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3장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자리:인
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인>은 예와 같은 단일 개념과 적어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예와는 달리 인은 <논어> 안에서 역설과 신비로 둘러싸여 있다. 인은 개별적인 것, 주관적인 것, 개성이나 감정, 태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인은 심리적인 개념인 것처럼 보인다. 나와 같이 <논어> 안에 피력되어 있는 사상이 (개별적 인간들의) 심리적인 개념들에 정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논어>의 본질적인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을 이와 같이 (개인적, 심리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특히 예민한 문제가 된다. 서양학자들이 자연스럽게 심리학적인 맥락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기본적인 주제들을 공자가 어떻게 비심리적인 방법으로 다룰 수 있었는가를 밝혀 내는 것은, 실로 인에 대한 최근 분석이 내놓은 주요한 성과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중국 문헌에서 심리적, 주관적인 의미로 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후대에 와서 비로소 생겨난 것이다. 그런 의미로의 인이라는 개념 사용의 중요성은 첫째 불교적 입장에 서 있는 주석가들의 심각한 심리적 편견과 둘째 그리스적, 기독교적 입장에 선 서양 번역가들에 의해 확대 포장되었다. 인에 대한 공자 학설의 정말로 새로운 면모들은 바로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그 점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주 새로운 것이요, 우리 (서양인)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서양식의) 심리 구조에 치우친-언어로는 파악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은 선, 인간애, 사랑, 자비, 덕, 인간다움, 최상의 인간성 등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다양한 주석가들에게 인은 미덕, 포괄적인 덕, 정신 상태, 마음 자세와 감정의 복합체, 신묘한 존재로 여겨졌다. 예 및 그 밖의 중요한 개념들과 인의 관계는 애매모호한 채로 남아있다. 이제 우리는 <논어>의 중요한 개념들을 사용하여 명백하고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는 의미의 제시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 대한 우리들의 설명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감추는 것은 없다> 하신 공자의 말씀을 실체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인의 해석을 참신하게 발전시키는 일을 해야만 한다. 웨일리는 인을 <신묘한 존재>라고 했다. 이렇게 <논어> 원문은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역설적 모순이 있음에 틀림없다. 인은 그 자체 무거운 짐이라고 한다.
진정한 선비는 뜻이 크고 굳세야만 한다. 그의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인을 자기 짐으로 삼으니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그의 갈 길은 끝나니 멀지 아니한가.
그런데 또 인은 <어려운 일을 제대로 하고 난 후에>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어려운 일을 완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인이 그렇게 먼가? 내가 그것을 바라면 그것은 여기에 있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인이란 이상적인 삶에 핵심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말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보다 먼저 고려할 아무 것도 없다. (다르지만 비슷하게 강조된 번역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정말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을 누구도 능가할 수 없다)
인한 사람의 눈에 띄는 독특한 특징은 무엇인가? 이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단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공자는 <이익과 운명과 인에 대해 드물게 얘기했다>고 할 뿐 아니라 인한 사람은 말하기를 신중히 한다고 여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언명들이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구절들에서는) 누구도 공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인하거나 인했던 실제 사람을 규정하는 공식은 발견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정말로 우리가 최초의 <저술>, 가장 권위있는 공자의 어록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논어>의 각 편들을 보면 인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이들 언명들은 몇 개의 주요 그룹으로 나뉜다.
2장에서 9장까지, 좀더 넓게는 2장에서 15장까지 나온 (인에 관한) 많은 언명들은 부정문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언명들은 여러 가지 칭찬할 만한 행동들을 반드시 인의 표지로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제의들을 다 부정하고 있다. 인을 추구하려는 노력에 관한 일반적인 언명들로 이루어진 또 다른 일련의 구절들이 있다. 우리가 앞서 인용했듯이, 인은 다른 어떤 것보다 앞서 고려해야 할 것이며, 군자는 잠시라도 인을 떠나서는 안 되며, 인은 사람이 어려운 일을 한 뒤에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힘이 약한 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 힘을 다 쓰려는 의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인에 관한 또 다른 많은 언급들은 또한 상당히 일반적이긴 하지만 인을 실천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효과나 위대한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인하지 않은 사람은 곤경도 영달도 오래 버틸 수 없다. 인자는 인을 편안히 여긴다.
인의 힘은-약간은 모호하지만-다음과 같은 문장 속에 표현되어 있다. 누가 자신을 극복하여 예를 따르면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의 인에 호응하리라. 진정한 임금이 일어나면 한 세대 뒤에 인은 널리 퍼질 것이다. 이 두 문장의 경우 인의 힘은 다른 조건, 즉 임금다움 또는 예를 향한 순종과 명백하게 연관되어 있다. 오직 인한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줄도, 미워할 줄도 안다고 말하는 구절이 있는가 하면, 또 그 반대로 진실로 인에 뜻을 둔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구절도 있다. 후자의 경우(즉 인한 사람은 미워함의 감정을 지니고 있는가의 여부)에 대하여 원문이 모호해서 웨일리는 그 문장을 본질적으로 반대되는 뜻으로 번역했다. 그렇게 핵심적인 문제에 관련된 구절에 반대되는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 개념이 모호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인에 대한 이들 모든 주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자의 <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검토했던 언명들은 인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거의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숨긴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얘들아, 너희들은 내가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너희들이 모르는 것을 나는 하지 않는다>. (공자의) 이런 말씀들을 우리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공자는 여기에서 다만 자기의 실제 행위둘에 대해서만 얘기할 뿐 비의적인 교의를 말하는 것은 반드시 아니라고 웨일리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곳(제3장)과 이 책의 다른 장들에서 제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듯이, 공자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비의적인 교리나 주관적 (심리적) 상태가 아니라, 바로 공적인 제반 상황에서의 실제 행위이기 때문에, 그는 실제 행위의 맥락에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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