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쉰네번째 이야기 - 벽지불의 유래
바라나국의 국왕이 하루는 찌는 듯이 날씨가 무덥자 높은 누각에서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진귀한 약을 궁녀를 시켜 자신의 몸에 바르게 했다. 그 일을 담당한 궁녀의 팔에는 형형색색의 팔찌가 끼워져 있었다. 그녀가 국왕의 몸에 약을 바르기 시작하자 팔찌들이 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국왕은 그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어 궁녀에게 차고 있는 팔찌들을 모조리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 팔찌들은 모두 금이나 옥으로 만든 것이라 바닥에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그런데 궁녀가 마지막 옥팔찌를 바닥에 내려놓을 때에는 신기하게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 옥팔찌도 본래 바닥과 부딪히면 소리가 나야 하는 법인데, 뜻밖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구나. 조정의 신하와 만 백성 그리고 궁녀들도 평소에 불편한 심정을 가질 수 있는데, 그들이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옥팔찌가 소리나야 하는 원리를 억지로 막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국왕은 생각하면 할수록 미묘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 홀로 앉아 사색에 잠겼다. 그러고 있는 사이 국왕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모두 빠지고, 입고 있던 옷은 풀로 변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느새 국왕은 누각에서 내려와 있었는데 온몸에서는 힘이 철철 넘쳐흘렀다. 국왕은 내친 김에 궁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때 아직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에 홀로 출가수도한 국왕은 '벽지불'이 되었다. 그 당시 수행하는데 적합한 신심을 갖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때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때였기에 그렇게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모두 '벽지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좌선삼매경>
쉰다섯번째 이야기 - 출가의 공덕
어느 날 부처님은 제자 아난과 함께 비사리성에 들어가 발우를 들고 차례로 여러 집들을 돌며 걸식을 했다. 비사리성에는 비라이나왕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그날 여러 궁녀들과 함께 높은 누각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그 모습을 본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했다.
"저 왕자는 칠일 후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금 출가하지 않는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난은 왕자에게 달려가 부처님의 예언을 전했다. 왕자는 비통한 표정을 짓다가 지옥에 떨어지고 싶지는 않으니 출가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엿새 동안 왕자는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마음껏 다 맛보았다. 그리고 이레째 되는 날 아침 부처님을 찾아가 출가하기를 청했다. 출가한 비라이나왕자는 하룻밤 하루낮 동안 계율을 지키며 수행하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고 사천왕천에 태어났다. 그리고 사천왕천에서의 수명이 끝나자 북천왕 비사문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천녀들과 함께 갖가지 쾌락을 즐겼는데, 그곳에서의 수명은 오백 세였다. 그후 다시 제석천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때의 수명은 일천 세였다. 그리고 다시 염마천의 왕자로 태어나서는 이천 세를 살았다. 이처럼 비라이나왕자는 단 하루 출가한 공덕으로도 무려 이십 겁 동안이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에 태어나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집이 부유해서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어느덧 장년을 거쳐 노년이 되자 세속을 싫어하게 돼 출가수도를 했다. 그는 계속해서 열심히 수행한 탓에 비류제리라는 이름을 가진 벽지불이 되어 천하의 중생을 구제하니 그 공덕의 무량함은 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대해와도 같았다. 만약 만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아라한이 된다면 모든 이들의 수명은 일백 세가 될 것이며, 살아 있을 때 정성을 다해 삼보를 공양한다면 분명히 사리탑에 모셔질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갖가지 향과 꽃으로 삼보를 공양함으로써 쌓은 공덕은 열반을 구함에 있어 하룻밤 하루낮 동안 계를 지키며 출가한 공덕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진짜 출가하면 그 존귀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세상 사람들은 사소한 재물과 여색 등을 탐하여 사후에 육도를 윤회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불설출가공덕경>
쉰여섯번째 이야기 - 인약왕자 이야기
먼 옛날 동방의 염부제에 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곳엔 큰 병이 돌아 수많은 백성들이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 나라 왕의 이름은 마혜사나 였는데, 그는 팔만사천 개의 커다란 고을을 다스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마혜사나왕의 왕후가 임신을 한 후 그녀의 손을 만진 병든 이들은 모두 기적같이 병이 나았다. 그로부터 열 달 후 왕후는 사내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그 사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놀랍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날 때 염부제의 모든 신들은 다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지금 태어난 국왕의 아들이 바로 인약이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나라 사람치고 듣지 못한 자가 없었고, 이에 국왕은 그 아이의 이름을 인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후 수많은 병든 백성들이 인약왕자를 만나 병을 치료받기를 바라며 무리지어 몰려드었다. 인약왕자가 병든 이들을 손으로 만지면 곧 그들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인약왕자는 본래 자기 수명인 천 살까지 내내 병든 이들을 치료해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인약왕자가 수명을 다 마친후에 그를 찾아온 병든 백성들은 가슴을 쥐어짜며 울먹였다.
"이 세상에 인약왕자가 없다면 누가 우리들의 병고를 해결해줄 수 있으리요?"
그리고 그들은 분분히 물었다.
"인약왕자의 시신은 어디에서 화장했습니까?"
이윽고 병든 백성들은 인약왕자를 화장한 곳에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그 유골을 수습한 후 가루로 만들어 온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들의 몸은 기적처럼 단숨에 회복되었다. 인약왕자의 유골 가루가 다 없어진 후에도 그 화장터에 서 있던 병든 백성들은 모두 이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끝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인약왕자는 바로 나의 전신이었느니라."
<보살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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