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변설의 말솜씨를 경계하다<장석지>
-"나는 늙고 천한 몸이오. 그러나 장정위로 말하면 이제 한창 천하에 이름을 드날리게 될 명신입니다. 내가 일부러 신발끈을 묶으라고 한 것은, 그의 명성을 더욱 무겁게 하고자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장석지는 도양사람이었다. 그는 형 장중과 함께 살고 있었다. 집안이 부자여서 돈을 주고 기랑이 되어 한나라 문제를 섬겼으나, 10년이 지나도 승진이 되지 않았다.
"오래도록 벼슬을 하였지만, 형의 재산만 축냈구나!"
장석지는 이렇게 한탄하며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이때 중랑장으로 있던 원앙이 평소 장석지의 현명함을 보고 문제에게 주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장석지는 궁중 접대관인 알자가 되었다. 장석지의 직급이 올라가 알자의 장인 알자복야가 되었을 때였다. 그는 어느 날 문제를 수행하여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다. 문제는 동물원의 책임을 맡은 위에게 동물 기록부에 적혀 있는 사항을 이것저것 물었다. 위는 잘 대답하지 못하였다. 문제는 다시 그 밑에서 일하는 색부에게 똑같은 것을 물었다. 그 색부는 질문이 던져질 때마다 말이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왔다. 목소리도 좋았고, 기록부의 사항들은 술술 꿰고 있었다.
"관리가 되었으면 마땅히 이래야 되지 않겠는가?"
문제는 장석지에게 명령하여 즉시 위를 파면시키고 색부를 상림원의 영으로 임명토록 하였다. 이때 장석지가 나서서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강후 주발을 어떤 인물이라 생각하십니까?"
"훌륭한 인물이다."
"그러면 동양후 장상여는 어떤 인물이라 생각하십니까?"
"그 역시 훌륭하다."
"지금 폐하께서는 강후와 동양후를 훌륭하다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말 주변이 없어 입안으로 우물우물하여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말을 잘하는 것으로 따지자면 그 두 사람은 청산유수로 입을 놀려대던 저 색부의 발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진나라에서는 법조문을 달달 잘 외는 자에게만 정치를 맡겨 사소한 일까지 가혹하게 밝혀 내었으며, 그들은 그것을 큰 자랑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 형식에만 얽매이게 되어 백성들의 어려움을 살피지 아니 하였으며, 이때문에 2세황제에 이르러 패망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만약 폐하께서 저 달변의 색부를 특진시킨다면, 앞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출세를 위하여 변설에만 매달리는 유행병이 나돌게 될까 우려되는 바가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에는 신중을 기하셔야 합니다."
장석지의 말을 들은 문제는 곧 방금 내렸던 색부에 대한 특진 명령을 거두어들였다. 그 뒤부터 문제는 장석지를 높이 평가하여 궁궐 사마문의 수비대장인 공거령에 명하였다.
변설: 말 잘하는 사람의 변설은 귀에 달콤하다. 그러나 진심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 깊은 곳까지 전달되지 않으며, 공허할 뿐이다. 비록 어눌할지라도 진심이 담겨 있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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