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1장 이것은 괴로움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 - 어쩔 수 없는 살인
부처님이 하루는 제자들에게 살신하여 인명을 구한 한 고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정광불(정광불은 연등불이라고도 하며 아주 오랜 옛날에 출현하여 석가모니에게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여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수기를 주신 부처님이다)이 이 세상에 출현했던 아주 먼 옛날 오백 명의 상인들이 보물을 찾아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그 상인들 중 한 사람은 다른 상인들이 보물을 캐내면 그후 모조리 죽여버리고 독차지하려는 악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 당시 '대애'라는 고승이 있었는데, 그는 지혜가 출중하고 덕이 높아 가히 사람과 하늘의 도사라고 불릴 만했다. 한번은 꿈에 해신이 나타나 대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백 명의 상인이 보물을 캐러 바다에 나갔는데, 그 중 간악한 한 사람이 동료들을 모두 죽이고 보물을 독차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음모가 실현되면 그는 지옥에 떨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도사님께서 지혜를 써서 오백 명의 상인이 졸지에 비참하게 죽는 것을 막으신다면 그 간악한 자가 큰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대애는 상황이 급박한 것을 알고 칠일 밤낮을 생각해보았으나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이렇게 결정했다. '그 간악한 상인을 죽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구나.' 그러나 다른 상인들에게 그 사정을 알린다면 모두 격분해서 그를 쳐 죽일 게 당연했다. 그러면 그 상인들 역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그를 죽인다면 살생의 업보로 수천 겁 동안 고난을 겪게 되겠지만, 오백 명의 상인들이 전부 죽는 일을 막을 수 있고, 또 그 간악한 상인이 지옥에 떨어지는 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끝내 지옥에 떨어진다면, 나 역시 그때는 지옥에 있을 터이므로 그에게 불법을 가르쳐 인과응보의 법칙을 깨닫게 하여 영원히 죄를 짓지 않고 고해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하리라.'
생각을 마친 대애는 밤에 작은 배를 타고 오백 명의 상인이 타고 있는 커다란 배에 접근했다. 그리고 야음을 틈타 그 배에 올라 조용히 그 간악한 상인이 자고 있는 선실로 들어가 그를 죽여버렸다. 대애는 그 간악한 상인의 음모를 편지로 써서 책상 위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게될 상인들에게 나쁜 마음을 먹지 말고 재물 때문에 인명을 해치면 안 되니 서로 협조하여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아침이 되자 어떤 상인이 죽은 자 옆에 있던 편지를 발견하고선 동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은 죽은 자가 근래 행동이 수상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고, 자기들을 죽음에서 구해준 대애도사를 추모했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후 덧붙이셨다.
"대애는 자비심에서 오백 명의 상인을 구하고자 방편을 써서 자기가 직접 살인을 한 것이니라. 그러나 대애는 비록 살인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수명이 다한 후 지옥에 떨어지기는커녕, 오백 명의 상인들을 구한 공덕으로 제12광음천(광음천은 색계 제2선천 중의 제3천. 이 하늘에 사는 중생은 음성이 없고 말할 때 빛을 내어 의사소통을 한다)에 태어나게 되었느니라. 제자들아, 마땅히 알라. 그때의 대애가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나는 그때 방편을 써서 뭇 상인의 생명을 구한 공덕으로 생사윤회의 고통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그때에 타고 있던 오백 명의 상인들은 바로 현겁 중에 출현한 오백 명의 부처님이시다."
<혜상보살문대선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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