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자기 건강을 과신하는 것보다 더 큰 병은 없다<편작>
- 편작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병을 거론하자 환후도 은근히 걱정이 되어, 전같지 않게 신하들과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5일이 지나서 편작은 환후를 만나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나와 도망을 쳤다.-
편작은 발해군 정현 출신으로 성은 진 씨이며 이름은 월인이다. 젊은 시절 남의 집 빈객을 모시는 사장으로 일하던 월인은 장산군이라는 노인에게 의술의 비방을 얻어 천하의 명의가 되었다. 그 뒤부터 월인은 의원이 되어 여러 나라로 다니며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그의 진맥은 신기에 가까웠으며, 그의 손길이 닿은 환자는 숨이 다 끊어졌다가도 다시 살아났다. 월인에게 '편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조나라에 갔을 때부터였는데, 원래 편작은 옛날 황제시대때의 명의로 알려졌던 의원의 이름이었다. 편작이 괵나라에 갔을 때 태자가 방금 죽었다고 하였다. 그는 그 나라에서 의술을 좀 안다고 하는 중서자를 만나 태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물었다. 자신이 직접 태자의 죽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중서자는 편작에게 물어봐도 소용 없는 일이라며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편작은 고집을 세워 태자의 시신을 보고자 하였다. 두 사람은 종일토록 싸웠다. 드디어 해가 떨어질 무렵, 편작은 하늘을 보며 탄식하였다.
"그대가 알고 있는 의술이란 대나무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는 것과 같으며,작은 틈새로 무늬를 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맥을 짚어보거나 얼굴빛을 살피거나 소리를 듣고 형체를 비춰보는 일을 하지 않고도 능히 병을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나는 진찰하지 않고 먼 곳에서 전해 듣는 말만으로도 진단할 수가 있습니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그대는 어서 태자에게 가서 다시 진찰을 해보도록 하십시오. 틀림없이 태자의 귀에서는 소리가 날 것이고, 코는 벌룸거릴 것입니다. 또한 두다리를 어루만져 사타구니 사이를 더듬어 보면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있을 것입니다."
중서자는 편작의 말을 한 번 믿어보기로 하였다. 편박은 곧 태자가 누워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태자는 피가 거꾸로 치솟아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태자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편작은 곧 제자 자양을 시켜 침을 숫돌에 갈게 하였다. 그리고 손수 침을 놓자, 잠시 후 태자는 눈을 떴다. 편작은 다시 제자 자표를 시켜 고약과 약제를 만들어 태자의 겨드랑이 밑에 번갈아 붙이게 하였다. 그러자 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게 되었다. 다시 음양을 조절하여 탕약을 복용시키자 20일쯤 후에는 태자의 건강이 예전처럼 거뜬히 회복되었다. 이렇게 되자 세상 사람들은 '편작이야말로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명의'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자 편작이 담담하게 말하였다.
"죽은 사람은 살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다만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나게 했을 뿐입니다."
편작은 다시 제나라로 떠났다. 제나라 환후가 그를 빈객으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편작이 보니 환후는 병을 앓고 있었다.
"피부에 질환이 있습니다.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환후는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고 있었다.
"무어요? 과인처럼 건강한 체질도 없을 것이오. 과인에겐 병이 없습니다."
"건강을 과신해선 안 됩니다."
편작은 환후가 너무 강하게 자신의 병을 부인하는 바람에 더 이상 치료를 권고하지 못하고 일단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다.
"편작이 너무 욕심이 많군. 병이 없는 사람을 병이 있다고하여 이득이나 취하려 하다니."
환후가 신하들 앞에서 한 말이었다. 5일이 지난 후 다시 편작은 환후를 만나 말하였다.
"이제 피부의 병이 혈맥으로 침투하였습니다. 곧 치료하지 않으면 깊어질 것입니다."
"과인에겐 병이 없다고 하질 않았소?"
환후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 다시 5일이 지나서 편작이 환후를 찾아가 말하였다.
"이제 혈맥에 침투한 병은 위장까지 번졌습니다. 곧 치료하지 않으면 병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환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에겐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편작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편작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병을 거론하자 환후도 은근히 걱정이 되어, 전같지 않게 신하들과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5일이 지나서 편작은 환후를 만나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나와 도망을 쳤다. 환후가 신하들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들었다.
"편작이 도망을 쳤단 말이오? 어서 달려가 왜 도망을 쳤는지 그 이유를 알아오시오."
환후의 명령을 받고 신하가 달려가 편작을 붙들고 도망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편작이 대답하였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과 바르는 약으로 치료할 수가 있었습니다. 혈맥에 있을 때는 쇠침이나 석침으로 치료가 가능하였습니다. 그것이 위에 이르렀을 때는 술을 졸여 만든 약으로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병이 골수로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나로서도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어 도망가는 것입니다."
편작이 도망간 지 5일만에 환후는 병이 깊어졌다. 그리고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자만 : 자만심을 경계하라. 남의 말을 믿지 않다가 화를 자초하는 수가 있다. 남을 의심하는 사람일수록 자만심이 강하다. 그 자만심은 남에게 속지 않으려는 방어심리에서 비롯된다. 쓸데없는 자만심과 고집을 버리고 사람을 믿도록 노력하라.
수레를 높이고 싶으면 먼저 문지방부터 높여라<손숙오>
-"군자들은 수레에서 내려 걷기를 싫어하여, 내리면서 동시에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수레의 높이에 문지방을 맞춘 것입니다. 문지방을 높이면 자연스레 수레의 높이 역시 그에 맞게 고치게 될 것입니다."-
초나라 사람 손숙오는 학덕이 높았지만 나이가 들 때까지 벼슬을 하지 못한 채 처사로 지냈다. 그런데 당시 재상이던 우구자가 초나라 장왕에게 자기 대신 손숙오를 재상에 추천하였다. 뒤늦게 초나라 재상이 된 손숙오는 백성들을 올바로 가르치고 인도하여 덕의 정치를 구현하였다. 즉 어거지로 백성들에게 요구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나라의 법도에 따르도록 유도하였다. 그래서 위아래가 잘 화합하였으며, 세속도 아름답게 보존되었다.
손숙오는 가을과 겨울에 백성들로 하여금 산에 들어가 대나무를 벌채하도록 하였으며, 봄과 여름으로는 물길을 터서 그것들을 뗏목으로 만들어 실어날랐다. 이처럼 저마다 편리한 것을 연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생활을 윤택하게 꾸려갈 수 있게 하였다. 초나라 백성들은 낮은 수레를 좋아하였다. 장왕이 생각하기에 수레가 낮으면 말이 불편을 느껴 빨리 달리지 못하고 금세 지칠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전시에 활용할 수가 없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여봐라! 백성들에게 수레를 높이 만들도록 하라."
이때 손숙오가 나서서 말하였다.
"대왕! 영을 자주 내리는 것은 백성들이 따를 바를 모르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왕께서 반드시 수레를 높이고 싶으면, 수레보다 먼저 문지방을 높이도록 영을 내리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것은 어째서 그렇소?"
장왕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대체로 수레를 타는 사람들은 군자들입니다. 군자들은 수레에서 내려 걷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수레에서 내리면서 동시에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수레의 높이에 문지방을 맞춘 것입니다. 만약 문지방을 높이게 되면 자연스레 수레의 높이 역시 그에 맞게 고치게 될 것입니다."
"옳은 얘기요."
장왕은 곧 손숙오의 말대로 문지방을 높이라는 영을 내렸다.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나자 초나라의 길을 지나 다니는 수레는 모두 높아졌다. 말들도 힘차게 달려 보기 좋았다. 손숙오는 이처럼 반드시 가르치지 않더라도 백성들이 따르도록 하는 덕의 정치를 베풀었다. 이것은 또한 자연에 역행하지 않고, 순리에 따르는 정치의 도라고도 할 수 있었다. 순리에 따르는 정치를 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보고서 배우고, 멀리 있는 사람은 들어서 배우기 때문에 백성을 억압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본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손숙오는 세 차례나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나 기뻐하지 않았고,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도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재능이 마땅히 그 자리를 얻을 만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또 그 자리를 물러남에 있어서도 그것이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순리: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모든 일은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명령은 순리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남이 자연스레 따르도록 하는 것은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라, 일의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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