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1장 이것은 괴로움이다
열두번째 이야기 - 천금보다 나은 한 마디 말
먼 옛날의 일이다. 만물이 풍요로워 곡물과 과일이 넘쳐나고 온갖 재보가 가득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나라가 있었다. 상업 역시 번성하여 부족한 물건이라고는 없었지만 국왕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는 대신에게 말했다.
"유능한 사신을 뽑아 외국에 보내 우리나라에 없는 물건을 사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렇게 해서 사신 한 사람이 외국으로 떠났다. 외국에 도착한 사신은 시장에 나가보았으나 살 만한 물건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모두 자기 나라에도 있는 물건들이었다. 실망한 사신은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다가 시장 구석에 한 노인이 빈 손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사신이 그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물건도 팔지 않으면서, 빈 손으로 이곳에 앉아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노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장사를 하고 있는 중이오."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든 사신은 노인의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았으나 팔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으로 장사를 하는 겁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나는 이곳에서 지혜를 팔고 있다네."
"노인장이 팔고 있다는 지혜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또 값은 얼마입니까?"
노인은 사신을 한번 훑어보고선 태연하게 말했다.
"나의 지혜는 오백 냥이나 한다오. 먼저 돈을 내면 지혜를 알려주겠네."
사신은 지혜를 팔다니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나라 시장에서는 본 일이 없으므로 사 가지고 돌아가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한 사신은 오백 냥을 냈다. 곧 그 노인은 지혜를 알려주었다. 지혜의 내용은 바로 다음과 같았다.
"일을 당하면 여러 번 생각하고, 되도록 화를 내지 말라. 오늘 비록 쓰지 않는다고 해도 유용할 때가 있으리."
사신은 오백 냥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거래는 이루어진 것이라 그 말을 깊이 새기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본국으로 돌아온 사신은 자기 집에 들렀다. 그때는 한밤중이라 모든 식구들이 잠들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달빛을 빌어 얼핏보니 아내의 침실 앞에 신발이 네 짝 놓여 있었다. 사신은 자기가 없는 틈을 타서 아내가 간통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사실 아내는 간통을 한 게 아니라 그날 몸이 아파 어머니가 곁에서 간호를 해 주다가 함께 잠든 것이었다. 침상 앞의 신발은 바로 어머니의 것이었다. 이 사정을 알 리 없는 사신은 분기탱천했으나 문득 외국에서 만난 노인이 일러준 지혜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말을 되뇌이며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을 느낀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중얼거렸다.
"내 아들이 돌아온 게 아닐까?"
그제서야 사신은 자기 아내와 어머니가 함께 잠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방 밖으로 뛰어나가 펄펄 뛰며 외쳤다.
"정말 싸다! 정말 싸구나!"
의아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물었다.
"외국에 무언가 사러 간다더니, 싸다고 하는 말은 또 무슨 말이냐?"
사신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말했다.
"내 아내와 어머니는 만 냥을 준다 해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데, 단돈 오백 냥 어치 지혜의 말로 두 분을 지키게 되었으니 이 어찌 싼 게 아니란 말입니까?"
<천존설아육왕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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