가 무지 앞에 나아가 거짓으로 화급한 듯이 일을 꾸며 아뢰었다.
"지금 급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공자 규가 노나라 병사를 이끌고 쳐들어온다 합니다. 조만간에 임치성을 둘러 빼고 새 임금으로 오르겠다 큰소리 친다 합니다. 속히 계책을 세우고 싸울 준비를 하십시오."
이 말을 듣자 무지는 덜컥 겁이 났다. 황급히 일어나 좌우에 분부했다.
"어서 연칭을 불러라. 속히 찾아오너라."
옹름이 대답했다.
"연칭과 관지부 장군께서는 야외로 나갔습니다. 지금 조당(朝堂)에 대부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임금과 상의하고자 기다립니다."
무지는 이 말을 믿고 대부들이 기다리는 조당으로 향했다. 과연 조당에는 대부들이 모여 있었다. 무지는 임금이 앉는 상좌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 때 대부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무지는 의아해서 잠깐 멈춰 섰다. 그 때였다. 옹름이 품 속에서 비수를 꺼내더니 무지의 등을 찍었다. 무지는 외마디 비명도 크게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져 죽었다. 대부들은 재빨리 병풍처럼 둘러섰다. 조당을 경비하던 병사들은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무지 옆을 따르던 내시 하나가 기절할 듯이 놀라서 내궁 쪽으로 달아났다. 그는 즉시 연부인에게 달려가 사실을 고했다. 연부인은 일이 잘못 됐음을 알았다. 연비는 기구한 운명을 탄식하며 대들보에다 목을 매고 자살했다. 옹름은 무지가 죽은 것을 재삼 확인한 후 궁중 뜰에 장작을 쌓게 하고 불을 피웠다. 검은 연기가 공중으로 마구 퍼져나갔다. 이 때 고혜는 계속해서 연칭과 관지부에게 술을 권하며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문득 바깥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지키던 자가 들어와 고혜의 귀에다 대고 조그만 목소리로 무엇을 알리고는 사라졌다. 고혜가 말했다.
"두 분 영웅께서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집안일이 생겨서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고혜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연칭과 관지부가 무슨 일인지 물어볼 겨를조차 없었다. 때맞춰 이제까지 벽장속에 숨어 있던 자객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그들을 덮쳤다. 방 안에서 으악! 하는 비명 소리가 두 번 들렸다. 이어 연칭과 관지부를 따라왔던 시종들도 모조리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옹름과 대부들은 속속 고혜의 부중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연칭과 관지부의 목을 잘라서 선군의 신위 앞에 놓고 제사를 지냈다. 동시에 사람을 고분 땅으로 보내어 제양공의 시신을 찾아 오게 했다. 그들은 파온 시신을 제대로 염하고 빈소에 모셨다. 그 후에 새로 군위에 누구를 앉힐 것이냐는 회의를 열었다.
"공자 규가 연장자이니 마땅히 그를 세워야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부 옹름과 여러 대부들이 지지했다.
"아닙니다. 이렇듯 임금이 번갈아 살해당하는 등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소백 공자처럼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위엄이 있는 임금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의견이 또 있었다. 대부 습붕과 동곽아 등이 이를 지지했다.
노나라의 모사, 시백
두 의견은 팽팽하게 맞섰다. 그런데 대부 옹름은 이미 심복 부하를 시켜 노나라에 심부름을 보내놓고 있었다. 그는 궁궐에서 불이 오르는 걸 보거든 즉시 노나라로 가서 공자 규에게 이 사실을 전하라는 지시를 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부 습붕도 회의에 들어가기 앞서 심복을 불러 곧 거나라로 가서 공자 소백에게 빨리 귀국하라는 전갈을 전하도록 지시를 했다. 이렇듯 양쪽에서 각각 은밀히 일을 꾸미고 있었다. 한편 노장공은 공자 규를 군위에 모시려고 제나라에서 사람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크게 기뻐했다. 곧 생두 땅으로 사람을 보내 이 소식을 전하게 했다.이야기는 몇 달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공자 규가 노나라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그 때 노장공은 군사를 일으킬 것인지를 시백(施伯)에게 물었다.
"지금 제나라를 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시백이 그 불가(不可)함을 적극 진언했다.
"제는 아직도 강하고 우리는 약합니다. 제나라 군위가 흔들리면 우리에게는 다행입니다. 또 기회가 와서 우리가 제나라 임금을 세워 주게 되면 생색이 납니다. 우리 노나라에는 손해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공께서는 어이하시어 군사를 일으키려 하십니까. 일단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나라의 돌아가는 모습을 관망하십시오."
노장공은 시백의 말을 듣고, 일단 군사를 일으키는 일은 뒤로 미룬 후 공자 규에게 좋은 말로 위로하고 생두 땅에다 거처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한편 문강은 제양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에 축구 땅에서 노나라에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밤낮없이 아들인 노장공을 들볶았다.
"어서 군대를 일으켜 제나라로 쳐들어가지 않고 무얼 하느냐. 나는 무지란 놈을 잡아다 주리를 틀고 죽을 때까지 매질이라도 해야 이 분이 풀리겠다. 어서 원수를 갚지 않고 무얼 하느냐."
이럴 때에 공자 규의 일행이 노나라로 오자 문강은 공자 규를 부둥켜 안고 한바탕 통곡했다.
"어찌하여 동생은 그 무지란 놈을 그냥 두고 왔는가. 그 도적 불한당 같은 원수놈을....... 흐흐흑."
공자 규가 달랬다.
"고정하십시오. 곧 힘을 모아서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그래서 누님에게 온 게 아닙니까."
문강은 다시 노장공을 힐책하고 흐느껴 울었다.
"어서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무얼 하느냐. 규를 앞장 세우고 제나라로 가면 제나라 백성, 백에 구십 명이 무지를 버리고 호응할 텐데 어찌 가만 있단 말이냐. 내 어찌 지하에 계신 오라버니에게 낯을 들 면목이 있단 말이냐. 흐흐흑......."
그래서 참다 못한 노장공이 시백에게 군사를 일으킬 것인가를 물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무지가 죽고, 대부들이 모여 새로 공자 규를 군위에 모시기 위하여 사람을 보냈다는 것을 알자 문강은 더욱 노장공을 들볶았다.
"규를 그냥 보내면 위험하다. 혹 무슨 변괴라도 있으면 그 때 어찌할 거냐. 군사를 일으켜 그를 호위하고 제나라까지 가서 군위에 오르는 걸 확인하고 오너라."
노장공은 어머니 문강의 성화를 도저히 견디다 못해, 드디어 예전부터 절대로 안 된다던 시백의 말을 무시하고, 친히 병차 3백 승을 징발하여 조말을 대장, 진자와 양자를 좌우 부장으로 삼고 공자 규를 호위하여 제나라로 향해 떠날 만반의 채비를 갖추었다. 관중이 급히 달려와 노장공에게 청했다.
"지금 제나라 조당에서는 새로 군위를 세우는데 공자 규로 할 것이냐, 공자 소백으로 할 것이냐로 나뉘어져 의논중에 있다 합니다. 그런데 공자 소백은 지금 거나라에 있습니다. 따라서 귀국하려 한다면 우리 규 공자보다 이틀이나 빠를 수 있습니다. 만일에 소백이 먼저 입국하여 대부들의 호응을 얻는다면 고약한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신에게 좋은 말과 약간의 병사를 내주십시오. 제가 먼저 임치성에 가서 뒤탈이 없도록 일을 성사시켜 놓고 군후와 공자 규를 영접하겠습니다."
노장공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되물었다.
"무장한 군사 몇 명이면 되겠는가?"
"병차 10승만 있으면 되겠습니다."
노장공은 두말 않고 병차 10승을 관중에게 내줬다. 관중은 사은하고 궁에서 물러나오자 곧 제나라로 출발할 준비를 했다. '서둘러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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