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2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씨가 다른 아들을 낳아 황제를 만들다<여불위>
- 여불위는 자신의 아이를 밴 애첩을 자초에게 소개하며 '금란'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의미 심장한 말이었지만, 자초는 그녀가 전혀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진나라 장양왕은 시황제의 아버지로, 이름은 자초이다. 자초의 아들 정이 태어나기까지는 남다른 우여곡절의 사건이 있었다. 진나라 소왕 40년에 태자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차남인 안국군이 태자가 되었다. 안국군에게는 20여 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총애를 받던 정부인 화양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따라서 20여 명의 아들은 모두 첩실의 소생이었다. 그들 가운데 자초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생모는 태자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자초 역시 태자에게는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조나라에 인질로 보내졌다.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자초는 늘 생활이 곤궁하였다. 진나라가 자주 조나라를 공격하였기 때문에 인질의 몸이 된 자초는 조나라에서조차 냉대를 받아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 즈음 마침 장사를 하기 위해 조나라에 와 있던 여불위라는 장사꾼이 자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진나라의 공자라고? 이거야 말로 대단한 보물 덩어리가 굴러 들어왔군.'
여불위는 궁핍하게 지낸다는 자초의 이야기를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 보물 덩어리인 자초를 찾아갔다.
"모든 것을 제게 맡겨 주십시오. 반드시 공자가 잘 되시도록 하겠습니다."
여불위의 자신에 찬 말을 듣고 자초는 피식, 웃어넘겼다.
"내 처지를 모르시고 하는 말씀이오. 나를 잘 되게 하려면 우선 당신이 큰 인물이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또한 공자를 출세시키는 것 역시 저의 성공과 관련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여불위의 이러한 말에, 자초는 일단 그를 믿기로 하고 주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자초와 여불위는 아무도 모르게 밀담을 나누었다.
"그럼 내가 어찌 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 진나라 왕은 연세가 많으시고, 공자의 아버님 안국군은 태자가 되어 있습니다. 듣자 하니 안국군은 화양 부인을 총애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요?"
자초는 여불위 가까이로 바짝 무릎을 당겨 앉았다.
"그렇다면 안국군이 즉위하고 나서 곧 태자를 정해야 하는데, 그때 화양 부인의 힘이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저는 부자입니다. 이제부터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공자를 다음 태자로 추천하도록 화양 부인을 회유하겠습니다."
여불위의 말에 자초는 크게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말까지 하였다.
"제발 잘 부탁합니다."
이때부터 여불위는 전 재산중 5백금을 자초에게 보내고, 나머지 5백금을 가지고 온갖 진귀한 보물들을 구하여 진나라로 향했다. 여불위는 우선 화양 부인의 언니를 만나 보물들을 건네주기로 하였다.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는 공자 자초는 제후의 빈객들 사이에서 많은 지기를 가진 매우 총명한 분입니다. 그분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언제나 화양 부인을 마음속으로부터 경모하고 있습니다. 태자이신 아버지와 부인을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눈물이 난다고 입버릇처럼 항상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을 들은 화양 부인의 언니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래서 그녀는 궁궐에 들어가 화양 부인에게 보물을 건네줄 때, 여불위를 통해 전해들은 자초의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여불위가 따로 부탁한 다음과 같은 말을 화양 부인에게 그대로 옮겼다.
"여자란 젊음이 가고 매력이 없어지면 남자의 사랑을 받기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지금 마마는 태자의 정을 한몸에 받고 있으나 애석하게도 아들이 없습니다. 이제 상왕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태자가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 태자로 공자 중 누구인가를 세워야 하는데, 그 대상자는 마마를 가장 위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택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의 태자가 즉위하고 나서 일찍 돌아가신다면, 마마는 다음에 오를 태자를 믿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태자의 자리에 과연 누가 오르는가 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마마를 믿고 따르는 분이 태자가 되어야만 마마가 늦게까지 권세를 잃지 않고 살아가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젊었을 때 발판을 튼튼히 굳혀 놓아야 합니다. 공자 자초는 총명한 분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자초를 다음 태자의 후계자로 정하도록 힘을 써주십시오."
화양 부인이 언니의 말을 듣고 보니, 딴은 그럴 듯했다. 그때부터 화양 부인은 태자에게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공자 자초가 매우 총명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눈물까지 보여 가면서 이렇게 설득하였다.
"저는 지금 태자님의 정을 한몸에 받고 있으나, 아들이 없습니다. 부디 부탁하오니, 자초를 다음 후계자로 정하시어 저의 장래를 의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안국군은 화양 부인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한편 여불위는 갑부의 집안답게 미모의 무희들을 데려다 집에 두고 자주 연회를 베풀었다. 어느 날 자초도 초대되었는데, 그는 무희들 중에서 가장 예쁜 여인에게 첫눈에 반하였다.
"저 여인은 참으로 미인이군. 따로 조용히 만나고 싶소."
자초는 손을 들어 춤을 추던 무희 하나를 지목하였다. 여불위는 순간 뒷머리가 화끈하였다. 자초가 지목한 그 무희는 바로 자신의 애첩으로 이미 아이까지 잉태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여불위의 머리는 비상하게 돌아갔다. 자신의 애첩이 임신 초기이고, 밀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너무 사랑하는 애첩이었기 때문에 여불위는 자초의 청을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 청을 거절할 경우 지금까지 거금을 들여가며 자초를 다음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었다. 그래서 여불위는 애첩을 자초에게 주기로 결심하였다.
"이 여인이 금란을 낳아 줄 것입니다."
여불위는 자신의 애첩을 자초에게 소개하며 '금란'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자초는 그녀가 전혀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사실은 여불위와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자초는 이렇게 해서 여불위가 데리고 있던 무희를 아내로 삼았다. 이미 아이를 밴 상태였기 때문에 달이 차게 되자 곧 아들을 순산하였다. 진나라 소왕 48년의 일이었다. 이 아들은 자초가 조나라 수도 한단에 인질로 가 있을 때 낳았으며, 이름은 '정'이라고 지었다. 아들 정을 낳자 자초는 여불위의 애첩이었던 무희를 정부인으로 삼았다. 이윽고 진나라의 소왕이 죽고, 태자인 안국군이 즉위하였다. 화양 부인과의 약속대로 왕은 다음 태자 자리에 자초를 앉혔다. 이렇게 되자 조나라는 인질로 있던 자초와 그의 가족을 극진하게 대접하여 진나라로 돌려보냈다. 왕이 된 안국군은 즉위한 지 불과 1년만에 죽었으며, 그 뒤를 이어 태자 자초가 진나라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가 바로 장양왕이다. 장양앙은 자신을 왕위에 오르게 해준 여불위를 승상으로 임명하였으며, 낙양 지방의 10만 호에 달하는 땅을 주었다. 그러나 장양왕은 재위 3년만에 죽었다. 자연히 열세 살 나이의 태자 정이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그가 바로 후에 천하를 호령하는 진시황이 된 것이었다.
장양왕은 죽을 때까지 태자 정이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로 생각했겠지만, 여불위는 드디어 자신의 피를 받은 아들이 왕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그의 장래에는 탄탄대로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비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드러난 사실만이 전체는 아니다. 정사보다 야사가 더 생생한 것도 드러난 역사는 반 면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추리와 상상력을 갖고 세상을 보라. 훨씬 생생하고 깊이 있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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