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2장 -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마흔한번째 이야기 - 윤회전생의 비유
나선은 유명한 학승으로 당시 인도에 침입한 그리스계 미란타왕에게 여러 가지 비유로 불교의 지혜를 가르쳐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어느 날 미란타왕과 윤회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미란타왕이 나선 비구에게 물었다.
"존자여, 다시 태어난 자와 죽어 없어진 자는 동일한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나선비구가 대답했다.
"동일한 것도, 다른 것도 아닙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십시오."
"어떤 사람이 남의 오이밭에 들어가 오이를 훔치려다가 주인에게 들켜 관아에 끌려왔습니다. 오이밭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자는 오이 도둑입니다. 오늘 내 오이를 훔치려다 붙들렸으니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오이 도둑이 말했습니다. '나리,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저는 저 사람의 오이를 훔친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오이씨를 심었던 것이지 오이를 심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제가 저 사람의 오이를 훔쳤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리, 잘 살펴주십시오. 저는 죄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쪽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미란타왕이 대답했다.
"당연히 오이를 심은 사람의 말이 옳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이 도둑이 말한 것처럼 오이밭 주인이 오이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오이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어이가 자랄 수 있었겠습니까? 도둑이 훔치려고 했던 오이는 오이씨가 자라난 결과물이므로 오이 도둑은 유죄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비유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떤 이가 밤에 불을 밝혀 벽에 걸어두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벽이 나무로 되어 있던 탓에 불이 옮겨 붙어 방을 모조리 태우고 옆집으로 번지더니 급기야 성안에 있는 모든 집을 태우고 말았습니다 .성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처음 불을 밝혔던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는 왜 성안의 모든 집을 잿더미로 만들었는냐?'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웃기는 소리마시오. 나는 그저 밥을 먹으려고 불을 밝혔을 뿐이오. 그런데 불이 저절로 번져서 그렇게 된 것이므로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오.' 이렇게 해서 언쟁이 그치지 않자 그들은 관아에 가서 시비를 가리기로 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쪽이 옳다고 보십니까?"
"물을 필요도 없이 처음 불을 밝혔던 자가 유죄입니다. 그가 밥을 먹은 후 불을 껐더라면 성이 잿더미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화재의 원인은 그 작은 부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또하나의 비유를 들겠습니다. 어떤 이가 목장에 가서 우유를 샀습니다. 우유를 산 후 그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그 우유를 목장에 맡겨두고 일을 보러 갔습니다. 그 다음날 그가 와서 맡긴 우유를 찾고 보니 우유는 이미 발효한 탓으로 맛이 식초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우유를 사서 맡겼는데 왜 식초를 내게 주는 것이오?' 목장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잘못된 게 아니오. 당신이 원래 샀던 우유가 저절로 발효해서 맛이 식초처럼 변한 것이오.' 그들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다 법의 심판을 받기로 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쪽이 옳다고 보십니까?"
"목장 주인입니다. 우유를 샀던 사람이 우유를 맡긴 후 그 다음날 찾으러 간 사이 우유가 저절로 발효해서 식초처럼 맛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나선비구는 이렇게 세 가지 비유로 미란타왕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나선비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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