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28. 몽염열전
진나라를 위해 영토를 확장하고 인구를 증가시켰다. 북방으로는 흉노를 쳐부수고, 황화를 방어선으로 삼아 요새를 구축했다. 또한 산악을 이용해 견고한 성새를 쌓아 유중현(楡中縣: 甘肅省 皐蘭縣 서쪽)을 건설했다. 그래서 제28에 <몽염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몽염은 그 조상이 제(齊)나라 사람이다. 몽염의 할아버지 몽오는 제나라로부터 진(秦)으로 와서 소왕(昭王)을 섬겨 벼슬이 공경(公卿)에 이르렀다. 진의 장양왕 원년에 몽오가 진나라 장군이 되어 한(韓)을 공략해 성고.형양을 탈취해 삼천군(三川郡)을 설치했다. 2년에는 몽오가 조(趙)나라를 공격해 37개의 성읍(城邑)을 점령했다. 시황제 3년에는 몽오가 한나라를 공격하여 13개의 성읍을 뺏었다. 5년에는 몽오가 위(魏)나라를 공격해 20개 성읍을 점령하여 동군(東郡)을설치했다. 몽오는 시황제 7년에 죽었다. 몽오의 아들이 몽무(蒙武)였으며 무의 아들이 바로 몽염이다. 몽염은 한때 옥관(獄官)이 되어 형옥(刑獄)에 관한 문서를 담당한 적이있었다. 시황제 23년에는 몽무가 진나라 비장(裨將)이 되어 왕전(王전)과 함께 초나라를 공격해 이를 크게 격파하여 장군 항연(項燕)을 죽이고 초왕을 사로잡았다. 몽염의 아우가 또한 몽의(蒙薏)다. 시황제 26년, 몽염은 가문에서 대대로 장군을 지낸 관계로 진나라 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공격해 이를 크게 격파하고 그 공으로 내사(內史: 首都의 長官)가 되었다. 몽염은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30만 대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융적(戎狄)을 내쫓고 하남(河南: 오르도스 지방)을 점령한 뒤 장성(長城)을 구축했다. 그것은 천험(天險)의 지형을 이용해 성새를 쌓는 작업이었으며, 임조(臨조: 甘肅省 머縣)에서 시작해 요동(遼東: 遼寧省 遼陽市 北方)에 이르는 장장 1만여 리(里)나 되는 거리였다. 몽염은 또 북으로 황하를 건너가서 양산(陽山)산맥을 점거하고 그 꾸불꾸불한 산맥을 따라 북쪽으로 진군하면서 흉노족들을 내쫓았다. 결국 진나라 군사들은 10여 년이나 국경 밖 상군(上郡)에 있었다. 그 즈음의 몽염의 위세는 흉노를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시황제는 몽씨 집안을 몹시 총애했다. 그래서 몽의에게 상경(上卿)벼슬을 주어 궁중을 드나들 때 항상 배승(陪乘)케 했다. 몽염이 외정(外征)을 맡았다면 몽의가 황제의 측근에서 정책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쯤이었으니 어떤 대신이나 장군도 몽씨 가문에 대항할 엄두도 내지 않았다. 아무튼 두 형제가 충신(忠信)스럽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조고(趙高)는 조나라 왕의 먼 혈통이다. 조고의 형제 몇 명은 태어나자마자 곧 거세되어 환관이 되었다. 그러나 조고의 모친도 형을 받고 죽었으므로 대대로 비천한 신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왕은 조고가 근면하고 형법에 정통하다는 것을 알고 중거부령(中車府令: 御用車係長)으로 기용했다. 한편으로 조고는 사적(私的)으로 공자 호해를 섬기며 그에게 판결법을 가르쳤다. 아무튼 조고가 큰 죄를 지었을 때 시황제는 몽의에게 명해 그를 의법처단케 했다. "조고의 죄는 사형에 해당됩니다." "그렇지만 아까운 재목이오. 어떻게 그의 죄를 가볍게 해 줄 수가 없겠소?" 오히려 시황제가 몽의에게 부탁하였다. "폐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환적(宦籍)만 박탈하겠습니다." 죽음을 모면한 조고는 은인자중했다. 그런 가운데서 호해를 몰래 섬기며 천하대세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어떻소. 조고가 죄를 깊이 뉘우치고 울며 복죄하고 불철주야 나라일에 백의종군하여 임한다 하오. 그 근면함과 성실함과 재주가 아까우니 그를 용서하고 벼슬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어떻소." "황제폐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몽의가 수하를 시켜 은밀히 정탐해 본 결과 황제의 총애가 지극한 호해를 통한 조고의 입김이 서려 있었지만 그 때만 해도 조고의 행동반경에 그토록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드디어 시황제의 천하 순유길이 시작되었다. 구원(九原)에서 직행해 감천(甘泉: 陝西省 淳化縣)으로 가려고 몽염을 시켜 구원.감천 간 도로를 닦도록 했다. 몽염은 군사들을 독려해 산을 깎아내리고 골짜기를 메우기를 1천8백 리에 미쳤는데 아직은 도로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황제 37년 겨울이었다. 시황제가 회계(會稽: 浙江省)에서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낭야로 향했는데 도중에 발병하여, 몽의를 시켜 수도로 돌아가 산천의 신(神)들에게 기도드려 낫도록 빌게 했다. 그러나 몽의가 돌아오기 전에 시황제는 사구(沙丘)에서 붕어했다. 황제가 붕어한 것을 이사.호해.조고 등이 비밀에 부쳤으므로 다른 그 어떤 신하들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조고는 호해를 황제로 내세우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승상 이사등을 설득해 호해를 황태자로 삼았다. 호해를 태자로 삼은 순간 사자를 파견해 장자 부소와 장군 몽염에게 죽음을 내리려 했다. 부소는 곧 자살하였지만 몽염은 의심을 품고 다시 한 번 명을 내려 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몽염은 일단 장군직에서 해직되어 옥에 갇혔다.
한편 조고는 몽의 역시 살해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전날 자신을 의법처단해 유리하게 처리해 주지 않았던 점에 앙심을 품었던 터였다. 그러나 2세황제는 몽씨 가문을 어려워하여 장자인 부소가 자살한 이상 몽씨 형제들은 살려 주고 싶은 기미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고에게는 그것이 큰 걱정이었다. 만일 몽씨가 다시 권력을 잡아 존귀하게 되면 자신의 처지가 어떤 식으로 궁지에 몰리게 될 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역시 몽씨들을 빨리 주살해 버리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되었다. 조고는 2세황제에게 간했다. "이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선제(先帝)께옵서 일찍이 호해 황자를 현명하시다 하여 황태자로 책봉하시려 했던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 일이 있었소?" "그럴실 때마다 번번이 '호해 황자는 불가합니다' 하고 반대하는 신하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 "모르는 일이오. 그가 누구요?" "만약 황자의 현명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황태자를 책봉 못 하도록 주군을 미혹시켰다면 이는 필시 불충이라 사료되옵니다." "대체 그자가 누구란 말이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몽의이옵니다." "몽의가!" "어리석은 생각일지 모르나 그를 주살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됩니다." "그가 설마!" "아닙니다. 그를 붙잡아다가 죄를 다스려 보십시오." 그래도 2세황제는 몽씨 가문의 공훈을 생각해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조고는 황제 가까이서 끈덕지게 간했다. "일찍이 선현들은 후회할 일을 남기지 말라 이르셨습니다." 2세황제도 별수가 없었다. 그러나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대(代: 山西省 大同市 동쪽)의 옥에다 가두었다. 이를 전해 들은 자영(始皇帝의 孫子이며 扶蘇의 아들)이 2세황제 앞에 나아가 전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예전의 조왕(趙王) 천(遷)은 그의 좋은 신하 이목(李牧)을 죽여 안추(顔추)를 등용하고, 연왕(燕王) 희(喜)는 남몰래 형가의 계락을 채용하여 진과의 맹약을 저버리고, 제왕(齊王) 건(建)은 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충신을 죽이고 재상 후승(后勝)의 현책을 채용했습니다. 이 세 군주는 모두가 각각 옛 것을 변경해 자신의 나라를 잃고 재앙은 자신에게 미쳤습니다. 지금 몽씨는 진의 대신이며 지모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일소에 이들을 버리시려 합니까. 저는 결코 불가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또 '경솔한 생각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으며, 한 사람의 지혜로는 군주를 끝내 지켜 나갈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충신은 주살해 버리고 절조없는 인간을 중용하면 뭇 신하들이 안으로는 불신을 일으키고 밖으로는 감투하는 전사(戰士)들의 마음을 이반시키게 됩니다. 역시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2세황제의 생각은 다시 흔들렸다. 그 때 조고는 다시 아뢰었다. 엎드려 울면서 황제에게 비장의 보도를 빼어든 것이다. "폐하, 폐하의 황제 등극을 불가하다고 간한 자를 중용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고난을 무릅쓰고 폐하를 2세황제가 되시도록 충성을 다한 소신을 믿으시겠습니까!" 다분히 협박조의 주청이었다. 그제쯤 2세황제도 별수없었다. 조고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사(御史) 곡궁(曲宮)을 역마차를 타고 대로 달려가게 해서 몽의에게 다음과 같은 영을 전했다.
- 선제(先帝)가 짐을 태자로 세우려 했을 때 경은 짐의 태자 책봉을 불가하다며 비난했다. 승상은 경의 불충죄가 그 일족에 미친다고 했으나 짐은 차마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어 경에게만 죽음을 내리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죽음을 자취하라.
몽의는 자결하지 않고 대신 상주문을 썼다.
- 제가 선제의 의향을 잘 몰랐다고 폐하께서는 말씀하시나 저는 연소할 때부터 선제를 섬겨 붕어하실 때까지 충실히 뜻을 받들어 총애를 입었으니 이는 선제의 의향을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황태자로서의 황자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시나 여러 황자들 중에서 오직 폐하만이 선제를 따라 천하순유(巡遊)를 하심을 보고 어떤 황자들보다 폐하의 능력이 뛰어나시다는 사실을 의심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대체로 선제께서는 폐하를 황태자로 세우려 하심이 수년 이래로 쌓여 온 숙망(宿望)임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저같은 인간이 감히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간하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계락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여쭙는다 하여 감히 말을 꾸며서 죽음을 애써 피하려는 속셈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것은 선제의 명예에 누를 끼치는 것이며 그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원컨대 폐하께서는 숙려(熟慮)하시어 진실된 죄로 죽여 주십시오. 대체로 공을 이루고 제 몸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은 도리로 보아 존중할 만한 일입니다. 형을 받아 피살된다는 것은 도리가 끝장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진의 목공(穆公)은 세 사람의 좋은 신하를 죽이고 백리해에게도 사죄(死罪)를 주었으나 실은 모두 합당한 죄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사후에 목(목: 몹쓸 시호 목, 穆과 통함)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진의 소양왕(昭襄王)은 명장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를 죽이고 초의 평왕(平王)은 충신 오사(伍奢)를 죽였으며 오왕 부차는 충성을 다한 오자서를 죽였습니다. 이 네 군주는 모두 큰 실수를 범했기 때문에 천하에서 그들을 비난하며 불명(不明)한 군주라 하여 이 사실을 제후국의 사서(史書)에 기록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도리로써 통치하는 자는 죄없는 자를 죽이지 않으며 무고한 백성에게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합니다. 폐하께옵서 반드시 유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몽의의 상소문은 2세황제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사자가 조고의 밀명을 미리 받고 왔으므로 칼잡이들을 시켜 몽의를 도끼로 쳐서 죽여 버렸다. 2세황제는 다시 양주의 몽양에게도 사자를 파견했다.
- 장군의 과실은 많다. 그리고 장군의 아우 몽의도 대죄를 저지르고 죽었다. 법률상 장군에게도 연루된다.
"이것뿐이오?" "칙지(勅旨)란 길다고 하여서 더욱 엄한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곡궁은 하릴없이 대답했다. "......기다려 주오."
몽염은 적었다.
- 저의 조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을 위하여 공을 쌓고 충성을 다 바친 것이 삼대째나 됩니다. 더구나 저는 지금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몸은 비록 죄수의 몸이오나 한 마디의 명령으로 진나라를 배반하기에 충분한 세력입니다. 그러면서도 배반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는 것은 조상의 교훈을 욕되게 하지 않고 선제의 은덕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주나라 성왕(成王)이 즉위했을 당초에는 아직 어려서 강보(襁褓)를 떠나지 못했으나 숙부인 주공(周公) 단(旦)은 왕을 업고 조정에 나아가 기어코 천하를 안정시켰습니다. 어린 성왕이 병에 걸려 위독하게 되었을 때 주공 단은 스스로 손톱을 잘라 황하에 던지면서 기도했습니다. '왕께서는 아직 유소(幼小)하여 아무것도 모릅니다. 할 수 없이 제가 왕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집행하고 있으나 만약 허물이 있다면 스스로 그 재앙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적어 기부(記府: 기록을 보관하는 곳)에 간직해 두엇습니다. 이런 행위는 충성을 자신에게 다짐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성왕이 장성하여 친정(親政)을 할 수 있었을 때 간신이 모함했습니다. '주공 단이 반역하려는 지가 벌써 오래입니다. 왕께서 그를 제거하지 않으시면 그 후환이 두렵습니다'라고 하자 성왕은 크게 노했습니다. 주공 단은 몸을 사려 초나라로 망명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성왕 단이 기부를 발견하고는 주공 단이 황하에 던진 기도문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어떤 자가 주공 단이 반란을 획책한다고 모함했는가' 왕은 그렇게 모함한 간신을 처벌하고 주공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주서(周書)>에는 '반드기 세 번 생각하고 다섯 번 단련한다'라고 하여 모든 사물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경고문이 적혀 있습니다. 지금 저의 일족에는 대대로 두 마음을 품는 자가 결코 없었던 사실을 영예로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태는 어찌하여 반역의 가문으로 갑자기 지목되고 말았습니까. 이는 필시 궁중의 간신이 황제를 능가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는 괴변이 폐하의 측근에서 일어나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성왕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다시 정도(正道)로 돌아옴으로써 마침내 번영했습니다. 하(夏)의 걸왕은 충직한 관용봉을 죽이고, 은(殷)의 주왕은 왕자 비간을 죽이고도 후회할 줄 몰랐기 때문에 결국 자신도 몸을 망치고 나라도 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실은 바로잡아야 하며 간언은 받아들여 깨달아야 하며, 세 번 다섯 번 검토하고 통찰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성왕(聖王)의 다스리는 방법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는 말씀은 허물을 면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닙니다. 항차 간언을 드리고 죽을 따름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만민을 위하여 도리(道理)를 따를 것을 바랄 뿐입니다......
몽염은 다 적고 나서 곡궁에게 말했다. "남길 말도 있으니 우리 둘이 한 잔 술은 어떻소." "나쁠 건 없습니다. 하오나, 조칙을 받들어 장군께 형은 집행해야 할 것입니다." "알고 있소......" 두 사람을 위한 술자리는 곧 마련되었다. 그나마도 몽염이라는 명성을 위한 특별배려인 듯했다. "나는 십 년 동안 상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비바람 찬이슬 맞으며 노숙으로 세월을 보냈소." "고생이 심하셨습니다." "눈보라를 이불삼아 병사들과 같이 언 밥을 먹었소." "......" "때따라 오랑캐들을 막으랴 치랴 동분서주하였소. 오로지 선제의 명령을 지키고자 하는 일념뿐이었지요." "......?" "어느 날 맹강녀(孟姜女)라는 여인이 만리장성 축조 공사장으로 찾아왔습디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징용되어 간 남편을 위하여 두툼한 겨울옷을 품에 넣고 어려운 여행 끝에 공사 현장으로 찾아 왔더구려." "그래서 만나도록 해 주셨습니까." "그 인부는 이미 삼 년 전에 돌무더기에 깔려 죽었지요." "그녀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었겠습니다." "그런데 괴상한 일이 일어났습디다. 뼈라도 찾아보려고 장성 주위를 울며불며 맴돌고 있는데, 빌어먹을, 갑자기 성벽이 무너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장성이!"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요. 삼 년 전에 죽은 그녀의 남편이 금세 죽은 시체로 돌무더기 속에서 나타나더군요!" "원, 세상에!" "그대가 오기 전까지는 미구에 닥칠 나의 죽음에 대하여 나는 억울해 마지않았소. 내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로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하는가 하면서 말이오." "?" "아니오. 분명 내 죄는 사죄(死罪)에 해당하오. 임조를 기점으로 요동에 이르기까지 만리의 장성을 구축하면서 인명인들 얼마나 죽였으며 지맥(地脈)인들 얼마나 끊어 놓았겠소. 직통로를 위하여 인민의 노고를 무시하고 충성이란 이름으로 인간을 혹사만 했던거요. 죽음을 무릅쓰고 폐하께 강력히 간언하여 말렸어야 했던 것을...... 자, 내게 내려진 벌이 무어요?" "사약(賜藥)입니다." "이 상소문은 황제폐하께 전해지지 않아도 무방하오. 그럼, 약을 이리 주시오......" 결국 몽염은 사약을 받고 죽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북방 변경지대로 가서 직통로(直通路: 九原에서 甘泉으로 통하는 길)를 통해 돌아왔다. 가는 도중에 보니 몽염은 진나라를 위하여 산악을 깎아내리고 계곡을 메워 장성의 요새를 쌓고 직통로를 통하게 해 좋았었다. 한 마디로 인민의 노고를 무시하고 혹사시킨 대작업이었다. 생각해 보면, 진나라가 제후들을 멸망시킨 당초라 천하 민심은 안정되지 못했고 부상자 역시 치유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몽염은 명장으로서 그런 일을 당하여 강력히 황제께 간언하여 말리지 못하였고, 인민의 궁핍을 구제하며 노인을 부양하고 고아를 보육하며 민중에게 평화를 주려는 노력 역시 하지 않았다. 오로지 시황제의 야심에만 추종하여 거창하고 고된 공사를 일으켰다. 이것이 그들 형제가 사형을 받게 된 이유다. 무슨 지맥을 끊은 게 어찌 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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