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32. 회음후열전
초나라 군대가 경수(京水).삭수(索水)근처에서 한나라 군사를 압박하고 있을 때 회음후 한신(韓信)은 위.조 양국을 공략하고 연.제를 평정한 뒤 천하의 3분의 2를 한나라가 지배케 함으로써 항우를 멸망시켰다. 그래서 제32에 <회음후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회음후 한신은 회음(淮陰 : 江蘇省 淮陰縣 남쪽) 출신이다. 벼슬이 없었던 평민 시절에는 집안이 몹시 가난했던 데다가 이렇다할 선행(善行)도 없었으므로 누구에게 추천되거나 선택되어 관리가 될 수도 없었다. 또 장사하여 생계를 꾸릴 능력조차 없어 항상 남에게 빌붙어 얻어먹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신은 그 중에서도 회음의 속현인 하향(下鄕)이라는 시골 남창(南昌)의 정장(亭長: 驛院의 長) 집에 자주 기식한 적이 있었다. 수개월씩이나 얻어먹게 되자 정장의 아내는 한신을 귀찮게 여겼다. 새벽에 밥을 지어서는 이불 속에서 재빨리 밥을 먹어 버리고는 식사 때를 맞추어 찾아오는 한신에게는 밥을 내놓지 않았다. 한신도 그녀의 속마음을 짐작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대와 절교를 하고 떠날 수밖에 없겠네 그려." 한신이 회음성 밑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빨래터의 아낙네들 중 한신이 한신이 굶주린 것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밥을 주었다. 빨래가 모두 끝날 때까지 수십 일 동안이나 한신은 그녀에게서 밥을 얻어먹었다. 한신은 그 동안 신세진 것을 그녀에게 감사했다. "반드시 성공하여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화를 냈다. "사내대장부가 제 손으로 입에 풀칠도 못 하는 게 불쌍해서 밥을 나눠주었을 뿐인데 무슨 보답 같은 것까지 바라겠소." 회음의 백정촌(白丁村) 사내들은 몹시 거칠었다. 한신 정도는 완전히 거지 취급을 하고 있었다. "야, 몸뚱이만 큰 놈 이리 오너라. 네놈이 칼은 차고 있다만 실상은 겁쟁이지." 그들 중의 한 자가 말했다. "겁쟁이는 아니다." "그으래. 그렇다면 그 칼을 빼서 내 배를 찔러 보아라." "싫은데." "이자식이, 싫다니. 너 나한테 맞아 죽기 싫으면 엎드려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 어서!" 한신은 잠깐 생각한 뒤에 얼른 엎드려서 그 사내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갔다.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한신을 완전한 바보로 본 것이다. 어찌어찌 하다가 한신은 회수를 건너오는 항량(項梁)을 만나 그의 수하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항량이 패하여 죽자 이번에는 그의 조카 항우에게 소속되었다. 항우는 한신을 낭중(郎中: 官名)으로 삼았다. 그러나 한신이 항우에게 여러 번 계책을 올렸지만 한번도 채택되지 않았다. 실망한 한신은 한왕 유방이 촉(蜀)으로 들어갈 때 초왕 항우에게서 도망하여 한나라에 귀속되었다. 한신은 여전히 유명해지지 못했다. 연오(連敖)라는 보잘것 없는 벼슬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법에 저촉되어 참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함께 죄를 지은 열세 명의 목이 하나씩 떨어져 가고 있었다. 마지막 한신의 차례가 되었다. 한신이 주위를 살펴보니 마침 등공 하후영(夏侯)이 보였다. 그래서 무작정 소리질렀다. "도대체 지금 주상(主上: 漢王)께서 천하대사를 성취하려 하는 겁니까, 포기하려 하는 겁니까. 이토록 장사(壯士)들을 모조리 목베어 죽이면 어떡하지요?" 등공은 소리치는 한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재능과 야망이 서려 있었다. 기묘한 감동을 주는 얼굴이었다. "살려 주어라." 한신은 절대절명의 순간에 살아났다. 등공이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부터는 부쩍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재능이 있는 인물입니다." 등공이 한왕에게 천거했다. 그래서 치속도위(治粟都尉: 兵糧을 관리하는 囑官)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한왕은 그를 대견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한신이 소하(蕭何)의 눈에 띄었다. 자주 접하는 사이에 소하는 한신이 비범한 인물임을 알았다. 그래서 소하가 한왕에게 한신을 크게 쓸 것을 권고했지만 한왕은 듣지 않았다. 한왕이 오지인 한중(漢中) 땅으로 봉함을 받았다. 귀양처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한왕 일행이 봉지로 가는 도중 남정(南鄭: 陝西省 南鄭縣)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도망친 장군들만 해도 수십 명이었다. 한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왕이 자신을 등용치 않을 것을 확신한 한신은 남정 근처에서 슬그머니 도망쳐 버렸다. "한신도 도망쳤습니다." "무어, 한신이 도망을 쳐! 큰일났다!" 소하는 깜짝 놀랐다. 얼마 후 한 신하가 한왕에게 고했다. "승상(丞相) 소하마저 도망갔습니다" "무어라고!" 한왕은 대경실색했다. 또 격노하다가 절망했다. 자신의 수족을 잃은 것만큼이나 애통해했다. 이틀 후에 소하가 돌아왔다. 한왕은 분노와 기쁨을 뒤섞은 목소리로 고함쳤다. "아니, 그대마저 도망을 가다니!" "도망이라니요?" "그럼 그대는 말없이 어딜 갔다 왔소?" "아, 저는 도망한 것이 아니라 도망하는 자를 뒤쫓아갔습니다." "그대가 쫓았다는 자가 대체 누군데?" "한신입니다." "에잇, 사람. 도망한 자가 장군들만도 수십 명인데 그대는 한번도 그들을 뒤쫓아간 적이 없지 않소. 그런데 한신만을 뒤쫓았다니 무슨 얘기요?" "다른 장군들은 어디서나 얻기 쉬운 인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한신 같은 인물은 나라 안에 다시 없습니다." "한신이 그처럼 위대하오?" "대왕께서 영원히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시겠다면 한신을 가지고 문제삼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천하를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 아니고는 의논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 어느 쪽으로 계책을 결정하느냐만 문제입니다." "나 또한 동쪽으로 가고자 할 뿐이오. 어찌 답답하게 이 곳에만 죽치고 앉아 있겠소." "대왕의 계책이 동진 쪽으로 마음을 정하셨다면 한신을 등용하십시오. 그러면 한신은 머물 것이나 등용치 않으면 그는 다시 달아날 것입니다." "그대 얼굴을 보아 장군으로 삼겠소." "장군직만으로는 그가 머물지 않습니다." "그럼 대장군이라야 되겠소." "그렇다면 다행이지요." "그를 당장 불러 오시오." "안 됩니다. 대왕께선 본래 오만하시어 예를 모르십니다. 대장 임명을 마치 아이 부르듯 하시니 그 점이 바로 한신을 달아나게 한 까닭입니다." "그러면 내가 어떤 식으로 그를 불러야 되오?" "길일을 택하여 목욕재계하시고 식장을 만들어 장중한 의례로 그를 대장군에 임명하십시오." "좋소, 그렇게 하리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기뻐했다. 내심으로 자신이 대장군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장군에 임명된 사람은 한신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놀랐다. 임명식이 치러지고 나서였다. 한왕은 착석하자마자 한신에게 물었다. "승상이 여러 차례 장군을 추천했고 또 그랬기에 과인이 그대를 대장군으로 임명한 거요. 이제 대장군에 임명됐으니 그대는 어떤 계략을 과인에게 주겠소?" 한신이 한왕에게 인사한 뒤에 이렇게 되물었다. "지금 동쪽으로 향하여 나아가 천하에서 그 전력을 다툴 상대는 항왕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소." "감히 묻겠습니다만, 대왕이 생각하시기에 용감하고 사납고 어질고 굳세다는 점에 있어 대왕과 항왕과 비교해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시 동안 대답이 없더니 한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인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 같소."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 역시 대왕께서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항왕을 섬긴 적이 있는 제가 그의 사람됨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항왕이 화를 내어 소리를 지르면 천 사람이라도 금세 모두 꿇어엎드릴 만큼 무섭습니다만, 어떤 어진 장수가 있어도 그를 신뢰하여 병권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용기는 필부의 그것에 불과하다고 할 것입니다. 항왕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공경스럽고 자애로우며 말씨 또한 온화합니다. 누가 병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면서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그가 부린 사람에게 공로가 있어 당연히 봉작을 해 주어야 될 경우에도 그는 인장(印章)이 닳아 헤질 때까지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선뜻 내주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녀자의 인(仁)이라 하는 것입니다." "잘 보았소." "항왕은 또 천하의 패자가 되어 제후들을 신하로 삼고서도 관중(關中 : 秦의 옛 땅, 陝西省)에 있지 못하고 팽성에 도읍했습니다. 그것은 욕심만 있고 지혜가 없다는 뜻입니다. 또 의제(義帝)와의 맹약을 저버리고 자기가 친애하는 정도에 따라 제후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훈공의 불공평을 말합니다. 제후들은 항왕의 의제를 강남으로 축출하는 것을 보자 자신들도 모두 귀국해 그들의 군주를 쫓아 내고 비옥한 땅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불의(不義)라 하는 것입니다. 항왕의 군대가 통과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학살과 파괴가 뒤따르기 때문에 천하 백성들은 그를 원망하고 있으며 결코 심복하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그의 냉혹한 위세에 눌려 복종하는 척하고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항왕은 명목이 패자라 하나 실은 천하의 민심을 잃고 있어 그까짓 강대함 따위는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옳거니."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항왕의 정책과는 반대로 천하의 무용(武勇)한 인사들을 굳게 믿고 일을 맡기시니 주멸하지 못할 적이 어디에 있겠으며, 천하의 성읍들을 공신들에게 모조리 봉한다면 심복하지 않을 신하가 어디에 있겠으며,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동쪽[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간다면 맞서 흩어져 달아나지 않을 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하오." "또 삼진(三秦: 雍.塞.翟의 세 나라. 秦의 옛 땅, 陝西省. 項羽가 關中을 점령해 셋으로 나누어, 진에서 항복해 온 세 장군, 장한을 옹왕에, 사마흔을 색왕에, 동예를 적왕에 봉함)의 왕은 본래 진나라 장군이었습니다. 그들이 진나라 자제들을 거느리고 다니며 행방불명되고 또 죽인 군사의 수효가 어디 한두 명입니까. 그러고도 휘하의 병사들을 속여 제후에게 항복하고 신안(新安)으로 왔을 때 항왕은 항복해 온 군사 20만을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해 버렸습니다. 이 때 진의 장수 장한.사마흔(司馬欣).동예(董예)만이 죽음을 면했습니다. 그러니 진나라 부형(父兄)들은 이들 세 사람을 원망함이 골수에 차 있습니다. 지금 항왕은 위력으로 이 세 사람을 삼진의 왕으로 각각 삼았으나 진의 백성으로서 그들에게 애정을 품은 자가 있을 턱이 없지요." "진실로 그러하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무관(武關)으로 하여 관중으로 들어가셨을 때 백성들에게 털끝만한 해도 끼치지 않았고 진의 가혹한 법령을 제거해 삼장(三章)의 법만 약속했을 따름입니다. 진의 백성으로 대왕께서 진왕(秦王)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후들간의 약속으로도 대왕께서 당연히 관중의 왕이 되셨어야 했다는 사실을 관중 백성들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항왕의 배신으로 정당한 권리를 잃고 한중으로 쫓겨가 버렸으니 관중 백성들로서 항왕을 원망하지 않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때 대왕께서는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쳐들어가신다면 저 삼진의 땅 같은 건 격문 한 장으로 떨어집니다." "오, 너무나 흡족한 격려다! 과인이 어찌하여 이제사 그대를 알아보았을까!" 한왕은 너무나 기뻐했다. 한신의 계략을 듣고 공격 목표에 따른 제장들의 부서를 정했다.
한(漢)의 원년 8월이었다. 한왕이 병사를 들어 동진해 진창(陳倉: 陝西省 寶鷄縣 동쪽)으로 나아가 삼진을 간단하게 평정해 버렸다. 한의 2년, 함곡관을 나와 위나라 황하 이남의 땅을 점령했다. 한왕(韓王 : 鄭昌).은왕(殷王: 司馬앙)이 모두 항복했으며, 제나라 조나라 군과 연합해 초나라를 공격했다. 4월에 팽성에 도달했으나 한군이 패배해 흩어졌다. 한신이 다시 병사를 모아 한왕과 형양에서 합류해 경수.삭수 사이에서 초군을 격파했다. 그래서 초군은 드디어 서쪽으로 진출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한군이 팽성에서 패퇴했을 때 색왕(塞王) 사마흔과 적왕(翟王) 동예가 한에서 도망하여 초에 항복했다. 제와 조가 또 한을 배반하고 초와 동맹했다. 6월에는 위왕(魏王) 표(豹)가 한왕을 배알하고 육친의 문병차 귀국하겠다고 청원했다. 그는 귀국 즉시 하관(河關: 永濟縣 黃河 對岸의 關所)을 패쇄하고 한을 배반하면서 초와 화친조약을 체결했다. 한왕은 역생을 시켜서 위표를 달랬으나 좀처럼 듣지 않았다. 8월에 한신을 좌승상(左丞相)으로 삼아 위를 공격했다. 위표는 포판(蒲坂: 永濟縣 남동쪽)의 군비를 강화하고 대안(對岸)의 임진(臨晋 : 陝西省, 옛 臨晋邑)의 수로를 막았다. 한신은 대군(大軍)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며 선열(船列)을 지어 임진에서 황하를 건너려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은 하양(夏陽: 陝西省 韓城縣남쪽)에서 목앵부(木罌부: 木桶을 연결한 假橋)를 띄워 군사를 건너게 해 위도(魏都) 안읍(安邑)을 습격했다. 위표가 놀라 군사를 이끌고 한신을 맞아 교전했으나 결국 사로잡혔다. 한신은 위나라를 평정하고 한(漢)의 하동군(河東郡)으로 편입시켰다. 한신은 장이(張耳)와 함께 병사를 이끌고 북동으로 진격해 조나라와 대(代)나라를 공격했다. 윤 9월에 대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알여(閼與)에서 대나라 재상 하열(夏說)을 사로잡았다.
한신이 위나라를 항복시키고 대나라를 격파하자 한왕은 사자를 보내 한신을 형양으로 가서 초군을 막게 했다. 한신은 장이와 함께 병사 수만을 이끌고 동진하여 정형에서 내려와 조나라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조왕(趙王) 헐(歇)과 성안군(成安君: 陳餘)은 한군이 장차 습격해 온다는 소문을 듣고 20만 대군을 정형 어귀에다 집결시켰다. 이 때 광무군(廣武君) 이좌거(李左車)가 성안군에게 강력하게 주상했다. "들리는 바로는 한장(漢將) 한신은 서하(西河: 黃河)를 건너와 위왕 표를 사로잡고 하열 또한 사로잡으며 알여를 피로 물들였다 하오. 지금은 한신이 장이의 보좌를 받아 우리 조나라를 항복시키려 획책하고 있다 하오. 고국을 떠나 멀리서 그 승세를 타고 싸우는 병사들의 예봉은 피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소. 제가 듣기로는, '천리 밖에서 군량미를 보내면 운송이 곤란하여 병사들 얼굴에 주린 빛이 돌고, 땔나무를 하고 풀을 베어야 밥을 지을 수 있게 되면 병사들이 저녁밥을 배불리 먹어도 아침까지 가지 못한다'고 했소." "무슨 말씀을 하시자는 거요?" "지금 정형의 길은 협소해 두 대의 수레가 함께 갈 수 없으며 기병이 줄을 지어 갈 수도 없는 좁은 길이오. 이런 행로가 수백리나 계속되기 때문에 군대 행렬의 형세로 보아 치중(輜重: 군량 보급 수레)은 반드시 후미에 있을 것으로 판단되오. 그러니 저에게 기습병 3만 명만 주시오." "기습병으로 어디를 칠 참이오?" "지름길로 가서 본대와 군량수송대 사이를 차단시키겠소. 성안군께서는 물길을 깊이 파고 누벽을 높이 쌓아 군영을 굳게 지켜 결코 한군과 접전하지 마시오. 이렇게 하면 적군은 전진해 싸울 수가 없으며 후퇴해 돌아갈 수도 없게 되오. 이 때 우리 기습병이 적의 후미를 차단하는 거요. 약탈한 양식만 치워 버린다면 한군의 처지는 어떻게 되겠소. 열흘이 못 돼 한신과 장이의 머리를 휘하에 바칠 수가 있소이다. 부디 저의 계략을 유의해 주시오. 우리가 그들을 사로잡지 않으면 우리가 사로잡히게 되오." 성안군은 웃고 나서 말했다. "나는 유자(儒者)요. 그리고 정의의 군사는 기습작전을 쓰지 않는 법이오." "대개 전쟁이란 이기는 것이 목적이지 이기는 정신 자체는 의미가 없소." "들어 보시오. 병법에, '병력이 적의 10배면 포위하고, 적의 두배면 싸우라'고 했소. 지금 한신의 병력은 말만 수만이지 실제로는 수천이오. 더구나 그들은 천리 먼 곳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극도로 피곤해 있을 것이오. 소수의 지친 적을 맞상대하지 않으면 나중에 대군이 몰려왔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겠소. 대병력을 가진 우리가 소수의 지친 병력을 가진 적을 기습으로 부순다면 제후들이 우릴 보고 웃을 거요. 사령관은 바로 나요. 나에게 맡겨 두시오." 성안군은 광무군의 계책을 듣지 않았다. 실상 한신은 내심 광무군의 계책대로 되지 않을까 싶어 몹시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쪽의 약점을 알아차리고 치중을 차단해 버리면 속절없이 대패할 뿐만 아니라 살아남기조차 어려울 것이라 판단되었다. 결론을 유보한 상태에서 한신은 간첩을 놓아 조군으로 들여보냈다. 돌아온 첩자의 보고가 광무군의 계략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됐다! 승리는 이미 우리 것이다!" 한신은 무릎을 쳤다. 한신은 안심하고 병사를 이끌어 정형의 협로를 거리낌없이 내려와 정형의 어귀로부터 30리 못 미친 곳에서 야영을 했다. 가볍게 무장한 병사 2천을 우선 선발했다. "너희들은 밤을 틈타서 여기 한나라 붉은 깃발 하나씩을 들고 지름길로 빠져 조나라 진영이 바라보이는 산 속에 매복해 있거라. 내일 우리는 조군과 싸우는 척하다가 도망칠 것이다. 틀림없이 그들은 성채를 비우고 패주하는 우리를 뒤쫓을 것이니 그 때 너희들은 텅 빈 조군 진지로 들어가 조나라 깃발을 모조리 뽑아 버리고 우리 깃발을 대신 꽂아라." 이들을 먼저 보낸 뒤, 비장(裨將)을 시켜 전군에게 가벼운 음식을 돌리며 한신은 말했다. "조군을 격파한 뒤 저녁에는 푸짐한 술잔치를 열자." 제장들은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했으나 아무도 그 말을 진실로 믿지 않았다. 한신은 부장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적은 먼저 싸우기 편한 지점을 선택해 누벽을 구축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우리 대장 깃발과 북을 보기 전에는 결코 우리 선봉을 공격하지 않지." "그건 왜 그렇습니까?" "좁고 험한 지점에서 공격당하면 우리는 뒤돌아가 버릴 게 아니냐. 적들은 그게 두려운 거다. 우리 군사 모두가 어귀를 빠져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적들은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한 장수에게 1만의 군사를 주면서 말했다. "정형을 빠져 나가면 하수(河水)가 보일 것이다. 반드시 물을 등지고 진을 치라." "배수진을!" "걱정할 거 없다. 명령대로 하면 된다." 1만의 군대가 어귀를 빠져 나가 명령대로 배수진을 치자 조군 진영에서는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예 죽을 작정들을 했군. 한신은 저토록 병법을 모를까!" 날이 샐 무렵 한신은 드디어 대장기(大將旗)를 앞세우고 북을 치면서 정형구(口)로 진격해 나갔다. 한군이 완전히 들판으로 빠져 나가자 그제서야 조군은 누벽을 열고 나왔다. 곧 접전이 시작되었다. 밀고 밀리는 싸움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문득 한신과 장이는 말머리를 돌려 북과 기를 버린 채 하수가의 군진으로 도망쳤다. 조군은 기세가 올랐다. 한군을 추격하랴 버려진 깃발과 북을 주으랴 바빴다. 그런데 조군으로서는 한신.장이가 하수가의 진지로 들어간 후부터 죽기로 싸웠으므로 도저히 한군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 한편, 앞서 출동한 한의 기습병 2천 명은 조군이 전리품을 쫓기 위해 누벽을 비우는 것을 보고 재빨리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명령대로 즉시 조군의 깃발들을 모조리 뽑아 버리고 거기에다 한군의 붉은 깃발을 대신 꽂았다. 하수가에서 한참 접전을 벌이던 조군은 생각했던 대로 상대가 만만치 않은 데다 많이 지쳐 있었으므로 일단 싸움을 잠깐 쉴 궁리를 했다. "서둘 건 없다. 일단 우리 진지로 돌아간다. 후퇴!" 그러나 조군은 기절할 듯이 놀랐다. 잠깐 사이에 조군의 누벽이 한군의 누벽으로 바뀐 것이다. 붉은 깃발만 조군을 조롱하듯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앗! 이거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성안군은 비명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조나라 군사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큰일났다! 성은 함락되었고 장수들은 모조리 도륙되었다!" 누군가가 소리질렀다. 이 순간을 기회로 조군은 산지사방 흩어지기 시작했다. "도망치지 마라! 그래도 우리 군사가 훨씬 많다!" 조의 장수들이 도망치는 조군의 목을 수없이 베었지만 한번 흩어진 마음을 되잡을 수는 없었다. 한군은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약속된 전략대로 적을 양쪽으로 몰아치며 닥치는 대로 베었다. 저수 부근까지 뒤쫓아간 한신과 장이는 거기서 성안군을 베었다. 그리고 조왕 헐을 사로잡았다. "광무군은 죽이지 말라! 생포하는 자는 천금으로 사겠다!" 한신이 소리질렀다. 드디어 조군은 철저히 격파되었고 한신의 예언대로 한군은 대승했다. 한신은 장군석에 앉아 적의 수급과 포로의 수효를 보고받았다. 그 때 한 장수가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 '산릉(山陵)을 우(右)로 하여 등지고 수택(水澤)을 앞으로 하여 좌(左)로 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장군께선 이번에 저희들을 마치 사지(死地)로 몰아넣듯 하수(河水)를 등지고 포진케 하면서, '조군을 격파한 뒤 저녁에 술잔치를 열자'고 하셨습니다. 물론 저희들은 심복하진 않았지만 결국은 장군의 전략대로 되었습니다. 도대체 이것은 무슨 전술입니까?" "이것도 병법에 있는 말인데 단지 그대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것이 있던가요?" "병법에, '사지(死地)에 몰아넣음으로써 살고 망지(亡地)에 둔 뒤에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는다'고 돼 있지 않던가. 손자(孫子)의 <구지편(九地篇)>에 있지." "그렇더라도......" "생각해 보게. 내 병사가 글깨나 쓰고 말깨나 알아듣는 사대부(士大夫)출신이 아니잖는가. 대부분 시장바닥의 건달들을 몰아다가 싸우도록 한 것일세. 그들에게 생지(生地)를 주어서 싸우도록 해 보게. 모조리 도망치고 말지. 그래서 죽을 땅에 두어 자신을 살아남게 한 것일세." "훌륭하십니다. 저희들은 감히 장군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승전 잔치가 벌어졌는데 광무군이 결박된 채로 한신 앞에 끌려 나왔다. 한신은 급히 일어나 단하로 내려가 몸소 광무군의 포승을 풀어 주고 동향(東向)하여 앉게 했다. 자신은 서향(西向)해 앉으며 그를 스승으로 예우했다. 한신은 광무군에게 술잔을 올린 뒤 물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제가 북쪽으로 연을 치고 동쪽으로 제를 치려 합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요?" 광무군이 사양하여 대답했다. "'패군지장(敗軍之將)은 무용(武勇)을 말하지 않으며 망국의 대부(大夫)는 존국(存國)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패망한 나라의 포로 신세에 어찌 그런 대사를 꾀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현인 백리해(百里奚)가 우(虞)나라에 있었지만 우는 망했고 진(秦)나라에 갔을 때는 진이 패자(覇者)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백리해가 우에 있을 때에는 어리석었고 진에 갔을 때에는 갑자기 현명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천만의 말씀이겠지요. 그의 재능을 활용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그의 말을 들었는가 듣지 않았는가 차이뿐일 것입니다. 만일 성안군이 선생의 계략을 들었더라면 나 같은 사람은 벌써 선생의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성안군이 선생의 재능을 활용치 않았기 때문에 제가 선생의 가르침을 받게 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게 아닙니까." "그렇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선생을 신뢰하여 계략을 따를 터이니 부디 사양하지 마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한신은 절하며 부탁했다. 한동안 묵묵히 앉아 있던 광무군 이좌거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러시다면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계략이라도 들어 주시겠습니까." "받들어 듣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아무리 슬기로운 사람도 일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실수가 있고[千慮一夫],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일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음[一得]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미치광이의 말에서도 가려서 취한다'고 했습니다. 모처럼 저의 계략이 반드시 쓸 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성심성의껏 피력해 보겠습니다." "겸양의 말씀이십니다." "대체로 성안군에게는 백전백승의 계략이 있었으면서도 하루 아침에 이것을 잃고 군사는 호(河北省 柏鄕縣 북쪽)의 성 밑에서 격파되었으며 자신은 저수가에서 피살되었습니다. 동시에 장군께서는 황하를 건너 위표를 사로잡고 알여에서 하열도 사로잡아 일거에 정형까지 내려와서 하루 아침에 조나라 20만 대군을 무찔렀으며 성안군까지 주살해 그 명성이 국내에 떨치고 그 위세 또한 천하를 흔들었습니다. 이쯤 되자 농부들은 경작을 멈추고 보습을 내던지며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 대면서 언제 장군의 소집명령이 떨어질까 귀를 기울여 기다리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장군에겐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장군의 지금 병사들은 몹시 피곤하여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 병사들을 질타해 수비가 견고한 연성(燕城) 밑으로 몰아붙여도 아마 성을 뺏기에는 어려울 것이며, 오히려 이쪽의 피폐한 사정만 노출돼 기세가 꺾인 채로 허송세월을 보내기 마련일 것이며 결국은 군량미도 바닥날 것이 필시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약한 연나라조차 국복시키지 못한다면 제나라도 국경의 방비를 갖추고 자기 나라를 강화할 것입니다. 결국 연과 제 두 나라가 서로 의지해 항복하지 않을 경우 유방과 항우의 권력쟁탈 승패 역시 불분명해집니다. 이런 상황은 또한 장군에게는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연과 제를 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용병에 능란한 자는 이쪽의 단점을 가지고 적의 장점을 치지 않고 이쪽의 장점을 가지고 적의 단점을 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계책을 사용해야 할까요." "이 시점에서는 병사들의 갑옷을 벗겨 쉬게 하십시오. 조나라를 어루만져 전쟁 고아들을 달래며 백리 사방에서 술과 고기가 연일 들어오게 하며 잔치를 벌려서 사대부들을 먹이고 병사들을 마시게 한 후에 북쪽으로 연나라 정벌길로 오르는 것입니다. 그런 한편으로 변사(辯士)에게 장군의 편지를 주어 보내 장군의 장점을 알리게 한다면 연나라는 감히 듣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연나라가 복종한 후에는 어떻게 하지요?" "변사를 다시 동쪽 제나라에 보내어 연나라가 복종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하십시오. 아마 제나라는 바람에 함께 휩쓸리듯 복종할 것입니다. 그쯤 되면 제나라에 아무리 슬기로운 자가 있다 할지라도 별다른 묘책을 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천하사(天下事)는 그때부터 도모할 수 있지요. 용병에서, '허성(虛聲)을 먼저 내고 실전(實戰)을 뒤로 한다' 했음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지요." "좋습니다. 가르침대로 하겠습니다." 얼마 후 한신이 광무군의 계략에 따라 연으로 사자를 보냈더니 과연 연나라는 바람에 따라 휩쓸리듯 복종했다. 한신은 즉시 사자를 한왕에게 보내 이 기회에 장이를 조왕으로 삼아 조나라를 진무(鎭撫)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한왕이 이를 허락하여 장이를 세워 조왕으로 삼았다. 때따라 황하를 건넌 초의 기습병이 자주 조나라로 침공해 왔다. 조왕 장이와 한신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조나라를 구원하기에 바빴다. 차제에 한신은 가는 곳마다 조나라 성읍을 평정했고 병사를 징발해 한(漢)나라로 보냈다. 한왕이 형양에서 갑자기 초군에게 포위되었다. 포위망을 간신히 뚫은 한왕은 남쪽으로 달아나다가 원.섭(怨.葉: 둘 다 河南省) 사이에서 경포를 만나 함께 도망하여 성고(成皐)로 들어갔다. 초가 다시 성고를 포위해 왔다. 6월에사 성고를 간신히 빠져 나온 한왕은 등공만 데리고 동쪽으로 황하를 건너 수무(修武)에 있는 장이의 군에 몸을 위탁하려고 찾아갔다. 몰래 역사(驛舍)에서 숙박한 뒤 새벽같이 일어나 한의 사자라 칭하며 말을 달려 조나라 성으로 들어갔다. 장이와 한신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침실 안으로 들어간 한왕은 대장의 인부(印符)를 빼앗아, 여러 장군들을 소집해 그들의 군사 배치를 새로 해 버렸다. 한참 후에 일어난 한신과 장이는 한왕이 온 것을 알고 크게 놀랐다. "성벽이 이토록 허술해서야 되겠소?" 한왕은 다시 장이를 시켜 조나라 땅을 수비케한 뒤, 한신에게는 상국(相國) 벼슬을 주어 제나라를 치게 했다. 한신은 조나라에서 새로 징발한 군사들을 데리고 동진하여 평원진(平原津: 山東省)을 건너려 하고 있었다. "일 없게 됐습니다. 이미 한왕께서 역이기를 시켜 혓바닥 몇 번 놀려 제나라의 항복을 받아 냈답니다." 범양(范陽: 河北省 定興縣 남쪽)의 변사 괴통(괴通)이 빈정거리는 투로 한신에게 일러주었다. "무어요? 일이 그렇게 됐소? 그렇다면 평원나루를 건널 필요도 없지 않겠소?" "왜 이러십니까. 건너가셔야죠." "무슨 뜻이오?" "일이즉슨, 장군이 조칙을 받아 제나라를 공격하려는데 한왕은 일언반구 의논 한 마디 없이 독단으로 밀사를 보내 제나라를 항복시켰습니다." "그러니, 일이 난감하구려." "그렇지만 장군이 아직 공격을 중지하라는 조칙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난감할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소." "역생은 일개 선비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그런데도 수레의 횡목(橫木)에 의지해 세 치 혀를 놀려 제나라 70여 개 성시(城市)를 단숨에 항복시켜 버렸습니다." "장한 일이지요." "장군께서는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한 해가 넘도록 싸워 조나라 50여 성밖에 항복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 "장군께선 결국 보잘것 없는 일개 유자(儒者)의 공보다 못하구려." "생각해 보니 억울하오." "볼 거 없습니다. 건너시지요." 그렇게 되어 한신은 황하를 건넜다. 한편, 제왕 전광(田廣)은 역생의 설득을 몹시 흡족해하며 항복 하기로 작정을 하고 있었다. 역생과 더불어 크게 주연을 베풀며, 한나라에 대한 방비는 전연 하지 않았다. 한신은 이 틈을 타서 제나라 역하(歷下: 山東省 歷城縣 서쪽)에 있던 군대를 습격한 뒤 드디어 국도 임치(臨淄)에 도달했다. "이 무슨 변고요!" "뭔가 오해가 있은 듯합니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이 과인을 속여!" 분노한 전광은 역이기를 잡아 삶아 죽인 뒤, 고밀(高密: 山東省)로 도망쳐서 초나라로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 한신은 임지를 평정한 다음 동진하여 전광을 추적해 들어갔다. 고밀의 서쪽에 이르렀을 때였다. 20만 대군을 거느린 초의 장군 용저(龍저)가 전광을 구원하기 위해 고밀에 와 있었다. 그런데 접전도 하기 전 용저를 따르던 어떤 자가 용저에게 이렇게 간했다. "한군은 멀리서 싸우러 굳이 왔으므로 결사적으로 대들 것입니다. 그들의 예봉을 막아 내기도 어려울 뿐더러, 제.초의 군사는 자국(自國)의 영지 내에서 싸우기 때문에 패산(敗散)하기 십상입니다. 차라리 성벽을 높이해 지키면서, 제왕 전광이 신임하는 신하를 제나라로 보내 잃어버린 성시를 저절로 되찾을 수 있게 하는 계략을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이 계략이 되겠는가." "비록 함락된 성시라도 그들의 왕이 엄연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또 초군이 구원하러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제나라 성시들은 반드시 한나라를 배반할 것입니다. 더구나 한군은 2천 리나 떨어진 타국에 와 있습니다. 제나라 성시가 모조리 한을 배반하게 될 경우 한군은 식량을 구하지 못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해 올 것입니다." "제까짓 한신 따위를 두고 계략이니 뭐니 할 거 있겠나. 그까짓 겁쟁이를. 더구나 제를 구원한다면서 싸우지도 않고 한군을 항복시키면 나에게 돌아올 공적이 아무것도 없지." "그렇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시끄럽다. 지금 싸우면 승리는 뻔히 내 것이고 제나라 절반이 내 것이 될 텐데 무얼 망설여. 나는 싸운다." 용저는 싸우기로 결정하고 유수(川名, 山東省)를 사이에 두고 한신과 대진했다. 한편 한신은 사졸들을 시켜 밤 사이에 1만 개 이상의 모래주머니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모래를 가득 채워 유수 상류를 막아 버렸다. 날이 밝았다. 한신은 군사를 인솔하고 강을 건너 용저를 먼저 공격했다. 한참을 싸우던 한신은 패한 척하고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용저는 좋아라 하고 쫓아왔다. "저 보라니까. 난 한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전부터 잘 알고 있지. 추격해서 한군을 철저히 때려부숴라!" 한군이 유수를 다 건넜다. 용저의 군사가 강을 건너고 있을 때 미리 준비시킨 한신의 군사들이 모래주머니를 터 버렸다. 물살은 맹렬하게 쏟아져 흘렀다. 초군은 절반 이상이 수중고혼이 되었고 강을 건넌 군사는 절반도 못되었다. 곧장 되돌아 선 한군은 초군을 사정없이 베었다. 용저는 그런 와중에서 죽었다. 유수 동쪽에 남아 있던 용저의 군사가 패산(敗散)하고 있었다. 제왕 전광도 도망했다. 패주하는 적을 추격한 한신은 성양(城陽: 山東省 茗거)에 이르러 초군을 모조리 포로로 잡았다. 한(漢)의 4년이었다.
제나라를 항복시켜 평정한 한신은 사자를 시켜 한왕에게 보고 했다.
- 제나라는 거짓이 많고 변절이 심하기가 무쌍한 나라입니다. 거기에다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접경하고 있습니다. 가왕(假王)을 세워 진무하지 않으면 정세가 안정되기 어렵습니다. 원컨대 신을 가왕으로 삼아 주시면 편리하겠습니다.
한왕은 형양에서 초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그런 서신을 받았다. 부아가 치밀었다. "과인이 지금 곤경에 처해 하루 속히 돌아와 나를 도와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터인데, 무어 한신 그자가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한왕은 펄펄 뛰며 한신의 사자에게 화를 내자 장량(長良)과 진평(陳平)이 얼른 다가와 한왕의 발을 밟았다. "대왕께선 지금 몹시 불리한 처지에 계십니다. 한신이 왕이 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잘 대우하여 자진해서 제나라를 지키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변이 납니다." 귓속말의 뜻을 얼른 이해한 한왕은 더욱 큰 소리로 꾸짖었다.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했으면 진왕(眞王)이 될 뿐이지, 가왕이란 무슨 얼빠진 소린가!" 장량을 시켜 제나라로 가게 해서 한신을 제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그의 군대를 징발해서 초나라를 쳤다. 한편 용저마저 잃은 한왕은 겁이 덜컥 났다. 우이 출신의 무섭(武涉)을 제왕 한신에게 보내어 설득하게 했다. 무섭은 한신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천하 사람들이 진(秦)에게 괴로움을 당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힘을 합쳐 진을 쳐 멸했습니다. 그 후 공적을 헤아려 토지를 분할하고 분할된 토지에 왕을 봉하여 사졸들을 쉬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왕은 다시 병사를 일으켜 동진하여 남에게 나누어 준 땅을 침범하고 남의 땅을 탈취하였습니다. 또 기왕에 삼진(三秦)을 격파하고는 병사를 인솔해 함곡관으로 나와 제후의 군대를 거두어 동진하여 초를 치고 있습니다. 어찌 그의 탐욕이 이토록 심할 수가 있습니까. 게다가 한왕은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몸이 항왕의 손아귀에 여러 번 잡힌 바 되었었지만 그 때마다 그를 불쌍히 여겨 번번이 놓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위기만 벗어나면 곧 약속을 배반하고 다시 항왕을 공격했습니다. 그와 친구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비록 귀하께서 지금은 한왕과 깊은 친교를 가지고 그를 위한 계략에 진력하고 있으나 결국은 그의 포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귀하가 지금까지 무사히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항왕이 건재했던 덕택입니다. 지금 당장 한왕과 항왕의 승패는 귀하의 동향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귀하가 우로 기울면 한왕이 이길 것이고 좌로 기울면 항왕이 이깁니다. 만일 귀하가 한왕을 편들어 항왕이 멸망하면 그 다음에는 귀하가 멸망할 차례입니다. 하온데 귀하는 항왕과 일찍이 연고가 있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한을 배반하고 초와 제휴해 천하를 3분하여 그 중의 한나라의 왕이 되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기회를 버리고 스스로 한나라를 믿으며 초나라를 치다니, 귀하처럼 슬기로운 분이 이토록 어리석은 판단을 하시다니요." 한신은 잠깐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내가 일찍이 항왕을 섬긴 적이 있지만 벼슬은 낭중에 불과하였고 지위는 집극(執戟: 衛兵)이 고작이었소. 진언을 해도 듣지 않았고 계책을 올려도 채용되지 않았소이다. 그래서 초를 배반하고 한으로 귀속했던 것이오. 한왕은 나에게 대장군의 인수를 주고 수만의 대군을 맡겼으며 자신의 의복을 벗어 나에게 입히고 자신의 밥을 나에게 먹였으며, 진언하면 들어 주었고 헌책하면 채용해 주어 오늘에 이르렀소이다. 남이 나를 친근히 여겨 신뢰해 주는데 내가 그를 배반했다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오. 가령 죽는다 하더라도 변절할 수도 없소이다. 나를 대신하여 돌아가서 항왕께 호의를 사양한다고 말해 주시오." 무섭이 실망하며 떠나 버린 후, 제나라 태생 괴통이 천하 대권의 행방이 한신에게 달린 것을 간파하고 기발한 책략으로 한신을 감동시켜 보려고 했다. "저는 일찍이 관상학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관상을? 선생은 어떤 방법으로 사람의 관상을 봅니까." "고귀하게 되는냐 비천하게 되느냐 하는 것은 골상(骨相)에 달렸고, 근심이 있느냐 기쁜 일이 생기느냐는 얼굴 모양과 색상에 달렸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하는 심상(心相)에 달렸습니다. 이대로 하면 만에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관상을 보아 주시겠소?" "그러지요. 그 대신 잠시 동안만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한신이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물러가라." 단 둘만 앉게 되자 괴통은 그제서야 입은 열었다. "장군의 관상을 보면 제후의 지위가 고작입니다. 그나마도 위태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장군의 등을 보니 고귀하기가 이를 데 없군요." "무슨 뜻이오?" "천하가 어지러웠던 당초에는 영웅 호걸들이 다투어 왕이라 칭했고 그들이 한 번 부르자 천하의 인사들이 구름과 안개 몰리듯 모여들었고 물고기 비늘처럼 겹겹이 겹쳐 왔고 불길이 바람같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의 근심이라면 오로지 어떻게 하면 진나라를 멸망시키느냐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초와 한이 분립 상쟁하여 천하 무고한 백성들의 간담을 땅바닥에 내깔리게 하고 부자(父子)의 해골을 들판에 나뒹굴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 초왕은 팽성에서 일어나 도망치는 적을 쫓아 이리 뛰고 저리 쳐서 형양에 이르러서는 승세를 탄 그 위세가 천하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군사가 경수와 삭수 사이에서 곤경에 빠진 이후로 서산(西山)에 틀어박혀 전진할 수가 없게 된 것이 벌써 3년이나 됩니다." "그렇소. 벌써 3년이오." "그런가 하면 한왕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지금 수십 만 대군을 이끌고도 공(鞏: 河南省)과 낙(洛陽)에서 항전하여 산하의 험준을 방패삼아 하루에도 몇 차례씩 싸워도 한 자 한 치의 작은 공적도 없이 좌절하면서 패배하여도 누구 하나 구원해 주는 사람이 없어 성고에서 결국 원.섭 사이로 달아났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현상이지요. 결국 이를 두고 이른바 슬기로운 한왕도 용맹스런 항왕도 다 함께 겪는 괴로움이라 하겠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무릇 예기(銳氣)는 험준한 요새에서 꺾이고 양식은 창고에서 바닥나고 백성들은 극도로 피폐하여 이러저리 원망하며 떠돌면서도 어디 누구에게 의지할 데도 없습니다. 이런 형세는 천하의 현성(賢聖)이 아니고서는 감히 천하의 불행을 종식시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왕과 항왕의 운명이 바로 장군의 손에 달려 있더라 이런 말씀입니다." "나에게" "장군께서 한나라를 위한다면 한이 승리하고 초에 편들면 초가 이깁니다. 차제에 제가 속마음을 열어 간담을 터놓고 장군에게 우계(愚計)를 말씀드리고자 하나 혹시 장군께서 쓰시지 않을까 싶어 그것이 두렵습니다." "계략의 사용 여부는 일단 듣고 나서 판단하는 게 아니겠소." "그러니 어차피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나라 초나라가 서로 양분해 존립하여 이익을 보고 또 장군까지 가세하여 독립하게 되면 천하는 안정된 솥발[鼎足]처럼 3분되게 됩니다. 이런 형세는 어느 누구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모양새가 되는 것입니다. 장군처럼 명민하고 또 수많은 갑병(甲兵)을 거느리고서 강대한 제나라에 의지해 연.조를 복종시키고 주인없는 땅으로 나아가 한.초의 후방을 제압하시면 앞서 두 나라의 전투는 끝이 나게 됩니다. 전투를 끝나게 함으로써 장군께서 만민의 생명을 구해 준다면 천하는 바람처럼 달려오고 메아리처럼 호응해 올 것이며, 누가 감히 장군의 명령을 듣지 않겠습니까. 이런 후 장군께선 큰 나라는 분할하고 강국은 약화시킨 뒤 제후들을 세우십시오. 제후들이 일단 서게 되면 천하가 복종해 따르고 그 은덕을 제나라에 돌릴 것입니다. 그러면 제의 옛 땅임을 생각하여 교(膠: 山東省 膠縣의 남서)와 사(泗: 泗水流域) 땅을 보유하고 은덕으로 제후를 회유하고 궁중 깊이 계시면서 두 손 모아 읍하며 겸양스런 태도를 보인다면 천하 군주들이 서로 권하여 제나라로 입조할 것입니다. 대개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고, 때가 왔는데도 단행치 않으면 도리어 화를 입는다고 들었습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잘 판단해 주십시오." 한신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한왕은 나를 매우 후하게 대접했으며 자신의 수레에 나를 태웠고 자신의 옷을 내게 입혔으며 자신의 식사로 내게 먹여 주었소. 내가 듣기로는,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그의 걱정을 제 몸에 싣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그의 걱정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밥을 먹는 자는 그의 일을 위해 죽는다'고 합디다. 내 어떻게 이익을 바라고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장군께선 한왕과 친밀한 사이라 생각하시어 만세 불멸의 업적을 세우시려 하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처음 상산왕(常山王: 張耳)과 성안군(成安君: 陳餘)이 벼슬이 없었던 시절에는 서로 목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을 막연한 사이였지만 후에 장염(張염)과 진택(陳澤)의 사건으로 다투게 되자 서로 원망하여 성산왕은 한왕을 배반해 항영(項영)의 머리를 베어 들고 도망쳐 한왕에게로 귀복했습니다. 한왕이 또한 그 병사를 빌려 주자 동하(東下)하여 성안군을 저수 남쪽에서 죽였습니다. 그의 머리와 다리가 따로 떨어져 나가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상산왕과 성안군의 친교는 원래 천하 제일이었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그런데도 결국 서로 잡아먹으려고 한 이유는 왜일까요. 우환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장군께서 충성을 다해 한왕과 친하려 하나 그 친밀도 어차피 장이와 진여보다는 견고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장군과 한왕 사이에 놓인 석연찮은 일들은 장염.진택의 그 문제보다 많고도 큽니다." "어째서 사태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소?" "장군께서, 한왕은 결코 나를 위태롭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그 맹목이 위태롭다는 겁니다. 옛적 대부종(大夫種)과 범여(范여)는 망해 가는 월나라를 존속시키고 월왕 구천을 패자로 만드는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렸으나 자기 몸은 망했습니다. 말하자면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먹히는 꼴이지요. 우정으로 치자면 장이와 진여보다 못하며, 충성과 신의로 말하더라도 대부종과 범려가 월왕 구천에 쏟아부은 것만큼은 못합니다. 앞의 두 사례는 절대로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럴까......?" "뿐만 아니라, '용기와 재략이 군주를 떨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을 만한 자는 받을 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하온데, 장군의 공로와 용략을 말씀드리자면, 당신께선 황하를 건너 위왕을 사로잡고, 하열을 사로잡았으며, 병사를 이끌고 정형에서 내려와 성안군을 주살하고 조나라를 진무했으며 연나라를 위협하고 제나라를 평정했습니다. 남진하여서는 초군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용저를 죽인 뒤 서향(西向)하여 한왕에게 보고했으니 이른바 이것은 '공로는 천하에 둘도 없고 용략은 불세출'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장군께선 군주를 떨게 하는 위력을 지니고 상을 받을 이상의 공로를 가지고 계시니 초로 귀속한다 해도 항왕은 장군을 믿지 못할 것이며 한으로 귀속해도 한왕은 떨고 두려워할 것이니, 그런 장군께서 도대체 어디로 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하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군주를 떨게 하는 위력을 지닌 데다 명성은 천하에 드높으니 저는 장군을 위해서 위험천만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은 잠깐 휴식하오. 나도 그 점에 대해 좀 생각해 보겠소." "원래 남의 의견을 듣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일의 성패의 조짐이며, 계략의 좋고 나쁨은 일의 성패의 계기입니다. 진언을 잘못 받아들이고 계략에 실패하고서도 오래 안태해 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진언을 분별해 제일로 할 것과 둘째로 할 것을 잃지 않으면 언론으로 혼란시킬 수가 없습니다. 계략이 본말을 전도하지 않으면 교묘한 언사로도 분규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시양졸(시養卒: 나무하고 말먹이는 하인) 같은 천한 일에 종사하는 자는 만승천자가 될 만한 권위를 잃어버리며, 한두 섬의 봉록 지키기에 급급한 자는 경상(卿相)의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계략을 밝히는데 구애되면 천하대국은 볼 수 없습니다. 지혜로써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단치 않으면 백사(百事)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맹호라도 꾸물거리고만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입히지 못하며, 준마라도 주춤거리고만 있으면 천천히 걷는 노둔한 말보다 못하며, 맹분(孟賁) 같이 용맹한 자라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범용한 필부의 결행만도 못하며, 순임금.요임금의 지혜가 있더라도 입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의 손짓 발짓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이것 모두 그만큼 실행의 귀함을 말합니다.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 어렵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시기란 얻기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부디 명찰하십시오." 그러나 한신은 주저하면서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는 못했다. "공로가 많은 난데 설마 나의 제나라를 뺏기야 하겠는가." 결국 괴통의 진언을 사절해 버렸다. 괴통은 자신의 진언을 한신이 들어 주지 않자 얼마 안가 미친 척하고 무당이 되어 버렸다. 한왕이 고릉(固陵: 河南省 淮陽縣 북서)에서 궁지에 몰리자 장량의 계책에 따라 제왕 한신을 소환할 수 있었다. 한신이 병사를 이끌고 해하(垓下: 安徽省 泗縣 서쪽)에서 한왕과 합류해 항우를 대패시켰다. 고조는 제왕의 군사를 거두어들였다. 한의 5년 정월이었다.
제왕 한신을 옮겨 초왕(楚王)으로 삼고 하비(下비: 江蘇省 비縣 동쪽)에 도읍하게 했다. 한신이 봉국(封國)에 도착했다. 그는 도착 즉시 일찍이 밥을 얻어먹은 빨래터 여인을 찾아 천금을 내렸다. 또 하향의 남창 정장에게는 백전(百錢)을 내리면서 말했다. "그대는 소인배다. 은덕을 베풀 때는 중간에서 그만두는 게 아니네." 또 소년 시절 자신을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게 하면서 욕보인 건달을 불러놓고 여러 장군과 재상에게 설명했다. "이 자는 장사(壯士)다. 나를 욕보였을 때 나는 이 자를 죽일 수도 있었지. 그러나 죽여도 명예는커녕 죄수밖에 더 되었겠는가. 그래서 모욕을 꾹 참으며 인내를 배웠지. 그 때의 은인자중으로 오늘의 공업을 성취한 걸세." 그러면서 그를 초의 중위(中尉: 首都 경비관)에 임명했다. 항왕에게서 도망해 온 장군 종리매(種離매)의 집이 이려(伊廬: 湖北省 襄陽縣 남서)에 있었다. 한신과 본래 사이가 좋았던 종리매는 항왕이 죽은 뒤 도망하여 한신에게 와 있었다. 그런 그가 한왕하고는 몹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초에 있다는 말을 듣고 체포하려 했다. 당시 한신이 처음으로 초나라에 왔기 때문에 봉국의 현.읍을 순시한다면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군사들을 데리고 출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한의 6년에 상서(上書)하여 밀고한 자가 있었다.
- 초왕 한신이 모반하고 있습니다. 경계하십시오.
고제가 진평의 계략에 따라 천자 순행길에 나섰다. 제후들을 회동시키기로 한 것이다.
- 모두 진(陳: 河南省 淮陽)으로 회동(會同)하라. 남방 호수지대 운몽(雲夢)으로 순행하겠다.
사실은 한신을 습격하려는 계략이었으나 한신이 그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그렇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은 있어 보였다. 그래서 고조가 초에 도착하는 때를 계기로 모반할까도 생각했다. "그만두자. 내가 아무리 자신을 살펴보아도 주상께 지은 죄가 없다. 사로잡힐 까닭이 없지." 어떤 자가 한신에게 간했다. "걱정이 되신다면 종리매의 목을 들고 황상(皇上: 高祖)을 뵈십시오. 기뻐하실 것이며 우환도 사라질 것입니다." 한신이 종리매를 만나 그 문제를 두고 상의하니 종리매는 화를 냈다. "한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당신 밑에 있기 때문이오. 정작 당신이 나를 잡아 한나라에 곱게 보일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죽겠소.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오. 내가 죽은 뒤 당신 차례요. 이제 보니 당신도 소인배였구려!" 종리매는 몹시 분통해하며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고조를 태평스럽게 뵈러 갔다. 그런데 대기시켰던 무사들에 의해 간단하게 결박되었다. "이거 왜 이러나!" 한신은 후거(後車)에 강제로 실려졌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과연 세상사람들의 말이 맞구나! '재빠른 토끼가 죽으니 훌륭한 사냥개는 삶겨 죽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니 훌륭한 활은 소용이 없고, 적국이 격파되니 지모 많은 신하는 죽는다'고 했다던가.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팽살(烹殺)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한신은 차꼬와 수갑을 차고 옥사슬을 건 채 낙양에 도착했다. 그러나 고조는 천하 인심이 두려워 차마 한신을 죽일 수는 없었다. "공이 모반했다고 밀고한 사람이 있었소." 고조는 그렇게 얼버무리며 한신의 죄를 용서한 뒤 회음후로 삼았다. 한신은 한왕이 자신의 재능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것을 알았다. 의기소침해져서 언제나 병이라 핑계대고 참조(參朝)하지도 않았고 출어시(出御時)에 수행하지도 않았다. 한신은 이로부터 날마다 고조를 원망하며 평소에도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특히 강후(絳侯) 주발(周勃)이나 관영(灌영) 등과 동렬(同列)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한번은 한가할 때 한신이 장군 번쾌(樊쾌)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번쾌는 무릎을 꿇고 한신을 맞아 자신을 신(臣)이라 부르고 있었다. "대왕께서 즐겨 신의 집에까지 왕림해 주셨습니까." 얼마 후 한신은 번쾌의 집 대문을 나서면서 자신을 비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내 아직 살아서 그대와 동렬일 뿐인걸......" 고조가 한때 한신을 상대로 마음놓고 제장들의 능.불능을 떠들면서 등차를 매긴 적이 있었다. 고조가 한신에게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은 몇 명의 군사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이 되겠소?" "폐하께서는 그저 10만이면 족합니다." "그대는 어떻소?" "저야 많을수록 더욱 좋지요." "많을수록 좋다는 사람이 어째서 나에게 사로잡혔소?" "폐하께선 병사야 그 정도밖에 이끌 수 없지만 장수들을 잘 거느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폐하에게 잡힌 까닭입니다. 더구나 황제의 지위는 하늘이 주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진희(陳희)가 거록군(鉅鹿郡: 河北省 平鄕一帶) 태수로 임명되어 회음후 한신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한신은 좌우를 물리친 뒤 진희와 뜰을 산책하면서 탄식처럼 말했다. "내 이런 얘기를 그대에게 해도 괜찮을 것인지. 상의할 일이 있거든." "장군께선 무엇이든 하명(下命)만 하십시오." "고맙소. 그대가 태수로 부임하는 거록군에는 천하의 정병(精兵)들만 모여 있는 곳이오. 그리고 그대는 폐하가 신임하는 총신이오."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그대가 모반을 했다고 고하더라도 폐하는 믿지 않을 것이오. 두어 번 그런 밀고가 들어오면 그 때는 의심할 것이며, 세 번쯤 밀고가 들어오면 그 땐 의심하여 진노해서 친정(親征)을 서두를 것이오." "그건......?" "내가 그대를 위하여 안에서 일어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는데 어떻소?" 진희는 한신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추호의 의심도 없이 대답했다. "삼가 가르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한의 11년이었다. 진희가 과연 모반했다. 고조가 스스로 대장군이 되어 친정길에 나섰다. "절호의 기회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다!" 한신은 병을 청탁해 종군치 않았다. 한편 진희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게 했다. "그저 안심하고 군사만 일으켜라. 내가 여기서 그대를 돕겠다." 한신은 그의 가신(家臣)들과 치밀하게 음모했다. 우선 밤중에 조칙이라고 속이고 관아(官衙)의 관노(官奴)를 풀어 여후(呂后)와 황태자를 습격하려는 작전을 수립했다. 부서는 이미 결정되었다. 이제 진희한테서 오는 통지만 기다리면 되었다. 바로 이 때였다. 가신[<초한춘추(楚漢春秋)>에는 사공(謝公)으로 되어있고, <공신표(功臣表)에는 신양후(愼陽侯) 악열(樂說)이라 했다.]중에서 한신에게 죄를 진 자가 있었는데 때마침 잡혀 왔으므로 그를 처형하려고 했다. 죄수의 아우가 생각해 보았다. 형을 살려 내려면 주인인 한신을 잡는 길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여황후에게로 달려가 모반의 상황을 자세히 고해 버렸다. 여후는 혼자 생각해 보았다. 한신을 소환하려 해도 결코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까. 몹시 다급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후는 상국 소하와 의논할 수밖에 없었다. "황상께서 보내신 것처럼 속이고 말하게 합시다. 그렇게 하면 한신이 일단 거사는 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래서 소하는 급히 한신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알리도록 했다. "친정해 가신 폐하께서는 진희를 사로잡아 벌써 사형에 처했습니다." "벌써!" "열후와 뭇 신하들이 모두 참여해 축하하고 있습니다." 한신은 낙담했다. 더욱 병이라 핑계대고 집 안에 틀어박혔다. 여후와 소하는 한신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불안했다. 어떤 변고를 일으킬지 알 수가 없었다. "상국께서 직접 한번 다녀오시지요." 여후가 졸랐다. 별수없이 소하가 한신을 찾아가 속여서 말했다. "비록 병중이라 하더라도 잠깐 참래하여 축하의 뜻을 표하고 가시지요." 한신은 아니 갈 수 없었다. 황태자가 있는 장락궁(長樂宮)으로 멋모르고 들어섰다. 종실(種室: 때를 알리는 종이 걸려 있엇음)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여후의 명을 받은 무사들이 삽시에 달려들어 한신을 묶었다. "이건 또 무언가!" 한신은 사태의 모든 진전을 깨달았다. 목베임을 당할 때 그는 신음처럼 내뱉었다. "괴통의 계략을 쓰지 못한 것이 후회막급이다. 일개 아녀자에게 속았으니 이 또한 운명이겠지!" 한신은 장락궁에서 곧바로 죽었다. 그의 일족도 곧 몰죽임을 당했다. 고조가 한신이 죽은 것을 안 것은 진희 토벌의 전쟁에서 돌아오고 나서였다. "가공할 상대가 죽었으니 기쁘긴 하나 그의 공로는 지대했다. 말로가 비참하니 불쌍하구나. 그래, 한신은 죽을 때 무슨 말을 하던가?" 여후가 대답했다. "괴통의 계략을 쓰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곧 잡아들여라!" 제나라 변사 괴통이 잡혀 왔을 때 고조는 직접 심문했다. "네놈이 회음후에게 모반하도록 들쑤셨다면서!"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제가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바보자식이 제 헌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멸해 버렸습니다. 만약 그 바보자식이 내 계략을 썼던들 폐하께선 그를 멸망시킬 수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고조는 몹시 노했다. "저놈 보게! 당장 팽살해 버려라!" "아, 팽살이라니요. 억울합니다." "억울하다니, 무어가?" "진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자 산동의 땅이 크게 어지러워지면서 뭇 성씨들을 가진 자들이 영웅호걸로 자처하면서 까마귀 떼처럼 일어났습니다. 진이 그 사슴[皇帝權]을 잃으니 천하에서는 모두가 그 사슴을 쫓아다녔습니다. 이 때 키가 크고 발이 빠른 한자[高祖]가 그 사슴을 낚아챘습니다.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개란 놈은 원래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짖습니다. 당시의 저는 오로지 한신을 알았을 뿐으로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또 천하에는 무기를 예리하게 갈아가지고 폐하가 하시는 일을 자기들도 해 보고자 날뛰던 인물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 모두는 능력이 모자랐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폐하께선 그들 모두를 삶아 죽이겠습니까!" 고조가 생각한 뒤에 말했다. "살려 주어라."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회음으로 갔을 때 회음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다. "한신이 평민이었을 적에도 그 뜻이 보통사람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너무 가난했습니다. 모친이 사망했을 때 장례도 치르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보십시오. 높고 넓은 땅에 무덤을 만들어 그 둘레로 1만 호의 집들[王侯의 경우 1만 호가 무덤을 지킨다]이 들어앉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내가 그의 모친의 묘지를 보니 과연 그러했다.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고 능력 역시 자랑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왕조에 대한 공훈이 저 주공(周公).소공(召公).태공망(太公望) 등의 주왕조에 대한 공훈과 비길만한데 말이다. 그랬더라면 그의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국가 원훈으로서의 제사를 받았을 터인데. 좋은 쪽으로 힘을 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통일된 후에사 반역을 기도하여 일족이 몰살당했으니 그 또한 슬픈 운명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