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말의 장례식은 이렇게 치른다 <우맹>
-"내관은 동으로, 외관은 흙으로 쌓아 만들며, 말을 넣은 관 속에는 생강과 대추 등 향신료를 넣고, 밑에는 목란 섶을 깔아야 합니다. 이때 제물로는 쌀을 바치며, 불로 태운 후 사람의 뱃속에 묻는 것입니다."-
초나라 장왕에게는 사랑스런 말이 한 마리 있었다. 그 말에게는 늘 아름답게 수놓은 비단옷을 입혔으며, 마구간을 어전처럼 꾸미고 침상까지 놓아주었다. 그리고 말먹이도 풀이 아닌 대추와 말린 고기를 썼다. 그러자 말은 영양가가 많은 음식만 섭취하는 바람에 비대해져서 죽고 말았다. 장왕은 너무 슬펐다. 그래서 신하들로 하여금 상복을 입게 하고, 장례도 대부에 해당하는 격식을 갖추어 치르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측근의 신하들이 입을 모아 반대를 했지만 장왕은 듣지 않았다.
"이후 과인의 죽은 말에 관하여 더 이상 간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리라."
이같은 장왕의 명이 떨어지자, 그 다음부터 누구 하나 말에 관하여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자가 없었다.
궁중 악관 중에 우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는 말 그대로 '배우'를 뜻하며, 일종의 궁중에 속해있는 어릿광대로서 익살 섞인 말로 군주와 대신들을 즐겁게 해주는 신분이었다. 그런데 그 우맹이 왕궁으로 달려가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울었다. 장왕이 매우 놀라 통곡하는 이유를 물었다. 우맹이 대답하였다.
"대왕께서는 평소 얼마나 말을 귀여워하셨습니까? 지금 천하에 힘을 자랑하고 있는 대국인 우리 초나라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왕이 그토록 사랑스러워하던 말이 죽었는데, 고작 대부의 격식으로 장례를 치르라 하시니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죽은 말의 장례는 아무쪼록 군주의 격식을 갖추어 제대로 치르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군주의 격식이라니? 대체 어찌 하자는 말인가?"
장왕은 우맹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관은 옥관을 준비하도록 하고, 그 외부에 나무결이 좋은 가래나무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 외관을 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주위에는 편나무, 단풍나무, 예장나무 같은 좋은 재목으로 덮는 것입니다. 한편 병사들을 동원하여 능묘를 파게 하고, 노인이나 어린이에겐 흙을 나르게 하십시오. 이렇게 준비를 한 후 장례식 때는 제나라와 조나라의 사자로 하여금 앞장서서 안내를 하게 하고, 한나라와 위나라의 사자는 맨 뒤에 서서 장례행렬을 호위토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묘에는 소, 돼지, 양을 바치고, 만호의 영지를 말에게 내려 주십시오. 이러한 것이 제후들에게 알려지면 대왕께서는 인간보다 말을 더 높이 여긴다는 찬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장왕은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말하였다.
"과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소. 그렇다면 그대는 말의 장례를 어떻게 치렀으면 좋겠소?"
우맹이 대답하였다.
"그러시다면 도살장으로 보내십시오. 내관은 동으로 만들고, 외관은 흙으로 쌓아 만듭니다. 그리고 그 관 속에는 생강과 대추 등 각종 향신료를 넣고, 밑에는 목란 섶을 깔아야 합니다. 이때 제물로는 쌀을 바치며, 불로 태운 후 사람의 뱃속에 묻는 것입니다."
장왕은 우맹의 말에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태관에게 말의 장례를 일임해 버렸다. 이렇게 하여 우맹은 초나라에서 현인으로 알려졌다. 당시 재상으로 있던 손숙오는 특히 그를 후하게 대접하였다. 손숙오는 자신이 병으로 쓰러져 죽을 때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가난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맹을 찾아가, 손숙오의 아들이라고 말하거라."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손숙오의 아들은 가난을 면치 못하여 나무를 해다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였다. 아버지 손숙오의 유언대로 아들은 우맹을 찾아갔다.
"당분간 내 집에서 편안히 쉬게나."
손숙오의 유언 내용을 들은 우맹은 그 아들을 아주 잘 대접하였다. 그리고 나서 우맹은 죽은 손숙오가 평소 착용했던 의관을 만들어 입고, 그의 몸가짐과 말씨를 그대로 연습하였다. 그는 남의 흉내를 잘 내는 배우였기 때문에 1년이 지나자 손숙오를 꼭 닮게 되었다. 장왕이 연회를 열었을 때, 우맹은 손숙오로 변장하고 나갔다. 장왕은 죽은 손숙오가 돌아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나중에서야 우맹이 분장을 한 것을 알고,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하였다. 우맹이 말하였다.
"집에 돌아가 아내와 의논해야겠습니다. 3일간 말미를 주십시오." 그리고 3일 후 우맹은 다시 장왕을 찾아갔다.
"그래 결심이 섰소?"
장왕이 물었다.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나라에서 재상 같은 것을 하면 안 됩니다. 손숙오 같은 분은 초나라 재상이 되어 충성을 다하고, 사욕을 버리고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 때문에 대왕께서는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손숙오는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에게 약간의 땅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아주 가난하여 나무를 해다 팔아 겨우 연명한다고 합니다. 어차피 손숙오와 같이 될 바에야 자살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저 또한 그렇게 생각되었습니다."
우맹의 말이 끝나자 장왕은 달려와 손을 잡으며 사과하였다. 그리고는 곧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4백 호의 영지를 주고, 아버지의 제사를 잘 차리도록 일렀다. 반전: 한 술 더 떠서 상대를 제압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의외로 억지의 말이 쉽게 통하는 경우가 있다. 억지를 부리는 상대에게는 더욱 강한 펀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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