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 8장 인간의 탄생 및 기타
1. 인간의 탄생
오래 전부터 인간의 탄생을 둘러싸고는 예컨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어 냈다든가 혹은 용의 이빨에서 사람이 튀어 나왔다는 등의 여러 설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신화 내지 전설을 아예 전혀 부정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그레이브스의 인간시대를 참조하여 인간의 탄생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첫 인간은 아티카의 흙에서 대지여신의 최고 결실로 자연 발생한 알랄코메네우스로, 달의 여신보다도 먼저 아티카 보이오티아에 있는 코파이스(현 림니) 호반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우스를 보좌하고 아테나의 교육을 맏았으며, 제우스의 여성행각에 마음이 상한 헤라 여신의 하소연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즉 헤라에게 그녀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어 혼인예식을 올리라고 권하였던 것이다. 이에 헤라가 다이달로스에게 떡갈나무로 여신조각상을 만들게 하고 꽃다운 신부의상을 입혀 수레에 안치한 후 수행원을 딸려 엄숙히 거리를 행진하니 과연 제우스는 그 미모에 매료되어 다시 애정을 찾게 되었다. 그 후 매년 이에 연유한 신성 결혼의 상징으로 다이달로스 축제가 개최되었다. 알랄코메네우스는 신도시 알랄코메네스(아테네 시의 옛 이름)를 창건한 상징적 인물로서 보이오티아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 이 시대는 전적으로 부계 사회였으므로 여자는 여신일지라도 남자의 지시에 따라야 했고 남성 없이는 여신은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달의 여신은 더 시대가 내려온 제우스 후기에 생겨났다. 이 시대를 인간의 황금기라 하며 크로노스 치하에 노역이나 근심없이 상수리 열매, 야생과일, 나무에서 흘러 떨어지는 꿀을 먹고 산양의 젖을 마시며 살았다. 노쇠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부르며 늘 웃고 살았던 이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잠자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인간들은 사라지게 되지만 그들의 영혼과 심성은 음악을 통해 천부적 예능으로 전승되고 정의와 행운의 수호자들의 성품으로 계승되었다. 이 황금기는 농경시대 이전의 미개한 인간시대지만 양봉여신을 모시고 마치 꿀벌과 같이 협조하며 살아간 이상적인 심성을 지닌 사람들의 시대였다. 다음은 은시대 인간인데 이전의 인간과 같이 거룩하게 발행하였다. 빵을 주식으로 하고 전적으로 어미에 존속되어 100년 이상 살았지만 어미의 의사에 감히 거역하는 일이 없었다. 무지하고 말다툼을 벌이며 신을 공양할 줄 몰랐지만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 시대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킨 것은 제우스였다. 은시대에는 모계사회를 형성하였으며, 이 습관은 고대에 무서운 문신을 한 픽트족, 흑해 연안의 모이슈노이키안스, 또는 발레아레스, 그 외에 갈리키아와 시르테(현 시드라) 만에 정착한 부족에게 전래되었고 성행위를 경멸하였다. 농경을 시작한 족속이다. 세 번째는 청동기시대 인간이다. 이들은 물푸레나무에서 마치 익은 과일이 떨어지는 것처럼 탄생하여 청동으로 무장하였다. 빵과 생고기를 먹고 호전적이면서 거만하고 무자비한 인종으로, 흑사병이 돌아 모두 멸망하였다. 초기 그리스에 침입한 부족이며 물푸레나무 여신과 그 아들 포세이돈을 숭배한 청동기의 유목민이다. 네 번째 인간족도 청동으로 무장한 부족이만 더 고상하고 원만하며 신과 인간의 어미 사이에서 탄생한 굳세고 위엄 있는 신의 아들과 손자들이다. 테베가 포위 공격 당했을 때 이를 물리쳤고, 아르고나우테스로서 콜키스 나라로 원정을 갔으며, 또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활약하고 빛나는 성과를 올렸다. 이들 족속은 미케네 시대의 무사들이며 패왕으로 이름을 날린 영웅들이고, 지하세계에서는 축복받은 낙원에서 살았다. 다섯 번째는 철기시대 인종으로 위의 부족 중 가장 하잘 것 없는 후예들이다. 타락하고 잔인하며 불의를 저지르고 악의에 찬 호색한들로 효도를 모르는 믿을 수 없는 족속이었다. 기원전 12세기에 그리스에 침입한 도리스족이 그들로 철제무기로 미케네 문명을 덮쳐 파괴하였다. 그 후 유사시대로 들어와 인간들은 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더욱 잔혹해지고 살육을 자행하였으며 도시왕국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이 외에도 인간의 시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예컨대 청동기시대에 인간들이 사악해지자 제우스는 큰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킨 일이 있다. 이 때 오직 의로운 한 부부만이 살아남았는데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과 그 아내 퓨라(에피메데우스와 판도라의 딸)였다. 대홍수 때 프로메테우스는 데우칼리온에게 방주를 만들어 물 위에 띄우라고 일러주었다. 9일 밤낮으로 홍수가 계속되는 동안 이들 부부는 배에서 지내다가 테살리아의 산악지대에 닿았는데 물이 빠진 후 지상으로 나가니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제우스의 사자 헤르메스를 만난 데우칼리온은 제우스에게 같이 살 사람들이 있기를 청원하였다. 제우스는 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어깨 너머로 모친의 뼈를 던지라고 지시하였다. 이는 불경한 행동이라 두려워하였으나, 모친의 뼈가 바로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의 뼈 즉 돌임을 깨닫고 돌을 집어던졌다. 이에 남편이 던진 곳에서는 남자가, 아내가 던진 곳에서는 여자가 나타났고 둘 사이에서 아들이 생기니 큰 아들을 헬렌이라 이름지었다. 이 헬렌의 후손이 번성하여 그리스인의 조상이 되었고, 현재 그리스는 이 헬렌이라는 이름에 연유하여 헬레네스라 칭하게 되었다. 그 외의 아들로 도로스, 크수토스, 및 아이올로스를 두었는데, 도로스는 도리스인, 아이올로스는 아이올리아인의 조상이되고, 크수토스의 아들들은 아카이오스 및 이온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 그리스의 인류 탄생에 관한 신화는 지역의 인종 또는 부족의 창조신화로 전해진다. 그 이전의 다른 인간 혹은 다른 종족의 존재도 상정하고는 있으나 그에 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아르고스인의 선조는 이나코스 강의 신과 물푸레나무의 요정 멜리아스의 아들 포로네오스이고, 메세니아인의 조상은 메세네오스, 테살리아의 피티오티스 나라 조상은 피티오스이다. 특기할 부족은 기원전 대략 1883년경에 하이모니아를 넘어와서 펠로폰네소스의 아르골리스에 처음 정주한 사람들로, 이들은 펠라스기아(왕은 펠라스고스)라 하며 점차 에피로스, 크레타, 이탈리아, 레스보스 등지로 이동하여 정착하였다. 그리스 선주민족을 총칭 펠라스기안스, 그리스 나라를 펠라스기아라고 부르기도 하나 주로 테살리아와 에피로스, 펠로폰네소스를 말한다.
2. 네메시스
[루부르 박물관의 네메시스]
네메시스(Nemesis)는 그리스에서 가장 수수께기의 여신이다. 원래는 따뜻하고 인정 많은 전원의 여신으로 숭배되어, 예배자들에게 행운과 선물을 내리는 징험이 있었으나 점차로 여러 영험을 기원하게 되고 초기의 행운과 기회를 주는 기능은 의인신인 튜케(로마에서는 포르투나)에게 물려주고 주로 염원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하여 응징하는 여신으로 존경받았다. 그리스인 내면의 깊숙한 심리에 내재하는 한이 오만에 대한 보복으로 표현된 것이라 할 것이다. 신화에서는 뉵스의 딸이고 아비는 에레보스 혹은 오케아노스라 한다. 그녀의 미모에 매료된 제우스가 포옹하려고 가까이 왔을 때는 여러 동물 형태로 모양을 바꾸어 지상과 바다로 도피하였다. 그러나 결국 거위로 변신한 네메시스에게 제우스는 백조로 변신하여 접근, 관계를 하였다. 이 장면은 좀더 수식되어, 아프로디테가 독수리로 변하여 백조를 뒤쫓는 시늉을 하므로 백조는 거위의 살밑으로 피신하였다 한다. 그리고 거위가 잠들자 백조는 교합을 하고 그 결과 회임한 거위는 호숫가에 알을 낳았다. 이 알을 목동이 주워 스파르타 튠다레오스의 왕비 레다에게 바쳤고 여기에서 헬레나와 디오스쿠리(제우스의 아들들로 폴륙스와 카스토르를 말함)가 태어났다. 이 전설에서는 레다가 디오스쿠리의 양육을 맡았으며, 헬레나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많은 영웅들이 전사한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네메시스는 인간과 신들의 분수 넘친 행동에 끊임없이 화를 내고 지나친 행운이나 성공으로 오만해지면 제동을 걸고 틀림없이 처벌을 내렸다. 현세에서는 물론 사후세계까지 위력을 발휘하였으므로 종교적으로 가장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겠다. 실제로 불의로 졸부가 된 거만한 왕이나 폭력을 일삼는 영웅은 반드시 응보천벌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분수를 넘어 지나칠 때는 세계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신에게 틀림없이 벌을 받게 된다는 그리스인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예컨대 크로이소스 왕은 지나치게 부자이고 힘이 강하며 탐욕스러웠으므로, 네메시스는 페르시아의 큐로스 왕국을 원정하도록 부추겨 결과적으로 그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오만, 맹목적인 어리석음 및 보복이 의인신화된 것이 휴브리스, 아테 및 네메시스 여신들이며 여기에서 휴브리스-아테-네메시스라는 원리가 정립되었다. 스토아 학파는 시간이 되면 모든 것이 원래의 구성요소로 환원되어 버리는 자연세계의 지배원칙으로 네메시스를 숭배하였다. 제우스조차 두려워한 이 네메시스 여신은 모든 신에게 생명과 죽음을 내리는 여신이라 하여 '피할 수 없는' 뜻을 가진 아드라스테이아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휴브리스는 코로스의 딸, 아테는 제우스와 에리스의 딸이라 하며 리타이도 등장시켜 아테의 터무니 없는 충동을 경감시키는 아테의 터무니없는 충동을 경감시키는 마음씨 좋은 여신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네메시스의 응징은 디케(정의), 포이나(형벌) 및 에리뉴에스(복수)의 3여신의 참여하에 내려졌다. 로마에서는 행운과 기회를 내리는 네메시스의 영험을 제우스의 달 튜케에 양도케 하여 튜케를 받들고 도시의 수호신으로 존경하였다. 또한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과 융화시켜 이시튜케라고도 불렀다. 가장 이름난 네메시스의 성지는 아티카의 마라톤 근교 렘노스인데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여신 조상이 있다. 파우사니아스에 의하면 그 입석은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점거했을 때 사령관이 전승비로 하고자 파리아 섬에서 가져온 백색 대리석인데,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군이 패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계획을 중단하고 방치한 돌이라 한다. 페르시아가 승리를 과신하고 터무니 없는 위세를 표출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만 것이다. 10년 전 마라톤에서 아테네 군이 승리하여 페르시아의 침범을 격퇴한 것도 네메시스의 징험이라 한다. 네메시스 여신상은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 손에는 사과나무 가지, 또 한 손에는 수레바퀴를 들고 있으며, 머리에는 수사슴(악타이온의 변신)이 장식된 은관을 쓰고 허리에는 응징의 채찍을 차고 있다. 수레바퀴는 계절을 돌리는 상징이었는데, 로마 시대에 와서 포르투나 여신과 관련시켜 반바퀴를 돌리면 거룩한 제왕은 번영의 극치에 달하여 생을 마치게 되며 이는 관의 사슴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그러나 온 바퀴가 돌 때는 전에 쫓아낸 경쟁자에게 보복을 당한다는 징조로 보았다. 채찍은 원래 여신이 나무와 곡식을 채찍질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사과나무 가지는 제왕이 사후에 낙원으로 입국할 수 있는 여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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