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아흔아홉번째 이야기 - 새들이 왕을 뽑다
눈 덮인 산의 양지바른 곳에 수많은 새들이 모여 살고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새들이 모여 그들을 대표하는 왕을 뽑기로 했다.
"선거를 해서 왕을 뽑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왕을 중심으로 뭉치면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누구를 왕으로 뽑아야 할까?"
"나는 학을 추천하고 싶다."
"학은 안 돼! 왜냐하면 학은 다리도 길고 목도 길다. 만일 다른 새들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학은 그 새의 머리를 쪼아버리고 말 거야."
"맞아, 맞아!"
"나는 거위를 추천한다. 거위는 순백의 깃털을 가지고 있으니 뭇 새들이 존경할 만하다."
"거위도 안 돼! 거위의 깃털이 희고 깨끗하기는 하지만 그 목은 휘어지고 또 길다. 자기의 목도 곧지 못한데, 어떻게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겠어?"
"공작새가 좋겠다. 공작새의 날개는 오색찬란해서 보는 이들을 기쁘게 한다. 그가 왕이 된다면 모두들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공작새의 날개가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매번 춤출 때마다 온갖 추태를 다 보인단 말이다. 또 잘난 척하기도 좋아한다. 그가 왕이 되면 우리들도 나쁘게 물들고 말 것이다."
"나는 부엉이를 추천한다. 그는 낮에 쉬고 밤에 활동하니 우리들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니 왕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자 여러 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소! 옳소!"
그때 총명한 앵무새 한 마리가 남들이 하는 말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듣다가 부엉이를 추천한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 아냐. 새의 습성은 밤에 잠을 자고 낮에는 이리저리 먹이를 찾아 돌아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부엉이는 밤에는 깨어있고 낮에는 잠을 잔다. 그가 왕이 되면 주위의 신하들은 모두 밤낮으로 깨어 있어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내 생각을 말하면 부엉이가 화를 낼 뿐만 아니라 그 보복으로 내 깃털을 모두 뽑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여러 새들이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아, 어떻게 한다? 자기 생각만 하면 큰 일에 해를 끼칠 수 있어. 모두를 위하고 또 정의를 위해서라면 깃털이 뽑히는 아픔을 참아야겠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앵무새는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그 말을 들은 여러 새들이 잠시 생각해본 후 말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슬기로운 것은 아니구나. 너는 어리지만 제법 슬기롭구나."
다시 앵무새가 덧붙였다.
"내 말이 이해가 가면 부엉이를 왕으로 뽑아서는 안 돼. 부엉이가 웃을 때 뭇 새들은 공포감을 느끼는데, 그가 화라도 내면 어떨지 생각해 봐."
"앵무새 말이 옳소!"
이에 뭇 새들은 이렇게 결정했다.
"이 앵무새는 총명하고 슬기로우니 우리들의 왕이 되기에 적합하다. 그를 왕으로 뽑자."
이렇게 해서 앵무새는 새들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법원주림>
백번째 이야기 - 나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오
축차시라국의 박라우라 마을에 칭가발타라는 가난한 사람이 살았다. 칭가바타의 집은 원래 아주 큰 부자였지만 서서히 가세가 기울어 나중엔 거지꼴이 되고말았다. 친척들은 거지꼴이 된 칭가발타를 보지않으려 했고 혹 만나는 일이 있으면 교만을 떨며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칭가발타는 너무나 괴로워 고향을 등지고 대상들을 따라 먼 나라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이윽고 고향이 그리워진 칭가발타는 대상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때 고향에 있던 친척들은 칭가발타가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산해진미와 여러 기녀들을 데리고 마중나갔다. 칭가발타는 수수한 옷을 입고 대상의 선두 부분에 있었다. 칭가발타는 고향을 떠날 때 어린 나이였으므로,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를 금방 알아보는 친척은 없었다. 도리어 친척들은 앞쪽에 서있는 칭가발타에게 이렇게 물었다.
"칭가발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칭가발타가 대답했다.
"저쪽 뒷부분에 있습니다." 친척들은 대열의 뒷부분에 가서 물었다.
"칭가발타는 어디에 있습니까?" 대상 중의 한 사람이 대답했다.
"저 앞쪽에 가고있는 사람이 바로 칭가발타요."
친척들은 다시 앞쪽으로 달려와 칭가발타에게 물었다.
"자네가 바로 칭가발타이면서 왜 뒤쪽에 가서 찾으라고 한 것인가?"
칭가발타는 씁쓸해하면서 얘기했다.
"내가 가난했을 때 친척 여러분들은 날 보려 하지도 않고 말조차 걸지도 않았소. 그런데 내가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니까 이제 이렇게 마중을 나온 것이군요."
"아니, 자네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는가?"
"옛날에는 상대도 하지않다가 내가 부자가 된 걸 알고 이렇게 산해진미와 기녀들을 데리고 와서 환영하다니... 결국당신들이 환영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저 재물이지 뭐겠소?"
이렇게 얘기하자 친척들은 낯을 들지 못했다.
<대장엄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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