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하백에게 처녀대신 무당을 바치다<서문표>
-업현에서는 매년 하백에게 부인을 얻어주는 행사가 벌어지는데, 그때쯤 되면 무당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예쁜 처녀를 한 명 골라 '이 아이가 하백의 부인이 될 만하다'고 추천하였다.-
위나라 문후 때 서문표는 업현의 현령이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고을의 장로들을 불러놓고, 그들이 고민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노인 한 명이 말하였다.
"하백에게 매년 처녀를 바쳐야 하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로 인하여 예쁜 딸을 가진 부모는 근심 속에 살며, 백성들은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하백'은 수신을 뜻하였다.
"수신에게 처녀를 바치다니? 또 가난을 면치 못한다는 것은 무슨 말이오?"
노인이 말하였다.
"업현의 교화를 담당하는 삼로와 현청의 속관들이 해마다 백성들에게서 수백만 전의 세금을 거둬갑니다. 이 과세 중에서 수만 전을 떼어 하백에게 부인을 얻어주는데 쓰고, 그 나머지 돈은 그들과 무당들이 나누어 갖습니다."
서문표로서는 들을수록 해괴한 이야기뿐이었다. 업현에서는 매년 하백에게 부인을 얻어주는 행사가 벌어지는데, 그때쯤 되면 무당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예쁜 처녀를 한명 골라 '이 아이가 하백의 부인이 될 만하다'고 추천하였다. 그러면 곧 삼로와 현청 속관들은 그 집에 폐백을 보내고, 그 처녀를 데려다 목욕을 시킨 뒤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혀 황하의 물 위에 지은 재궁으로 데려갔다. 재궁은 붉은 장막이 쳐져 있고, 그 안에 쇠고기와 술과 밥을 잘 차려 놓아 십여 일 동안 처녀에게 잘 먹였다. 그런 뒤 여러 무당이 달려들어 처녀에게 화장을 시키고 새색시의상을 입힌 후, 날을 잡아 시집가는 여자의 방처럼 꾸민 나무 판자위에 그녀를 태워 물 위에 띄워 보내는 것이었다. 노인이 긴 설명을 끝내자, 서문표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수신에게 처녀를 바치는 것이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이 고을에 내려오던 풍습입니다. 속담에도 '만일 하백에게 처녀를 바치지 않으면, 신이 노해 황하의 물을 넘치게 하여 고을이 모두 잠기고 사람들을 익사시킬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하백이 한번 화를 내면 강물이 마르고 땅이 가물어 곡식들이 모두 타죽는다고 합니다. 하백의 이러한 경고 때문에 해마다 이 행사는 계속되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서문표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무슨 결단이 선 듯이 다시 물었다.
"그 행사가 언제 있습니까?"
"이제 곧 닥쳐오기 때문에 이렇게 모두들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좋소! 그때가 되어 삼로와 무당들이 강가로 모두 나오면 내게 알려주시오. 이 고을의 큰 행사이니 나도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것이 아닙니까?"
고을의 장로들을 돌려보낸 후 서문표는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장로들로부터 연락을 받은 서문표는 황하의 강가로 나갔다. 거기에는 삼로와 현청의 속관들과 고을의 호족들이 나와 있었다. 구경꾼만 해도 수천 명이었다. 큰무당은 70세가 넘은 여자였다. 그녀를 따르는 10여 명의 새끼무당들도 나와 있었는데, 모두들 비단으로 만든 호화스런 옷을 입고 있었다. 이때 서문표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하백의 신부감을 불러오라. 어디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고 싶구나."
행사를 주관하는 것은 삼로와 무당들이었지만, 현령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재궁의 장막 속에 있던 처녀가 곧 서문표 앞으로 불려나왔다. 서문표가 보기에도 처녀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는 삼로와 무당과 처녀의 부모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니 하백에게 시집보낼 처녀의 얼굴이 왜 이 모양인가? 내 눈에는 이 처녀가 추하게만 보이는구나."
큰무당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고을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처녀입니다."
"아니다. 이 처녀는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하백이 화를 낼 것이다. 수고스럽지만 큰무당은 지금 하백에게 가서, 후일 다시 아름다운 처녀를 구해오겠다고 보고하고 돌아오라."
서문표의 말에 큰무당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백님께 갔다 오라시면?"
"뭣들 하느냐? 어서 저 늙은 것을 물속에 쳐넣어라."
서문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졸들이 달려들어 큰무당을 강물 속에 텀벙 집어던졌다. 갑자기 술렁거리던 행사장은 조용해졌다.
"아니, 무당 할멈은 하백을 만나러 들어간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나오질 않고 있느냐? 제자는 가서 왜 이리 늦는지 알아보고 오라."
서문표는 다시 사졸들을 시켜 새끼무당 한 명을 물속에 처넣게 하였다. 잠시 기다리던 서문표는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이런, 제자마저 들어가더니 오리무중이로군, 다시 한 사람을 더 보내라."
사졸들이 새끼무당 한 명을 다시 물속에 처넣었다. 이렇게 세 명의 무당을 물속에 던지게 한 후 서문표가 말하였다.
"무당과 그 제자들은 모두 여자라, 하백을 만나는 것이 몹시 두려운 모양이다. 이번에는 삼로가 하백에게 다녀오라."
사졸들은 삼로를 물속에 던졌다. 그리고 나서 서문표는 오래도록 기다렸다. 고을의 장로들과 현청의 속관들, 호족들은 모두들 놀라 현령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들을 돌아보며 서문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무당들과 삼로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백이 너무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만드니, 모두들 돌아가도록 합시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 업현에서는 하백에게 처녀를 바치는 일이 없어졌다. 서문표는 곧 백성들을 동원하여 열두 개의 수로를 만들어 강물을 끌어들여 논밭에 물을 대도록 하였다. 그후 농사가 잘되어 업현의 백성들은 부유한 생활을 꾸려갈 수 있게 되었다.
미신 : 미신에 연연하지 마라. 무슨 일을 하든간에 미신이 위안은 될 수 있지만 의탁해서는 안된다. 길흉화복은 미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준비하고 노력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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