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14장 헤라클레스
1. 알크메네
알크메네(Alcmene)는 아르고스 왕 엘렉트류온의 딸이다. 엘렉트류온은 아이톨리아인에게 살해된 아들들의 원수를 갚아주면 딸 알크메네와 왕권을 내주겠다고 암피트류온에게 약속하였다. 이에 암피트류온이 아이톨리아 전쟁터에 나간 사이 제우스가 암피트류온으로 변신하여 알크메네와 하룻밤을, 그것도 보통보다 세 배나 긴 밤을 지냈다. 한편 승리한 암피트류온이 다음 날 전쟁터에서 돌아왔으나 알크메네가 별로 반기는 기색이 없고 새삼스럽게 군다는 태도를 취하자 의아하게 생각되어 예언자 티레시아스를 찾아갔다. 사랑의 경쟁자가 존엄한 제우스 신임을 알게 된 암피트류온은 자랑스러운 아내에게 돌아왔고 얼마 후 알크메네는 쌍둥이를 낳았다. 그 중 한 아이가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이고, 나머지 하나는 암피트류온의 아들인 이피클레스였다. 제우스가 신과 인간을 위하여 영웅을 낳고자 알크메네를 택했던 것이다. 알크메네는 생을 마친 후 제우스의 올림포스 신전에 묻혔다.
2.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Heracles, Hercules)는 '헤라의 영광'이라는 말로 헤라 여신을 숭배하는 부족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명성이 높고 괴력을 가진 영웅으로 보통 키를 가진 사람으로 전하는데, 로마인은 그를 탐스러운 근육을 가진 중량급으로 표현하였다. 사후에는 신으로 모셔져 숭배되었다. 신화에는 같은 이름이 많아 예컨대 디오도로스는 3명, 키케로는 6명, 어떤 작가는 43명이나 등장시키고 있다. 모두 제우스와 알크메네의 아들이며 테베 사람으로 적고 있다. 제우스 신은 온 누리가 우러러보는 위대한 영웅을 얻기 위하여 알크메네의 침실에서 긴 밤을 지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 여신은 매우 화를 내며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학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아이가 필연코 힘이 장사에 세력이 강성해져 나라를 지배할 것이라고 짐작한 헤라는 서둘러 아르고스 나라로 가서 왕 스테넬루스에게 빨리 아이를 낳으라고 지시하였다. 이렇게 해서 서둘러 낳은 아이가 헤라클레스보다 두 달 먼저 출생한 허약한 칠삭둥이 에우류스테우스였다. 알크메네와 쌍둥이 헤라클레스와 이피클레스를 티륜토스(디오도로스는 테베라 함)에서 키웠다. 생후 8개월이 되었을 때 헤라는 두 마리 뱀을 보내 어린 아이를 물게 하였으나 조숙한 헤라클레스는 두려움 없이 양 손에 뱀 한 마리씩을 잡고 목을 조여 죽여 버렸다. 동생 이피클레스는 놀라 집안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질렀다.
일찍부터 공부를 시켰는데 튠다레오스의 아들 카스토르는 싸움하는 법을, 에우류토스는 활쏘는 기술을, 아우톨류코스는 이륜수레를 모는 범을, 리노스는 수금켜는 법을, 에우몰포스는 노래하는 창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당대에 이름난 켄타우로스족 케이론에 사사하여 씩씩하고 나무랄 데 없는 젊은이라 성장하였다. 18세 되던 해 암피트류온의 가축과 농토에 심한 피해를 주는 키타이론 산의 어마어마하게 큰 사자를 잡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는 역시 사자의 재앙을 받고 있던 테스피오스 나라의 왕을 찾아가 50일간 후한 대접을 받았다. 왕에게는 50명의 공주가 있었는데 왕의 깊은 뜻으로 헤라클레스는 궁에 묵는 동안 모든 공주를 잉태시켰다. 키타이론 산의 사자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 헤라클레스는 테베 나라로 가서 매년 에르기노스 왕에게 100마리의 황소를 바치는 부담을 해소시켰다. 황소 100마리는 에르기노스의 부친이 테베인에게 살해당한 대가였는데 이를 헤라클레스가 거절하고 싸움을 일으켜 에르기노스를 죽인 것이다. 이러한 공헌이 알려지자 헤라클레스는 온 나라의 우상이 되고 테베의 왕 크레온은 큰딸 메가라를 헤라클레스와, 작은딸을 동생인 이피클레스와 결혼시켰고 그 사이에서 많은 자식이 태어났다. 8명의 자녀를 둔 헤라클레스는 특히 동생의 맏아들 이올라오스를 각별히 귀여워하였다. 그 후 헤라클레스는 제우스 신의 지시로 미케네의 왕 에우류스테우스에게 종속되었다.
에우류스테우스는 자신의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고자 헤라클레스를 미케네로 오라고 지시하고 또 모든 일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였다. 헤라클레스보다 2개월 먼저 출생하여 선배 행세를 톡톡히 부리는 에우류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노역을 시켰다. 비위가 상한 헤라클레스가 이 요구를 거절하자 헤라 여신은 복종하지 않는 헤라클레스에게 벌을 내려 정신발작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결과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아이들을 에우류스테우스의 아이들로 착각하여 모두 활로 쏘아 죽여 버렸다. 정신이 돌아온 후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참사에 극심한 충격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비통한 나머지 어두운 지하 골방에 들어가 모든 사람과의 접촉을 끊었다. 그 후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아폴론의 신탁을 받은 바 에우류스테우스의 지시에 따라 12년간 노역에 종사하는 것이 제우스의 명을 준수하는 것이고 어려운 노역을 마치면 신의 일원으로 소명을 받는다고 하였다. 명백한 회답을 받자 헤라클레스는 미케네로 가기로 하고 어떤 일을 시키더라도 인내로써 완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에우류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완전히 복종시켜 적에게 자기의 권위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 일찍이 없었던, 달성 가능성이 없는 극히 어려운 노역을 골라 강요하니 이것이 바로 헤라클레스의 12노역이다. 이제 난사의 수행에 들어가게 되자 헤라클레스는 신들의 호의를 받아 완전무장을 하였다. 아테나 여신은 철모와 장신구를, 헤르메스는 칼을, 포세이돈은 말을, 제우스는 방패를, 아폴론은 활과 화살을 제공하였다. 그 외 헤파이스토스에게서는 황금갑옷과 놋쇠로 만든 장화를 받고 또한 이름난 놋쇠 곤봉(일설에는 자신이 네메아의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도 받았다.
첫 노역은 미케네 근방을 황폐시키는 네메아의 사자를 퇴치하는 일이었다. 활로 잡을 수 없자 굴까지 추격하여 곤봉으로 질식시킨 후 사자를 어깨에 메고 미케네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이 사자의 껍질을 벗겨 옷을 해 입었다. 에우류스테우스는 그 짐승과 헤라클레스의 용맹성에 너무 놀라 앞으로 사냥에서 돌아오면 성문에 들어오지 말고 성밖에 대기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래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놋쇠통을 만들게 하여 헤라클레스가 돌아오면 그 속으로 피신하였다. 사자는 천공에 올라 사자자리가 된다. 두 번째 노역은 레르나 숲의 히드라라는 7두 괴물(일설에는 50두 혹은 100두 물뱀이라 함)을 퇴치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 거대한 괴물을 활로 쏘고 다가서서 곤봉으로 머리를 내쳤으나 성과는 없었다. 곤봉으로 머리를 부수면 곧 두 개의 머리가 다시 솟아나왔기 때문이다. 이올라오스가 불에 달군 쇠로 지져서 뿌리를 없애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던들 퇴치에 실패하였을 것이다. 괴물을 퇴치한 헤라클레스는 배를 가른 후 담낭에 화살을 꽂아 상처가 아물지 못하도록 하고 독이 묻은 화살은 무기로 사용하였다. 바로 그 유명한 히드라 독화살이다. 히드라에 가세하여 헤라클레스의 발을 문 거대한 게는 헤라 여신이 게자리로 올려놓았다. 세 번째 과제는 황금뿔과 놋쇠다리를 지녔으며 믿기 어려울 만큼 날쌔다는 케류니티아의 수사슴을 상처없이 잡아오는 일이었다. 소문난 이 짐승은 오이노이 지방에 자주 나타났는데 만 1년간의 추적 끝에 붙잡을 수 있었다. 덫으로 혹은 기진한 상태에서 또는 경상을 입혀 재빨리 움직일 수 없게 만든 후 생포하였다 한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승리감에 싸여 돌아오는 길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사슴을 빼앗으며 심히 견책하였다. 그 사슴은 여신에게 바쳐진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류스테우스에게 사슴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설득한 후 다시 찾아서 주겠다고 여신을 달래었다.
네 번째 과제는 에류만토스 인근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거대한 수퇘지를 생포하는 일이었다. 사냥길에 하찮은 일로 켄타우로스족과 싸움이 붙은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결국 멸망시키고 수퇘지는 깊은 눈 속에서 뒤쫓아 잡았다. 에우류스테우스는 이번에도 수퇘지를 보고 너무 놀라 수일 간 놋쇠통 속에 숨어 지냈다고 한다. 다섯 번째는 아우게아스 마구간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아우게아스는 엘리스의 왕으로 황소와 양를 엄청나게 많이 기르면서도 외양간을 청소한 적이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가축의 1/10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이 청소를 맡았는데 단시일 내에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축사 청소를 알페오스 강과 페네오스 강 줄기를 돌려 하루 만에 해치웠다. 그러나 아우게아스는 힘 하나 안들인 술책이라며 약속한 보상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 편을 들며 약속을 지킬 것을 주장한 왕자 퓰레오스까지 나라에서 추방시켜 버렸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아우게아스와 싸워 그를 죽이고 퓰레오스에게 왕관을 씌워 주었다. 파우사니아스의 말에 따르면, 그 아들을 보아 아우게아스를 살려주고 왕자 퓰레오스는 이미 둘리키움에 정착하였으므로 왕관은 다른 왕자에게 넘겨 주었다고 한다. 이후 아우게아스는 장수하였고 죽은 후에 주민들이 신으로 존중하였다. 이 노력 후 알페오스 강과 그 지류 클레데오스 강 사이에 위치한 크로니온 산록에서는 헤라클레스의 승리를 기념하는 경기가 개최되었다(올림피아드의 시초!). 여섯 번째는 아르카디아 지방 스튬팔로스 호수 근방에서 극성을 부리는 육식성 새를 잡는 일이었다.
일곱 번째는 크레타 섬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거대한 야생 황소를 펠로폰네소스로 잡아오는 일이었다. 이 또한 무사히 해냈으며 이래로 크레타의 수도는 헤라클리온으로도 불리고 있다. 여덟 번째는 디오메데스가 기르는, 사람고기를 먹는 암나귀를 잡아오는 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디오메데스를 죽여 이 나귀에게 먹게 한 후 끌고 왔다. 일설에는 제우스 신에게 바쳐졌으며 알렉산더 대왕 때까지 종축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아홉 번째 노역은 아마존족의 여왕 히폴류타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열 번째는 가우데스의 괴물 게류온을 퇴치하는 일이었는데 이 괴물인간은 3두 3신으로 사람고기를 쌓아 놓고 가축으로 사육하고 있었다. 괴물을 처치하고 가축을 아르고스로 끌고 왔다. 열한 번째는 요정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서 황금사과를 따오는 일이었다. 트로이 전쟁의 불씨로 유명한 이 황금사과 나무는 머나먼 서쪽 끝 아틀라스 산록의 정원에 있었다. 원래 가이아 여신이 헤라와 제우스의 결혼선물로 준 것인데 정원에 심어 아틀라스의 딸들인 헤스페리데스가 가꾸고 헤라 여신이 보낸 무서운 용 라돈이 지키고 있어 아무도 얼씬거릴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에리다 노스 강 요정에게 물어 바다의 노인신 네레우스로부터 그 방도를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에 둔갑을 하며 피하는 네레우스를 꽉 붙들고 도움을 요청하니 프로메테우스에게 의논하라는 답을 들었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머나먼 카우카소스 산 바위에 묶여 있는 프로메테우스를 찾아가 그의 간을 찍고 있는 독수리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풀어주니 자신의 형제인 아틀라스를 찾아가 부탁하라고 하였다. 창공을 양 어깨에 메고 있던 아틀라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사과를 따올테니 그 동안 대신해서 창공을 지고 있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사과를 따온 아틀라스가 자신이 직접 에우류스테우스에게 가져다 주겠노라고 하니, 난처해진 헤라클레스는 일단 응하면서 다만 오랜 기간 지고 있으려면 어깨받이를 덧대어야 하겠으니 잠시 하늘을 받치고 있으라고 사정하였다. 그 말대로 아틀라스가 다시 하늘을 짊어지자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쥐고 얼른 그 곳을 빠져나왔다. 에우리피데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직접 가서 라돈을 죽이고 사과를 따 왔다고 한다. 당시 아틀라스는 이미 페르세우스가 갖고 있던 메두사의 안광 때문에 돌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설이 앞뒤가 맞는다. 에우류스테우스는 신성한 황금사과를 다시 헤라클레스에 되돌려 주고 헤라클레스는 이를 아테나 여신에게 바쳤다.
열두 번째 최종 노역은 가장 어렵고도 위험한 일로, 지하계의 호랑이 꼬리에 머리가 세 개 달린 개 케르베로스를 지상으로 끌고 오는 일이었다. 타이네로스산 동굴로 해서 지하세계로 내려간 헤라클레스는 마침 지하세계 왕 하데스의 명으로 명계에 잡혀 있던 테세우스와 피리투스를 구출하고 약속대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케르베로스를 지상으로 끌고 왔다. 케르베로스는 후에 다시 명계에 반환하였다. 헤라클레스는 이상과 같은 노역들을 모두 완수해 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여러 가지 위대하고 빛나는 일을 이룩하였다. 우선 그는 미케네 왕에게로 돌아가기 전에 콜키스로 출범하는 아르고 원정대에 동행하였으며, 신족과 거인족 간의 전쟁에서는 신족을 도와 제우스 신에게 승리를 가져오게 하였다.
한편 오이칼리아 왕 에우류토스의 딸 이올레를 깊이 사랑하여 청혼하였다가 거절당하자 다시 실성, 두 번째 발작을 일으킨 헤라클레스는 그간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중계역을 하던 에우류토스의 외아들 이피토스를 죽이게 되었다. 살인한 죄를 속죄하고 실성에서 회복하지만 여러 신을 너무 괴롭혀 고뇌하던 끝에 델포이 신전에 가서 신탁을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신전으로 가는 길에 여사제 퓨티아에게 냉대를 받자 화가 치밀어 아폴론 신전의 보물을 약탈하리라 앙심을 품고 신성한 삼각대를 들고 나왔다. 아폴론이 이에 대항하여 심한 싸움이 벌어지자 제우스 신을 할 수 없이 직접 개입하여 벼락을 쳐서 싸움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는 노예로 팔려가 3년간 극도로 비참한 노예생활을 해야 이 난동을 보상할 수 있다는 신탁을 받았다. 헤라클레스가 복종하자 제우스 신의 명으로 헤르메스는 그를 리디아의 옴팔레 여왕에게 노예로 팔았다. 이 나라에서 헤라클레스는 모든 도둑 무리를 소탕하였고 그 위대한 공적에 감탄한 여왕은 그를 자유의 몸으로 복귀시킨 후 결혼을 하였다. 헤라클레스는 이 여왕과의 사이에서 아겔라오스 및 라몬을 두고 그 후예인 크로이소스가 리디아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또한 여왕 옴팔레의 시녀를 사랑하여 알케오스를 두기도 하였다. 3년간의 기간을 다 채운 헤라클레스는 다시 펠로폰네소스로 돌아와 히포콘에게 빼앗긴 스파르타 튠다레오스 왕의 왕권을 복귀하는 데 힘썼다. 또한 쉼없이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아켈루스는 헤라클레스의 가장 힘든 경쟁상대였는데 그는 뱀과 황소로 연신 변신하며 헤라클레스와 대적하였다. 그러나 결국 헤라클레스가 그의 뿔 하나를 꺾어 패배시키자 창피해서 물 속으로 후퇴하였다. 뿔은 요정이 집어 꽃과 과일을 담아 승리자의 손에 넘겨지고 풍요의 여신에게 바쳐졌다. 어떤 설에 따르면 이후 아켈루스는 강으로 변하고 이 강은 에피로스를 흘렀다고 한다. 핀도스 산에서 시작하는 이 강은 아이톨리아에서 아카르나니아 지류가 생기고 이오니아해로 흘러갔다.
승리를 거머쥔 헤라클레스는 아이톨리아 왕 오이네우스의 아름답고 절찬을 받는 공주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 일시 장인의 영토 칼류돈에서 머물렀으나 주먹을 휘둘러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이는 바람에 이 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에 좋아하던 멧돼지 수렵도 포기하고 칼류돈을 떠나 트라키아의 케육스 왕궁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도중에 에우에노스 땅이 수해로 범람하여 개울을 건너는데 마침 켄타우로스족 네소스가 친절하게도 데이아네이라를 돕겠다 하여 맡겼다. 그러나 개울을 건넌 네소스는 강제로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해서 강탈하였고, 아내의 비명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급히 활을 당겨 독화살로 네소스를 쏘아 죽였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네소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앙심을 품고 데이아네이라에게 남편의 외도를 막는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다. 즉 자신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급히 덮치느라고 흘린 체액을 받아 기름에 섞어 남편의 내의에 바르면 남편이 다른 상대와는 절대로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데이아네이라는 얼떨결에 갖고 다니던 기름병에 이 피와 체액을 재빨리 받다 놓았다. 화급하게 개울을 건너온 헤라클레스는 아내를 부축하여 길을 떠났다. 트라키아의 왕 케육스는 헤라클레스 부부를 정에 넘치게 환대하고 칼류돈에서 본의 아니게 저지른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는 전에 이올레 쪽에서 자기의 청혼을 거절한 데 대한 불쾌한 심정을 못내 씻어내지 못하고 결국은 이올레의 아비 에우류토스와 전쟁을 벌여 왕과 세 아들을 죽게 하였다. 이올레는 아비의 살인자 손에 넘어갔는데 헤라클레스가 전과 다름없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그를 따라 오이타 산으로 갔다. 헤라클레스는 그 곳에 제단을 짓고 제우스 신에게 엄숙히 제물을 바칠 차비를 차렸다. 그리고 우선 의식용 의복을 갖추기 위하여 키스를 데이아네이라에 보냈다.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이 이올레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고 네소스의 말이 생각나 피와 체액이 섞인 기름을 속옷에 발라 의복과 함께 보냈다. 결국 이 의복으로 갈아입은 헤라클레스는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지고 레르나 숲의 히드라 독소가 뼛속으로 스며들었음을 알아차린다. 죽음의 옷을 벗으려 애쓰지만 이미 늦어 고통과 고뇌 속에서 네소스의 속임수를 경솔히 믿은 데이아네이라, 잔인한 에우류스테우스, 질투심과 증오심이 심한 헤라여신 등에게 격렬히 저주와 통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혼란이 계속되는 상태에서 그는 제우스의 가호를 탄원하며 활과 화살을 필록테테스(파이안 혹은 휼로스라고도 함)에게 주고 오이타 산 정상에 장작더미를 쌓게 하였다. 그리고 그 더미 위에 네메아의 사자털 가죽을 펴고 누운 후 곤봉에 머리를 기대었다. 필록테테스에게 나무더미에 불을 지르도록 지시한 헤라클레스는 아무 공포감이나 두려움 없이 불붙는 자신의 주위를 쳐다보았다. 천공에서 이를 내려다보던 제우스는 주위의 신들에게 헤라클레스는 지상에서 많은 괴물과 역적들을 퇴치한 공적이 있으니 불사의 신체를 천상으로 끌어오겠다고 주장하였다. 여러 신들은 제우스 신의 결정에 찬동하고, 불타는 장작더미는 곧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이윽고 인간부분이 다 타고 없어졌을 때 헤라클레스는 네 필이 끄는 수레에 실려 새벽녘 천상으로 운반되었다. 승천할 때 벼락과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였고, 모여 있던 많은 친구들은 헤라클레스의 뼈나 재도 보지 못하였다. 그 후 나무더미가 있던 곳에 제단을 쌓아 헤라클레스의 공적을 기념하였다. 악토르의 아들 메노이테오스는 황소, 야생 수퇘지, 산양을 제단에 공양하였고 오포스 사람들은 매년 의식을 갖추어 제를 올렸다. 곧 헤라클레스 숭배는 널리 퍼져나가고 그간 완강하게 그를 학대한 여신 헤라도 노여움과 원한을 잊고 자기 딸 헤베를 배우자로 주었다.
헤라클레스를 숭배하는 지방과 노역을 완수한 고장에서는 그를 여러 별칭으로 부르고 있으며, 각지에 그의 신전을 세워 힘의 신으로 숭배하였다. 로마의 헤라클레스 신전에는 개와 날짐승은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가우데스의 헤라클레스 신전에는 여자와 돼지는 전혀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도한 페니키아인은 제단에 맛있는 메추리를 바치는데, 헤라클레스 신이 꿈을 관장하여 병자나 허약자를 신전에서 자게 하면 꿈에 영감을 받아 활력을 찾는다고 믿었다. 신전에는 백약나무를 바쳤다. 헤라클레스는 일반적으로 팔다리가 균형잡히고 힘이 있는 나신이나, 네메아 산에서 잡은 사자의 털가죽을 걸치고 손에 마디가 굵은 곤봉을 잡고 기대서 있는 자세로 표현된다. 또한 백양나무 잎으로 된 관을 쓰고 풍요의 뿔을 가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귀염둥이 에로스와 같이 서서 화살과 곤봉을 부러뜨리는 상으로도 표현되는데 이것은 영웅의 사랑에 빠진 심경을 암시하는 것이다. 무장한 옴팔레가 질책하고 헤라클레스는 비웃음을 받으며 여자시녀와 같이 실을 뽑고 있는 상도 있다.
헤라클레스의 아들들은 각처에서 치른 수많은 사건만큼이나 많고 그 후손들은 헤라클레스가 죽은 후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역을 석권하였다. 특히 메가라와의 소생 데이콘과 테리마코스, 아스튜다미아의 크테시포스, 아우토노에의 팔레몬, 파르테노페의 에우에레스, 데이아네이라의 글류키소네테스와 규네오스 및 오디테스, 칼키오페의 테살로스, 에피카스테의 테스탈로스, 아스튜오케의 틀레폴레모스, 에키드나의 아가튜르소스, 겔로노스 및 스큐테스 등은 유명한 아들들이다. 전 생애를 통해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노력한 헤라클레스를 사람들이 진실된 미덕과 경건성의 모범을 보여준 영웅이자 불사신으로 추앙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3. 테스피오스 테스피오스(Thespius)는 아티카의 왕 에렉테우스의 아들로 보이오티아 지방에 와서 테스피아이 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패기에 넘친 18세의 헤라클레스가 찾아왔을 때는 같이 키타이론의 사자 사냥에 나서서 이를 퇴치하였고, 사냥하는 동안 그를 왕실에 묵게 한 후 자신의 딸 50명이 헤라클레스의 아이를 갖기를 원하자 젊은이의 침실로 보내 기쁘게 지내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매일 바깥 일로 매우 피곤해서 밤마다 다른 공주와 자는 줄을 몰랐다고 한다. 일부 과장된 이야기에 따르면 이는 일곱 밤, 혹은 하루 저녁에 완수한 헤라클레스의 가장 힘든 열세번째 노역이라고 한다. 테스피오스의 모든 딸은 남아를 출산하였는데 다른 이야기에는 테스피아데스(테스피오스의 딸들) 중에서 한 딸만은 헤라클레스와 동침을 거부하였고, 이에 화가 난 헤라클레스가 그녀에게 평생 독신으로 지내라고 질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주는 테스피아이 신전의 여사제가 되었다. 테스피아데스의 아들들은 테스피아다이라 부르며 사르디니아로 가서 아비의 조카인 이올라오스의 도움을 받아 정착하였는데 그 후 두 명은 테베로, 일곱 명은 테스피아이에 정주하였다. 테스피오스를 플레우론 왕 테스티오스(아게노르의 손자)와 혼동하는 작가도 있으며, 후자인 테스티오스의 아들들은 시문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이름난 칼류돈의 멧돼지 사냥에 참가하였다.
4. 케이론 케이론(Chiron)은 켄타우로스족 중 가장 고명한 예지와 분별력, 자비심을 갖춘 켄타우로스족의 왕으로 사람과 신족 모두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와 이아손 및 아킬레스 등을 위탁받아 양육과 교육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후기 전설에는 크로노스가 배우자 레아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말로 변장하고 외출하여 오케아노스의 딸 필류라와 연애하여 얻은 아들이라 한다. 그러므로 제우스의 이복형제가 된다. 옛 전설에 신족이라는 이야기는 없지만 케이론은 불사신이었으며 머리가 총명하여 위험한 야생마를 길들이고 인간에게 말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등 큰 은혜를 베풀었다. 또한 음악, 무술, 수렵, 윤리 및 의술에 조예가 깊어 아폴론도 케이론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켄타우로스족을 야만적이고 비협조적인 존재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일찍이 펠레우스를 다른 켄타우로스족들로부터 보호해 주고, 요정 테티스와의 결합을 조언해 주었다. 이는 요정이 인간에게 시집간 처음이자 마지막 예인데 여기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한 최고의 영웅 아킬레스이다. 케이론은 결혼선물로 물푸레나무를 주었다. 신화에서 켄타우로스족은 헤라클레스의 영웅적 활약과 죽음에 깊이 관여하는데, 호메로스의 경우 헤라클레스와 켄타우로스족을 등장시키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 불사신인 케이론의 죽음은 헤라클레스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즉 세 번째 노역으로 배당된 에류만토스 산의 수퇘지 사냥에 나선 헤라클레스는 포이베에서 켄타우로스 폴로스의 호의로 그 집에 묵게 되었다. 헤라클레스가 포도주를 원하자 주인 폴로스는 자기 집 포도주가 없어 망설이다 부족 공동의 포도주를 일부 제공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포도주 향기를 맡은 다른 켄타우로스 사람이 부족 소유의 포도주를 주었다고 분노하여 헤라클레스와 폴로스를 공격하였던 것이다. 공격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켄타우로스인들 중 일부를 죽였고, 나머지 켄타우로스인들은 케이론의 거처로 달아났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켄타우로스인의 우두머리인 엘라토스에게 화살을 날렸다. 이것이 에라토스의 팔을 관통하고, 마침 무슨 일인지 보러 나온 케이론이 이 화살에 무릎을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케이론은 극심한 아픔으로 거처로 들어갔고 헤라클레스는 급히 달려가 자신의 은인인 케이론을 도왔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쏜 화살은 치명적인 히드라의 독이 묻은 것이었으므로 케이론은 가지고 있는 모든 의술을 동원해도 치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케이론은 영생하는 불사신의 몸이었기 때문에 평생 동안 상처의 고통에 신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 무자비한 곤경을 제우스가 해결하는데, 케이론의 영생권을 프로메테우스에게 양도하고 평온한 죽음을 택하게 하였던 것이다.
5. 휼로스 휼로스(Hyllus)는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의 맏아들로, 헤라클레스가 죽은 다음 유언에 따라 이올레와 결혼하였다. 그는 아비와 마찬가지로 에우류스테우스의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부득이 펠로폰네소스에서 도피하여 트라키아왕 케육스를 찾아갔다. 그러나 케육스도 에우류스테우스를 두려워하며 안전을 보장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할 수 없이 휼로스는 다시 아테네의 테세우스 혹은 그 아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고 거기에서 친절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자 에우류스테우스는 아테네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에 휼로스는 헤라클레스 일족을 규합하여 에우류스테우스에 대항, 공격을 하였다. 이 전투에서 에우류스테우스를 추격한 끝에 자신의 손으로 그를 죽이고 그 수급을 친할머니인 알크메네에게 보냈다. 세월이 지난 다음 북에서 내도한 동족 헤라클리다이(도리스인)와 함께 펠로폰네소스를 회복하고자 공격하였다. 그러나 휼로스는 아르카디아 왕 에케모스와의 한판 승부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이 이야기는 새로 침입한 도리스인이 자신들의 신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에게 연줄을 대고자 헤라클레스의 큰아들 휼로스를 입양시키고 전설을 계승하여 펠로폰네소스의 승리를 정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6. 안타이오스 안타이오스(Antaeus)는 리비아(많은 작가들은 현재의 모로코라고 한다)의 거인으로 가이아와 포세이돈의 이들이다. 리비아를 지나는 행인은 누구든 그와 한판 레슬링 벌이고 지면 영낙없이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그는 힘이 워낙 세서 한 번도 시합에서 진 적이 없었고 죽인 적수의 해골을 아비의 신전에 전시하여 자랑하였다. 마침 헤라클레스가 황금사과를 찾아 이 리비아를 지나던 중 그의 도전을 받고 승부를 가리는데, 이 자가 땅에 닿으면 번번히 새로운 힘을 대지에 보충받는 것을 알고 그 자를 공중으로 잡아올려 팔로 목을 졸라 죽였다.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의 처 팅게와 동침하여 아들 소팍스를 낳았다. 소팍스는 마우레타니아를 지배하고 도시를 건설하여 어머의 영예를 위해 도시 이름을 팅기에(현 탕헤르)라 하였다. 소팍스의 아들 디오도로스는 아비의 왕국을 일충 확대하고 마우레타니아 왕조를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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