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1장 이것은 괴로움이다
열여섯번째 이야기-염라대왕에게 뇌물을 주다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어렵게 살아가는 한 과부가 있었다. 모자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매일 불경을 외워 적지않은 지혜와 덕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살던 나라는 그 꼴이 엉망이었다고 한다. 국왕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을 전혀 생각지 않고 정사도 돌보지 않으면서 머릿속에는 그저 재물과 여색을 탐하는 욕심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국왕은 한편으로 죽음을 꽤나 두려워하여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죄를 많이 지었으니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을 게 뻔하다. 이를 모면할 방법이 없을까? 그래, 한량없는 재보를 염라대왕에게 바치면 죄를 면제받을 수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국왕은 전국의 황금을 모두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단 한 냥의 황금이라도 숨겨두는 자가 있다면 사형을 면치 못하리라."
무려 삼년에 걸쳐 민간에 있는 황금을 모두 거두어들이자 백성들은 모두 너나할것없이 거지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국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욕심을 부려 다음과 같은 방을 전국에 돌렸다.
"한 냥의 금이라도 더 가져오는 자가 있으면, 대신의 자리를 주고 또 부마로 삼겠노라."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은 이 방을 보고 혼자 골똘히 생각하다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지금 이 나라는 망국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국왕이 어리석기 그지없으나, 제게 국왕을 설득할 만한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우리가 아버님의 입에 물려둔 황금이 있지 않습니까? 저승에서 필요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마련해드린 황금 말입니다. 제가 그 황금을 가지고 가서 왕에게 직언을 해볼 작정이니 허락해주십시오."
어머니가 아들의 말에 동의하자 아들은 무덤을 판 후 아버지의 입에 물려있던 황금을 빼내가지고 왕궁으로 갔다. 국왕은 황금을 가지고 온 사내를 보자 한편으로 놀라고 또 한편으로 기뻐하며 물었다.
"이 황금을 어디서 얻었느냐?"
"이 황금은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저승에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쓰시라고 저희 모자가 마련해드렸던 것입니다. 대왕께서 황금과 대신의 직위를 바꾸시겠다고 한 말씀을 듣고 제가 아버님 무덤을 파서 황금을 꺼내온 것입니다."
"너희 부친이 죽은 지는 얼마나 되었느냐?"
"올해로 십일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너희 부친은 저승에서 그 황금을 쓰지 않았더란 말이냐?"
"대왕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정법을 믿는 사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선인선과 악인악과를 말씀하셨습니다. 길흉화복은 마치 그림자와도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몸을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제 그림자를 떼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안 되는일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의 몸은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단 죽으면 이 4대 원소는 흩어져버리고 맙니다. 인간의 영혼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염라대왕에게 뇌물을 주어 죄를 사면받겠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대왕께서는 전세에 보시를 많이 한 공덕으로 당세에 국왕이 되신 것입니다. 비록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하고 도덕을 숭상한다면 내세에 다시 국왕이 되실 것입니다."
사내의 말을 들은 국왕은 자기가 우매해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것을 후회하고 감옥문을 열어 죄없는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또 더 이상 금은보화를 수탈하는 짓도 하지 않게 되었다.
<육도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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