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2장
관포지교
2. 물오른 꽃봉오리 한창인데
남매의 邪戀
소백과 포숙아는 마치 형제처럼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성격이 서로 대조적이었지만 조화를 잘 이루었다.어느 날이었다. 포숙아에게 달려온 소백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씩씩거리며 놀라운 말을 했다.
"나는 장차 이 나라의 주인을 바꿔야 하겠다!"
소백은 작은 목소리지만 단호하게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포숙아, 네가 힘이 돼 줘야겠어."
포숙아는 이 엄청난 말에 너무 놀라서 소백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으려고 했다.'나라의 주인을 바꾼다'는 이 발언은 모반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소백은 얼굴을 돌려 포숙아의 손길을 피했다.
"왜? 두려워서? 누가 들을까 봐서? 걱정 마 지금 포숙아에게만 말하는 거니까."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오늘 궁 안에서 나는 제아 형님과 문......."
그러나 입술을 깨물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소백이 말끝을 바꾸었다.
"아냐. 그건 지금 밝힐 수 없어."
소백은 입을 다물었다. 소백의 고집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가 말하지 않겠다고 한 이상 입을 열게 하는 일은 아예 포기하는 것이 현명했다. 포숙아는 소백의 이런 성품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그러나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축하의 말을 해 주었다.
"내일이면 공자의 누님이 노나라 환공에게 출가하시는 날 아닙니까. 경사를 경축드립니다."
"그만 둬. 문란한 것들!"
소백은 다시 얼굴이 벌겋게 되어 씩씩거렸다. 무엇이 이토록 소백에게 충격을 준 것일까? 제희공에게는 딸 둘이 있었다. 그러니까 소백에게는 둘 다 이복 누님이 된다. 사기(史記)에 그들을 이렇게 적고 있다.
妖艶春秋首二姜
致令齊衛紊綱常
天生尤物殃人國
不及無鹽佐伯王
요염하기로는 춘추 시대 선강 . 문강 두 계집이니
제 . 위나라의 삼강오륜을 어지럽히고 말았도다
하늘이 이렇듯 우물을 내어 재앙을 내리니
어진 여인이 왕을 보필하던 옛일에 어찌 이를까
여기에 나오는 선강과 문강이 소백의 두 누이들이다. 선강부터 보기로 하자. 소백의 큰 누이 선강은 재작년에 위나라 위선공의 큰아들 급자(急子)에게 출가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급자의 아내가 되지 않고 시아버지 위선공의 애첩이 되었다. 이 이야기의 전말은 차차 밝혀진다. 작은 누이 문강은 어떠한가. 문강은 천하의 절색이기도 했지만 매우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나서 고금(古今)의 문장에 정통했다. 그녀가 입만 열면 주옥 같은 시(詩)와 명문(名文)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성격도 활달했다. 활달한 나머지 장난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문강 주위에는 항상 젊은이들이 들끓었다. 문강은 인기 절정의 미혼 여성으로 제나라 궁중 사교계에서 단연 꽃 중의 꽃이었다.
사랑은 두고 몸은 떠나고
꽃이 활짝 피면 나비가 날아든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세상의 이치이건만 그 꽃이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 피어 있으니 어찌할까? 이것이 문강의 처지였다. 문강은 조숙했다. 그래서 이성(異性)이 무엇인지를 일찍 알았다. 밤이면 외롭고 쓸쓸했다. 그런데 정작 그녀 옆에 얼쩡대는 귀족의 자제들은 모두가 겉만 멀정한 아첨꾼에 불과할 뿐 그녀의 진정한 외로움을 달랠 용감한 자가 없었다. 한편 세자 제아(諸兒)는 원래 동년배보다 숙성하여 키도 또래에 비해 한 뼘이나 더 컸고 용력(勇力)도 대단했다. 그리고 그는 상당한 미남이었다. '용모로 따지면 제아는 반안의 아들'이라고 찬사를 받을 만큼 외모가 걸출했다. 세자 제아는 문강보다 세 살 위였다. 그들은 이복남매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궁중에서 같이 뛰어 놀며 자랐다.
어느덧 두 사람 모두 청춘의 나이가 되었다. 잘 생기고 건장한 청년과 절세의 미모에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섬세한 처녀로 성장한 것이다. 사실 두 남녀를 놓고 보면 정말로 어울리는 한쌍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한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어찌 한쌍의 원앙이 될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졌으나 주위의 눈이 있어 자신들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강이 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문강의 병은 제아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제아는 문병을 한답시고 규중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는 문강이 누워 있는 침상 곁에 바싹 다가앉아 그녀의 몸을 여기저기 더듬었다.
"여기가 아프냐? 아니면......."
몸을 접촉하다 보니 이후부터 둘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한 이부자리 속에서 은밀히 속살을 맞붙이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문강은 점차 규중의 적막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 이목만 없다면 지금 오빠 방으로 달려가 그 품안에 안길 텐데.......' 제아는 제아대로 밤이 되면 문강의 그 요염한 얼굴과 나긋나긋한 몸매가 눈에 선했다. 그런데 그 즈음에 문강에게 청혼이 들어왔다. 노나라 노환공(魯恒公)이었다. 제희공은 쾌히 응낙했다.
"가을이 좋을 것이오. 오는 9월에 혼례토록 합시다."
문강은 자신의 혼약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한편으로 마음이 들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초조했다. '이러다가 제아 오빠와 영영 생이별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아아, 나도 몰라.' 혼례날이 하루하루 가까워 오자 문강은 들뜬 마음과 초조함이 한데 엉켜 더욱 혼란해져 갔다. 문강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아 오빠에게 슬며시 편지를 썼다.
물 오른 이 꽃봉오리 한창인데
어이 해 그리운 님은 보이질 않네
그 손끝에 얹혀 활짝 피어나길
손꼽아 손꼽아 기다리옵니다
제아는 이렇듯 절절한 문강의 애정을 대하자 더 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둘은 문강이 노나라로 떠나기 전날 밤, 후원 깊숙한 밀실에서 만났다.
"문강아!"
"오라버니, 전 가고 싶지 않아요. 전 어떡하면 좋아요. 아, 오라버니......."
그날 밤 둘은 서로의 처지를 동정하다가 그만 넘지 못할 선을 넘고 말았다.
몸은 노나라로 떠나가지만
내 진실한 사랑은
이 곳에 남겨 놓습니다.
문강은 밤새도록 제아의 품을 더듬었고 제아는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사랑해 주었다. 이튿날이 되었다. 문강이 노나라로 떠나는 날이다. 문강은 육궁의 비와 권속들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제아와 이별하려고 동궁(東宮)으로 갔다. 제아는 문강을 위해 술상까지 차려 놓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껴안고 어젯밤의 그 진했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이별을 아쉬워했다.
한편, 제희공은 출발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는데 문강이 나타나질 않자 막내아들 소백에게 빨리 누이를 데려오라고 재촉했다.
"어서 누님을 불러오너라. 떠날 시각이 되었다."
그래서 소백은 동궁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조금 후 소백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나왔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러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제희공은 문강을 데리고 노환공이 기다리는 관(琯) 땅을 향해 떠났다.
포숙아, 공자 소백의 보좌역이 되다
'문란한 것들......? 무엇이 문란해졌단 말인가?'
포숙아는 계속 이 생각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구중궁궐 깊숙이에서 벌어진 남녀 사이의 은밀한 일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포숙아의 앞에는 아직도 화가 몹시 난 듯 입을 꽉 다문 소백이 앉아 있었다. 소백은 자꾸만 떠오르는 음탕한 장면을 애써 잊으려고 해 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제아 형님과 문강 누님이 껴안고 있던 모습이 더욱 선연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소백이 문강을 찾아 동궁으로 들어갔을 때 두 사람은 꼭 껴안고 격렬하게 입맞춤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
놀란 소백의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두 사람은 동생 소백이 보고 있는 것을 알 리가 없었고, 더욱 애타듯이 서로를 찾았다.제아가 문강의 가슴으로 손을 밀어 넣더니 비틀 듯이 옷을 벗겼다. 그러자 희고 탐스러운 젖가슴이 나타났다. 소백은 숨을 죽였다. 눈앞이 희미해졌다.
"아, 좀더 세게......."
숨이 막힐 듯이 새나오는 문강의 콧소리가 마치 송곳처럼 날카롭게 귀청을 찔렀다.
"어젯밤을 잊지는 않을 테지......."
형님의 숨가쁜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찌 잊겠어요. 제 첫날밤인 걸요. 전 오빠에게 모든 걸 바쳤어요. 아, 오빠, 절 잊으시면 절대로 안 돼요."
문강 누이의 목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소백이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나며 소리치는 바람에 두 남녀는 놀라 얼른 떨어져 흐트러진 옷 매무새를 고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포숙아."
소백이 포숙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 보좌역을 맡아 주지 않겠어?"
"보좌역... 이라뇨?"
"말하자면 나의 참모가 되어 달라는 거야."
포숙아는 잠시 소백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소백 공자님, 보좌역이든 참모든 다 좋습니다만......."
포숙아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어째서 나라의 주인을 바꾸어야 했다고 생각하는지 공자님의 생각을 저에게 말씀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말할 수 있지."
소백은 가슴을 펴며 대답했다.
"지금 주왕실의 권위는 크게 쇠퇴하여 각 나라의 제후들이 저마다 세력을 키우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어. 한편으로는 임금 자리를 노려서 죽이거나 빼앗는 일이 다반사이고.......이런 때에는 사사로운 정분이나 쾌락에 눈이 어두워서는 곤란한 일이야. 특히 임금이 그런다면 나라의 흥망이 걸린 중대 문제가 되고 말아....... 나는 제아 형님에 대해서라면 믿을 수가 없어. 지나치게 호색하고 위엄이 부족해. 나는 제나라의 장래가 정말로 걱정돼."
그 말을 들으면서 포숙아는 느꼈다. 소백의 열렬한 마음을......소백은 잠시 포숙아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단호한 결심을 밝히는 것이었다.
"제아 형님으로는 제나라의 장래가 없어! 난 누구라도 좋지만 제아 형님만은 안 되겠다고 생각해. 아니 번거롭다면 내 자신이 그 자리를 맡아 해도 좋다고 봐."
"자네가 공자 소백의 보좌역이 되었다고......?"
관중은 놀랐다.
"정말로 축하할 만한 일이다. 만일에...... 그가 임금이 된다면 일등 공신(功臣)이 아닌가!"
"쉬이- 큰일날 소리."
포숙아가 화급하게 관중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장난이라도 그런 말 말아."
관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세자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잘못 들으면 모반이라도 하는 게 될 테니까 말야."
"그럼 조심해야지."
둘이는 그날 포숙아와 소백 사이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았다.
"분명한 것은......."
관중이 먼저 말했다.
"궁중(宮中)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거야. 사실 소문이긴 하지만 제아라는 세자가 생긴 건 멀끔한데 호색하고 어딘가 위엄이 없다는 거야. 옛부터 이런 말이 있지. '자질이 뛰어난 세자가 혼군(昏君)이 되는 경우는 있어도, 자질이 부족한 세자가 명군(名言)이 되는 예는 없다.' 오늘 자네가 소백 공자와 인연을 맺은 일이 장래에 좋은 결실로 이어질 거야. 나는 그런 걸 느껴. 소백 공자는 막내이지만 응석받이가 아닌 것 같아. 한번 기대해 보자구."
"물론 자네도 적극 도와 주겠지."
"이를 말인가. 자네 일인데......."
포숙아는 관중이 흔쾌히 대답하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이제부터는 소백 공자에게 기대를 걸고 한번 멋지게 뜻을 펼쳐 보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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