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일흔한번째 이야기 - 독을 쓰는 집안
옛날의 일이다. 독을 사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로 돈을 번 한 집안이 있었다. 일단 중독이 되면 특별한 해독약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집안 사람들은 중독된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나라 백성들은 모두 그 집안을 두려워하여 감히 왕래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 집안의 아들이 장성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집에 딸자식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 집안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집안이다. 만약 그 집안과 사돈을 맺게 되면 틀림없이 호랑이를 제 집에 끌어들이는 꼴이다. 그들은 가리지 않고 독을 쓰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는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마치 도적을 대하는 것처럼 멀리해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집안 사람들은 도적보다 더 나쁘다. 도적을 만나더라도 운이 좋으면 살아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의 독수에 걸리는 날엔 빠져나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집안의 아들은 아무리 해도 신부감을 구할 수 없었다. 급기야 그 집안은 먼 외국에서 신부감을 찾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아주 가난한 이가 그 집안의 재물이 많은 것을 보고 딸을 주기로 하였다. 신부는 비록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얼굴도 예쁘고 부지런하며 예절에도 밝았다. 결혼 때문에 막대한 비용을 치른 그 집안은 다시 독을 쓰는 일을 계속하여 큰 재산을 모으고자 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독을 써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우리집의 가업이니, 너도 지금부터 배우도록 해라."
그러나 며느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니, 저희 친정집 사람들은 선량해서 지금껏 다른 사람들을 해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독살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가 꾸중을 하고 협박을 해도 며느리는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독신에게 기도하며 말했다.
"시집 온 며느리가 독 쓰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하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독신이 그 기도에 응답했다.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아무 걱정 말라."
그러고 나서 독신은 한 마리 독사로 변신한 다음 며느리를 쫓아다녔다. 그 독사는 안 가는 데가 없어 어느 때는 며느리의 이마 위에 나타났다가, 밥 먹을 때는 얼굴 앞에 있기도 하고, 물을 마시려 하면 그릇 속에서 나타나고, 밤에는 침상 옆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며느리는 너무나 무서워 잠도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해 어느덧 뼈만 앙상히 남아 가련한 몰골이 되었다. 그때 독신은 그녀에게 말했다.
"독 쓰는 일을 하겠다고 하면 너를 놓아주리라."
며느리는 어쩔 수 없어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 친정집의 이웃에 사는 사람이 이 나라에 왔다가 그녀의 집에 들렀다. 그녀는 탐스럽고 예쁘던 얼굴이 말이 아니게 상하여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몰골이 말이 아니게 변했느냐?"
며느리는 그 사람에게 자기 사정을 알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희 친정집에 가셔서 이 일을 알려 빨리 저를 데려가도록 해주세요. 그렇지않으면 저는 죽고 말 거예요."
그 사람이 돌아가서 그녀의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자, 부모는 딸이 걱정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차를 달려 마침내 딸이 사는 집에 도착해서 그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미가 딸이 보고 싶어 밤낮으로 우는데 차마 지켜볼 수가 없어 왔습니다. 딸을 며칠간 친정에 데리고 있다가 오래지 않아 돌려보내겠습니다."
시어머니도 사돈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딸을 집으로 데려온 후 사람을 시켜 그 집안에 말을 전했다.
"당신네가 원래 독을 쓰는 집안이었음을 알았다면 내 딸자식을 시집보내지 않았을 것이오. 내 이제 딸을 데려왔으니 다시는 돌려보내지 않을 작정이오. 만약 이 일로 찾아와 시끄럽게 군다면 나는 당장 관아에 고발할 것이오. 그러면 당신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오. 하지만 개과천선하여 다시는 독을 쓰지 않겠다고 하면 딸을 돌려보낼 수도 있소."
그 말을 들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상의를 했다. 며느리는 천하에 보기 드물게 품행이 방정한 여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차라리 가업을 포기할지언정 며느리는 포기할 수 없다고 결론을 지었다. 또 사돈의 말대로 관아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국법을 어긴 죄로 엄한 벌을 받으리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그래서 그들은 독을 포기하기로 맹세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또 더 이상 독신을 섬기지 않음으로써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다.
<생경>
일흔두번째재 이야기 - 여우가 비웃다
옛날에 돈을 아주 많이 가진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사내를 알게 되어 가지고 있던 금은보화를 모조리 챙켜 그 사내를 따라나섰다. 한참 길을 가다가 급류를 만나자 사내가 그 여자에게 말했다.
"몸에 지니고 있는 금은보화를 모두 내게 주면 그것들을 저 건너편에 내려놓고 다시 헤엄쳐와서 당신을 건네주겠소."
사내의 말을 믿은 그녀는 가지고 있던 금은보화를 몽땅 넘겨주었다. 사내는 그 물건들을 가지고 저쪽 강가에 도착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녀는 넋을 잃은 채 멍하니 강가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때 여우 한 마리가 매를 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막 매를 잡으려던 여우는 강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에 주의를 돌렸다. 그러고는 매를 쫓다 말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그 사이 매는 날아가버리고, 물고기도 숨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박장대소하며 여우에게 말했다.
"넌 참 어리석구나. 한꺼번에 두 먹이를 쫓다가 둘 다 놓쳐버렸으니 말짱 헛일이다."
그러자 여우가 그녀를 비웃으며 대답했다.
"남 이야기 하지 마시오. 자기 재물을 몽땅 남에게 줘버린 당신보다 멍청한 사람이 또 있을까?"
<구잡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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