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예순아홉번째 이야기 - 구두쇠 이리사
옛날에 이리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단히 큰 부자였다. 그러나 그는 지독한 구두쇠라서 남에게 조그만한 물건도 보시하는 법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먹는 것도 거의 맨밥에 가까웠고 옷도 다 낡은 옷만 입었다. 반면 이리사의 이웃집 사람은 그렇게 부자가 아닌데도 매일 밥먹을 때마다 고기와 생선이 끊이질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이리사는 생각했다. '나는 저 사람보다 훨씬 부자인데 도리어 더 불쌍하게 사는구나.' 이리사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닭 한 마리를 잡은 다음 백미 한 됫박을 챙겨 마차를 타고 아무도 없는 벌판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닭을 굽고 밥을 해서 혼자서만 배불리 먹으려 했다. 이리사가 구두쇠인 것을 알고 있던 제석천은 그 우매함을 깨우쳐 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한 마리 개로 변신해서 이리사의 주위를 얼쩡거렸다. 그는 닭 뼈다귀까지 꿀꺽 삼켜 개가 먹을 것이라곤 조금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개는 계속해서 꼬리를 흔들며 입에는 침을 잔뜩 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리사가 말했다.
"네가 네 발을 하늘로 향한 채 공중에 뜰 수 있다면 한 점 주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개는 이리사의 말대로 공중에 떴다. 그는 깜짝 놀라긴 했지만, 닭고기를 주는 게 아까워 닭껍질을 조금 떼어주었다. 그러나 그 개는 닭껍질을 먹지 않았다. 그러자 이리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다. 네가 네 눈을 뽑아 준다면 닭고기를 조금 주지."
곧이어 탁탁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개 눈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리사는 매우 기뻐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됐다. 이제 저 놈의 개가 눈도 없으니 따라오지 못하겠지? 이제 이 어른께서는 조용히 음식맛을 즐기겠다.' 이리사는 재빨리 음식을 챙긴 다음 자리를 옮겨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이리사가 멀리 가기를 기다린 제석천은 이리사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마차를 타고 이리사의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문지기에게 명령했다.
"누가 집에 들어오려고 하거든 누구를 막론하고 매를 때려 쫓아내도록 하라."
그리고 이리사로 변신한 제석천은 집안에 있던 모든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해버렸다. 한편 자리를 옮겨 음식을 다 먹은 이리사는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마차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래서 씩씩거리며 집에 도착해서 문을 들어서려 하는데 문지기가 무조건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게 아닌가? 화가 머리끝가지 난 이리사가 소리쳤다.
"아니, 감히 나를 때리려 한단 말이냐?"
문지기는 조금도 봐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주인 마님께서 누구를 막론하고 집에 못 들이게 하셨소."
"내가 바로 너희 주인인데 어느 주인 마님이 그랬다는 게냐?"
"뭐라고? 정말 참지 못하겠군. 내 너를 때려 죽이리라."
문지기로부터 뭇매를 맞은 이리사는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 그런데 먼 발치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니 온갖 재물은 간 곳이 없고 집 안이 텅텅 비어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이리사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때 제석천이 수행승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이리사 앞에 나타나 합장을 한 다음 물었다.
"시주께선 무슨 일로 그리 슬피 울고 있는 것입니까?"
"어떤 놈의 농간으로 가산을 탕진하게 되었다오."
"시주, 잘 들으시오. 재물이 많으면 번뇌와 화가 따르는 법이오. 당신처럼 돈을 목숨처럼 여겨 제대로 먹지도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도 하지 않으면 죽어서 아귀의 몸을 받게 될 것이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설사 아귀의 몸을 벗어나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항상 천한 사람이 될 것이니, 잘 생각해보시오."
수행승의 말을 들은 이리사는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는 개과천선하여 보시행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구잡비유경>
일흔번째 이야기 - 꼭두각시
옛날에 한 솜씨 좋은 목수가 살았다. 그는 솜씨를 부려 만든 물건을 사람들에게 구경시켜 벌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던 중 한 나라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 나라의 왕은 신기한 물건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목수는 나무로 꼭두각시 하나를 만들어 그 내부에 여러 가지 장치를 달았다. 꼭두각시의 얼굴은 매우 잘생긴 데다가 정밀하여 진짜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꼭두각시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목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오."
그 나라 백성들은 꼭두각시를 무척 좋아해서 여러 가지 재물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국왕은 그들을 초청해서 노래와 춤을 추도록 했다. 국왕과 왕비가 누각에 올라 구경을 하는데, 목수의 '아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은 신기하기 그지없어 진짜 사람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국왕과 왕비는 구경을 하며 너무나 좋아했다. 그때 목수의 '아들'이 춤을 추며 곁눈질로 왕비를 훔쳐보았다. 그 모습을 본 국왕은 대단히 화가 났다.
"너는 왜 곁눈질로 내 부인을 훔쳐보는 게냐? 이 호색한 같은 놈아!"
이렇게 말한 국왕은 주위에 있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저 놈의 목을 쳐라!"
깜짝 놀란 목수는 눈물을 흘리며 국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는 자식이라고는 이 아이밖에 없어서 무척 아끼는 바입니다. 이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집니다. 이 아이가 그런 실수를 하리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왕께서 굳이 이 아이를 죽이시겠다면, 저도 함께 죽을 작정입니다. 대왕이시오, 부디 이 아이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국왕은 목수의 간절한 부탁을 전혀 들어줄 태세가 아니었다. 목수가 다시 국왕에게 말했다.
"정녕 죽이시겠다면 제가 직접 죽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그 말에는 국왕도 동의했다. 목수가 '아들'의 어깨에서 조그만 막대 하나를 뽑아내자 '아들'의 몸은 금방 분해되었다. 땅바닥에 나뭇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모습을 본 국왕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내가 나무토막을 보고 화를 냈단 말이냐? 이 목수의 솜씨는 그야말로 천하 제일이다. 가 만든 꼭두각시는 수백 개의 나무토막으로 만든 것임에도 사람보다 행동이 더 자연스럽구나."
감탄한 국왕은 그 목수에게 억만 냥의 황금을 주었고, 목수는 그 돈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형제들과 일생 동안 편안하게 살았다.
<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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