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2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장군 가문에 장군 나고 재상 가문에 재상난다 - 맹상군
"옛말에 '장군 가문에서 장군이 나고, 재상 가문에서 재상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아버님을 받드는 미녀들은 비단을 밟고 다니지만, 아버님을 따르는 선비들은 짧은 잠방이도 얻어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맹상군의 이름은 전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제나라 위왕의 작은아들 전영으로, 위왕, 선왕, 민왕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냈다. 전영에게는 4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전문은 천첩의 소생으로 5월 5일에 태어났다. 전영은 5월생이 불길하다는 속설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였으나, 그 어미는 몰래 아들을 낳아 길렀다. 전영은 그 아들이 다 성장하였을 때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내가 전에 5월생의 아이는 낳지 말라고 일렀는데, 감히 이 아이를 낳아 기른 것은 무슨 까닭이냐?"
전영이 화를 내어 말하자 전문의 어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전문이 물었다.
"제가 감히 묻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5월생의 아이를 낳아 기르지 못하게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영이 말하였다.
"5월에 난 아들이 그 키가 지게문 높이와 같게 되면 그 부모에게 좋지 않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늘의 명을 받고 태어나는 것인데 무얼 그리 근심하십니까? 만약 5월에 태어나는 사람이 하늘의 명이 아닌 지게문의 명을 받는다면, 그 지게문을 높이면 그만일 뿐입니다. 그러면 아무 탈이 없을 것입니다."
전영은 아들의 말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전문은 아버지 전영을 찾아와 물었다.
"아들의 아들을 무엇이라 합니까?"
"손자라고 한다."
"손자의 손자를 무엇이라 합니까?"
"현손이라고 한다."
"그러면 현손의 현손은 무엇이라 합니까?"
"알 수 없다."
전영은 엉뚱한 질문을 하는 아들 전문을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버님께서는 제나라 재상으로 세분의 대왕을 모셨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제나라 영토는 더 이상 확장되지 않았는데, 아버님의 재산은 천만금이 축적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님의 문하에는 단 한 사람의 어진이도 없었습니다. 옛말에 '장군 가문에서 장군이 나고, 재상 가문에서 재상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아버님을 받드는 미녀들은 비단을 밟고 다니지만, 아버님을 따르는 선비들은 짧은 잠방이도 얻어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인이나 첩들은 쌀밥과 고기를 먹다 남기지만, 선비들은 쌀겨나 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체 너는 지금 무슨 소릴 하려는 거냐?"
전영은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아들에게 물었다.
"방금 아버님께서는 현손의 현손을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님께서는 재산을 축적하고 또 축적하고 있는데, 그 재산을 그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신 자손들에게 남겨주려 하고 있질 않으십니까?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신하들이 자기 가문만을 생각하여 재산을 축적할수록, 국력은 날로 쇠퇴해 가기 마련입니다. 저는 아버님이 재산을 축적하는데 노력을 기울이시는 것이 괴이하게 생각될 뿐입니다."
전영은 아들 전문의 말을 듣고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
"오늘부터는 네가 우리 집안의 일을 전부 맡아 보고, 손님접대를 하도록 하거라."
전문은 그때부터 집안의 일을 알뜰하게 살폈으며, 손님 접대를 극진히 하였다.
당시에 명문가에게는 식객들이 들끓었다. 명문 재상인 전영이 집안을 관리할 때는 접대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선비들이 많이 찾아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 전문이 손님 접대를 극진히 하자 많은 선비들이 그 집에 식객으로 머물게 되었다. 선비들 사이에서 날로 전문을 칭찬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제후들까지도 전문의 이름을 들먹이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문을 후계자로 삼으십시오."
제후들이 전영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 문이 그렇게 똑똑하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합니다."
전영은 전첩 소생의 아들 전문을 후계자로 삼고 죽었다.
이렇게 하여 전영의 후계자가 되어 가문을 이끈 전문이 바로 후에 재상이 된 맹상군이다. 옛말 그대로 재상의 가문에서 재상이 나온 것이다.
재물 : 재물은 쓰기위해 모으는 것이다. 재물을 쌓아두면 도둑이 되고, 재물을 풀면 성인군자가 된다. 진짜 부자는 재물이 많은 자가 아니라 주변에 따르는 사람이 많은 자이다. 사람에게 투자하라.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손님은 맹상군과 자신의 식탁에 차등을 두었기 때문에, 일부러 불빛을 막아 감추려 한다고 오해하였다. 맹상군이 식탁을 보여주자, 손님은 자신의 식탁과 똑같은 걸 알고 부끄럽게 여겨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맹상군의 집에는 늘 식객들이 북적거렸다. 그는 아버지 전영이 재상을 지낼 때부터 모은 많은 재산을 털어 그 식객들을 대접하였다. 식객들이 수천이나 되었지만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후대하였다. 어느 날 맹상군이 손님을 접대하여 같이 저녁을 먹을 때였다. 그때 누군가가 불빛을 막아 맹상군의 식탁을 가렸다. 손님은 맹상군과 자신의 식탁에 차등을 두었기 때문에, 일부러 불빛을 막아 감추려 한다고 생각하고 투덜거렸다. 맹상군은 자신의 식탁을 손님에게 보여주었다. 손님의 식탁과 똑같았다. 그 손님은 자신의 못난 행동을 부끄럽게 여겨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진나라 소왕도 맹상군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진나라 경양군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고, 그대신 맹상군을 진나라로 초청하였다. 맹상군의 식객들은 모두 말렸다.
"진나라로 가면 잡힙니다. 가지 마십시오."
"그래도 저쪽에서 초청한 건데 아니 갈 수가 없질 않소?"
맹상군은 제나라의 입장을 생각해서 진나라로 가려고 하였다. 그때 소진의 아우인 소대가 다음과 같은 '우화'를 예로 들어 말하였다.
"오늘 아침에 제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나무로 만든 인형과 흙으로 만든 인형이 싸우는 걸 목격했습니다. 나무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오면 네 몸은 허물어지고 말거야'하고 흙인형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흙인형이 '나는 흙에서 출생하였으니 허물어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너는 비가 오면 정처없이 떠내려가서 다신 돌아오지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 곳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흙인형에게 비웃음을 당한 나무인형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소대의 말을 듣고 맹상군은 진나라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제나라 민왕 25년에, 맹상군은 어쩔 수 없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을 보자 곧 자기 나라의 재상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때 진나라 신하가 말하였다.
"맹상군은 현명합니다. 진나라 재상이 되더라도 제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 나라를 위하여 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 진나라에게는 위험인물입니다. 이 기회에 그를 가둔 후, 죄를 씌워 죽이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번에 그를 놓아 보낸다면 크게 후회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진나라 소왕은 신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곧 맹상군은 숙소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진나라 소왕이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연금을 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맹상군과 그리고 그와 함께 간 식객들은 진나라에서 벗어나 무사히 제나라로 돌아갈 방책을 논의하였다. 식객 중에 진나라 소왕의 애첩 행희와 잘 통하는 사람이 있었다.
"염려 마십시오. 소왕이 총애하는 애첩으로 하여금 승상을 석방하게 해달라고 부탁해 보겠습니다."
그 식객은 곧 행희를 만나 부탁하였다.
"맹상군은 흰여우 가죽으로 만든 귀한 옷을 갖고 있다 들었소. 그것을 내게 주면 맹상군을 풀어달라고 대왕께 부탁드려 보지요."
식객은 이와 같은 행희의 말을 맹상군에게 와서 전하였다.
"허어, 큰일이군. 하나밖에 없는 그 옷은 이미 소왕에게 바쳤는 걸."
'호백구'라는 그 옷은 값이 천금이나 나가는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염려 마십시오. 그 호백구를 제가 훔쳐오겠습니다."
한 볼품 없이 생긴 식객 하나가 선뜻 나섰다.
"그대가 어떻게?"
"전직이 도둑이었습니다."
밤에 나간 그 식객은 새벽녘이 되자 진나라 보물 창고 깊숙이 숨겨져 있던 호백구를 훔쳐가지고 돌아왔다. 맹상군에게서 호백구를 선물받은 행희는 곧 소왕을 만나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애첩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는 소왕은 곧 맹상군을 연금 상태에서 풀어주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맹상군 일행은 몰래 진나라 궁궐을 빠져나와 함곡관까지 왔다. 그런데 관문이 꼭 잠겨 있었다. 당시에는 첫닭이 울어야 관문을 열게 되어 있었다. 야반도주를 한 맹상군 일행은 진나라 관군이 추격해 올까봐 새벽까지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한편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 일행이 몰래 궁궐을 빠져나간 것을 알고 크게 노하였다.
"맹상군을 풀어준 것은 과인의 실수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맹상군이 아직 함곡관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새벽이 되어야 관문이 열릴 것이니 서둘러 추격하라."
소왕은 군사들을 함곡관으로 출동시켰다. 맹상군 일행은 함곡관 관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식객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말하였다.
"제가 관문을 열어 보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맹상군은 반색을 하였다.
"앉아서 구경만 하십시오."
그 식객은 입을 오므려 닭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인근의 닭들이 모두 그 소리를 흉내내어 울었다. 함곡관을 지키던 문지기들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니 벌써 새벽인가?"
문지기들이 관문을 열자, 맹상군 일행은 미리 가짜로 만들어두었던 통행증을 제시하고 무사히 함곡관을 벗어나 제나라로 돌아왔다.
인복 : 폭넓은 아량으로 사람을 얻어라.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쓰일 곳이 있는 법이다. 평소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면, 위기가 닥쳤을 때 도움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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