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2장 -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서른여덟번째 이야기 -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
부처님이 바라나국 녹야원에 계실 때였다. 그 나라 재상은 큰 부자였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그때 항가 강가에 마니발타라는 천신의 사당이 있었는데, 그 나라 백성들은 모두 그곳에 와서 소원을 빌고 치성을 들였다. 그래서 그 재상도 사당에 와서 이렇게 기원을 했다.
"제가 자식이 없습니다. 듣건대 천신의 공덕이 커서 뭇 중생들을 구제하신다고 하니 저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소원대로 아들을 점지해주신다면 천신상에 금도금을 하고, 사당에는 이름난 향료를 바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사당을 부수고 천신상에는 똥칠을 할 작정입니다."
재상의 기원을 들은 천신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부자인 데다가 권력도 막강하니 보통 아들을 구하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나로선 이 사람의 기원을 들어줄 능력이 없고, 또 들어주지 않는다면 사당이 헐리게 될 판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대상은 계속 사당에 와서 기원을 드렸다. 마니발타 천신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인 줄알기에 비사문왕(비사문왕은 4천왕 가운데 비사문천의 왕이며 불교를 보호하고 복을 베푸는 천신이다)에게 가서 사실대로 고했다. 비사문왕이 대답했다.
"내 힘으로도 그 재상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노라."
그리고 비사문왕은 직접 제석천을 찾아가 부탁했다.
"제 신하인 마니발타 천신이 제게 와서 말하기를, 일전에 바라나국의 재상이 사당에 와서 아들을 기원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들어주면 갑절로 공양하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사당을 부숴버리겠노라고 했다 합니다. 그 재상은 흉악하므로 반드시 말대로 실천할 인물입니다. 그러하오니 제석천왕께서는 그 재상에게 아들을 점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연을 찾아보도록 하자."
그때 한 천인이 수명이 다하려고 하자 제석천이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제 수명이 다했으니 저 재상의 집에 환생하는 것이 어떠한가?"
"저는 환생하면 출가수도하고자 하는데 저런 부잣집에 태어나면 욕심을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중류의 가정에 태어나 소원을 이루고자 합니다."
"네가 저 재상의 집에 태어나면 출가수도하고자 할 때 내가 직접 도와주겠노라."
그렇게 해서 그 천인은 재상의 집에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 용모가 뛰어나게 단정하였다. 재상은 관상쟁이를 불러 아들의 이름을 짓게 했다. 관상쟁이가 물었다.
"어떻게 해서 이 아이를 얻게 되었습니까?"
"항가 강가에 있는 사당에 가서 기원을 드려 이 아이를 얻게 되었다네."
이야기를들은 관상쟁이는 그 아이의 이름을 항가달이라고 지어주었다. 항가달이 장성하여 부모에게 출가할 뜻을 비추자 재상이 말했다.
"우리 집은 부유하고 벌여놓은 사업도 많다. 너는 외아들이니 마땅히 가업을 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너의 출가를 허락할 수 없다."
그러나 항가달은 출가할 뜻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몸을 버려 다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날 수 있다면 쉽게 출가할 수 있으리라.' 죽을 결심을 한 항가달은 몰래 집을 빠져나가 절벽에서 몸을 던졌으나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강에 몸을 던졌지만 여전히 빠져죽지 않았다. 또 독약도 먹어보았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다. 이에 항가달은 국법을 어겨 처형당하리라고 결심했다. 그는 왕비와 궁녀들이 목욕을 하는 연못으로 갔다. 그리고 여자들이 벗어놓은 옷들을 뒤져 패물을 훔치려다가 한 관리에게 들켰다. 그 관리가 아사세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크게 화를 내어 직접 활을 들고 항가달을 쏴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화살은 도리어 왕을 향해 돌아왔다. 이러하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자 왕은 겁이 나서 항가달에게 물었다.
"그대는 신인가, 용인가, 아니면 귀신인가?"
"제 소원을 을어주신다면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겠노라."
"저는 신도 용도 귀신도 아닙니다. 저는 이 나라 재상의 아들로 출가하고자 했으나 부모가 끝내 허락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살하고자 절벽에서 떨어져보고 강에 빠지기도 하고 독약도 먹어보았지만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국법을 어겨 처형당하려고 했으나 보시다시피 그것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저를 가엾게 여겨 출가하도록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청을 들어 출가하도록 해주마."
아사세왕은 항가달을 데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지금까지의 일을 아뢰었다. 부처님이 항가달의 출가를 허락하시자 그는 갑자기 몸에 법복이 입혀져 비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난 항가달은 즉시 마음이 열려 아라한과를 얻게 되었다. 그때 아사세왕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부처님, 항가달은 전생에 무슨 복덕을 심었기에 일부러 죽으려고 기를 써도 죽을 수 없는 것입니까? 또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을 만나 생사를 넘어서는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까?"
"대왕이여, 셀 수 없는 과거세에 바라나국의 범마달다왕이 있었소. 왕은 어느 날 궁녀들을 데리고 숲으로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때 궁녀들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자 마침 지나가던 어떤 이가 숲 밖에서 노래를 불러 화답했다오. 이에 화가 난 왕은 그 자를 잡아와 죽이려고 했소. 그때 한 대신이 그 자가 죽게 된 모습을 보고 사정을 알아본 다음 잠시 처형을 미루라 하고 왕에게 간언을 했다오.
"저 사람의 죄는 크지 않은데, 왜 죽이려고 하십니까? 비록 노래를 불러 화답했지만 궁녀들의 얼굴을 본 것도 아니고 간통을 한 것도 아닙니다. 목숨을 불쌍히 여겨 용서해주옵소서."
대신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왕은 그 사내를 용서해주었소. 죽음에서 벗어난 그 사내는 대신을 수년간 정성껏 모시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오. '음욕이란 예리한 칼보다 사람을 더 해치는 것이다. 내가 그때 곤란에 처하게 된 것도 다 음욕에서 비롯된 일이다.' 생각을 마친 그 사내는 대신에게 출가수도할 뜻을 비추었소. 그러자 대신이 대답했소.
"그렇다면 출가해서 도를 이루면 그때 다시 만나도록 하세."
그 사내는 곧 산속으로 들어가 오로지 수도에만 힘쓰다가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벽지불이 되었소. 벽지불이 된 사내는 대신을 찾아갔고, 그 모습을 본 대신은 무척 기뻐하며 정성껏 공양했다오. 그러자 벽지불은 공중으로 날아올라 몸에서 불과 물을 뿜는 등 각종 신통력을 보여주었소. 이에 대신은 한량없이 기뻐하며 이렇게 서원을 세웠다오. '내 은혜로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원컨대 제가 나는 곳마다 부귀와 장수를 누리고 또 뛰어난 지혜와 복덕을 모두 갖추게 하옵소서.'
대왕이여, 그때 왕에게 간언해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던 이가 바로 지금의 저 항가달이오. 그런 인연으로 태어나는 곳마다 요절하는 법이 없고 또 나를 만나 이렇게 아라한과를 얻게 된 것이오."
부처님이 이야기를 마치자 듣고 있던 이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찬집백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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