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1장
신성한 예식을 통한 인간의 공동체
공자가 정확하게 인간적인 덕의 정수로서 꿰뚫어보았던 묘한 힘에 대해 알아보려는 것이 지금부터의 과제이다. 결국 우리는 그 묘한 힘을 통하여 마침내 공자가 핵심으로 생각했던 인간의 존재적 거룩함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공자의 가르침 속에 담겨져 있는 이 거룩함의 중심적 역할은, 그 가르침의 존재적 핵심을 우리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20세기인 (오늘날)에까지 크게 무시되어져 왔다. 특별히 분석에 필요한 것'여기서 제안된 것'은 현대적 철학적 이해를 이용하여 재해석하는 일이다. 사실 그러한 재해석은, 철학적.반성적 작업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그늘에 가려져 왔던 우리 자신 (서양)의 철학적 사유의 차원을 밝혀 줄 것이다.
<논어>, 적어도 좀더 논어다운 맛이 나는 <핵심> 부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철학적 통찰은, (당대) 그것과 대립하였던 제자백가의 이념들이 공자의 학설에 영향을 미침에 따라, 곧 바로 은폐되어 버렸다. <논어>속의 주술적, 종교적 측면들에 대한 일정한 강조를 요구하는 이런 통찰은 일반적으로 현대에 들어와서 서양 학문의 영향을 받은 해석들에서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은 결코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오늘날 <논어> 독해의 주요한 흐름은 경험적, 인본주의적, 현대 지향적 가르침으로거나, 아니면 플라톤의 합리주의적 이론에 필적하는 또 다른 것(이상적 관념론)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사실 <논어>의 가르침은 <초자연적인 괴력>에 대한 미신 또는 진지한 믿음을 명백히 거부하는 주요한 첫걸음으로 자주 해석되어 왔다. 틀림없이 <논어>의 세계는 질적인 면에서 모세, 아이스퀼로스, 예수, 석가모니, 노자, 또는 우파니샤드 학자들의 세계와 상당히 다르다. 분명한 몇가지 면에서, 사실 <논어>는 인본주의자이며 동시에-여하튼 필요할 때 귀신들에게 제사를 지낼만큼 충분히 전통적이라는 의미의-전통주의자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공자는 말하였다. <백성들의 자기가 해야 할 일에 힘써라! 귀신은 거리를 두고 경외하라> 공자의 행동은 언제나 도리에 합당했으며, 그는 <괴이한 일이나, 억지 폭력으로 하는 일이나, 어지럽히는 일이나, (상식에 맞지 않는) 신기한 일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초월적,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노골적인 질문에는 <사람을 섬기는 일도 다 할 수 없는 데, 어찌 죽음을 알 수 있겠느냐?>고 대답하였다. <논어>의 중심 내용을 검토해 보면 주제나 핵심 개념들이 주로 인간의 본성, 도덕행위, 인간 관계에 관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당장 알 수 있다. 그점은 바로 항상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몇가지 주제, 말하자면 예, 인, 서, 충, 학, 악 및 가족적, 사회적 관계나 '군주, 부친 등등에 대한' 의무 등을 규정하는 각종의 개념들을 열거하면 충분하다. 더 나아가서 <논어>의 이러한 현세 지향적, 실천적인 인본주의는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행위란 술수나, 행운이나, 신비적 주술이나 그 밖에 어떤 순전히 의타적인 권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통하여 한층 더 심화되고 있다. 인간의 심성은 타고난 <본성> 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근면한 학문과 실천적 연마의 질과 양에 따라서 심성을 <형성해 낼> 수 있다. 고상한 심성은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첫째는 어려움이다> <지식인의 책임은 무겁고, 그가 갈 길은 멀다. 인의 실천을 자기 소임으로 삼았으니, 또한 힘들지 않겠는가?> 공자의 걱정은 <덕을 닦지 못하고, 학문을 강의하지 못하고, 의로운 일을 알고도 몸소 그곳으로 가지 못하며, 좋지 못한 것을 개선하지 못할가> 하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자기의 할 일은 경이나 기적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충실하고 진실한 인간, 값진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하여 언제나 자신을 <갈고 닦고 쪼고 단련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모든 면은 <논어>의 반주술적인 외양을 보여주는 듯싶다. 여기서는 초월적인 신의 후광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적이고 분명히 세속적인 무미 건조한 도덕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한 <논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묘한 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 주는 것 같은 언급들을 때때로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신묘함>이라는 말은, 어떤 특정인이 예를 올리는 그의 몸짓이나 음송 등을 통하여 자기의 의지를 아무런 억지나 무리없이 올바르고 (자연스럽게) 움직여 나가는 힘을 말한다. 심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 즉 책략이나 꾀를 쓸 수 없다. 그는 강제적 억지나 물리력을 쓰지 않으며 공리성을 따지고 검증하여 책략이나 술수를 얻어 내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적절한 예에 맞는 배치나 배열을 해놓고 예에 맞는 적절한 몸짓과 말을 하면서 예식을 끝마치려고 할 뿐이다. 자기 스스로는 조금도 억지나 무리함 없이, 그의 행위를 자연스럽게 끝낸 셈이다. 시의를 적절하게 맞추는 공자의 말씀은 위에 언급한 방법에 핵심이 되는 근원적인 어떤 신비력을 강하게 암시해 주고 있다. '아래의 인용문들에 나타난 한문 개념들은 모두 공자 사상에서 핵심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 개념들은 근원적인 가치를 갖는 인간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나, 상태 및 모형들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필요로 하는 한, 이들 개념에 대해서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논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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