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4장
5. 제양공의 침략 전쟁
신발 한 짝의 복수
한편 연칭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막 궁에다 불을 지를 참이었다.그 때 비가 달려나오며 조용하라는 듯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연칭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마치 은밀히 귓속말을 할 것 같은 자세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날카로운 비수를 꺼내 가차없이 연칭의 아랫배를 푹 하고 찌르는 것이었다.
"아-앗!"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예리한 단검이 배에 들어가질 않고 튕겨 나오다니.......연칭은 속에 이중으로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놀랐던 연칭은 곧 칼을 뽑아 휘둘렀다.칼날이 번쩍이고 비의 목은 떨어져 땅바닥에 굴렀다. 참으로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막는 놈은 누구든 베어라."
연칭이 소리쳤다. 그러자 병사들은 우르르 궁 안으로 난입해 들어갔다. 싸움은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간단한 경장 차림으로 사냥을 나온 몇 명의 시종들과 국경을 지키다 계획된 반란을 일으켜 습격해 온 단단히 무장한 병사들과의 싸움이 아닌가. 용력(勇力)을 뽐내던 석지분여조차도 변변한 대응 한번 못하고 죽어 버렸다. 연칭은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두르며 방마다 살펴 화문방장의 침실에까지 들어갔다. 침상에는 비단 도포자락을 둘러쓴 사람이 하나 누워 있었다.
"저 놈이구나!"
큰 소리와 함께 몇 자루의 칼이 비단도포를 찢고 침상에 누워 있는 인물을 찔렀다.
"으-악!"
비명 소리가 터지고 연칭은 불을 밝히라고 지시했다. 조금 후 횃불이 켜졌다. 연칭은 도포를 벗기고 상대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부르짖었다.
"이건 수염이 없다. 그 놈이 아니다."
연칭은 사방을 뒤지게 했다.
"멀리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다락이나 구석진 곳을 샅샅이 살펴라."
연칭은 명령한 후 화문방장의 침실을 나오다가 문득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발판이 세워진 앞에 사문구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연칭은 신발이 어찌 한 짝일까 생각하면서 발판을 툭 하고 차서 옆으로 밀었다. 그 곳에 사람의 발이 보였다. 아마 제양공일 것이라고 생각한 연칭이 문고리를 확 잡아당겼다. 음탕 무도한 임금, 제양공은 낮에 넘어졌던 그 다리가 몹시 아파서 잔뜩 쭈그리고 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제양공의 발에는 사문구 한 짝이 신겨져 있지 않은가. 그러면 발판 앞에 떨어져 있는 사문구 한 짝은 패구산 언덕에서 잃어버린 그 신발이란 말인가? 연칭은 제양공을 끌어냈다. 그러고는 뜰 아래로 데려가 무릎을 꿇리게 했다. 제양공은 땅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설 줄을 몰랐다. 연칭이 그를 꾸짖었다.
"이 흉악 무도한 놈, 네 놈이 지은 죄를 알고 있느냐! 우선 해마다 군사를 일으켜 싸움만 일삼으니 이제 제나라에는 젊 은이가 씨가 마르고 과부와 어린애 천지가 되었도다. 이는 네 놈이 백성을 사랑하기는 커녕 마치 물건처럼 천대했기 때 문이로다. 그 죄를 스스로 알겠느냐! 그리고 네 놈은 선군의 유명조차 지키지 않았다. 동기간에 화목하라 하셨거늘 무지님을 냉대하고 소백 공자를 국외로 내쫓는 등 패덕한 일을 저질렀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네 놈은 여동생과 정을 통 하며 음락하고 끝내는 매부를 살해했다. 이 하늘 아래 네 놈 보다 음탕 무도한 자가 있겠느냐! 그것만이 아니다. 병사를 변방에 내몰고 1년마다 교대시켜 준다 하고서도 지키기는 커녕 자신은 엉뚱하게 해괴한 짓만 하였다. 그리하고도 백성들에게 착하게 살고 신의를 지키라 하겠느냐 이 도적놈아!"
연칭은 추상같이 질책했다.
"백성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동기간에 우애는 커녕 음락이나 즐기는 놈아! 어찌 세상에 임금은 커녕 낯짝을 들고 인간 행세를 하느냐! 내 이제 만백성의 뜻을 헤아려 네 놈의 그 엄청난 죄악을 벌하겠노라."
연칭이 손을 들어 지시하자 병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제양공을 베고 찌르고 난도질했다. 그리고 뜰에 구덩이를 판 후 여러 시체들과 함께 묻어 버렸다. 이로써 제양공은 군위에 있은 지 5년 만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연칭과 관지부는 군사를 정돈하고 임치성으로 향해 행군했다. 이 때 무지는 가병(家兵)을 무장시키고 기다리다가 연칭의 군대가 남문을 통과했다는 기별을 받자 그제서야 나아가 두 장수를 영접하고 함께 궁으로 향했다.
-제아가 무도하면 폐하고 무지를 임금으로 모셔라.-
이러한 선군의 유명이 선포되었다. 물론 뒤늦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무지가 군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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