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4장
2. 노환공의 죽음
팽생이 범인
"주공께서는 별래 무양하십니까? 문강 누님이 오셨다기에 인사차 들렀습니다."
팽생(彭生)이 조당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 번 기나라와의 싸움에서 크게 중상을 입고 그동안 치료를 받다가 노나라에서 사촌누나 문강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문안 인사차 궁중에 들어온 것이었다. '돌대가리 팽생, 힘은 장사.' 팽생을 보는 순간 속으로 끙끙 앓고 있던 제양공은 얼핏 하나의 멋진 계책이 떠올랐다. 제양공이 은근히 물었다.
"건강은 어떠한가? 거동에는 지장이 없는가?"
"이젠 거의 나았습니다."
팽생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제양공은 곧 주위를 물리치고 팽생을 가까이 불러 낮은 소리로 지시했다.
"너는 노환공을 전송하는 잔치가 끝나거든 술취한 노후를 저사에까지 전송하여라. 그리고 가는 도중에 외부에 상처를 내지 말고 소리없이 해치워라."
"죽이라는 말씀입니까?"
팽생이 물었다.
"조용하거라. 남이 들을까 염려된다. 노환공이 너에겐 원수나 다름없지 않느냐.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복수하면 될 게 아니겠느냐. 내 큰 상을 내리마."
팽생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기성(杞城) 밖에서 노나라와 정나라 놈들에게 당한 부상이 생각났다. 평생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늙은 원수놈을 내가 해치우고 말 테다.' 제양공은 즉시 사람을 시켜 노환공에게 우산(牛山)에서 전송하는 잔치를 열겠다고 청했다. 노환공은 잔치자리까지 거절하기는 뭣해서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몇 명의 수행원만 거느린 채 우산으로 갔다. 문강은 저사에서 혼자 속만 태우고 있었다. 그날 저녁, 우산에서 열린 환송 잔치는 참으로 성대했다. 노래와 춤이 끊일 새없이 계속됐다. 제양공은 매우 정중하게 노환공을 접대했다. 그러나 노환공은 머리만 숙이고 말이 없었다. 제양공은 모든 참석자에게 술잔을 돌리게 하였다. 또 내시에게 슬쩍 분부하여 노환공이 어떻게 하든 술을 많이 들게 하라고 지시해 두었다. 노환공은 아내의 일로 마음이 울적했다. 그래서 바치는 술잔을 잡히는 대로 받아 마셨다. 그는 술로 괴로운 심사를 잊으려 했다. 마침내 노환공은 부지중에 대취했다. 잔치가 파하고 떠날 때에는 노환공이 너무 취하여 헤어지 는 인사조차 변변히 못할 정도였다. 공자 팽생은 술취한 노환공을 부축하여 수레에 태웠다. 이윽고 수레가 우산을 떠났고, 팽생이 노환공과 함께 수레 속에 타고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이를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수레가 저사를 향해 얼마쯤 달렸을 때였다. 팽생은 술취해 곯아떨어진 노환공을 슬쩍 껴안았다. 그러고는 두 팔에 힘을 가했다. 상대는 벌써 장년기를 넘어선 연령이다. 어찌 팽생의 힘을 견디리오.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갈비뼈가 그대로 으스러지고, 노환공은 외마디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수레를 모는 어자도 덜컥거리는 수레바퀴 소리에 수레 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 수가 없었다. 팽생이 어자에게 소리쳤다.
"속히 수레를 성 안으로 돌려라. 노후께서 과음하신 탓에 병환이 난 듯하다. 늦으면 위험하다."
노환공의 수행원들은 팽생이 다급해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야심한 밤에 팽생이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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