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 6장 제우스의 아들과 딸
10. 헤파이스토스
헤파이스토스(Hephaestus, Vulcanus)는 원래 소아시아(동방)의 화산신인데 그리스에 와서 불을 다루는 신으로서 대장간의 신, 부엌의 신이 되었고 로마로 전파된 후에는 화산신 불카누스로 존중되었다. 그는 쇠붙이나 각종 금속을 불에 달구어 무기, 기계,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의 신이기도 하였다. 전하는 얘기로는 헤파이스토스는 헤라가 낳아 데려 왔다고 한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그는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인데 추한 외모에 절름발이의 기형이라 헤라가 기겁을 한 나머지 낳자마자 바다로 내던졌다고 한다. 바다에 떨어진 그를 구해 낸 것은 테튜스와 에우류노메로 9년간 바다동굴에서 키웠다. 헤파이스토스는 이 곳에서 야금의 명수 케달리온의 지도를 받아 교묘한 기구를 제작하고 보석을 조탁하는 기술을 익혔다. 다른 설에 의하면 헤파이스토스는 천상에서 다른 신이 키웠는데 제우스와 헤라간에 싸움에서 헤라를 편든 데 대해 화가 난 제우스가 올림포스에서 차냈다고 한다. 아흐레가 걸려 지상에 닿은 그는 마침내 렘노스 섬에 떨어졌는데 그 곳의 주민 신티에스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그를 보고 팔을 벌려 잡았다. 그러나 땅에 닿으면서 한쪽 다리를 다쳐 그 후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한다. 렘노스에 자리를 잡은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신전을 세우고 대장간도 차려 쇠붙이와 공예품, 생활용품을 만들어 냈다. 주민들은 그로부터 근면함과 교묘하고 유용한 기술을 배우고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야만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문명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게 되었다.
[나면서부터 절름발이에 흉했다. 그는 어머니 헤라에게 버림받았다.]
헤파이스토스의 첫 걸작품은 마법의 황금옥좌로, 쇠사슬과 비밀 용수철 고랑이 달려 있어서 그 의자에 앉는 자는 누구든 그대로 묶어 버리는 의자였다. 그는 자신을 버리고 멸시한 어미에게 앙갚음을 하고자 이 옥좌를 헤라에게 보냈다. 황금옥좌를 선물받은 헤라는 아무 의심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의자에 앉았으나 곧 손발이 쇠고랑에 묶여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들이 몰려와 헤라를 옥좌에서 떼어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써 보았으나 실패하였다. 결국 헤파이스토스만이 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당장 와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아레스는 우격다짐으로 헤파이스토스를 연행하려 하였다가 용광로의 불똥세례만을 받고 돌아왔다. 결국 디오뉴소스가 나서서 헤파이스토스를 포도주로 만취하게 한 후 나귀에 태워 올림포스로 데려와 크게 환대해 주었다. 그래서 모자가 다시 한자리에 만나 화해하게 되었다.
시문에서는 헤파이스토스가 천재적인 솜씨로 여러 가지 걸작을 만들었으며 그 중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인간처럼 그를 옆에서 도와주는 로보트도 만들었다고 찬사를 보내고 있다. 또한 제우스의 지시로 인간이 사랑에 매혹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덫이 될 아름다운 낭자를 만들었는데 그 낭자가 바로 지상의 첫 여성이 된 판도라이다. 시칠리아의 큐클로페스는 전속 직공 혹은 대행자로서 헤파이스토스와 함께 제우스의 벼락을 만들고 신이나 혹은 유명한 영웅들의 무기와 갑옷을 제작하였다. 화산이 있은 곳에는 어디나 대장간이 있다고 상상하였는데 특히 시칠리아의 에트나 산 동굴 속 대장간은 유명하다. 헤파이스토스가 인간에게 제공한 제작품 중에서 아킬레스의 무기, 아이네아스 및 헤라클레스의 방패는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카드모스의 아내 하르모니아에게 준 목걸이와 아르고스 및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소유가 된 홀도 이름난 물건이다. 후에 하르모니아 목걸이의 소유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 운명을 지게 되었으나 홀은 아가멤논 사후 카이로네아에 잘 보전되어 신성한 유물로 존중되었다.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
헤파이스토스의 사랑이야기는 많지 않다. 제우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그가 원하는 여신이면 어떤 여신이건 결혼시키겠다 하여 아테나를 원했으나 그녀로부터 거절당하였다. 이에 그는 아테나를 우격다짐으로라도 차지하고자 하였으나 그녀의 다리에 열정의 흔적만을 남긴 채 놓치고 말았다. 당시 아테나는 그 불쾌한 흔적을 털헝겊 조각으로 닦아 낸 후 땅에 내던졌는데 여기에서 에릭토니오스가 태어났다. 제우스는 실의에 빠진 헤파이스토스를 위해 미의 세 자매 중 한 여신인 아프로디테와 맺어주었다. 그러나 정실이 된 이 아프로디테의 부정 행각은 유명하며, 특히 아레스와의 정사 사건이 헬리오스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남편인 헤파이스토스는 두 사람의 밀회 현장으로 덮쳐 신들에게 폭로하였다. 헤파이스토스 숭배는 이집트, 아테네 및 로마에서 성행하였으며, 공양하는 희생물은 통째로 구워 바치되 다른 신에서와 같이 희생물을 남겨 놓지 않았다. 그의 상징은 대개 땀에 범벅이 되어 있는 억센 팔로 대장간에서 달군 쇠붙이를 치는 상이며 가슴에 털이 많이 나 있고 검정색 앞이마를 갖고 있다. 또한 절름발이에 기형이며 공중에 올린 망치를 내려치는 상, 또 한 손으로 족집게를 잡고 벼락을 모루(받침쇠)에서 돌리고 있는 상, 그 옆에 한 마리 독수리가 제우스에게 벼락을 가져갈 차비를 하고 있는 상도 있다. 수염이 길고 헝클어진 머리에다 반나상을 하고 또한 작은 모자를 쓰고 있기도 하다. 물키베르, 팜파네스, 클륨토테크네스, 판다마토르, 큘로포데스, 칼라유소다 등의 별칭이 있는데 절름발이이나 전문직을 의미한다. 다른 신에 비해 엉뚱한 방식으로 천상에 합류한 헤파이스토스는 바람기 심한 아내를 가진 올림포스의 대표적인 오쟁이 남편이며, 아내는 절름발이 흉내를 내면서 밀통한 연인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다이달로스 다이달로스(Daedalus)는 아테네의 헤파이스토스의 후손 에우팔라모스의 아들로 그리스 전설상 가장 천재적인 장인이자 발명가로 알려져 있다. 건축에 쓰이는 쐐기, 도끼, 송곳, 수평기, 톱, 다림줄(먹통), 아교 등을 발명하였으며 배의 돛과 돛대의 역할을 인식한 최초의 인간이었고, 그가 만들어 놓은 조각상은 어찌나 신묘한지 마치 살아 있는 사람같았다 한다. 여동생의 아이 탈로스를 수습공으로 삼았는데 뛰어난 학식과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어 생선 등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쇠톱을 만들고 컴퍼스를 발명하였다. 이에 소년의 재능을 시기한 다이달로스는 그를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밀어뜨려 죽게 하였다. 아테나 여신이 이 소년을 수습하여 낮은 곳만 나는 자고새로 화신시키니 소년은 그 후 페르딕스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탈로스를 죽인 후 그 보복을 두려워한 다이달로스는 크레타로 도피하여 크레타의 왕 미노스와 왕비 파시파에를 섬겼다. 그런데 해신 포세이돈이 미노스에게 기증한 우아한 황소에 욕정을 느낀 왕비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살아 있는 듯한 암소모형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소떼와 함께 섞여 암소로 착각한 황소와 교접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황비가 낳은 소산이 바로 우두인신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이다.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짓게 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여기에 유폐시키고 다이달로스와 그 아들 이카로스도 마찬가지로 미궁에 가둬버렸다. 미노스 왕은 왕비의 비행을 방조한 그의 행위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이달로스 부자는 육지와 바다가 엄히 감시당하고 있었으므로 공중을 통해 탈출하기로 하고 깃털 두 쌍의 날개를 만들어 반복연습을 한 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아들 이카로스는 아비의 주의를 잊고 사모스 섬 근방에서 너무 태양에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에 깃털을 붙인 왁스가 녹는 바람에 떨어져 추락해 버렸다. 이카로스는 미노스의 여자노예 나우크라테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혹은 아테네에서 같이 도피해 왔다고도 하는데, 그를 깊이 사랑했던 다이달로스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그 곳을 아들의 이름을 따 이카리아 섬, 이카리아 해라고 명명하였다.
[다이달로스의 작은 청동조각상, 기원전 3세기]
그 후 다이달로스는 시칠리아로 가서 그 곳의 왕 코칼로스의 환대를 받았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그를 잡기로 마음먹고 시칠리아로 가서, 고동껍질에 실을 꿰는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준다고 선언하였다. 시칠리아 왕은 그 일을 해 낼 수 있는 딱 한 사람이 왕궁에 있다고 말하였고, 미노스의 생각으로는 이를 해낼 수 있는 그 영리한 자가 바로 자신이 찾은 죄수일 것이라 짐작하였다. 코칼로스는 과연 이 고동을 망명해 온 다이달로스에게 가져갔다. 다이달로스는 궁리 끝에 고동 끝 부위에 아주 작은 구멍을 낸 후 거미줄을 매단 개미를 구멍으로 집어넣고 고동의 입구에는 꿀을 발라 놓았다. 아니나다를까 개미는 단맛이 나는 곳을 향하여 나선통로로 바삐 달려갔다. 다음에는 같은 방식으로 실을 매단 개미를 통과시켜 어려움은 있었지만 실을 고동에 넣는데 성공하였다. 기쁨에 넘친 코칼로스는 이를 급히 미노스에게 가져가 보였다. 그러자 미노스는 그 일을 해낸 자는 틀림없이 자신의 죄수인 다이달로스일 것이니 그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요구를 받은 시칠리아 왕은 매우 화가 났으며 또한 그간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고 친근한 사이가 된 왕의 딸도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다이달로스에게 크레타의 왕이 왔음을 알리고 괴롭히는 미노스를 함께 없애 버리기로 모의하였다. 이에 궁의 목욕탕 천장에 수로를 설치하고 미노스가 사치스러운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보이지 않게 가려 놓은 수로를 열어 끓는 물을 분출시켰다. 결국 미노스는 질식하여 열탕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어 계획대로 비통한 사고사처럼 가장하고 엄숙한 장례를 치른 후 왕릉을 만들어 안치하였다. 일설에는 크레타로 운구하였다고도 한다. 다이달로스는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여 시칠리아에 여러 작품과 기념물을 남기고 그 후 사르디니아 섬으로 가서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위대하고 천재적 장인으로 그 이름을 길이 남겼으며, 다이달로스라는 이름 자체도 '교묘하고 정교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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