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3장
흔들리는 세상
5. 며느리냐, 애첩이냐?
강이 첩이 된 사연
이야기는 위나라로 돌아간다. 위선공(衛宣公)이 제나라에서 선강을 며느리로 데려가서는 슬그머니 자신의 애첩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앞서 한 바 있다. 그 전말은 이랬다. 위선공은 공자 때 아버지 위장공(衛莊公)의 첩 이강(夷姜)과 관계를 가져 아들까지 낳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형나라로 도망쳐 살았다. 그런데 주우가 변란을 일으켰다가 잡혀 죽는 바람에 귀국하여 임금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위선공은 임금이 되자 옛날의 서모인 이강과 아예 터놓고 부부 생활을 하면서 둘 사이에 태어난 급자(急子)에게 다음 군위를 물려 줄 생각으로 있었다. 그래서 우선 급자에게 우공자(右公子)란 직책을 주었다.그후 급자의 나이 16세가 되었다. 당시 16세라면 장가를 들 나이었다. 위선공은 급자에게 아내를 구해 주고자 했다. 그래서 제희공에게 청혼하는 사자를 보냈다. 이윽고 제나라로 갔던 사자가 돌아와서 고했다.
"제후(齊侯)께서 순순히 허혼(許婚)하시었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천하절색이라고 하더이다."
"그래? 과연 그리 절색이더냐?"
"한번 본 사람은 그 미색(美色)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더이다. 그리고......."
"그리고.....라니?"
"각종 악기를 다루는 데 비상하게 뛰어난 재주가 있다고 하더이다."
'천하 절색의 미모에 악기를 잘 다루는 여자.' 이 소리에 원래부터 음탕한 위선공의 본성이 발작을 일으켰다. 그는 아직 얼굴도 못 본 며느리를 생각하면서 야비한 웃음과 함께 군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이튿날 위선공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새로 누각을 지으라고 분부했다.
"나라 안의 뛰어난 장인(匠人)들을 모으거라. 그리고 화려하고 웅대한 누대를 만들어라."
이렇게 해서 위나라에 큰 토목공사가 벌어졌다. 공사의 진척은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위선공은 우공자 급자를 불렀다.
"너는 송나라에 가서 송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곧 완성될 신대(新臺)의 축성을 아뢰어라."
급자는 분부를 받고 송나라로 떠났다. 이를 확인한 위선공은 즉시 공자 예(曳)를 불러 지시했다.
"너는 지금 제나라로 가서 신부를 영접해 오너라. 잊지 말 것은 신부의 거처를 위해 과인이 특별히 신대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차질이 없도록 하여라."
공자 예는 위선공이 내준 날쌘 병사와 수레를 타고 서둘러 제나라로 갔다. 제희공은 기다렸다는 듯이 큰딸을 치장해 내놓았다. 두 살 터울 아래 문강이 있었으므로 제희공은 선강을 어서 빨리 시집보내려 서둘렀던 것이다. 공자 예는 사은하고 선강을 영접해 서둘러 위나라로 돌아와 그녀를 신대로 안내했다. 그러나 그때는 신랑인 급자가 아직 송나라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을 때였다. 그날 밤이었다. 선강이 들어 있는 신방(新房)에 신랑 급자 대신에 시아버지 위선공이 슬그머니 들어갔다. 이리하여 제희공의 장녀 선강은 며느리로 시집와서는 호색꾼인 시아버지 위선공의 첩이 되었던 것이다. 위선공은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 선강에게 푹 빠졌다. 천하절색에다가 요염하기가 이를 데 없었으니 위선공으로 하여금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위선공은 아예 선강의 침실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여러 날이 지났다. 급자가 송나라로 가서 친선을 도모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조회시간이 되어도 위선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부득이 신대로 가서 귀국 보고를 했다. 위선공은 시치미를 뚝 떼고 급자를 맞이하더니 오히려 새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라고 급자와 선강 두 사람을 마주 앉혔다. 급자는 서모에 대한 예로써 선강에게 절했다. 이후부터 위선공은 아예 선강과 신대 안에 있는 침실에서 살았다. 3년 동안, 낮밤으로 선강을 어르고 품느라 나랏일을 돌볼 여가조차 없었다. 그런 동안에 선강은 아들을 둘이나 잇달아 낳았다. 큰아들 이름은 수(壽)이고, 작은아들의 이름은 삭(朔)이었다. 옛부터 '그 여자를 사랑하면 반드시 그 자식이 귀엽다.'고 했다. 위선공도 다를 바 없었다. 지난날 급자를 아껴 다음 군위를 그에게 물려 주고자 했던 위선공이지만 선강의 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자식 사랑도 수와 삭에게 옮겨 가고 말았다.
교활한 삭이 임금이 되다
그런데 공자 수는 천성이 맑고 효심과 우애가 남달랐다. 그래서 급자를 마치 친형처럼 존경하고 따르는가 하면 다른 공자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급자 역시 원래 천성이 부드러운 데다가 인내심이 강하고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여 공자 수와 친동기나 다름 없는 우애를 나눌 수 있었다. 공자 삭은 그렇지 못했다. 성격이 급하고 잔인했다. 그는 자신의 모친이 처음에 급자에게 시집왔다가 오히려 부군(父君)의 애첩이 된 것을 심히 부끄럽게 여겼다. 그런 나머지 급자를 눈엣가시처럼 미워했다. 이리하여 공자 삭은 그 모친 선강과 짜고 급자를 내쫓으려 계책을 꾸미면서 은밀히 자객들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끝내 급자와 친형인 공자 수를 죽이고 자신이 임금에 오르니 그가 바로 위혜공(衛惠公)인 것이다. 하루는 그 위혜공에게 정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나라 상경대부 제족이 보낸 자였다.
"어째서 왔느냐?"
정나라 사자가 아뢰었다.
"그동안 임금으로 있었던 여공은 제족을 죽이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채나라로 도망갔습니다. 지금 모든 신하들은 지난날의 주공을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전(前) 임금이신 정소공을 모시러 왔습니다."
위혜공은 제나라를 도와 기(杞)나라를 칠 때 정여공에게 패한 원한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기뻐했다. 즉시 수레를 준비시키고 도망와 있는 정소공을 그의 본국으로 호송케 하였다. 정소공과 위혜공은 장차 양국의 친선을 약조하면서 하나는 떠났고, 하나는 전송했다. 정소공을 보낸 후 위혜공은 슬며시 탐욕이 동했다. 원래 정나라에는 보물이 많기로 소문나 있었다. '아무래도 선물 정도는 보내오겠지.' 위혜공은 기다렸다. 그런데 정나라로 떠난 소공에게서 아무런 전갈 하나 없었다. 위혜공은 속이 상했다. 몇 개월이 흘렀다. 그럴 때 오히려 채나라로 도망쳤다는 전 임금 정여공이 보낸 자가 왔다.
"어째서 왔느냐?"
그 자는 공손히 절하고 품속에서 옥구슬 한쌍을 꺼내어 내 놓았다.
"저희 여공께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위혜공은 선물을 받자 입이 벌어졌다.
"너희 주공은 지금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 채나라로 도망가 있다던데...... 웬 선물인가?"
정여공이 보낸 자가 아뢰었다.
"저희 주공께서 곧 본국으로 들어가실 것입니다. 그러시면 내고(內庫)의 보물을 삼등분하여 노나라, 송나라, 위나라에 바칠 것입니다. 청컨데 구원병을 내주시옵소서."
위혜공은 보물 많기로 소문난 정나라 궁전의 내고 보물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에 혹했다. 그래서 과거의 원한도 몽땅 잊어버리고 자신이 직접 병사를 일으켜 노(魯), 송(宋) 연합군이 기다리는 정나라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위혜공이 정성에 당도했을 때, 뒤따라 급보가 날아들었다. 국내에서 변란이 일어나 급자의 동생 금모가 군위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위혜공은 크게 놀랐다. 그래서 곧 본국으로 회군했다. 그런데 병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다.
"이번에 군위에 오른 금모는 어진 분이시다."
소문은 날이 갈수록 번져나갔고 슬며시 도망치는 병사가 갈수록 늘어나기 시작했다. 위혜공의 군대가 마침내 위나라 경계에 들어섰을 때는 벌써 병사들 가운데 태반이 도망치고 없었다. 위혜공은 인심이 바뀐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말머리를 돌려 제나라로 달아났다.
제양공의 결혼
한편 제양공은 군위를 잃고 도망쳐 온 누이동생 선강의 아들인 삭을 맞이하여 친히 영접하고 융숭히 대접하면서 위로했다.
"과인이 거처와 의식을 넉넉히 대 주리라. 기회를 보아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다시 찾도록 하여라." 삭은 업드려서 제양공에게 고했다.
"본국으로 돌아가 다시 군위에 오르면 즉시 위나라 내고(內庫)를 열어 보배와 구슬을 모두 제나라 궁중에 바치겠습니다." 제양공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노나라에서 사자가 왔다. 제양공은 삭을 물러나게 하고 즉시 노나라 사자를 인견했다. 제양공은 얼마 전에 매부인 노환공을 통해서 주나라 왕희(王姬)에게 청혼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노나라 사자가 아뢰었다.
"우리 주공께서 군후의 청혼을 주왕실에 아뢰었습니다. 이에 주왕께서 윤허하시고 우리 주공 노후(魯侯)로 하여금 이 혼사를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왕희(王姬)께서 군후에게 하가(下家)하시게 되었으므로 우리 주공께서 친히 제나라까지 오셔서 모든 절차를 의논하시겠다고 하더이다."
이 말을 들은 제양공은 매우 기뻤다. 그는 은근히 여동생 문강(文姜)과 만나보고도 싶었고, 주왕(周王)의 사위가 되고자 한 일도 잘 되었으니 크게 잔치라도 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는 즉시 사자를 노나라로 보내며 말했다.
"노환공께서 혼자만 오실 일이 아니라 이왕이면 부부가 함께 와서 다녀가도록 간곡히 부탁하여라. 과인이 큰 잔치를 열어 환영할 것이다."
대부(大父)들이 이런 모양을 지켜 보다가 제양공에게 아뢰었다.
"이미 삭을 돕기로 하셨으니 위나라를 쳐야 할 텐데 언제 병사를 일으키시려는지요?"
제양공이 대답했다.
"지금 위나라 군위에 있는 금모 역시 주왕의 사위다. 이제 과인도 주왕의 사위가 되려고 혼사를 도모하는 중인데 위를 어찌 치겠느냐. 그러니 당분간 참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나 제양공은 한 가지 생각이 더 났다. 즉 위나라 사람들이 위혜공에게 복수하고자 자기 여동생인 선강(宣姜)을 죽이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마침내 제양공은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비밀리에 공자 규(糾)를 불러 간곡히 말했다.
"지금 위나라에 변고가 일어나 위혜공 삭이 군위를 빼앗기고 우리 제나라에 와 있다. 너도 잘 알겠지만 삭은 선강 누이의 아들이 아니냐. 일이 잘못 꼬이면 우리 형제간에 피를 보게 된다. 그러니 위나라로 가서 선강이 죽지 않도록 한 후 지금 우리 나라에 와 있는 공자 석(碩)과 선강이 재혼하도록 주선해 봐라. 그래야 선강이 맘 놓고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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