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21. 염파.인상여열전 廉頗.藺相如列傳
인상여는 강대한 진나라에 대하여 자기의 뜻을 마음껏 발휘했고 한편으로 염파에게는 자신을 낮추어 그의 주군에게 몸을 바쳤다. 그래서 그 주군과 함께 제후들에게 존경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제21에 <염파.인상여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염파는 조나라의 훌륭한 장군이다. 조나라 혜문왕 16년에 염파는 조나라 장군이 되어 제의 진양(晋陽: 陽晋의 잘못으로 山東省 曹縣 북쪽)을 공격해 크게 공략한 공으로 벼슬이 상경(上卿)에 이르렀다. 제후들에게는 그의 용맹 또한 잘 알려져 있었다. 인상여는 조나라의 환관이었으며 또한 영(令: 大臣)인 목현(목賢)의 가신이 되었다. 조의 혜문왕이 초(楚)의 화씨벽(和氏璧: 卞和가 山中에서 얻어 楚王에게 바친名玉)을 손에 넣었다. 진의 소공이 이 소식을 듣고 진나라 15개의 성시(城市)를 주는 대신 그 벽을 보내 주었으면 하고 청원했다. 조왕은 대장군 염파와 여러 대신들을 불러 상의했다.
[벽을 진나라에 주어 보았자 성시를 얻지 못할 것이며 결국 속임수에 넘어가 벽만 빼앗기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벽을 보내지 않으면 그것을 핑계로 침공해 올텐데 그 점 역시 근심스럽습니다.] 의견들이 분분했다. 그래서 방침을 확정짓지 못한 채 일단 진나라로 회답 사신을 보내 보기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사안이 무척 중차대한지라 누구를 사자로 보낼 것인가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때 환관의 영인 목현이 나섰다. [저의 가신 중에 인상여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왕이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오?] [한때 제가 죄를 짓고 몰래 연나라로 도망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가신인 인상여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께선 연왕과 어떤 연고로 알게 되었습니까' 하기에, '일찍이 왕을 모시고 연으로 갔다가 국경 부근에서 연왕을 만났는데 그 때 가만히 내 손을 잡으며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고 대답해 주었지요. 그 때 상여가, '그것은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지금 당신이 도망해 연으로 가면 필시 당신을 묶어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전날 연왕이 당신과 사귀고자 한 것은 조는 강하고 연은 약하기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미리 다짐해 둔 것이고, 지금 형세는 당신으로 인해 조나라가 화를 낼 것을 두려워하여 절대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당신은 조왕께 웃통을 벗고 부질(斧質: 處刑하는 데 쓰이는 도끼와 臺)에 엎드려 처벌을 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혹시 형벌을 면하는 수도 있으니까요' 하며 충고했습니다. 그 때 저는 상여의 충고대로 했더니 다행히 대왕께선 용서해 주신 데다,속으로 인상여란 인물이 대단한 현사란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를 불러서 물어 보는 게 좋겠소.] 그렇게 되어 인상여가 불려 왔다. 왕이 물었다. [진왕이 15개의 성시를 과인의 벽과 교환하자고 하는데, 어떻소. 주어야 옳겠소, 아니면 거절하는 게 옳겠소?]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진나라는 조나라보다 강하니 허락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진왕이 과인의 벽만 챙기고 성시를 돌려 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하는 얘기 아니겠소.] [진나라가 먼저 벽과 성시를 교환하자고 말했으니 만일 조에서 그 조건을 거절하게 되면 잘못은 조나라에 있게 됩니다. 대신 조에서 벽을 주었는데도 진이 성시를 내주지 않으면 잘못은 진나라에 있게 됩니다. 그러하니 두 계책 중 오히려 벽을 주어 버리는 계책을 선택함으로써 잘못을 진나라에 지우는 편이 낫다고 판단됩니다.] [결국 가만히 앉아 벽만 빼앗기는 결과가 되겠구려.] [사신을 일단 보내시지요.] [그토록 어려운 심부름을 과연 누가 하겠소?] [대왕께서 적당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되신다면 저를 사신으로 보내십시오.] [그대가?] [성시가 조의 손으로 들어오면 벽을 진에 두고 올 것이고 진이 성시를 주지 않으면 벽을 다시 조나라로 가져오겠습니다.] [그조차 자신은 없지만 별수가 없소. 그대가 가 보시오.]
그렇게 되어서 인상여는 벽을 받들어 서쪽 진나라로 건너갔다. 진왕이 장대(章臺: 秦 王城 內의 臺名, 陜西省 長安縣)에 앉아 상여를 거만하게 굽어보았다. 상여가 벽을 받들어 진왕에게 올리자 진왕은 입이 째지게 기뻐했다. 좌우에선 만세 소리까지 들렸다. 모두들 몹시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누구의 입에서도 15개의 성시를 가져가라는 말이 없었다. 진왕은 자기 손으로 직접 벽을 쓰다듬으며 좌우 군신들과 궁녀에게도 만져 보게 하며 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인상여는 진왕이 조나라에 성시를 돌려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음을 눈치챘다. 인상여가 진왕에게 말했다.
[어떤 옥에라도 티가 있기 마련이지요.] 다시 벽을 살펴본 진왕은 의외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과인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는구려.] [어디 제게 주어 보십시오.] 벽을 돌려 받은 인상여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궁중 기둥에다 몸을 의지하고는 머리카락이 치솟아 관을 찌르도록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질렀다. [잘 들으시오! 대왕께선 벽을 얻을 욕심으로 사자를 시켜 조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물론 조나라 군신들은 의논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진은 탐욕하며 자신의 강함만 믿고 속임수로 벽을 구하고 있는 것 같다. 진이 벽을 대신해 성시로 보상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소신은 진나라에 벽을 주자고 간청했습니다. '보잘것 없는 서민의 교제에도 서로 속이지 않는데 하물며 진나라 같은 대국이 속임수야 쓰겠습니까. 믿고 줍시다.' 그 결과 생각을 바꾸신 조왕께선 닷새 동안 목욕 재계하고 저를 시켜 벽을 받들어 삼가 진나라 궁중으로 보내게 했던 바입니다. 말하자면 대국의 위엄에 대한 최소의 경의 표시를 한 뒤 벽은 진나라에 도착됐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도착해 보니 대왕께선 벽을 가져온 사신을 빈객으로 대우하기는커녕 예절 없이 신하처럼 대하며 벽을 일개 궁녀에게까지 돌려 희롱했습니다. 그런 대왕의 행동에서 보상으로 성시를 줄 리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제가 벽을 도로 돌려 받았던 것입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저를 겁주어 벽을 뺏으려 하시겠다면 이 벽과 함께 제 머리를 부딪쳐 깨고 말겠습니다!] 정작 인상여가 기둥을 노려보자 진왕은 황급히 말렸다. [가만!] 실상은 인상여의 머리가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게 아니라 벽이 깨어진다는 사실을 훨씬 겁냈다. [무엇입니까?] [15개의 도읍을 조나라에 돌리겠소. 어서 지도를 가져오너라.] 관리가 진나라 지도를 가져오자 진왕은 여기저기에다 손가락으로 찍었다. 그 역시 속임수임을 단정한 인상여는 진왕에게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화씨벽은 천하가 공동으로 전하는 보배입니다. 누구나 아끼는 천하의 명옥입니다. 조나라 역시 이 벽을 아꼈으나 진왕의 위엄이 두려워 감히 바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왕께 이 벽을 보낼 때 닷새 동안이나 재계했습니다. 이것을 받는 대왕 역시 닷새 동안 마땅히 재계하고 구빈(九賓)의 예(禮: 王이 빈객에 대해 행하는 9가지 儀禮)를 궁정에서 행해여만 합니다. 그제서야 저는 감히 벽을 올리겠습니다.] 진왕은 체면상 벽을 강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5일 동안 재계할 것을 약속했으며 상여를 광성전사(廣成傳舍)에 머물게 했다. 인상여는 자신의 종자 한 사람을 조용히 불렀다. [너는 이 벽을 품 속에 몰래 숨겨 가지고 가만히 진나라를 빠져 나가거라. 남루한 옷일수록 좋다.] 눈치를 챈 종자가 물었다. [벽은 조나라가 다시 찾게 될지는 모르나 주인님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벽이 조나라로 몰래 돌아가고 난 후였다. 진왕은 닷새 후 구빈의 예를 궁중에서 베풀며 인상여를 인견했다. [과인은 그대가 일러준 대로 모두 이행했소. 벽을 돌려 주오.] [진나라의 목공(목公) 이래로 20여 명의 군주가 계셨으니 아직까지 한 분도 약속을 지킨 분이 없었습니다. 소신의 입장에서는 대왕에게 속고 조나라를 저버리게 될까 그것만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벽을 가지고 몰래 조나라로 돌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무어라고!]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합니다. 지금이라도 대왕께서 단 한 사람의 사자라도 조나라에 보내면 지체없이 벽을 받들고 올 것입니다. 강한 진나라가 먼저 15개의 도성을 갈라 조에게 넘겨 준다면 어찌 감히 조나라가 대왕에게 벽을 내놓지 않는 죄를 짓겠습니까.] [무엄하다! 저자를 당장 탕확(삶아 죽이는 刑에 쓰는 다리없는 큰 가마)에 처해야 겠다.] [아아, 우리가 속다니!] 근신들이 분노하고 탄식했다. [소신이 대왕을 속였으니 그 죄 속어 마땅합니다. 다만 저를 죽이시더라도 충분히 상의한 후에나 하십시오.] 인상여를 일단 끌어낸 후 진왕은 근신들과 상의했다. [지금 인상여를 죽인다고 해도 이미 벽은 얻을 수 없는 게 아니겠소?] 근신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모두 제 정신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렇습니다. 그로 인해 진과 조의 우호만 끊어지고 말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약속만 지켰다면 어찌 조왕이 한 개의 벽 때문에 진을 속이겠는가?] [그렇다면 오히려 상여를 후대하여 조나라로 돌려 보내지요.] [그 편이 나을 것 같다.]
인상여가 궁중에서 빈객의 예우를 다 받은 후 마침내 귀국이 허락되었다. 상여가 귀국하자 조왕은 몹시 기뻐했다. 현명한 인물이 사신으로 갔기 때문에 왕을 욕보이게 하지 않았으며 보물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왕은 인상여를 상대부(上大父)로 삼았다. 진나라는 역시 성시를 조나라에 주지 않았고 조나라 역시 벽을 진나라에 주지 않았다. 그 후 진은 조를 습격해 석성(石城: 河南省 林縣 남쪽)을 빼앗았다. 다시 이듬해에는 조의 병사를 2만 명이나 죽인 뒤 진왕은 조왕에게 고했다.
- 그대와 우호하고 싶소. 서하(西河) 남쪽 면지(면池)에서 회합했으면 하오.
조왕은 두려웠다. 공연히 회합하러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 때 염파와 인상여가 상의한 뒤에 조왕을 달랬다.
[가십시오. 가지 않으면 조나라는 나약하고 비겁하다는 평판만 듣습니다. 소신이 봉행하겠사오니 걱정 마시고 가시는 게 옳겠습니다.] 인상여가 간청하자 조왕도 그제서야 갈 것을 허락했다. 염파가 국경까지 나와서는 조왕과 작별하기 직전에 말했다. [왕께서 회견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도정은 30일입니다. 만일 30일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으시면 청컨대 태자를 왕으로 모셔 진나라의 야망을 끊도록 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좋소. 가상한 결의요.] 드디어 조왕 일행은 떠났다. 곧 면지에서 진왕과 회합하게 되었고 술에 얼큰해진 진왕이 소리쳤다. [과인이 듣기로 조왕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과인에게 거문고를 한 번 탄주해 줄 수 없겠소?] 조왕은 인상여의 눈짓을 받은 후 할 수 없이 거문고를 뜯었다. 진나라 기록관이 나와서 소리쳤다. ['모년 모월 모일 진왕은 조왕과 회음(會飮)하고 또 조왕에게 거문고를 타게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번에는 인상여가 나와서 말했다. [조왕께서 가만히 들으니 진왕께서는 진의 음악을 잘 하신다고 하는데, 분부(질그릇으로 만든 악기. 원래 술이나 장을 담는 그릇이나 미개한 진에서는 악기로도 사용했다. 질장구)를 드릴 터이니, 함께 즐기고자 하십시다.] [나는 싫소!] 진왕은 화를 냈다. 그래도 인상여는 지지 않고 무릎을 꿇고 진왕에게 분부를 내밀면서 재차 간청했다. [싫다고 말하지 않았소!] 진왕은 더욱 화를 내었다. 인상여가 진왕을 쏘아보며 말했다. [대왕과 신의 사이는 다섯 걸음밖에 안 됩니다. 제 목을 찌른 피가 대왕을 적실 수도 있지요] 〔자신을 희생해 진왕을 죽일 수도 있다!] 진왕의 좌우에서 상여를 베려 하자 상여가 먼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물러서!] 사태가 긴장되자 진왕은 하는 수 없이 조왕을 위하여 질장구를 때렸다. 인상여가 조나라 기록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적어 놓게나. 모년 모월 모일에 진왕이 조왕을 위하여 분부를 쳤다고.] 진의 근신들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조나라가 15개의 성시(城市)를 진왕에게 바쳐 진왕의 장수를 축복해 주시기를 청원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인상여가 조왕에게 눈을 껌벅인 뒤 대신하여 말했다. [좋습니다. 오는 정성이 있으면 가는 게 있고 가는 정성이 있으면 반드시 오는 게 있습니다. 그렇게 할 터이니 진에서도 수도 함양을 바쳐 조왕의 장수를 축복해 주시기를 청원합니다.] 그 때쯤 가서는 진의 군신들도 기가 질리는 모양이었다. 진에서 데리고 간 병사들만큼은 조나라에서도 데려와 진을 치고 있었으므로 진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결국 진왕은 잔치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조왕을 이길 수가 없었다. 회합은 흐지부지 끝나 각자 귀국했다. 조왕은 인상여의 공적을 크게 평가했다. 그래서 상경(上卿)의 직위에 앉혔다. [음...... 이것 보게나!] 뜻밖에도 염파가 발끈했다. 자신의 직위보다 인상여가 높은 직위에 있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나는 말일세. 조나라의 장군이 되어 성을 공격하고 들판을 달려 싸워 온 커다란 공이 있지 않나. 상여는 본래 비천한 출신인데다 그까짓 혀끝 몇 번 잘 놀린 대가로 어째서 상경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가. 나는 그 자의 밑에 있는 것이 부끄러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 언제라도 만나기만 하면 그 자를 크게 모욕 주어야지!] 인상여가 그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가급적 염파와 만나려 하지 않았다. 조정에 나가야 할 일이 있어도 인상여는 병을 핑계로 함께 하는 자리를 피했다. 서열을 다투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마차를 몰아 가다가 먼발치에서 염파를 발견하면 골목으로 피해 버렸다. 인상여의 가신들이 불평했다. [저희들이 친척을 떠나와서 부모처럼 당신을 섬기고 있는 까닭은 당신의 높으신 뜻을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염파와 같은 서열에 있는 당신께서 그토록 욕을 당하시며 그가 두려워서 숨기까지 하시니 가신인 저희들은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조차도 창피한 일이거늘 당신 같은 지위에 있는 분이 어찌 그토록 용렬한지요. 불초한 저희들로선 당신을 섬길 수가 없으니 물러가게 해 주십시오.]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린 인상여는 천천히 물었다. [그대들이 보는 염 장군은 어떤가?] [위세야 있지요.] [진나라 왕은 어떤가?] [그야 무섭지요.] [염장군과 진나라 왕을 비교해 어느 편이 더 무서운가?] [물론 진왕이 훨씬 두렵습니다.] [염 장군이 진왕을 어렵게 생각할 것 같은가?] [내심 두려워할 것 같습니다.] [그것 보게. 내가 진왕을 겁내던가?] [당신께선.......] [그토록 당당한 진왕의 위세 앞에서도 나는 눈썹 한 번 깜박거리지 않았네. 어디 그뿐인가. 바로 진의 궁중에서 진왕을 꾸짖고 그의 신하들까지 욕보인 나일세. 그런 내가 그까짓 염 장군 정도를 무서워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지만 피해 다니셨습니다.] [한 가지 물어 보겠네. 그토록 강대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르겠습니다.] [그건 오직 우리 두 사람 때문일세. 인상여와 염파 말일세.] [예에?] [비유하자면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워 힘을 탕진해 버리면 어떻게 되나.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하네. 내가 염파를 피하는 이유는 국가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수는 뒤로 미루었기 때문일세.] [아아, 주인님!] 염파도 그 말을 전해 들었다. 가시 회초리를 지고 인상여의 문전에 이르러 웃통을 벗어 사죄해 아뢰었다. [비천한 제가 상경의 그토록 깊은 뜻을 알았겠습니까. 몹시 꾸짖어 주십시오!] 그로 인해 두 사람의 우의는 통했다. 드디어 문경(刎頸)의 교(交: 목이 잘려도 회피하지 않을 정도의 막역한 사이)를 맺었다. 그 해에 염파는 동쪽으로 제나라를 쳐서 그 일군(一軍)을 격파했다. 2년이 지나 염파는 다시 제의 기(幾: 河南省 大名縣 남동)를 공략했다. 또 3년이 지나 염파는 위(魏)의 방릉(防陵).안양(安陽: 둘 다 河南省 安陽縣 부근)을 공격했고 제의 평읍(平邑: 河南省 南樂縣 부근)까지 평정하고 돌아왔다.
그 이듬해 조사(趙奢)가 진나라 군사를 알여(閼與) 부근에서 격파했다. 조사는 조나라 전조(田租)를 담당한 관리였다. 조세를 거둘 때 평원군의 집에서 조세 바칠 것을 거부했다. 조사는 단호했다. 평원군의 집사(執事) 9명을 의법 처단했다. 화가 난 평원군이 조사를 죽이려 했다. 조사는 겁내지 않고 대들었다. [당신께선 조나라의 귀공자〔王族〕입니다. 지금 만약 당신의 조세를 묵인해 공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국법이 침해될 것입니다. 국법이 침해되면 국가가 약화됩니다. 국가가 약화되면 제후들이 침략해 옵니다. 제후가 침략하면 조나라가 멸망합니다. 그 때 가서는 당신이 재산을 아끼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신같이 고귀한 신분이 공변된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 법대로 행하면 상하가 공평하게 되고 상하가 공평해지면 국가가 강해집니다. 국가가 강해지면 조나라는 견고해집니다. 당신은 국왕의 일족입니다. 어찌 천하 제후들이 그런 당신을 가볍게 보겠습니까?] 평원군이 그를 현자라 생각했다. 평원군은 왕께 아뢰어 그를 등용하게 했다. 조사는 국가의 부세를 맡아 보게 되었고, 국가의 부세가 크게 공평하니 백성은 부유해졌고 국고는 충실해졌다. 그 즈음에 진나라가 한나라를 치려고 알여에 진주했다. 조왕이 염파를 불러 물었다. [알여를 구원할 수 있겠소?] [구하기 어렵습니다. 길이 멀고 험난한 데다 길목마저 좁기 때문입니다.] 조왕이 이번에는 악승을 불렀다. 그러자 악승도 염파의 대답과 똑같았다. 다음에는 조왕이 조사를 불러 물었다. [비유해서 말씀드리자면 두 마리의 쥐가 작은 구멍 안에서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장군이 용감한 쪽이 이깁니다.] [그 묘하다.] 조왕은 조사를 장군으로 삼아 버렸다. 알여를 구원하기 위해 한단을 떠나 30리쯤 왔을 때 조사는 군사를 멈추며 전군에 군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누구라도 군사(軍事)에 관하여 간하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벤다.] 진나라 군사가 무안(河南省 武安縣)의 서쪽에 주둔하면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군사 배치를 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엄청나서 지붕의 기왓장이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척후병 하나가 돌아와 보고했다. [서둘러 무안을 구원해야 되겠습니다.] 조사는 두 말 않고 그 자리에서 척후병의 목을 베어 버렸다. 누벽을 더욱 견고히 쌓으며 28일 간이나 하는 일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진나라 간첩이 들어왔다가 잡혔다. 그러나 그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잘 대접한 후에 순순히 돌려 보냈다. 간첩이 돌아가서 조의 진중에서 겪은 일을 진장(秦將)에게 보고 하니 그도 몹시 기뻐했다. [국도에서 간신히 30리정도 떨어져 나와 누벽이나 쌓고 앉았으니 조장은 바보가 아닌가. 알여는 이미 조 땅이 아니군.] 그러나 조사는 간첩을 돌려 보낸 즉시 갑옷을 벗어 놓고 모두 경장(輕裝)을 시켜서는 재빨리 진군해 들어가 알여에서 50리쯤 떨어진 곳에다 진을 쳤다. 군진(軍陣)은 완성되었다. 정예 궁수들을 따로 빼돌려 본진과 멀리 있게 했다. 부장(副將) 허력(許歷)이 조사의 막사 앞에서 군사(軍事)를 간하겠다고 청했다. [들어오게.] [진나라 군중에서는 우리가 갑자기 여기로 이동한 사실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여를 급습하려는 진군의 속도가 결렬하고 빠를 듯합니다. 군세를 두텁게 하여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패합니다.] [고맙네.] [여기서는 북산(北山: 閼與 부근의 山)의 정상을 먼저 점거해 있는 자가 승리합니다. 틀림없이 진군도 도착 즉시 산정으로 오를 것입니다.] [자네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간했으니 저를 처형해 주십시오.] [물론이지. 한단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게. 그러나 지금은 아니네. 1만의 군사를 더 줄 터이니 자네가 먼저 산정을 점령하고 있다가 진군이 오를 때 때려 부수게. 아마 지금쯤 궁수들이 먼저 도착해 있을 걸세.] 허력은 신바람이 나서 1만의 군사를 몰라 북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조사의 군대가 알여에 도착한 지는 이틀 낮과 하루 밤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진군에서는 조군이 미리 와서 매복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허력의 말대로 진군은 북산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산정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허력이 거느린 군대가 삽시에 산정에서 무방비 상태의 진군을 맹공했고 도망치는 진군을 조사가 가로막아 대패시켰다. 진군은 크게 격파당해 패주했다. 알여의 포위가 풀림으로써 비로소 조사가 개선하자 조의 혜문왕은 조사에게 호를 내려 마복군(馬服君)으로 삼고 허력을 국위(國尉:官名)로 삼았다. 조사는 이렇게 되어 염파.인상여와 지위가 같아졌다. 개선 직후에 허력이 조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전날 군사 문제에 대해 간했는데도 어째 저를 처형하지 않았습니까?] [뻔히 목이 날아갈 줄 알고 간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대의 권고를 받아들였고 또 1만의 군사를 맡긴 것이다. 나는 승리할 줄 알았다.]
그 후 4년에 조의 혜문왕이 죽고 아들 효성왕(孝成王)이 섰다. 그 7년, 진군이 장평(長平)에서 조군과 대치했다. 이 때는 이미 조사는 죽고 인상여는 병이 위독했다. 그래서 조에서는 염파를 장군으로 삼아 진을 치게 했다. 조군은 자주 진군에게 격파당했다. 염파가 장군이 되면서는 진군이 공격해 오더라도 나가 싸우지 않고 누벽만 견고히 한 채 가만히 기다렸다. 진나라에서는 간첩을 풀어 조왕과 염파를 이간질했다. [진군에서는 이제 늙은 염파 따위는 겁내지도 않습니다. 거 보십시오. 싸움을 겁내어 성문을 닫고 나오지도 않습니다. 실상 진나라에서 겁내고 있는 것은 마복군의 아들 조괄(趙括)이 염파 대신 장군이 되지 않나 하는 일입니다.] 조왕은 간첩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즉시 조괄을 염파 대신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 때 인상여가 서둘러 나서서 간했다. [안 됩니다. 왕께서는 지금 조괄의 명성만 듣고 장군으로 쓰시려 하는데 그것은 마치 거문고의 괘(줄의 기둥)를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뜯는 것과 같습니다. 깨어지기 쉽상이지요. 조괄은 그저 자기 부친이 남긴 병법의 서전(書典)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장에서의 임기 응변하는 조처는 도무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왕은 듣지 않고 조괄을 장군으로 삼고 말았다. 사실 조괄은 젊은 시절부터 병법을 익혀, 병사(兵事)를 논하는 일에는 자신을 당할 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찍이 부친 조사와도 자주 병사를 논했다. 그 때에도 자신의 논리 정연함에 부친도 대꾸할 말을 잊은 듯했다. 그러나 조사는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옳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조괄이 모친의 남편 조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당신은 아들의 변론에 꼬박꼬박 지면서도 한 번도 잘 한다는 말씀은 해 주지 않습니까?] [모르는 말씀이오. 전쟁터란 목숨을 거는 장소요. 어찌 전쟁의 승패가 논리대로만 가겠소. 그런데도 아이는 병사(兵事)를 너무 쉽게 말하며 논리대로 결판이 날 것으로 믿고 있소. 부디 나라에서 조괄을 장군으로 삼지 말았으면 좋겠소. 만약 조나라가 파멸할 때 그 군대의 장군은 필시 괄이 될 것이오.] 조괄이 출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의 모친은 조왕에게 글을 올렸다.
- 괄을 장군으로 삼지 마십시오.
왕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괄의 모친을 불러 물었다. [무슨 까닭이라도 있소.] [처음 제가 괄의 아비를 섬길 때 그분은 장군이었습니다. 몸소 음식을 받들어 식사를 올리는 자가 열 명이 넘었으며 벗으로 사귀는 자가 백을 넘었습니다. 대왕께서 혹은 왕실에서 상으로 내려 주신 물품들이 허다했으나 집으로는 한 가지도 가져다 들이지 않고 모두 군리(軍吏)와 사대부들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출전을 명령받은 날에는 가사를 돌보기는 커녕 아예 집에는 들르지도 않고 곧바로 출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들 괄은 아비와 너무나 다릅니다. 장군이 되어 동면(東面 :上位者의 位置)하여 군리(軍吏)를 소집하여도 누구 한 사람 그의 말을 존경하여 우러러보는 자가 없습니다. 왕께서 내려 주신 금백(金帛)은 집으로 가져와 저장하고 이익이 될 만한 전택(田宅)은 잘 보아 두었다가 돈만 생기면 사들입니다. 아비와 자식의 생각이 그토록 틀립니다. 저의 생각도 괄은 장군의 인품이 못 됩니다.] [어미는 이를 내버려 두오. 나는 이미 결정했소.] 그러자 괄의 모친은 다시 졸랐다. [굳이 대왕께서 제 자식을 전장으로 보내시려면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만약 제 자식이 나중에 장군의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저까지 그 죄에 연좌되지는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건 약속하겠소.]
조괄은 염파를 대신해 장군이 되자 군령을 모두 바꾸고 군리(軍吏)들도 갈아 치웠다. 드디어 진군과 대치했다. 진의 장군 백기(白起)는 조괄이 장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병(奇兵: 기이한 꾀로 불시에 적을 습격하는 군대)을 놓아 조군을 마구 흔들었다. 패주하는 척하다가 다시 돌아와 조군의 양도(糧道)를 끊으니 조나라 군사는 둘로 차단되었다. 본진에서 양도가 잘라져 나갔으니 조군은 40여 일이 지나도록 양식을 구할 수가 없었다. 떨어져 나간 다른 쪽 군사들도 이미 조괄에게서 이반했는지 구원해 오기는커녕 모조리 도망쳐 버렸다. 굶어 죽든가 일전을 불사하든가 해야 했다. 드디어 조괄도 선두에 서서 포위망을 뚫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진군이 쏜 화살을 맞고 즉사했다. 남은 수십 만의 조군은 순순히 진군에 항복했다. 진군은 이들이 반역할까 두려워 땅을 파고 모조리 생매장했다. 조괄의 출병을 계기로 죽은 조나라 군사가 45만 명이었다.
이듬해 조나라는 진군에 의해 수도 한단까지 포위되었다. 한단은 철저히 포위되어 일 년이 넘도록 조왕은 탈출할 길이 없었다. 마침내 조나라는 초와 위의 구원군에 의해 한단의 포위를 풀 수가 있었다. 조나라로서는 처절한 패배였다. 조나라 장정들 거의가 죽었다. 조왕은 조괄의 모친과의 약속 때문에 그녀를 주살하지는 않았다.
한단의 포위가 풀린 지 5년 후였다. 연나라 율복(栗服)이 연왕에게 계략을 아룄다. [조나라 장정들은 장평 싸움에서 씨가 말라 그 고아들은 아직 어린아이들입니다. 이 때 조나라를 치면 쉽게 정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연에서는 군사를 일으켰다. 조나라에서는 다시 염파를 장군으로 삼았다. 염파가 출전하자 연군은 '호'에서 크게 격퇴되었다. 율복마저 죽인 뒤 드디어 연나라마저 포위해 들어갔다. 연에서는 다급했다. 5개의 성시를 조에 할양해 주고 가까스로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조에서는 염파의 공로를 인정하고 위문(尉文: 邑名)의 땅을 봉한 뒤 신평군(信平君)으로 삼았으며 임시 상국(相國)에 있게 했다.
이보다 앞서서 염파가 장평에서 파면되어 권세를 잃고 돌아와 있을 때였다. 오래 된 식객들조차 하나씩 둘씩 떠나가 버렸다. 그런데 다시 장군으로 등용되자 떠났던 식객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화가 난 염파가 소리질렀다. [신물이 난다. 식객들은 썩 물러가라!] 그랬더니 한 식객이 태연하게 말했다. [아, 당신께선 어찌 그리도 세상 이치를 모르십니까. 천하 사람들이 시장으로 가는 골목으로 모여드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께서 권세가 있으니 당신을 따르고 권세를 잃으면 또 떠나갈 뿐입니다. 그런 인심에 원한을 품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6년이 지나고 조에서는 염파가 위나라 번양(繁陽)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그 즈음에 조나라에서는 또 효성왕이 죽고 아들 도양왕(悼襄王)이 즉위해 염파를 장군에서 파직시키고 악승(樂乘)을 대신 장군에 임명했다. 분노한 염파는 악승을 습격했다. 역부족이었던 악승은 도망치고 말았다. 염파 또한 조나라에 머물 수가 없어 위나라 대량으로 달아났다. 조나라에서는 이듬해에 이목(李牧)을 장군으로 삼았다. 이목은 연의 무수(武遂: 河北省 徐水縣 서쪽).방성(方城: 河北省 固安縣 남동)을 공략했다. 염파는 오랫동안 대량에 살고 있었으나 위나라로선 염파를 신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그 동안 조나라는 진나라의 침공을 자주 받아 몹시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조왕은 아무래도 염파를 다시 불러 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조왕은 우선 사자를 시켜 염파의 근황을 살펴오게 했다. 지금도 장군으로 등용시킬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 오게 한 것이다. 그런데 염파의 원수 중에 곽개(郭開)라는 자가 있었다. 염파가 다시 중용되면 곽개로서는 큰일이었다. 그래서 염파를 염탐하러 가는 왕의 사자에게 많은 황금을 쥐어 주며 돌아와서 염파를 중상 모략하게 만들었다. 조의 사자는 위나라로 가서 염파를 만나 보았다. 염파는 사자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엿보러 왔는지를 눈치챘다. 그래서 염파는 짐짓 한 끼 식사 때 한 말의 쌀밥과 열 근의 고기를 먹어 보였다. 또한 갑옷을 입고는 말을 달려 보였다. [아직도 쓸 만하다.] 사자는 생각했다. 돌아와 왕께 보고했다. [비록 몸은 늙었으나 식욕이 왕성했고 비호같이 말을 타고 달립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곽개로부터 받은 뇌물 생각이 나서 얼른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시해 보인 일에 불과했습니다. 저와 함께 앉아 있던 잠깐 사이에 세 번씩이나 변소에 다녀왔으니까요.] [결국은 망령이 들었다는 얘긴가?] 조왕은 사자의 말에 염파를 부를 것을 포기했다. 초나라에서도 염파가 위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초청했다. 잠깐 초나라 장군에 임명되었지만, 의욕도 없었고, 의욕이 없으니 공로 역시 세울 일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조나라에 대한 미련뿐이었는지 항상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나는 오직 조나라 군사를 부려 보고 싶다!] 염파는 더 이상 쓰여지지 못한 채, 끝내 수춘(壽春)에서 죽었다.
이목(李牧)은 북쪽 변방을 지키던 명장이다. 일찍이 대(代)의 안문(山西省 代縣 북서)에 거주하며 흉노에 대한 경비를 맡고 있었다. 형편에 따라 임의로 관리를 두어 시중의 조세를 거두어 막부(莫府: 將軍의 府署)로운반해 놓고 사졸들의 비용으로 충당했다. 날마다 소를 몇 마리씩 잡아 병사들에게 먹이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히게 했다. 많은 간첩을 곳곳에 풀어 놓는 대신 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 놓기는 가급적 삼가도록 했다. 그리고 병사들을 후대했다. 또한 이런 군령을 내려놓고 있었다. [만일 흉노가 침입해 약탈하려거든 급히 가축과 가재들을 거두어 성내로 들어오도록 하라. 감히 흉노와 대적해 싸워 포로로 잡아 오든가 하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 이목의 군령은 대체로 잘 지켜졌다. 이렇게 몇 년 지냈더니 역시 잃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흉노들은 이목을 습격해도 소득이 없다 보니 은근히 심술이 났다. 이목을 싸움 못 하는 장군이라 욕했다. 심지어 변방 이목의 군사들조차 우리 장군은 겁쟁이라며 빈정거렸다. 그런 소문이 조왕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만무했다. 이목을 꾸짖는 서찰이 도착했다. 그렇지만 이목의 망침은 변하지 않았다. 이목이 겁쟁이라는 비방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조왕도 참지 못하고 이목을 불러들인 뒤 다른 사람을 대신 변방의 장군으로 삼았다. 장군이 바뀌면서 흉노에 대한 대응 방침 역시 바뀌다 보니 조나라 군사는 일 년 내내 흉노가 쳐들어올 적마다 나가서 싸워야 했다. 그 결과 싸울 때마다 전투에 불리해질 경우가 많았으며, 가축과 가재를 잃어야 했고, 백성들은 농사를 지을 수도 목축을 할 수도 없었다. 변방 백성들의 새 장군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이목을 다시 보내 달라고 성화였다. 이를 눈치챈 이목은 병을 핑계삼아 문을 닫고 들어앉았다. 물론 벼슬도 사양했다. 조왕은 거의 강제로 이목을 재기용했다. 그 때 이목은 분명히 못박았다. [설사 대왕께서 저를 재등용하시더라도 복무 방침에는 전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좋으시다면 현지로 부임하지요.] [좋소. 그대로 하시오.] 이목은 다시 부임했다. 군령은 예전처럼 내려졌다. 흉노는 몇 해 동안 또 소득이 없었고 이목을 겁쟁이라고 투덜거렸으며, 백성들은 부유해졌고 막부의 창고는 그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목은 밑의 부장 하나를 불러 물었다. [요즘 우리 병사들의 사정은 어떤가?] [모두 배불리 먹으며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놀이처럼 즐기고 있습니다만, 전쟁이 없으니 상 받을 일이 없다면서 얼마만큼은 불평들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나를 겁쟁이라 부르고들 있겠지?] [그 점 역시 전과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크게 한 번 전투를 벌여 보자.] [예에?] [군량미도 풍족하고 사기도 왕성하니 때가 된 것 같다.] 이목은 전과 달리 변화된 군령을 전격적으로 전군에 시달했다. 전차 1천3백 대를 가려 뽑았고 기마 1만 3천 필을 가려 뽑았다. 정예 용사 5만 명을 엄선하고 심만의 궁수들을 동원했다. 그런데 이목의 용병술은 특이했다. 들판에다 가축들을 크게 방목하고 백성들을 들판에 가득차게 했으며 전투 연습을 보란 듯이 요란스럽게 했다. [다만 흉노가 침입하거든 조금씩 싸우면서 패하는 척 성내로 도망쳐라. 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벤다.] [그렇다면 전과 달라진 전술이라고는 조금씩 싸우다 패퇴하는 것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목적은 선우(單于: 匈奴의 王)를 끌어 내는 데에 있다. 그 땐 실컷 싸워라.] 얼마 뒤 몇 천의 흉노가 침입했다. 병사들은 요란스런 군사 훈련을 하다 말고 얼마쯤 싸우다가 기겁을 한 것처럼 성내로 쫓겨 들어왔다. 조군의 소식은 곧장 선우의 귀로 들어갔다. [우리를 치겠다며 그 자들이 전투 연습을 해? 이목이 겁쟁이란 소리는 듣기 싫었던 게지. 어쨌든 사정이 그렇다면 내가 몸소 나가 싸움에 응해 줄밖에.] 선우는 대군을 이끌고 이목의 성으로 쳐들어왔다. 그러나 이목은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진(陣)을 마치 새가 양날개를 편 것처럼 펼쳐 놓았다. 그것은 이목이 창안한 기진(奇陣: 奇兵의 陣營)이었다. [적의 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흉노 부장의 말에 선우는 발칵 화를 냈다. [이목 따위가 무슨 신기한 군진(軍陣)을 펴겠는가. 전군이 한꺼번에 몰아쳐라!] 흉노군 수십 만이 함성을 지르며 몰아쳐 오는 앞에서 이목의 군사는 이상한 형태로 진세가 바뀌었다. [엇! 조군이 눈앞에서 없어졌습니다!] [아닙니다. 뒤쪽으로 나타났습니다!] [엇! 옆에도!] 흉노들은 혼비 백산했다. 이 전투에서 흉노 10만여 기(騎)가 조군에게 몰살당했다. 조군은 여세를 몰아 담람(담襤: 匈奴의 國家名)을 멸하고 동호(東胡).임호(林胡: 모두 燕의 북쪽에 살며 남방을 위협하던 胡族)까지 격파해 항복시켰다. 선우는 멀찍이 도망쳐 버렸다. 그 뒤 10년 동안은 흉노가 감히 조나라 변경의 성시에 접근하지 못했다. 조의 도양왕 원년에 염파는 이미 위나라로 망명해 들어갔으므로 조에서는 이목을 시켜 연을 공격케 했고 무수.방성을 함락시켰다. 2년 뒤에는 조나라 장군 방훤(龐훤)이 연군을 끼쳤고 극신(劇辛: 본시 趙사람이었으나 연을 섬겼다)을 죽였다. 7년 뒤에는 진군이 조나라로 쳐들어와 조장 호첩(扈輒)이 무수성(武遂城)에서 전사했다. 죽은 조군이 10만이었다. 조나라는 이목을 불러 내서 대장군으로 삼았다. 의안(宜安: 趙邑, 河北省 孤城縣 남서)세서 진군을 맞아 크게 깨뜨리고 진장 환의(桓의)를 패주시켰다. 조에서는 이목을 봉하여 무안군(武安君)으로 삼았다. 3년 뒤 진이 파오(파吾)를 공격해 오자 이목이 이를 격퇴했으며 한.위의 침공도 막아 냈다. 조왕 천(遷) 7년에 진나라가 장군 왕전을 시켜 조로 쳐들어왔다. 조에서는 이목.사마상(司馬尙) 등이 이를 잘 막아 냈다. 진왕은 공략이 쉽지 않자 조의 총신인 곽개를 많은 황금으로 은밀히 매수해 이목과 사마상이 모반하려 한다고 참언하게 했다. 이에 조왕은 참언을 듣고 조총(趙총) 및 제의 장수 안추(顔추)를 이목 등과 교체하려 했다.
- 중상모략입니다. 신은 듣지 않겠습니다.
이목이 왕명을 따르지 않자 곽개가 다시 참언했으며 이에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몰래 이목을 체포해 목베어 죽이고, 사마상은 파직시켰다. 그 후 3개월 만에 왕전이 갑자기 조나라를 공격해 들어왔다. 조총은 맞아 죽고, 조왕 천과 그의 장군 안추는 사로잡혔으며, 드디어 조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죽음을 각오하면 용기가 솟아오르는 법이다. 죽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 죽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벽을 돌려 받아 진왕과 기둥을 번갈아 쏘아보며 그들을 꾸짖을 때의 형세는 오직 죽는 길밖에 없었다. 선비란 대체로 겁이 많고 감히 용기를 낼 줄도 모르지만 오로지 상여가 발분하자 그 위세는 적국을 뒤엎었다. 귀국 후에는 염파에게 양보의 미덕을 베품으로써 그의 명성은 태산보다 무거워졌다. 인상여야말로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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