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25. 여불위열전 呂不韋列傳
여불위는 진의 공자 자초(子楚)와 친척 같은 관계를 맺어, 제후 나라의 선비들이 빛에 빨려들듯이 진나라로 앞다투어 들어가 섬기게 했다. 그래서 제25에 <여불위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여불위는 양책(陽책: 河南省 禹縣)의 대상인(大商人)이다. 여러 나라를 왕래하며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집안에 천금의 자산을 축척했다. 진(秦)의 소왕(昭王) 40년에 태자가 먼저 죽었으므로 42년에 둘째 아들인 안국군(安國君)을 새 태자로 삼았다. 안국군에게는 희(姬)라는 매우 총애하는 애첩이 있었는데 그녀를 정부인으로 삼아 화양부인(華陽夫人)이라 불렀다. 그런데 안국군에게는 아들이 20여 명이나 있었지만 화양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한 명의 아들도 낳지를 못했다. 어쨌든 안국군의 아들 중 자초(子楚)라는 차남이 있었다. 자초는 볼모가 되어 조(趙)나라에 가 있었다. 더구나 진나라가 자주 조나라로 침공해 왔으므로 인질인 자초는 언제 조나라 조정으로 끌려나갈 죽을지 모르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있었다. 더구나 자초의 생모인 하희는 이미 안국군의 총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그녀의 아들 자초 따위는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다. 불안과 공포의 나날 속에 있었다. 또한 곤궁한 데다 감시받는 입장이었으므로 자초는 정작 실의와 낙담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바로 이 때였다. [가만 있거라! 이건 진귀한 보배다. 사 둘 만한 물건이다!] 여불위는 무릎을 쳤다. 그는 조나라 수도 한단으로 장사 갔다가 자초의 처량한 일상을 엿들은 것이다. 그래서 여불위는 가만히 자초의 숙소를 방문했다. [제가 당신의 문호(門戶: 집)를 크게 해 드리지요.] 자초는 절망 상태에 있었으므로 여불위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농담 마십시오. 제 집을 크게 지어 주시려거든 우선 당신의 집부터 크게 지은 뒤라야 가능할 것입니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저의 집은 당신의 집부터 크게 지어야 덩달아 커집니다.] [예에?] 자초는 그제서야 여불위가 무엇을 말하려는가를 깨달았다. 그래서 밀실로 데리고 들어가 대좌했다. [무슨 뜻입니까?] [진왕께선 늙으셨고 안국군이 태자가 되셨습니다.] [저의 아버님이시지요.] [안국군은 화양 부인을 가장 총애하신다지요? 그렇지만 불행히도 화양 부인에겐 아들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안국군께서 나중에 왕위에 오르셨을 때 과연 누구를 태자로 삼으실 것 같습니까.] [그건......?] [물론 당신께선 아닙니다. 장자도 아니며 그 숱한 형제들 중의 한 분에 지나지 않으며, 안국군의 총애를 받고 있는 처지도 아니며, 안중에도 없이 남의 나라에 볼모로 나가 있으며, 생모이신 하희 부인께서 안국군의 총애를 받고 계신 것도 아니며...... 그 어떤 조건을 따져 보아도 당신께서 태자가 되실 가망은 없습니다.] [누가 아니라고 했습니까?] [총애받는 화양 부인께서 아들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신 적은 없습니까?] [생각해 보았댔자 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다면 적사(嫡嗣)를 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오직 화양부인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분에게는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공자께서 화양 부인의 아들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에?] [그나마도 바로 지금 화양 부인의 아들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대왕이 돌아가시고 안국군이 왕위에 오르시면 그 때 공자께선 몸부림을 치셔도 도무지 태자가 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조석으로 왕 앞에서 음모와 아부로 태자위를 다투는 다른 왕자들과 비교해 좋은 조건은 한 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제가 태자가 될 수 있는 좋은 계략이라도 가지고 계시단 말입니까?] [있습니다. 저는 장사꾼입니다. 천금을 걸어 공자께 투자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가난합니다. 양친의 환심을 선물로 살 만한 재력도 없으며, 빈객들과 교제하여 나를 위해 유세하도록 할 만한 덕망 역시 없으며, 언제 죽게 될지 조석이 불안한 몸입니다. 무엇을 믿고 어떻게 투자하시겠다는 겁니까?] [공자께 천금을 드리지요. 빈객들과 교제하는 데에 쓰십시오. 저는 이 길로 서쪽 진나라로 가서 안국군과 화양 부인을 섬겨 당신이 후사가 되도록 계략을 도모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하오나, 당신께선 제게 투자했다가 본전은커녕 목숨까지 잃는 수가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그 대신 당신의 계획이 성공만 하게 된다면 그 땐 진나라를 당신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여불위는 거금 5백 금을 풀어 진귀한 물품과 노리개를 사 가지고 서쪽 진나라로 건너갔다. 화양 부인을 직접 만날 길이 없었으므로 손을 써 우선 그녀의 언니부터 만났다. 가져온 물건들을 내밀면서 여불위는 화양 부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어려운 경로를 거쳐 여불위는 간신히 화양 부인을 만날 수가 있었다. [자초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입니다. 널리 천하의 빈객들과 교제하시면서도 유달리 부인을 간절히 생각하고 계십니다.] [자초가?] [저에게도 말씀하십디다. '나는 화양 부인을 하늘처럼 생각하고 있소. 그 분의 처지를 생각하면 밤낮으로 눈물이 나오' 하시면서 통곡하십디다.] [자초가 그렇게까지......!] 부인은 몹시 기뻐했다. 여불위는 한편으로 그 언니를 시켜 화양 부인을 설득하도록 해 놓았다. [들리는 말에 '용색(容色)으로 사람을 섬기는 이가 용색이 쇠하면 그 애정도 쇤다'고 합디다. 지금 부인은 태자의 총애를 한없이 받고 있으나 불행히도 아들이 없지 않습니까. 꽃다운 청춘 시절에 기초를 세워 놓지 않으면 용색이 쇠하고 애정이 식은 뒤에는 입을 벌려 백 마디 말을 해도 한 마디의 효과도 없겠지요.] [저도 그것이 두렵습니다, 언니.] [그렇다면 이럴 때 태자의 자식 중에서 현명하고 효성이 지극한 자를 뽑아 양자를 삼으시지요.] [양자를?] [그렇게 하면, 부군이 살아 계실 때에는 그 부군의 부인으로 존중되고 부군이 돌아가신 뒤에는 왕이 된 그 양자로 인하여 부인은 최후까지 세력을 잃지 않게 되지요.]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구려!] [이야말로 말 한 마디로 만세의 이익을 얻는 것과 같지요.] [언니, 그렇다면 누가 양자로 좋겠습니까?] [그런 일일수록 계략이 심오해야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자초가 최적입니다.] [자초가 효성스럽고 현명하긴 하나 중남(中男: 次男)이므로 순서로 보아 태자가 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 점이 의심을 사지 않는 것이 되지요. 처음부터 궁내의 왕자를 양자로 점찍으시면 모두가 부인을 의심하게 됩니다. 볼모로 잡혀 있는 자초를 지명하면 지금 아무도 그가 태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부인의 처지는 편안해집니다. 하희 부인 역시 태자의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는 처지라 자초를 양자로 삼으면 그녀도 부인의 조처를 매우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적당한 기회에 자초를 후사로 삼게 한다면 죽을 때까지 부인은 진나라에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은총을 누리게 되지요.] 화양 부인은 언니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자가 한가한 틈을 타서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오, 부인?] 안국군은 가득 웃음진 얼굴로 사랑하는 화양을 바라보았다. [군(君)께서는 불민한 저를 택하셔서 후궁이 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의 크기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새삼스럽게 그 무슨 말이오?] [그 영화와 행복은 지극하오나 불행히도 첩에게서는 아들이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 아니겠소? 없는 아들을 있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너무 슬퍼 마오.] [첩의 처지에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허락하신다면 군(君)의 자식 중에서 하나를 양자로 얻어 첩의 노후를 의탁코자 합니다. 군의 의향은 어떠하신지요?] [내 아들들 중에서 양자를?] [허락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안국군은 다시 웃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대의 소견이 그토록 나쁘지만은 않구려. 한데, 누구를 양자로 삼으면 좋겠소?] [조나라에 볼모로 가 있는 자초를 주십시오.] 안국군은 사뭇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리 많은 아이들 중에서 하필 자초를 달라 하오?] [군의 자식들 중에서 자초의 효심이 가장 지극합니다.] [금시초문이오.] [그가 현명하고 덕망 있어 그와 교제하는 모든 인사들이 칭찬하고 있습니다.] [자초가 그러하오?] [그래서 기왕에 양자를 주시려거든 자초를 주십사 하고 청하는 바입니다.] [그대의 소원이 정 그렇다면 그대로 하오.]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러하오나 말씀만으로는 아니 되니 옥(玉)으로 할부(割符)를 새겨 주십시오.] [그건 또 왜 그렇소?] [나중에라도 다른 얘기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 할부가 자초가 적사로 되는 증거물이 되었다. 한편으로 안국군은 안국군대로 놀랐다. 자초를 버린 자식 취급하고 있었는데 염탐꾼들을 통해 들어 본 즉 천하의 빈객들이 그를 하나같이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국군과 화양 부인은 그 때부터 자초가 이국 땅에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많은 예물을 보냈고, 여불위에게 간청해 자초의 태부(太傅)가 되게 했다. 여불위가 데리고 있는 한단의 여러 미희들 중에서 뛰어난 미색인 무희(舞姬) 하나가 있었다. 그는 무희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그 즈음이었다. 자초가 여불위의 집으로 초대되었다. 술을 마시다 말고 자초는 무희의 아름다움에 혹해 버렸다. 자초는 일어나서 여불위에게 술잔을 올려 장수를 축복한 뒤 말했다. [저 여인을 나한테 줄 수 없겠소?] 여불위는 화가 났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며 이미 자신의 아이를 배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했다. 이미 전 가산을 던져 자초에게 투자한 처지였다. 여자 하나로 이제까지 자초에게 진력한 모든 행운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너는 공자를 따라가거라. 그러나 임신한 사실을 결코 발설해선 안 된다.] 자초는 그 무희를 좋아라 하고 데려갔다. 그리고 산기(産期)가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름이 정(政: 後日의 秦始皇帝)이었다. 자초는 그녀를 세워 정부인으로 삼았다. 진의 소왕 50년이었다. 장군 왕의(王의)를 보내어 한단을 포위하게 했다. 사태가 급박했다. 조에서는 자초를 죽이려 했다. [살아날 방법이 없겠소?] [마지막 재산을 털어 넣겠습니다. 황금 6백 근이면 감시하는 관리도 눈감아 줄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탈출하셔서 진나라 군영으로 가십시오.] 자초는 천신 만고로 탈주해서 진군의 진영으로 갈 수 있었고,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분노한 조나라에서는 자초의 처자를 찾아 죽이려 했지만 조나라 부호의 딸인 여불위의 부인이 잘 숨겨 주었으므로 그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진의 소왕이 56년에 죽었다. 태자 안국군이 왕이 되었고, 화양 부인을 후로 삼았으며, 자초가 태자가 되었다. 조나라에서는 새로 즉위한 진왕과 화해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태자 자초의 부인과 그 아들 정을 진나라로 정중히 돌려 보냈다. 그런데 진왕 즉 안국군은 즉위한지 1년 만에 죽었다. 시호를 효문왕(孝文王)이라 했다.
태자 자초가 대를 이어 즉위하니 이가 바로 장양왕(莊襄王: B.C. 249-247 在位)이다. 장양왕은 양모 화양후(后)를 화양 태후(華陽太后)라 하고 생모 하희를 하 태후(夏太后)라 했다. 장양왕 원년에 여불위를 약속대로 승상(丞相)으로 삼고 문신후(文信侯)에 봉했으며 하남(河南)의 낙양(洛陽) 10만 호를 식읍(食邑)으로 주었다. 그런데 장양왕이 즉위한 지 또 3년 만에 죽었다. 13세의 어린 태자 정이 서서 왕이 되었다. 왕은 여불위를 더욱 높여 상국(相國)으로 삼고, 중보(仲父: 부친 다음 가는 분)라 불렀다. 과부였던 태후는 전날의 남편 여불위와 때때로 남몰래 사통했다. 그러나 진왕 정은 나이가 어렸으므로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 여불위의 집에는 사용인이 1만 명이나 있었다. 그 즈음에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고 초나라에는 춘신군이, 조나라에는 평원군이, 제나라에는 맹상군이라는 현자들이 있어 모두가 몸을 낮추어 뜻있는 선비들을 존중해 빈객 모시기 경쟁을 하고 있었다. 여불위는 제후국들 중에서 진나라가 가장 강대한데도 불구하고 인망이 그들만 못한 것에 대해 몹시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도 부지런히 인사들을 초치하고 빈객들을 후대했더니 어느 새 집안에는 식객이 3천이 넘게 붐볐다. 그 무렵에 각 제후들 밑에는 논객(論客)들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 내가 저 사군(四君)을 압도할 만한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러자 식객 하나가 대답했다. [저서를 내십시오. 순경(荀卿)같은 무리들도 책을 지어 천하에 그 학설을 퍼뜨리고 있는데 하물며 상국 같으신 분이 무얼 못 하시겠습니까?] [책을 짓는다?] [3천 인의 식객들을 무위도식하게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저들도 나름대로 한 가지씩 재주가 있을 것입니다.] [옳거니!] 그 때부터 여불위는 빈객들에게 각자 자기가 견문한 바를 저술 편집케 했다. 과연 그런 착상은 저 사군(四君)도 못 해낸 일이었다. 논(論)들은 차곡차곡 집대성되었다. <팔람(有始.孝行.愼大.先識.審分.離俗.時君)>과 <육론(六論: 論이라 이름붙인 여섯 편)>과 <십이기(十二紀: 春.夏.秋.冬 네 계절을 孟.仲.季로 구분해 서술한 12편의 이름)> 등으로 모두 26권 20만 자가 넘는 저서가 되었다. 천지.만물.고금의 모든 것이 총망라되었다고 자신했다. [책 이름을 무어라 했으면 좋겠소?] 여불위는 기고 만장했다. [상국의 업적이니 <여씨춘추(呂氏春秋)>라 부르지요.] 빈객 하나가 대답했다. [그 좋겠소. 아주 좋소.] [이 책을 함양의 시장문(市場門) 앞에다 진열하고 천 금의 상금을 거시지요.] [그건 왜 그렇소?] [천하 제후의 나라를 돌아다닌 그 어떤 선비라도 <여씨춘추>의 글자 한 자라도 덧붙이거나 깎을 수가 있는 자가 있다면 상금으로 천 금을 주겠다고 선전해 보시지요.] [대단히 좋은 생각이오!] 여불위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시황제도 이제 장년이 되었다. 여불위는 고민하고 있었다. 태후의 음란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칫 꼬리가 길어 간통이 발각되는 날에는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이 뻔했다. 그 때 남근(男根)이 대단히 큰 노애라는 인물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와서 가신으로 삼고, 때때로 음탕한 음악을 연주하며 노애의 남근을 오동나무 수레바퀴에다 끼워 넣어 끌고 다니게 했다. 일부러 소문을 내어 태후가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과연 그 소문을 들은 태후는 노애에 대하여 관심이 컸다. 즉시 여불위를 불렀다. [그 자의 남근이 정작 소문대로입디까?] [절굿공이만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작지만은 않았습니다.] [음경(陰莖)이란 크다고 해서 또 반드시 힘이 있는 건 아니지 않소?] [그렇긴 합니다만 노애의 경우는 두 가지 장점을 동시에 소유한 듯합니다. 어쨌든 오동나무 수레바퀴에 제 자지를 축(軸)으로 끼워 넣고 바퀴살을 굴대로 폭주(輻輳)시키며 바퀴통을 여봐란 듯이 굴려 간 것만 보아도 그 자의 정력은 요량되는 바가 있지 않겠습니까?] [상국께선 망칙한 소리를 하십니다.] [상국과 태후가 사통하는 바는 망칙한 짓이 아닙니까?] [저야 원래 주인님의 것이었으니 망칙할 것도 없고 거리낄 바도 없지요.] [제가 공연한 소릴 했습니다. 없었던 얘기로 치시지요. 어쨌든 내일 승상부로 나가는 즉시 그 자의 목을 베어야겠습니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미풍 양속(美風良俗)을 해치는 자입니다.] [대물(大物)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 없는 자의 목을 치다니요.] [모르지요. 그나마 태후께서 노리개로 곁에 두시겠다면 모르겠으나 그것이 싫으시다면 그 자는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럴 작정이라면 데려오시오.] [그 대신 부형(腐刑: 宮刑과 같이 性器를 제거하는 형벌)에 처해야겠소이다.] [그 형벌 역시 노애의 목을 베는 일과 같지 않겠습니까.] [목을 베는 게 아니라 성기를 베는 겁니다.] [그렇다면 난 그 자를 받지 않겠습니다. 죽이시든 살리시든 상국 마음대로 하십시오.] 여불위는 몰래 웃고 나서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태후. 멀쩡한 사내가 태후궁에서 기거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좋은 방법을 찾자니 그렇게밖에는 길이 없겠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못 알아듣겠습니까?] [못 알아듣겠습니다.] [거짓 부형에 처한다는 뜻입니다. 부형을 집행하는 관리를 매수하여 부형에 처한 척 노애의 수염과 눈썹을 뽑아 환자(宦者: 內侍)처럼 만들면 노애를 궁중에 두어도 뒤탈이 없어집니다.] 여불위의 설명을 듣고 나서 태후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거렸다. 드디어 노애는 태후를 섬길 수 있게 되었다. 태후는 노애와 밀통했다. 그를 맹렬히 사랑했다. 그러다가 임신하고 말았다. [남에게 알려지면 어쩌하지요?] 태후는 노애에게 실토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거짓 점을 치시지요. '궁을 옮겨 옹(雍: 陜西省 鳳翔縣 남쪽) 땅에서 살아야 액운을 피할 수가 있다'고 말하십시오.] 그렇게 되어서 태후와 노애는 옹 땅으로 가서 남의 이목에 구애받지 않고 살 수가 있었다. 노애는 언제나 태후를 모셨다. 그래서 태후는 노애에게 많은 상을 내렸다. 모든 일은 노애의 손에서 결제되었다. 노애 집의 사용인은 수천명에 달했다. 노애의 권세가 막강해지자 그로부터 벼슬을 얻으려는 빈객과 가신들만 해도 수천 명이 넘게 되었다. 시황제 7년에 장양왕의 생모인 하 태후가 죽었다. 정부인(正夫人)이 아니었으므로 하 태후 단독으로 두(杜: 長安의 남동)의 동쪽에 묻혔다. 그녀의 부군인 효문왕은 정부인 화양 태후와 수릉(壽陵: 長安의 북동)에 합장되었다. 아들 장양왕은 지양(芷陽: 長安의 동쪽)에 묻혔다. 하 태후가 두의 동쪽에 묻힌 것은 그렇게 유언했기 때문이었다. [동쪽으로는 나의 아들을 서쪽으로는 나의 부군을 바라보고 싶다. 백 년 뒤에는 이 부근에 1만 호의 읍이 생길 것이다.]
시황제 9년이었다. 노애를 고발하는 자가 있었다. [사실 노애는 환자(宦者)가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태후와 사통 난행하더니 두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그 자가 내시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더욱이 그 자는 태후와 짜고 '왕이 죽으면 우리 아들을 후사로 삼자'고 큰소리쳤답니다.] 진왕은 진노했다. 관리에게 명하여 진상을 자세히 조사해 올리도록 했다. 파악된 실상으로는 상국 여불위도 노애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진왕은 우선 9월에 노애를 비롯하여 삼족을 멸해 버렸다. 물론 태후가 낳은 두 아들도 죽여 버렸다. 노애의 가신들은 모두 그 가산을 몰수한 뒤 촉(蜀) 땅으로 내쫓았다. 진왕(秦王: 始皇帝)은 상국 여불위까지 주살하려 했으나 선왕(先王)을 섬긴 공로가 크며 또 빈객과 논객 중에 상국을 변호하는 자가 많아 차마 처벌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시황제 10년 시월에 상국 여불위를 파면했다. 제나라 사람 모초(茅焦)가 태후 축출의 부당함을 들어 진왕을 설득해 옹 땅에서 수도 함양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진왕은 여불위를 함양에서 자기 소령(所領)인 하남으로 떠나가게 했다. 일 년쯤 뒤였다. 제후의 빈객들과 사신들이 문신후 여불위를 만나기 위해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을 진왕은 들었다. [생각만 있다면 언제라도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세력이다. 제거해야겠다.] 염려된 진왕은 문신후에게 이런 편지를 내려보냈다.
- 그대는 진나라에 어떤 공로가 있기에 하남에 봉을 받아 10만 호의 식읍(食邑)을 차지하고 앉았소? 거기에다 그대는 진나라와 또 어떤 혈연이라도 지어졌기에 중보라는 과분한 칭호를 받고 있는 거요? 과인으로서는 이해할 길이 없소. 그러니 그대는 즉시 가족과 함께 촉(蜀)으로 옮겨 가서 사시오.
여불위는 속으로 짐작했다. 자신의 권세가 점점 침범되어 쇠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결국은 내 아들의 손에 주살될 것인가......!] 여불위는 마침내 스스로 짐독(짐새의 毒, 혹은 毒酒)을 마시고 죽었다. 진왕은 촉으로 내쫓았던 노애의 가신들을 다시 함양으로 돌아 오게 했다. 시황제 19년에 태후가 죽었다. 시호를 제태후(帝太后)라 칭하고, 장양왕과 함께 채양(芷陽)에 합장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여불위와 노애는 존귀하게 되어 봉을 받았고, 더구나 여불위는 문신후로 불려졌다. 노애가 내시가 아니라고 고발되었을 때 물론 노애도 그 소문을 들었다. 진왕은 좌우 신하들에게 확실한 물증을 수집해 오도록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아직 그 사건 발표는 보류되고 있었다. 그 때 진왕은 옹 땅으로 가서 교사(郊祀: 교외에서 천자가 하늘에 제사지내는 일)를 지내려 했다. 노애는 왕이 자신을 주벌하러 오는 줄 알고 화 입을 것이 두려워 자기 무리들과 공모해서는 반란의 채비를 했다. 태후의 옥새를 도용해 옹의 기년궁(기年宮)에서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격노한 진왕은 즉시 친위대를 보내 노애를 공격했다. 노애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왕의 친위대는 끝까지 노애를 추적했다. 드디어 호치(陜西省 乾縣 동쪽)에서 그를 잡아 목 베고, 그의 일족도 몰살시켰다. 여불위도 그 사건으로 인하여 몰락했었다. 공자의 이른바 문(聞: 표면으로는 그럴 듯하게 들리나 내용은 부정한 인간)이라는 뜻은 여불위와 같은 사람을 지칭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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