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2장 -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마흔다섯번째 이야기 - 음탕한 아내
옛날에 아내를 무척이나 아끼는 한 남편이 있었다. 그는 행여나 남들이 자기 아내를 볼까 두려워하여 밖에 나다니지 못하게 하고 하루종일 방안에만 있게 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지낸 아내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여 몰래 땅굴을 파서 바깥 출입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땅굴을 통해 밖에 나왔다가 한 세공장이를 알게 돼 정을 통하였다. 우연히 땅굴을 발견한 남편은 아내에게 다그쳐 물었다.
"이 땅굴은 뭐 때문에 판 게요? 혹시 딴 남자와 몰래 만난 게 아니오?"
아내는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남편이 정확한 사정을 알리 없다고 생각해서 말했다.
"무슨 말을 그리 심하게 하세요?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런 짓을 하겠어요? 이 땅굴은 하도 심심해서 그냥 파본 것이에요."
아내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긴 했지만 특별한 증거도 없었기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나와 함께 사당에 가서 신 앞에 맹세할 수 있겠소?"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사당에 갈 준비를 하느라 목욕재계를 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아내는 황급히 정부에게 달려가 말했다.
"남편이 저를 의심하고 있어요. 얼마 후면 저를 데리고 사당에 가서 신 앞에 맹세를 하게 할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시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미친 척하고 저를 끌어안고 놓지 마세요."
얼마 후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사당으로 가려했다. 그러자 아내는 남편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당신을 만난 이래 시장에 가본 적이 없어요. 사당에 가는 길에 저를 데리고 가서 시장 구경 좀 시켜주세요."
그렇게 해서 남편과 아내가 시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세공장이가 튀어나와 아내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내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으악! 이런 쳐죽일 놈이 있나?"
남편이 발로 세공장이를 차서 떨구자 아내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남이 저를 껴안도록 내버려둔 거죠?"
"저 사람은 미치광이요. 내가 일부러 시켰겠소?"
마침내 부부는 사당에 도착했다. 아내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가 평생 부정한 일을 저지른 적이 없었으나 다만 시장에서 한 미치광이가 저를 껴안은 적이 있나이다."
아내가 맹세하는 것을 들은 남편은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것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음탕한 아내는 이렇게 해서 남편을 보기 좋게 속일 수 있었다.
<구잡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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