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2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바위를 품에 안고 강물에 몸을 던지다<굴원>
- 굴원은 '회사의 부'라는 시를 지었다. 즉, '모래를 품고 강물에 몸을 던지는 노래'라는 시였다. 이 시를 지은 후 그는 바위를 품에 안고 스스로 강물로 뛰어들어 죽었다.-
초나라 회왕 때 좌도라는 벼슬을 지낸 굴원은 학식이 풍부하고 정치적인 식견이 뛰어났으며, 특히 문장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다. 이름은 평이며, 초나라의 왕실과 동성이다. 굴원은 궁중에 들어가 국사를 기획하고 논의하여 회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집에 돌아오면 빈객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어느 날 굴원은 회왕으로부터 어떤 법령의 초안을 만들라는 명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상관대부 근상은 왕의 신임이 두터운 굴원을 시기하고 있었다. 굴원이 법령의 초안을 마무리했을 때, 근상은 자신이 먼저 그 초안을 보자고 청하였다.
"그것은 안 됩니다. 대왕께서 먼저 보셔야 합니다."
굴원은 법령의 초안을 감춰둔 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 그 내용이 새어나갈 경우 말썽이 빚어질 우려가 많았던 것이다. 근상은 화가 났다. 그래서 회왕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굴원을 비방하였다.
"대왕께서 굴원을 시켜 법령의 초안을 만들게 한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법령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아져야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한 제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굴원은 '내가 아니면 법령을 만들 수 없다'면서 자기의 공로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굴원의 오만함이 자칫 법령의 초안을 망치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회왕은 근상의 말만 믿고 굴원을 멀리하더니, 마침내는 그를 추방시켜버렸다. 굴원은 원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은 아첨하는 자만을 좋아하고 충신을 알아주지 않으니, 앞으로 간신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는 우울하고 슬픈 마음에 '이소'라는 글을 짓기도 하였다. '이소'란 '이우'와 같은 뜻으로 '근심이 되는 일을 만난다'는 뜻이다. 굴원이 지은 '이소'의 내용은, 위로는 오제의 한 사람인 곡으로부터 아래로는 제나라 환공에 이르기까지 논하였다. 또한 은나라 탕왕, 주나라 무왕의 치적을 통하여 당대의 정치를 풍자하였다. 그리고 도덕의 넓고 높음과 국가의 바른 정치와 잘못된 정치를 명확하게 밝혔다.
요직에서 물러난 굴원은 제나라 사신으로 갔다 돌아왔는데, 그후에도 그는 여전히 한직에 머물고 있는 상태였다. 그사이 진나라는 초나라를 쳐서 여러 번 괴롭혔으며, 마침내는 초나라 장수 당말을 죽였다. 그리고 나서 진나라 소왕은 초나라와 혼인관계를 맺고 회왕에게 무관에서 회맹을 하여 양국이 우호적으로 지내자는 제의를 해왔다. 이때 굴원이 회왕 앞에 나가 말하였다.
"진나라는 범이나 이리 같은 나라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번에도 간교한 유세꾼 장의를 시켜 상, 오의 땅 6백 리를 주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어겨 우리 초나라를 우습게 만들었습니다. 진나라를 믿을 수 없으니 대왕께서는 회맹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왕의 신변이 염려됩니다."
그러자 회왕의 둘째아들 자란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천하가 다 보고 있는데 감히 진나라 왕이 거짓 회맹을 하겠습니까? 부디 다녀오십시오."
회왕은 아들 자란의 말을 믿고 진나라 소왕과의 회맹 장소인 무관으로 떠났다. 그러나 막 무관으로 진입하는 지점에 진나라 복병이 숨어 있다가 초나라 회왕을 억류해 버렸다. 그런 가운데 진나라 소왕은 초나라로 하여금 땅을 베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분노한 회왕은 몰래 진나라 군사들의 감시망을 뚫고 조나라로 도망쳤다. 그런데 조나라에서는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초나라 회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왕은 다시 진나라로 가서 끝내 초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초나라는 진나라에서 보내온 회왕의 시신을 장례지내고, 그 뒤를 이어 태자가 경양왕으로 즉위하였다. 경양왕은 아우 자란을 재상으로 삼았으나, 초나라 사람들은 회왕을 진나라에 가서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며 자란을 비방하였다. 굴원도 자신의 충언을 가로막은 자란을 미워하였다. 이때 자란이 그것을 알고 상관대부 근상을 시켜 경양왕에게 굴원을 다시 거짓말로 참소케 하였다. 경양왕은 크게 화를 내어 굴원을 먼 곳으로 귀양보냈다. 굴원은 마침내 강가에 이르렀다. 그의 머리카락은 마구 풀어헤쳐져 있었으며, 얼굴은 매우 초췌하였고, 몸은 마치 마른 나무가지처럼 야위었다.어부가 굴원을 보고 물었다.
"혹시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이 되셨습니까?"
어부가 말한 '삼려대부'는 소, 굴, 경씨등 왕족을 맡아보는 관직으로, 굴원은 한때 그런 직책에 종사한 적이 있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맑으며, 많은 사람들이 취하였는데 나 홀로 깨어 있소. 그 때문에 추방되었소."
굴원이 대답하였다. 그러자 어부가 다시 물었다.
"대체로 성인은 사물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을 따라 함께 옮기는데, 온 세상이 혼탁하면 어째서 그 흐름을 따라 물결 가운데 몸을 맡기지 않는 것입니까? 여러 사람이 다 취했으면 어째서 그 술지게미라도 먹고 같이 취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까닭으로 그 빛나는 보석 같은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스스로 쫓겨날 일을 만드셨습니까?"
그러자 굴원이 정색을 하며 말하였다.
"들으니 '머리를 감은 자는 그 관의 먼지를 반드시 털어서 쓰고,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그 의복의 먼지를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누가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겠습니까? 차라리 물속에 이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이나 채워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굴원은 말을 마치고 '회사의 부'라는 시를 지었다. 즉, '모래를 품고 강물에 몸을 던지는 노래'라는 시였다. 이 시를 지은 후 그는 바위를 품에 안고 스스로 강물로 뛰어들어 죽었다.
절의 : 까마귀 아홉 마리가 백로 한 마리를 보고 더럽다고 하면, 또 그렇게 보이는 게 세상이다. 그렇다고 백로까지 일부러 몸을 더럽혀 까마귀가 될 수는 없다. 백로 한 마리의 죽음은 그 깨끗함을 지키는 고고한 자세만으로도 험난한 세상에서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백로 한 마리까지 그 절개를 꺾는다면 세상에서는 '깨끗함'과 '더러움'을 비교하는 잣대까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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