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4장
소백과 포숙아 도망치다
한편 소백은 궁에서 나와 곧 포숙아에게로 갔다. 소백이 궁중에서 있었던 일을 포숙아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지금쯤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했는지도 모른다."
포숙아는 소백의 초조함을 이해했다. 포숙아는 생각했다. '제양공은 예측 불허. 언제 기분이 뒤집혀 소백을 죽이라고 명령할지 모른다.'
"일단 오늘밤은 부중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언제라도 피할 수 있게끔 간단한 행장 정도는 갖추십시오. 제가 친구들을 통하여 은밀히 알아보겠습니다."
소백은 포숙아의 말대로 그의 부중으로 가서 간단한 행장을 갖췄다. 포숙아는 소백을 전송하고 나서는 곧 관중의 집으로 달려 갔다.
"아무래도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
관중은 느닷없는 말에 멍한 표정을 보였다. 포숙아는 앞서 있었던 소백의 이야기를 전했다.
"흠, 일단은 대비해야겠구먼."
관중도 불안한 기색이었다.
"제후의 심리가 극도로 불안정한 때이니만큼 우선 도피할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겠군."
"자네 생각도......."
포숙아는 관중의 판단을 항상 믿어 왔다. 그 관중마저도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임을 알자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고는 물었다.
"도망친다면 어느 나라가 좋을까?"
"큰 나라보다는 작은 나라가 좋을 거야. 참, 소백 공자의 외가가 거나라 아닌가. 그 곳이라면 거리도 멀지 않아서 연락하기도 쉽고...... 여러 모로 편리할 걸세."
포숙아가 물었다.
"오늘밤 떠나 버릴까?"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군. 밤이 길면 꿈도 많은 법. 결심이 섰으면 빨리 행동에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포숙아는 장차 관중과의 연락 방법 등을 정하고, 서둘러 준비를 갖춘 후 소백의 부중으로 갔다.소백은 행장을 갖추고 있었다.
"아무래도 도망쳐야겠지." 찾아온 포숙아를 보자 소백은 결론을 물었다.
"첫닭이 울고 성문이 열리면 그 때 나서지요. 장사꾼차림을 하면 몰라 볼 것입니다."
포숙아가 대답했다.
"어디로 도망치지?"
"공자님 외가인 거나라가 적합하지요."
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행장을 점검하고 몇 사람의 심복에게만 귀뜸한 후 새벽 첫닭이 울기를 기다렸다. 소백은 따로 심복 하인을 불러 한 장의 서찰을 내주며 분부했다.
"오늘이거나 아니면 이삼 일 안으로 궁에서 군대를 거느린 장수가 올 것이다. 그에게 전하거라."
하인이 절하고 물러나자 소백이 포숙아에게 설명했다.
"제아 형님에게 보내는 것이야."
궁에서 아침 조회 시간이 끝나자마자 제양공은 맹양을 곁으로 불러서 분부했다.
"과인이 밤새 궁리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소백과 포숙아란 자부터 잡아 옥에 가두는 게 좋을 듯하다. 곧 실행에 옮기어라."
맹양도 다른 말 하기가 뭣했다. '자칫 소백이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잠시 우물쭈물했다. 그 때였다.
"소백의 죄는 마땅히 잡아 가두고 다스려야 합니다."
이렇게 큰소리로 외치는 자가 있었다. 대부 연칭(連稱)이었다. 성격이 급하고 야심이 많으나 재주가 신통치 않은 인물이었자만 다행히 내궁의 연비(連妃) 사촌 오빠가 되어 제궁에 출사하고 있었다. 제양공은 연칭말을 듣더니 그를 곁으로 불러 병부를 내주고 단단히 분부했다.
"곧 일지 군을 거느리고 가서 소백과 포숙아 일당을 모조리 잡아오너라."
연칭은 나는 듯이 소백의 부중으로 갔다. 그러나 소백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소백 공자께서는 오늘 새벽에 어디론가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궁에서 오신 장수께 이 서찰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문지기가 서찰을 바쳤다. 연칭이 서찰을 받아 보니, '소백이 재배하고 서(書)를 형후 전하(兄侯殿下)께 바치나이다.' 하고 씌어 있었다. 연칭은 서찰을 품안에 갈무리하고 남문 쪽 주점으로 갔다. 포숙아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포숙아도 달아나고 없었다. 그의 가게 문은 굳게 잠겨 있고, 당분간 휴업이라는 쪽지 한 장만 덩그랗게 붙어 있었다. 연칭은 그 가게를 때려부수어 화풀이하고 궁으로 돌아가 제양공에게 복명했다.
"공자 소백이 도망치면서 서찰을 주공께 남겨 놓았더이다."
연칭이 서찰을 꺼내 바쳤다. 제양공은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했다. 그러나 소백과 포숙아가 이미 도망친 마당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제양공은 서찰을 받아 읽었다.
우리 형제와 누님들이 음탕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서 이제는 얼굴조차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왕희와 관계를 돈독히 하시고 모범을 보이시면 지나간 허물을 덮을 수 있습니다. 문강 누님과의 교류도 아예 끊으십시오. 출가하면 외인입니다. 어찌 그런 법도를 안 지키는지 소백은 답답합니다. 저는 이제 멀리 떠납니다. 장차 제나라를 걱정하면서 급히 몇 자 적습니다.
제양공은 서찰을 내팽개치더니 맹양을 노려보고 불쾌한 한마디를 던지고는 휑하니 일어나서 내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물쭈물하더니 꼴 좋게 되었다."
맹양은 화가 났다. 연칭을 향해 화풀이하듯 말했다.
"그대는 소백의 뒤를 추격해 보지도 않고 어찌 멀리 도망 쳤다고 아뢰는 것이오. 그리고 소백의 부중 문지기의 말을 전하려면 문지기를 부를 일이지 공연히 군사를 거느리고 가 서 소란을 피우는 건 무엇이오."
연칭은 대꾸할 말이 없어 묵묵부답 멍하니 서 있었다. 맹양은 그런 연칭이 더욱 밉살스러웠다. "나설 일이 있고 나서지 않을 일이 따로 있는 것이오. 연부도 처신하는데 좀 신중해야겠소이다."
맹양은 연칭을 면박을 주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연칭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맹양 이 놈, 기회가 오면 오늘의 이 업신여김을 열배 백배로 갚아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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