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19. 범수.채택열전 范수.蔡澤列傳
위제(魏齊: 魏의 宰相)에게서 받은 모욕을 능히 참고 강한 진(秦)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세를 떨쳤다. 현인을 추천하여 그에게 지위를 양보한 두 사람이 있다. 그래서 제19에 <범수.채택열전>을 썼다. <太史公自序>
범수는 위나라 사람이며 자는 숙(叔)이다. 제후를 유세해 위나라 왕을 섬기고자 했으나 집이 가난해 노자를 마련할 수가 없었다. 그는 우선 위의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를 섬겼다. 수가가 위의 소왕(昭王)을 위해 제(齊)에 사신으로 갈 때 범수가 수행했다. 체류한 지 수개월이 지났으나 제의 회답을 얻지 못했다. 제의 양왕은 범수가 웅변이라는 인물됨을 듣고 사람을 시켜 금 10근과 쇠고기와 술을 내렸다. 범수는 이것이 나중에 문제가 될 줄 알고 쇠고기와 술은 받되 금은 돌려 주었다. 수가가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았다.
[이런 변이 있나! 범수 따위가 무엇 때문에 이런 후한 대접을 받는가. 이는 필시 위나라의 비밀을 제나라에게 고해 바친 대가일 것이다!]
이윽고 이들이 위나라로 귀국했다. 수가는 노여움을 품고 있다가 귀국하자마자 위나라 재상이며 실력자인 공자(公子) 위제(魏齊)에게 그런 사실을 일러 바쳤다. 일의 잘못됨이 범수에게 있었다고 덮어씌우기 위한 계략이었다. 위제 역시 불같이 노했다. 가신을 시켜 범수를 매질해 이를 뽑고 갈비뼈를 꺾게 했다. 조금만 더 얻어맞으면 목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죽은 척하고 누워 있자 사인들이 범수를 멍석에 둘둘 말아서 측간 구석에다 내다 버렸다. 그리고는 오줌 마려운 빈객들이 그에게 오줌 세례를 주게 했다. 그토록 범수를 철저하게 욕보인 이유는 국가 기밀을 누설한 자는 저렇게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범수는 멍석 속에 누워 자신을 지키는 사람에게 간청했다.
[나를 살려 줄 수 없겠소?] [내가 당신을 어떻게?] [이 곳으로부터 나를 탈출만 시켜 준다면 훗날 반드시 큰 은혜를 갚겠소.] [보상 때문은 아니지만...... 참으로 딱하게 됐소. 아무튼 기회나 봅시다.]
얼마 뒤 지키던 자가 위제에게 보고했다.
[저자가 죽은 듯합니다.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측간엘 갈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멀리 갖다 내다 버려라.]
위제는 취한 김에 쉽게 말해 버렸다. 그래서 범수는 일단 목숨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 후에 위제는 범수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잡아들이게 했다. 위나라 사람으로 정안평(鄭安平)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범수의 인물됨을 알고 있었던 터라 그를 데리고 일단 숨어 버렸다. 범수는 이름을 바꾸어 장록(張祿)이라 부르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에 진의 소왕의 알자(謁者:王의 接待官)인 왕계(王稽)가 위나라로 왔다. 정안평이 신분을 속인 채 하인이 되어 왕계를 모셨다. 왕계는 위나라를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정안평에게 지나가는 소리처럼 물었다.
[혹시 내가 서쪽〔秦〕으로 데리고 갈 만한 인물이 없던가.] 정안평은 기회란 바로 이 때다 싶어 대답했다. [마침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장록 선생이라는 천하의 현인이 있습니다.] [그를 데려오라.] [그분 역시 주인님을 뵙고 천하 형세를 논하고자 하나 그를 죽이겠다는 원수가 있어 감히 모셔 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심야에 가만히 데려오면 되잖은가?] 그렇게 되어 범수는 정안평의 안내를 받아 한밤중에 가만히 왕계를 만날 수가 있었다. 왕계는 담론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범수의 인물됨을 환히 알아 차렸다. [선생께선 이길로 물러가 삼정(三亭: 魏 國境의 亭名)에서 기다려 주시겠소?] 몰래 약속을 받은 범수는 가만히 물러갔다. 왕계가 위나라를 떠나 삼정으로 가서 범수를 수레에 태우고 남쪽을 들러 진나라로 들어갔다. 호관(湖關: 咸陽의 동쪽, 河南省 ?鄕縣의 동쪽)에 이르렀을 때였다. 일대의 거기(車騎)가 서쪽에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범수가 왕계에게 물었다.
[누구의 행차이옵니까?] [재상 양후께서 동쪽 현읍을 순찰하고 계시군요. 소개시켜 드릴까요?] [아닙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양후는 진나라의 정권을 독단으로 휘두르는 인물로 특히 제후국에서 오는 세객들을 유달리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저를 보면 반드시 욕보일 것이니 잠시 수레 속에 숨어 있겠습니다.] 얼마 안 되어 양후가 다가와 왕계의 수레를 멈추게 했다. [수고가 많네. 관동(關東: 函谷關의 동쪽)에는 별일 없던가?] [없습니다.] [그대는 제후국에서 세객 같은 자를 데려오진 않았겠지?] [구태여 데려올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들은 남의 나라나 어지럽히는 무익한 자들일 뿐이지.] 양후가 떠난 뒤에 범수는 왕계에게 말했다. [수레 속에 사람이 있지 않나 의심은 하면서도 수색은 하지 않더군요. 양후는 지모의 인사로 들었는데 뜻밖입니다.] 그러면서 내뺄 몸짓을 했다. [아니,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두고 보십시오. 양후는 곧 후회하고 반드시 되돌아올 것입니다. 멀찌감치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왕계가 10리쯤 갔을 때 양후가 기병들을 몰고 와 급하게 수레 속을 수색했다. [장록은 무서운 인물이다!] 왕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수레 속에 세객 따위는 없었으므로 양후는 기병들을 데리고 물러갔다. 왕계는 범수를 찾아 다시 수레에 태우고 함양(咸陽: 秦都, 섬西省)으로 들어갔다. 왕계가 사신갔던 일을 진왕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였다. [위나라의 장록 선생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진나라는 달걀을 쌓아 놓은 것보다 위태롭지만 내 말을 들으면 안태할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수레에 태워 데리고 왔으니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만두어라. 나는 세객 따위는 믿지 않는다.] 진왕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범수는 초라한 숙사에서 질나쁜 음식을 들며 한 해가 넘도록 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었다. 당시는 소왕이 즉위한 지 36년이었다. 그 동안 남쪽 초 땅의 언.영을 빼앗았고, 초왕이 진나라에 억류된 채 객사했었다. 또 동쪽으로 제의 민왕을 깨뜨리고 한때 제(帝)라 칭하다가 그만두었었다. 그리고 삼진(三晋: 韓.魏.趙)을 자주 괴롭혔다. 기고만장한 소왕이 세객의 말을 귀담아 들을 턱이 없었다. 양후와 화양군(華陽君)은 소왕의 모친인 선태후(宣太后)의 아우이고, 경양군(涇陽君)과 고릉군(高陵君)은 모두 소왕의 친동생들이었다. 양후가 재상의 자리를 차지했으므로 나머지 세 사람은 번갈아 가며 장군이 되어 봉읍을 받았다. 모두 태후와의 연고로 사가(私家)의 부유함이 왕실을 무색케 했다.
양후가 진의 장군이 되어 한.위를 넘어 제의 강수(綱壽: 山東省 寧陽顯 북동)를 쳐서 자신의 봉읍인 도(陶)를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범수는 이 때다 하고 진왕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 저는 '현명한 군주는 정치를 할 때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관직을 주고, 노고가 큰 자에게는 그 봉록을 후하게 하고, 공적이 많은 자에게는 그 작위를 높이고, 능히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그 관직을 높인다. 그런고로 능력이 없는 자는 감히 직을 맡지 않아야 하며, 능력 있는 자는 또한 그 재능을 스스로 감출 수가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만약 제 말이 옳다고 생각되신다면 원컨대 그것을 실행하시어 그 길에서 더욱 큰 이익을 얻으시고, 제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신다면 그토록 저를 오랫동안 이 곳에 머무르게 해도 무익한 일이 될 뿐이라 생각됩니다.
[웬 잔소리꾼의 상주문이냐.]
- 옛말에도 '용렬한 군주는 사랑하는 자를 상주고 미워하는 자를 벌 주나, 현명한 군주는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 있는 자에게만 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가슴은 침질(침質: 死刑할 때 쓰는 絞首台나 과녁 혹은 모창 및 칼)에 댈 만한 가치도 없으며 허리는 부월(斧鉞: 큰 도끼, 무거운 刑罰을 뜻함)을 기다릴 자격도 없는 천한 몸입니다. 그런 자가 감히 자신도 없는 말을 지껄여 왕의 마음을 시험하는 짓 같은 일을 하겠습니까. 설사 저를 비천한 놈이라 경멸하신다 하더라도 저를 보증하고 추천한 왕계만은 왕을 배신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믿으시겠지요.
[그야 당연한 일이겠지.]
- 제가 듣기로는. [주(周)에 지액(砥액).송에 결록(結錄).양(梁)에 현려(縣藜).초에 화박(和朴)이라는 아름다운 옥이 있습니다. 이 네 개의 보옥은 흙에서 나온 것으로 처음에는 명공도 명옥(名玉)이란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만 결국은 천하의 명기(名器)가 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왕(聖王)께서 무능하다 하여 버린 자라 해도 반드시 국가를 부강하게 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옳은 소리이긴 하다. 그런데.......]
- 저는 또 '집을 번창하게 하는 인재는 나라 안에서 구하고, 나라를 번창하게 하는 인재는 천하에서 구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천하에 명민한 군주가 있을 때 다른 군주가 자기 나라를 융성케 못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명민한 군주가 남의 번영을 막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명의(名醫)는 병자의 생사를 짐작하고 성군(聖君)은 일의 성패를 밝게 합니다. 이로우면 이것을 행하고 해로우면 버리며 의심스러우면 좀더 이것을 시험해 봅니다. 이런 점은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이 재생하더라도 다시 하실 일입니다. 이 이상 심각한 문제에 관해서는 감히 서면에는 적지 않겠습니다. 가벼운 일들은 또한 대왕께 들려 드릴 가치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왕께서 지금까지 저를 버려 둔 것은 제가 우매해 왕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더라도 저를 추천한 왕계가 비천하여 제 말을 들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바는 아니겠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신다면 바라건대, 저에게 궁궐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라도 주시어 존안을 우러러뵐 수 있는 영광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 때 만일 제가 드리는 말씀 중에서 한 마디라도 쓸 만한 것이 없다면 대왕의 심사를 어지럽힌 죄로 달게 주벌(誅罰)에 복종할 따름입니다.
[역전거(驛傳車)를 보내어 급히 그를 불러 오도록 하라!]
왕은 몹시 기뻐하며 범수를 만나 볼 것을 서둘렀다. 범수는 별궁에서 왕을 알현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레에서 내린 범수는 모른 척하고 긴 회랑을 돌아 본궁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환관들이 그런 범수를 용서할 리가 없었다.
[서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달려 들어오느냐!] 범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여기가 어디요?] [대왕께서 계시는 왕궁인 줄 몰라서 그러느냐?] 저만큼 왕의 행차가 보였다. 그래도 범수는 못 본 척 소리를 질렀다. [진나라에도 왕이 계시오?] [무어라고!] [내가 듣기로는 진에는 왕은 계시지 않고 태후와 양후만 있다고 하던데.......] [무엄한 놈!] 범수와 환관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진왕이 급히 소리쳤다. [그만두어라.......] 왕은 주위를 돌아본 후 범수에게 말했다. [사과하겠소. 과인은 진작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어야 했소.] 왕은 범수를 궁중으로 데리고 갔다. [변명 같지만 선생을 그 동안 만나지 못한 것은 때마침 의거(義渠:西戎의 國名)와의 사태〔소왕의 모친인 선태후가 의거왕과 사통해 두 아들을 두어, 甘泉에서 소왕을 암살할 계획을 짜다가 발각된 일〕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과인이 태후의 지시를 받느라고 여가가 없었소. 이제는 그 사태도 가라앉아 정리되었으니 기꺼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오. 삼가 주객의 대등한 예를 하고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범수가 소왕을 만나는 장면을 본 군신들은 모두 숙연한 낯빛을 하고 자세를 바로잡지 않는 자가 없었다. 진왕은 좌우의 근신들을 물리치고 궁중을 비게 한 뒤 비로소 범수에게 물었다. [선생은 과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겠소?] [아, 예 그저.......] [부디 그 내용을 과인에게 들려 주시오.] [그렇지만.......] 진왕은 이번에는 무릎을 꿇고 청했다. [선생은 끝내 과인에게 가르침을 주시지 않을 작정이오?] [감히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제가 듣기로는 옛날, '태공망 여상(呂尙)이 주의 문왕을 만났을 때 어부의 몸으로 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만난 것은 두 사람의 교제가 그 때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상이 문왕을 설득한 후에는 문왕이 그를 태사(太師)로 삼아 같은 수레에 태워 함께 돌아갔습니다. 그것은 그의 언설이 심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문왕은 여상의 힘으로 공업을 성취하고 드디어 천하의 패자로 군림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처음에 문왕이 여상을 멀리해 심원한 데까지 말하지 못하게 했더라면, 주의 천자는 덕이 없는 것이 되고 문왕과 무왕은 모두 그의 왕업을 성취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거요.] [저는 지금 외국에서 온 떠돌이 신세입니다. 대왕과의 교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왕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모두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뿐입니다. 특히 대왕의 혈연 관계에 대한 것뿐입니다.] [짐작은 했소이다.] [고로 저는 충성을 다하려 해도 아직 대왕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기에 세 차례나 물으셔도 선뜻 대답을 못 한 것입니다. 제가 형벌이 두려워서 선뜻 말씀드리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어전에서 말씀드리고 전각 뒤에서 제 몸이 복죄될 것을 알지만 구태여 피하려 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제 말을 실행해 주시기만 한다면 사형을 받아도 근심할 일이 못 되며 떠도는 신세가 되어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몸에 옻칠을 하여 나병 환자처럼 보이고 머리털이 흐트러져 광인처럼 보인다 해도 저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겠습니다.] [충직스런 말씀이오.] [오제(五帝)와 같은 성인도 죽고 삼왕(三王)과 같은 어진 이도 죽었습니다. 오백(五伯: 五覇)과 같은 현인도 죽고 오획.임비(烏비.任鄙 : 모두 古代의 力士들) 같이 힘센 자들도 죽음을 면치 못했으며 성형(成荊).맹분(孟賁).왕경기(王慶忌).하육(夏育)과 같은 용사도 죽었습니다. 죽음이란 인간으로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반드시 죽음을 바칠 추세에 놓여 그것이 진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제가 크게 바라는 바입니다.] [감동적인 말씀이오.] [오자서는 초를 탈출할 때 자루 속에 숨어 수레에 실려서 소관(昭關:吳.楚의 國境에 있던 楚의 關所, 安徽省 含山縣 북서)을 빠져나와 밤에는 가고 낮에는 숨어 육수(陸水: 要水, 湖北省 通城縣의 幕? 縣에서 發源)에 도착할 무렵에는 입에 넣을 것이 없었습니다. 오(吳)의 시장에서는 무릎으로 걷기도 하고 엎드려 기기도 했으며, 머리를 땅에 대고 웃통을 벗은 채 절하기도 했으며 배를 두드리고 피리를 불면서 거지노릇까지 했습니다만 기어코 오나라를 일으켜 오왕 합려를 천하의 패자로 만들었습니다. 제게 오자서처럼 계략을 다하게 해 주신다면 옥에 갇힌들, 평생 대왕을 뵐 수 없게 되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기자(箕子: 殷末의 賢人)나 접여(接與: 春秋時代의 隱士)가 비록 몸에 옻칠을 하여 나병 환자처럼 머리털을 흐트려 광인처럼 보이게는 했으나 자기 군주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하니 만약 제가 기자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현명한 군주를 도울 수 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는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토록 과격한 표현을 할 필요는 없소이다.] [아닙니다. 좀더 들어 주십시오. 다만 제가 두려워하는 바는 제가 죽은 후 천하의 인사들이 제가 충성을 다하고서도 몸이 주살되는 것을 보고, 입을 막아 구태여 말하지 않고 발길을 돌려 진나라로 가지 않으려 하게 될까 하는 점입니다.] [좋소이다. 어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해 주시오.] [바로 말씀드리지요. 만약 대왕께서 지금처럼 위로는 태후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아래로 간신의 아첨에 미혹되어 깊은 궁중에만 앉아 여인들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정사를 간신들의 손에만 맡겨 오랫동안 혼미에 빠져 현명한 신하와 간악한 신하를 구별하지 못하시니 그것이 걱정스럽습니다.] [과인이 그러했소?] [대단히 위태로운 지경에 계십니다. 자칫 종묘가 멸망할 만큼 대왕 자신께서는 사고 무친의 고립에 빠져 계십니다.] 진왕은 다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진정으로 그러하오. 우리 진나라는 먼 벽지에 있으며 과인 또한 어리석고 불초하니 그런 사정을 어찌 알았겠소. 이 때 다행히도 선생께서 와 주신 것은 선왕(先王)의 종묘를 무사히 지키라는 선조의 음덕인 것 같소. 그러니 금후로는 선생의 가르침에만 따를 뿐이오. 결코 과인을 의심하지 마오.] 범수와 진왕은 다시 일어나 서로에게 맞절을 했다. 그런 후 범수는 입을 열어 진왕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왕의 나라는 사방이 산천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입니다. 북에는 감천산(甘泉山: 陜西省 渟化縣 북서)과 곡구(谷口: 陜西省 涇陽縣 북서)가 있고 남으로는 경수(涇水)와 위수를 띠고 농(농: 甘肅省)과 촉(蜀:四川省)이 서쪽에 있고 함곡관과 상판(商阪: 陜西省 商縣 동쪽)이 동쪽에 있습니다. 특공대가 백만 명이며 전차가 천대, 유리하면 나가 싸우고 불리하면 안에서 지키니 이것이야말로 바로 왕자(王者)의 땅입니다. 백성 또한 사투(私鬪)에는 겁을 먹지만 공전(公戰)에는 용감하니 이것 또한 왕자의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과인은 그 두 가지를 아울러 가지고 있는 셈이구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진나라 병사의 용기나 수많은 거마(車馬)를 가지고 제후국들을 평정하는 일은 마치 한로(韓盧)같은 명견(名犬)을 달리게 해서 다리 저는 토끼를 쓰러뜨린 것처럼 쉽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런 공업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뭐지요?] [한 마디로 대왕의 군신들이 자기 책임을 감당하는 자가 없고 함곡관을 15년 동안이나 닫아 두었기 때문이지요.] [양후가 강수를 치려고 준비 중이오.] [바로 그 계략이 잘못되었다고 말씀드리는 중입니다. 어째서 산동(山東 : 關東, 효山 印)을 넘보지 않습니까.] [강수를 치는 계략이 어째서 잘못되었다는 거지요?] [남의 나라인 한나라.위나라의 땅을 넘어 제나라 강수를 친다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마치 옛적 제나라 민왕이 남쪽 초나라를 쳐서 장군까지 죽이고 천리의 땅을 넓혔습니다만 결국 한 치 한 자 땅도 얻지 못한 일과 같습니다.] [그건 형세가 땅을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습니다. 제나라 군사를 총동원해 초나라를 쳤기 때문에 싸움에는 이기고도 나라는 피폐해졌습니다. 그것을 이유로 군신간에 불화가 생겼으니 이를 눈치챈 제후국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제나라의 병사들은 욕보고 병기는 파괴되었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진나라가 소수 병력을 동원해 보았자 제나라는 끄덕도 안 할 것이고, 대군을 출병시켰을 경우 진나라에 이롭지 않을 경우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며, 물론 자국의 병력은 아끼면서 한.위 두 나라의 군사를 전면적으로 끌어내자고 하시겠지만 그들 동맹국들도 유사시에는 늘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처지에 내 나라를 허술하게 비우고 남의 나라를 훌쩍 건너 먼 나라를 공격하다니요. 결국 제나라에서도 책임은 왕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 때 제왕은 '문자(文子: 孟嘗君 田文)가 그 계략을 세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대신들은 난을 일으켰고 전문은 도망쳤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구려.] [실상 제나라가 크게 패한 이유는 초를 치면서 한.위를 살찌게 한 데 있지 않겠습니까. 이른바 '역적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준다'는 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진나라에 유리하겠소?] [먼 나라와는 교제하고 이웃나라를 공격하십시오.] [원교근공(遠交近攻)?] [그렇게 하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왕의 땅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잃어도 왕의 땅이 됩니다.] [기왕의 계략이 잘못되었다?] [옛날 사방 5백 리밖에 안 되는 중산국(中山國)을 병탄했지요. 조나라는 공도 이루고 명성도 얻고 이익도 있었지요. 제후국들이 이를 배아파하면서도 조나라를 해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천하 중앙에서 중추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한.위를 치라는 뜻이오?]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면 방법을 달리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우선 중앙의 나라들과 친근하게 지내십시오.] [그건 얘기가 다르잖소?] [자신이 천하의 중추가 되면 됩니다. 그런 후에 초나라와 조나라를 위협하십시오.] [두 나라를 한꺼번에 말이오?] [초가 강하면 조와 친근하고, 조가 강하면 초와 친근하십시오.] [초와 조가 동시에 친근할 수도 있지 않소?] [그 땐 제나라가 진을 두려워하겠지요. 제나라는 분명히 겸손한 말로 예물을 후하게 하여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제나라와 친근하게 되면 한.위는 저절로 손아귀에 들어옵니다.] [위나라와 친하려고 한 지는 오래요. 그러나 워낙 변덕이 심해서 믿을 수가 없구려.] [대왕께선 말을 겸손하게 하고 예물을 무겁게 하여 위를 섬기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싫으시거든 땅을 할양하여 환심을 사십시오. 그조차 싫으시거든 병사를 일으켜 치십시오.] [좋소. 그대의 가르침 중에 가장 마음에 드오!]
그 때부터 진왕은 범수를 객경(客卿)에 임명하고 군사(軍事)에 관한 일을 계획하게 했다. 한편으로 범수의 계략에 따라 오대부(五大夫: 秦의 爵位)인 관을 시켜 위나라 회(懷: 河南省 武陟縣 서쪽)를 쳐 빼앗고 2년 후에는 형구(刑丘)마저 정복했다. 어느 날 객경 범수는 소왕에게 간했다.
[진나라와 한나라의 지형을 살펴보면 수를 놓은 것처럼 서로 엇갈려 있습니다. 진나라에 한나라가 있음은 비유컨대 나무에 좀벌레가 있음과 같고 사람의 내장에 병이 있음과 같습니다. 어찌 이를 제거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하에 변고가 없으면 다행입니다만 만약 변고가 일어나면 한나라보다 더 큰 우환 덩어리가 없습니다. 미리 징벌하십시오.] [한나라가 그토록 만만하겠소?] [군사를 보내 형양(滎陽)을 공격하면 공(鞏)과 성고(成皐: 모두 河南省)의 교통이 막히며 북쪽 태행산(太行山)의 길을 끊으면 상당(上黨)의 군사는 내려오지 못합니다. 그러니 한번 군사를 일으켜 형양을 치면 한나라는 세 쪽이 나 버립니다. 한이 꼼짝없이 망한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 어찌 진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게만 되어 준다면 패업 달성의 계획도 한번 세워 볼 만한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범수는 날이 갈수록 진왕과 사이가 가까워졌다. 계책이 받아들여져 성공한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왕의 신임이 두터워졌다고 생각한 범수는 그제서야 전부터 하고 싶었던 심중의 말을 꺼냈다.
[제가 산동(山東: 여기서는 魏)에 있을 때 제나라에는 전문(田文:孟嘗君)이 있다는 명성은 들었습니다만 왕이 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진나라에는 태후와 양후와 화양군.고릉군.경양군의 명성은 들었습니다만 대왕의 존재는 듣지 못했습니다.] [무슨 얘기요?] [국정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자를 왕이라 하고, 인간의 이해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권능의 소유자를 왕이라 하며, 생사여탈의 권력을 가진 자를 왕이라 합니다.] [옳은 말씀이오.] [그런데 지금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태후께서는 당신의 마음대로 국정을 행사하시고, 양후는 외국으로 사신을 가도 왕께 보고조차 하지 않는 지경이며, 화양군과 경양군 역시 백성을 처단하는 일을 두려움 없이 행사하고 있으며, 고릉군은 관리들을 마음대로 진퇴시키는 인사권을 휘두르면서 왕의 재가는 청하지도 않습니다. 이토록 진나라에는 네 분의 존귀한 사람이 버티고 있으며 왕은 그 밑에 있게 되니 실제의 왕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며 국가는 위태롭기 마련입니다. 왕의 권력이 기울어지면 그 명령 역시 왕으로부터 나올 수가 없습니다.] [글쎄요, 그것이.......] [저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국내에선 그 권위를 굳게 하고 국외로는 그 권위를 무겁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양후는 왕의 무거운 권위를 대신 쥐고 흔들며 제후들은 제재하고 천하의 땅을 갈라 부절을 마음대로 보내고 있으며, 적국을 정복하고 타국을 제 마음대로 치는 등 진의 국정을 전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쟁에 이기고 공격한 땅을 국가에 돌리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그는 그 이익을 자신의 봉읍인 도국(陶國)으로 거두어들이고 그 손해는 제후들에게 뒤집어씌웁니다. 결국 전쟁에 지면 그 원한은 백성에게 돌아가고 그 화는 사직으로 돌아갑니다. 고시(古詩)에도, '나무 열매가 너무 커지면 그 가지를 꺾고 가지가 꺾이면 그 나무의 정기가 상하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내의 대읍(大邑)이 지나치게 커지면 그 나라는 위태롭고, 그 신하를 지나치게 존중하면 군주를 멸시하게 마련입니다.] [그렇소!] [최저(崔저)와 요치(요齒)가 제나라 국정을 맡아 군주인 제의 민왕에게 화살을 쏘아 그의 넓적다리 심줄을 뽑아서 묘(廟)의 대들보에 걸어 하룻밤 만에 민왕을 죽게 했습니다. 또 이태(李兌)는 조나라 국정을 맡아 주보(主父: 趙의 武靈王)를 사구(沙邱: 河北省 平鄕縣 북동)에 가두어 백일 만에 굶어 죽게 했습니다. 진나라 역시 태후와 양후가 국정을 맡고 고릉군과 화양군과 경양군에 합세해 진왕을 무시하니 이것 역시 요치나 이태의 무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저 하.은.주 3대의 나라가 멸망한 탓도 군주가 정권을 오로지 신하에게 맡기고 음주에 탐닉하거나, 말을 달려 주살로 수렵이나 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은 탓입니다. 대체로 정권을 위임받은 신하는 능력 있는 자를 질투하며 말을 누르고 위를 가리워 사욕을 채웁니다. 주군을 위하여 계략하지 않고 주군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므로 나라를 잃는 것입니다. 지금 진에서는 유질(有秩: 鄕戶五千을 관리하는 大夫) 이상의 고급 관리에서 왕의 밑에 있는 좌우 근신에 이르기까지 상국(相國: 양후를 가르킴)의 사람이 아닌 자가 없으니 대왕께선 완전히 조정에서 고립되어 계신 셈입니다. 끔찍한 가정일지 모르나 천수를 누려 대왕이 돌아가신 뒤의 이 나라 왕은 아마 대왕의 자손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듣고 보니 소왕은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를 어떻게 조처하면 좋겠소?] [소문이 나든가 일을 미적거릴 경우 오히려 대왕께서 화를 입으실 수도 있습니다. 일을 처리하시려거든 과단성있게 당장 하십시오.] [좋소! 태후를 폐하고 양후.고릉군.화양군.경양군을 함곡관 밖으로 추방하겠소.] 소왕이 전격적으로 그렇게 단행하니 그들도 왕에게 미리 손쓸 수도 없게 되었다. 양후의 인수를 거두어 대신 범수에게 재상의 벼슬을 내리고 양후를 도(陶)로 돌아가게 했다. 도 땅으로 떠나는 양후의 짐수레는 1천 대가 넘었다. 함곡관에 도착해 관리가 양후의 짐을 조사하니 그 보기(寶器)나 진귀한 물품이 과연 왕실의 그것보다 많았다. 진나라는 범수를 응(應: 河南省)에 봉하여 응후(應侯)라 불렀다. 진의 소왕 41년이었다. 범수가 진에서 재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장록이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정체를 몰랐다. 위나라에서도 범수는 이미 죽은 지 오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위나라는 진이 한과 위를 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급해진 위나라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수가를 사신으로 서둘러 진에 보냈다. 수가가 도착하자 이 소식을 들은 범수는 아무도 모르게 남루한 옷차림으로 수가의 숙사를 찾아가 기웃거렸다. 범수를 본 수가는 깜짝 놀랐다. [어, 그대는 범숙(范叔: 叔은 范수의 字)이 아닌가. 웬일인가? 그동안 별일 없었는가?]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진나라에서 만나다니 뜻밖이군. 그래, 진에 와서 유세라도 해 봤는가?] [저 따위가 무슨 유셉니까. 그 때 제가 위의 재상에게 죄를 짓고 간신히 도망해서 이 곳으로 숨어 들어왔을 뿐이지요.] [그래, 지금은 무엇하고 있는가?] [남에게 고용되어 품팔이를 하면서 입에 풀칠하고 살지요.] [몹시 곤궁하게 보이는군.] 수가는 범수를 불쌍하게 생각했던지 자기의 솜옷을 한 벌 꺼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한데, 진나라에서는 장군(張君)이 재상이라고 들었는데 그분에 대해서 자네는 좀 알고 있는가?] [훌륭하신 분이지요.] [그 사람은 왕의 총애를 받아 국정을 재상 혼자의 손으로 일체 결재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이번에 내가 지고 온 사명의 승패가 재상인 장군의 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네. 누가 재상에게 다리 놓아 줄 만한 사람이 없겠는가?] [계십니다. 제 주인과 절친한 사이거든요.] [아, 그 참 잘 됐네. 내가 재상을 만날 수 있도록 자네가 중간에서 힘 좀 써 주게.] [그러지요.] [한데 말일세. 불행히도 내 말이 병든 데다 마차 바퀴마저 부러졌거든. 어디 네 필 말이 끄는 큰 수레를 구할 수가 없을까? 그래야만 재상께서 나를 만나줄 게 아닌가.] [그야 문제 없습니다. 우리 주인께선 너그러우시니 간청하면 빌려 주실 것입니다.] [고맙네.] 그래서 범수는 곧장 돌아가 네 필 말의 큰 수레를 끌고 왔다. [타십시오.]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재상의 관저로 바로 가시면 됩니다. 지금 저희 주인도 거기 계시거든요.] 범수는 수가를 태워 재상의 관저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모두들 엄숙히 경례를 했고 혹은 바쁘게 숨어 버렸다. [왜들 저러나? 자네와 나를 보고 모두들 최고의 예우를 다하고 있으니.] [저희 주인님의 마차를 보고 올리는 예의올시다.] [그대 주인님도 대단히 존경받는 분인가 보지.] 재상 관저의 문에 이르렀다. 범수가 수레에서 뛰어내리며 수가에게 말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재상께 면회 신청을 하고 나오겠습니다.] 범수가 안으로 들어간 뒤 수가 혼자 기다렸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수가가 문지기에게 물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범숙은 왜 나오지를 않나?] [범숙이 누구요?] [나와 함께 수레를 타고 와서 먼저 들어간 사람 말이오.] [이 사람 미쳤군! 우리 나라 재상을 일컫다니!] [무어요!] 수가가 파랗게 질려 있는데 그 때 안으로부터 사인 하나가 달려나왔다. [들어오시랍니다.] 기가 막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생각 끝에 웃통을 벗고 무릎으로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사죄하는 뜻이었다. 한 곳에 이르자 장막이 걷히더니 수많은 시종들을 거느린 범수가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수가는 땅에다 머리를 조아렸다. [죽을 죄?] [당신께서 이토록 높은 청운(靑雲: 立身出世)에 오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까막눈이 알 턱이 없었겠지.] [당신을 보는 눈이 없었으니 앞으로는 천하의 서적을 읽지 않을 것이며 천하사에 관여하지도 않겠습니다. 가마솥에 끓여 죽여도 좋을 만한 죄를 지었습니다만 용서하시어 저 북쪽 오랑캐의 땅으로나마 추방해 주십시오.] [그건 내 뜻대로 할 일이다. 그런데 너는 스스로 죽을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그 죄상이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머리털을 모두 뽑아 헤아린다 해도 속죄하지 못할 만큼 많습니다.] [그렇지는 않다. 딱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다.] [예에?] [옛날 초나라 소왕 적의 신포서(申包胥)는 초나라를 위해 오나라 군사를 물리쳤다. 그래서 초왕은 그에게 형(荊: 楚의 별명) 땅 5천 호에 봉하려 했지만 포서는 받지 않았다. 왜 안 받았는지를 아느냐? 그가 오군을 물리친 것은 조상의 무덤이 형에 있었기 때문이며 새삼스레 초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조상의 무덤이 위나라에 있거늘 내가 과연 위나라를 배반할 생각이 있었을까? 그런데도 너는 전날 내가 제나라에 내통했다고 나를 위제에게 중상했다. 이것이 네 죄의 하나이다.] [죽여 주십시오!] [위제가 나를 욕보이기 위해 측간에다 걸레가 다 된 내 몸을 던져 버렸을 때 너는 그것을 전연 말리지 않았다. 이것이 네 죄의 둘이다.] [죽여 주십시오.] [위제의 빈객들이 술에 취해 돌아가며 내 몸에다 소피를 보았을 적에 너마저도 내게 오줌을 싸지 않았느냐. 어찌 그럴 수가 있던가!] [죽여 주십시오!] [죽여 줘?] [용서하십시오!] [벌레 같은 놈! 그렇지만 네 목숨만은 살려 준다.] [예에?] [조금 전 초라한 내게 옛 친구를 생각하는 은은한 정으로 솜옷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솜옷이 너를 살린 것이다. 어서 돌아가거라!] 사과하고 용서하는 과정은 거기서 끝났다. 범수는 심란했다. 그 길로 곧장 왕궁으로 들어가 소왕에게 사신 수가와의 사이에 있었던 사건과 전후 사정을 낱낱이 고했다. [과인도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일단 그 자들을 귀국시키시오.] 범수가 제후의 사신들을 초청해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있을 때 마침 수가가 귀국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그러나 수가만은 당상에 앉히지 않았다. 굳이 당하에 앉힌 뒤 말죽〔茉豆: 馬草를 자른 것과 콩을 섞은 죽〕을 그의 앞에다 놓고 이마에 먹물들인 죄인 둘을 수가의 양 옆에 앉힌 뒤 음식을 말처럼 먹게 했다. [네가 굳이 찾아들었으니 귀띔해 주는 말인데, 위왕한테 말해서 지체없이 위제의 목을 가져오지 않으면 대량(大梁: 魏都)을 쳐서 쑥밭을 만들어 놓겠다고 전해라!]
수가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귀국해서 수가는 위왕에게 진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아룄다. 소식을 들은 위제는 두려워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조나라로 도망친 위제는 평원군 밑에 숨어 버렸다. 범수를 위나라에서 데려온 왕계가 어느 날 재상 범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일에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고 혹 알고 있다 하더라도 속절없는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무어요?] [국왕께서 언제 붕어하실지 모르는 일이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첫째며, 재상께서 언제 그 관직을 잃게 되실지 알 수 없는 것이 예측 못 하는 일의 둘째며, 제가 갑자기 구렁텅이에 빠져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예측 못 하는 일의 세 번째입니다.] [갑자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오?] [대왕께서 갑자기 붕어하시면 당신이 저를 등용하도록 왕께 진언 못 한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 때는 이미 어쩔 수 없을 것이며, 승상께서 갑자기 그 자리를 떠나실 경우 제게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고, 제가 갑자기 구렁텅이에 빠져 죽는 경우에도 승상께서 제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해도 그 땐 이미 어쩔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알아 들었으니 그만하시오.] 범수는 유쾌하지 않았으나 왕계에 대한 전날의 은혜를 생각하여 왕궁으로 들어가 할 수 없이 왕에게 말했다. [왕계처럼 진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자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함곡관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대왕과 같이 현성(賢聖)의 인군이 아니었던들 저는 존귀한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저의 벼슬은 재상에 이르고 작위는 열후(列侯)에 봉해졌으나 왕계의 관직은 아직도 알자(謁者)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는 신을 데려오게 한 데 대한 보답이 아닌 듯합니다.] [옳은 생각이오. 그를 중용하겠소.]
그래서 소왕은 왕계를 불러 하동(河東: 黃河의 동부) 태수에 임명했다. 그런데 왕계가 하동 태수로 부임한 지 3년이 지나도 조정에 태수로서의 정무 보고를 한번도 해 오지 않아 범수는 그 점을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범수는 이번에는 또 정안평을 소왕에게 추천했다. 그는 전날 위나라에서 범수를 숨겨 목숨을 구해 주었고 또한 왕계에게 소개한 인물이었다. 소왕은 즉각 정안평을 장군으로 삼았다. 범수는 자신의 가재를 털어 전날 곤궁할 때 은혜 입은 자들에게 모두 보은했다. 단 한 번의 끼니라도 대접받은 자에게는 반드시 보상하고 그 대신 눈이라도 한 번 흘긴 원한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복했다. 범수가 진나라 재상이 된 지 2년인 진의 소왕 42년에는 소곡(少曲).고평(高平: 모두 韓地, 河南省)을 쳐서 빼앗았다. 이즈음에 진의 소왕은 위제가 평원군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범수의 원수를 갚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평원군에게 친선하자며 속임수 서신을 보냈다.
- 과인은 당신의 고귀한 뜻을 잘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분을 초월해 선비로서의 교제를 하고자 하니 공께서는 꼭 한번 왕림해 주십시오. 그대와 열흘 동안 주석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평원군은 진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진왕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어 즉시 진으로 들어가 소왕을 만났다. 소왕과 평원군은 수일 간 잔치를 열며 다정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왕은 얼굴빛을 고치더니 평원군에게 간곡히 말했다.
[옛날 주의 문왕은 여상을 얻어 태공(太公: 祖父)이라 존칭하였고, 제의 환공은 관이오(管夷吾: 管仲)를 얻어 중보(仲父: 叔父)로 존경했습니다. 범군(范君) 역시 과인에게는 숙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범수의 원수가 바로 당신의 집에 있습니다. 제발 사신을 돌려 보내 그 원수의 머리를 가져오게 해 주시오.] [그것은 불가합니다.] [과인의 청을 거절하면 당신을 함곡관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소.] [존귀할 때 교제하여 벗을 만드는 것은 비천하게 되었을 때 도움을 받자는 것이며, 부유할 때 교제하여 벗을 만드는 것은 가난하게 되었을 때 도움을 받자는 것입니다. 위제는 제 벗입니다. 설사 제 집에 있다 하더라도 내놓을 수는 없으나 그가 제 집에는 없습니다.] 딱 잡아떼므로 소왕은 할 수 없이 조왕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냈다.
- 왕의 아우 평원군은 지금 진나라에 와 있으며, 나와 범군의 원수인 위제는 지금 평원군의 집에 있습니다. 왕께선 속히 사신을 시켜 위제의 목을 진으로 가져오게 하시오. 청을 거절할 경우 진은 부득이 병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칠 수밖에 없으며 왕의 아우 또한 함곡관 밖으로 내보내지는 않겠습니다.
조왕은 더럭 겁이 났다. [목을 맞바꾼다면.......] 조왕은 평원군을 살리기로 했다. 그래서 몰래 병사들을 보내어 평원군의 집을 포위하도록 했다. 미리 소문을 들은 위제는 가까스로 평원군의 집을 도망쳐 나와 조나라 재상 우경한테로 달려갔다. [살려 주시오.] 우경은 곰곰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설득해도 조왕은 들어 줄 것 같지 않았다. [일단 함께 도망이나 치고 봅시다.] 우경은 돌연 재상의 인수를 풀어 놓고 위제와 함께 조나라를 벗어났다. [어디로 가지요?] [글쎄요. 의탁할 만한 인물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우선 대량으로 가서 신릉군의 도움을 받아 초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달리 방법은 없겠습니다.] 그래서 둘은 간신히 신릉군한테 도착했다. 그러나 신릉군은 차일피일하고 둘을 만나 주려 하지 않았다. [진나라가 두려운 모양이지요?] [아아, 다 틀렸다!] 어느 날 신릉군은 빈객들이 있는 데서 지나가는 말처럼 넌지시 물었다. [도대체 우경이란 사람은 어떤 인물인가?] 후영(侯영)이 마침 곁에 있다가 대답했다. [남이 나를 이해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만 내가 남을 이해한다는 것 또한 예삿일이 아닙니다. 저 우경이란 인물은 짚신을 신고 챙이 긴 삿갓 쓴 보잘것 없는 차림으로 처음에 조왕을 알현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뵙고 흰 도리옥 한 쌍과 황금 백 일(鎰)에 임명되고, 세 번 뵙고 재상의 인수에다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졌습니다. 그 때 천하 사람들이 그와 사귀려고 앞을 다투어 몰려갔습니다. 그런 우경에게 곤궁해진 위제가 매달리자 존귀한 작록도 전연 중요시하지 않고 재상의 인수도 풀어 버리고 만호후의 신분도 내버린 채 위제를 데리고 몰래 숨어서 왔습니다. 다른 선비의 곤궁함이 더욱 위급하다 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공자(公子)께로 찾아왔는데 공자께선 '도대체 저들이 누구냐'고 물으시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과연 남이 나를 알아 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내가 남을 알아 주는 일 또한 쉽지 않군요.] 그 말에 신릉군은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서둘러 수레를 끌고 두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 그러나 신릉군이 만나기를 주저한다는 소문을 듣고 위제는 분노와 절망으로 제 목을 찔러 죽고 난 후였다. 어쨌든 위제의 목을 얻은 조왕은 진나라에 보냄으로써 평원군을 귀국시킬 수 있었다.
소왕 43년에 진은 한나라의 분(汾).형(둘 다 山西省 曲沃縣 부근)을 공격해 빼앗고 황하변의 광무(廣武: 山西省 代縣 서쪽)에 성을 쌓았다. 이로부터 5년 후 소왕은 응후 범수의 계략을 채택해 조나라로 간첩을 보내어 조를 속였고, 그로 인해 조는 염파(廉頗) 대신 마복군(馬服君)의 아들 조괄(趙括)을 장군으로 삼았다. 그럼으로 해서 진나라는 장평에서 조군을 크게 깨뜨리고 드디어 조도(趙都) 한단을 포위할 수 있었다. 이 즈음에 응후는 무안군 백기와 사이가 벌어져 그를 소왕에게 참언해 죽였다. 한단은 장군으로 추천된 정안평에게 치게 했다. 그런데 정안평이 지휘를 잘못해서 오히려 조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살아날 길이 없었다. 다급해진 정안평은 병사 2만을 고스란히 이끌고 조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범수는 기가 막혔다. 속절없이 죄를 입게 된 것이다. 진나라 법률은 사람을 추천해 그 추천받은 자가 실패하면 둘 다 같은 죄로 처벌받게 되어 있었다. 그 죄는 삼족이 체포당하는 죄였다. 범수는 짚을 깔고 그 위에 앉아 벌 내리기를 청했다. 그러나 진의 소왕은 응후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전국에 영을 내렸다.
- 감히 정안평 사건을 입밖에 내는 자가 있으면 정안평과 같은 죄를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왕은 응후에게 평소보다 더욱 많은 먹을 거리를 내려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애썼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후였다. 설상가상으로 하동 태수 왕계가 제후들과 내통하다가 법망에 걸려 주살되었다. 범수는 더욱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고 소왕은 조정으로 나와 자신의 불민함을 탄식했다. 범수는 몸둘 바를 몰랐다.
[소신이 듣기로는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군주가 욕을 보면 신하는 죽는다'고 합니다. 지금 대왕께서 조정에 나와 근심하시니 이것은 신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저의 죄과를 말씀하시어 벌 주십시오.] [아니오 아니오, 초나라 철검(鐵劍)은 날카롭지만 배우(俳優)들은 졸렬하다고 했소. 철검이 예리하면 사졸들은 용감할 것이며 배우가 졸렬하면 그 사려(思慮)는 심원할 것이오. 심원한 사려를 가지고 용감한 병사들을 구사해서 초가 진을 공격할까 그것이 두렵소.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지 않겠소. 대개 물건이란 평소에 갖추어 놓지 않으면 화급한 경우에 대처할 수 없소. 지금 무안군은 죽고 정안평 등은 배반하였소. 도무지 국내에는 양장(良將)이 없고 동시에 국외에는 적국뿐이오. 또 누구를 죄 주란 말이오. 과인이 탄식한 것은 그 때문이오.] 소왕의 의도는 응후를 격려하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범수는 마음이 편할리가 없었다. 이 때 채택(蔡澤)이 그런 소문을 듣고 진나라로 왔다.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사방을 유학한 뒤 벼슬 자리를 얻으려고 제후들 사이를 대국이든 소국이든 닥치는 대로 돌아다녔으나 등용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의기소침해져서 유명하다는 당거(唐擧: 魏의 觀相家)한테로 관상을 보러 갔다. [들리는 말로는 선생께선 이태(李兌: 趙의 宰相)의 관상을 보고, '백일 이내에 대권(大權)을 잡겠다'고 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이오?] [사실이오.] [그렇다면 내 관상도 좀 보아 주시오. 복채(卜債)는 두둑이 내겠소.] [그러시오.] 당거는 채택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잔잔히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의 코는 납작하고 어깨는 넓고 이마는 튀어나오고 콧마루는 함몰했고 두 다리는 휘었소.] [좋다는 거요, 나쁘다는 거요?] [성인(聖人)의 관상이오.] [무어요?] [원래 '성인의 관상은 보아도 알 수 없다'고 했소.] [그럴지도 모르지. 부귀라는 것은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그런데 말이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수명인데, 얼마나 살겠소?] [앞으로 43년을 더 사오.] [그렇다면 충분하오.] 채택은 의기양양해서 조나라로 떠났다. 가면서 자기 마부에게 지껄여댔다. [내가 고량진미를 먹고 준마를 달리며 황금 인장을 품에 넣고 자줏빛 인수(印綏: 大夫 이상만 使用함)를 허리에 차고 군주 앞에서 절하는 고귀한 신분만 된다면 앞으로 43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조나라로 가서 유세했으나 추방되고 말았다. 이번에는 한나라와 위나라로 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가마솥과 다리 굽은 솥을 도둑맞고 말았다. 낭패스러웠다. 불길한 징조 같아 다시 의기소침해 있는데 주막에 들렀다가 우연히 응후의 요즘 처지를 흘려 듣게 된 것이다. [음, 이건 좋은 소식이다!] 채택은 즉시 서쪽 진나라로 향했다. 범수가 심란해하고 있는데 사인 하나가 들어와 넌지시 일러주었다. [웬 자가 주인님을 욕하고 다닙니다. 잡아 올까요?] [나를 욕해? 그래, 내게 대하여 어떤 욕을 한다더냐?] [그 자 말이 '나는 연나라의 세객 채택이다. 천하의 걸물이며 박학다식하고 지혜로운 선비지. 내가 딱 한 번 진왕을 뵙기만 하면 응후 따위는 단번에 궁지로 몰아넣을 텐데. 그의 자리를 금세 내가 빼앗아 버릴 텐데'라며 떠들고 다닙니다.] [미친 놈이군. 내 이미 오제(五帝)와 삼대〔夏.殷.周〕의 사적과 백가(百家)의 학설에 통달해 어떤 논객들의 변론도 논파해 버렸거늘 무어 나를 궁지로 몰아넣어? 게다가 내 지위까지 뺏어?] [묶어 올까요?] [의도적으로 떠들고 다니는 것 같다. 선비라면 그렇게 대할 수는 없지. 짐짓 모셔 오너라.] 얼마 후 채택이 불려 들어왔다. 그는 들어와서 범수에게 아무렇게나 인사했다. 그렇지 않아도 범수는 채택에 대하여 과히 좋은 감정이 아니었는데 그의 거만한 행동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그대가 나를 비방했는가?] [그렇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진나라 재상이 된다고 떠들고 다녔는가?] [들으셨군요.] [나를 궁지로 몰아넣어?] [그쯤이야 너무도 간단하지요.] 범수는 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게.] [말씀드리지요. 무릇 계절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있습니다. 싫더라도 계절은 어쩔 수 없이 바뀌어 갑니다. 마치 그 계절이 자신이 이룬 공(功)의 임무를 끝내고 바뀌어 가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대개 사람이 태어나서 온 몸이 건강하여 손발이 잘 놀고 귀가 잘 들리고 눈이 잘 보이며 여전히 지혜롭다면 이는 선비로서 크게 취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누가 아니래.] [어짐을 바탕으로 하여 의로움을 지키며 도를 행하고 덕을 배풀어 자기의 지향하는 바가 천하에 공감을 얻어, 천하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친근하다 생각하며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사모하여 누구라도 그를 군주로 받들도록 만드는 능변(能辯)이 있다면, 이는 지혜로운 선비로서 바람직한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부귀하고 명예스럽고 영화로운 몸이 되어 만물을 잘 다스려 각각 제 위치를 찾게 만들고, 수명은 장수하여 요절하지 않고, 천하 사람들이 전통을 이어받아 자기의 사업을 완성해 후세에 영원히 전하고, 명실상부하게 잡된 것 없이 그 덕택에 천리에 퍼져서 칭송되어 천지와 함께 그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도덕의 증거이며 성인이 말하는 경사요 상서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저 진나라의 상군(商君)이나 초나라의 오기(吳起)나 월나라의 대부 종(種)과 같은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과연 본받아도 좋을 만한 인물들입니까?] 범수는 과연 채택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어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래서 짐짓 그들을 옹호하기로 작정했다. [무어, 안 될 건 또 뭐가 있나. 저 공손앙〔商君〕이 효공을 섬길 때 두 마음이 없어 심신을 다했고 공사에 진력하여 사사를 돌보지 않았다. 형벌을 제정해 간사한 행위를 금하고 상벌을 공평하게 하여 치평(治平)을 가져오고 마음 속을 털어놓아 진정을 보여 주지 않았나. 주위의 원망을 무릅쓰고 옛 친구를 속여서까지 위의 공자 앙을 사로잡아 진의 사직을 평안하게 하여 백성을 이롭게 했다. 드디어 진을 위해 적장을 사로잡고 적군을 깨뜨려 영토를 확장한 것이 천리에 미쳤지.] 채택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오기는 또 어떠냐. 초의 도왕을 섬길 때 사리가 공익을 해할 수 없도록 하고, 참언이 충신을 가릴 수 없도록 하고, 확신 없는 말에 남과 동조하지 않고, 확신 없는 행위로 남에게 용납되려고도 하지 않았다. 위험하다 해서 정당한 행위를 달리하려고도 않았고, 의로운 행위라면 곤란을 피하지 않았고 군주를 패자로 만들고 국가는 강대하게 하기 위해서는 불행을 당하기를 사양하지 않았잖는가 말일세.] 범수는 듣고 있는 채택의 눈치를 흘끔 한 번 본 후에 말을 계속했다. [대부 종이 월왕 구천을 섬길 때는 군주가 곤고(困苦)나 치욕을 당하더라도 충성을 게을리하지 않고, 군주가 절멸(絶滅)과 위망(危亡)에 직면해도 내능을 다하여 떠나가지 않고, 공업을 성취하더라도 자랑하지 않고 부귀한 몸이 되어서도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이 세 사람과 같은 인물은 의의 극치이며 충신의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군자는 의를 위해 위난에 죽고 죽음을 볼 때 마치 제 집으로 돌아가듯 하는 것이다. 살아서 치욕을 겪는 것보다 죽어서 영예로운 것이 낫지 않나. 그래서 선비는 제 몸을 죽여서 명예를 성취하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오로지 의롭기만 하다면 죽더라도 유한은 없지. 그러니 어찌 이 세 사람을 선비가 갈망하는 훌륭한 대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채택도 지지 않고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군주가 성인이며 신하가 현명하다는 것은 천하의 복입니다. 군주가 지혜로우며 신하가 결백 정직하다는 것도 나라의 행복입니다. 부친이 자애롭고 자식이 효성스러우며 남편이 성실하고 아내가 정숙하다는 것은 가정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비간(比干)이 충성했지만 은나라를 보존하지 못했고 오자서가 지혜로웠지만 오를 온전하게 하지 못했고 신생(申生: 晋 ?公의 太子)은 효도했지만 진(晋)나라는 어지러웠습니다. 이처럼 충신.효자가 있으면서도 나라가 망하고 혹은 어지러워진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는 신하의 의로움을 말했을 뿐이네.] [들어 보십시오. 그것은 지혜로운 인군과 현명한 아버지가 없어, 충신과 효자의 말을 들을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하에서는 그 인군과 아버지를 오욕스런 인간으로 천시하고 그 신하와 자식을 동정했습니다. 그렇듯 이제 상군.오기.대부 종은 신하로서 훌륭했지만 그 인군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 세 사람이 공을 세우고도 그만큼 보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데도 어찌 불우하게 죽은 것 자체를 부러워할 사람이야 있겠습니까. 만약 죽은 후에야 비로소 충성스럽다고 명성은 얻는 것이라면 미자(微子)는 인자(仁者)하다 할 수 없고 공자는 성스럽다 할 수 없고 관중은 위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릇 사람이 공명을 세울 때 어찌 그 성공이 완전하기를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최상이란 몸과 명성이 온전한 것이며, 명성은 모범되면서 몸이 죽는 것은 그 다음이며, 오욕된 이름 아래 그 몸만 온전한 것은 최하입니다.] [그건 그대의 논리겠지.]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저 상군.오기.대부 종과 같은 사람들은 신하로서 충성을 다 바치고 공을 이루었다는 점은 가히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굉요(굉夭)가 문왕을 섬기고 주공이 성왕(成王)을 보좌한 일은 보다 성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군신의 일치라는 점에서 본다면 상군.오기.대부 종과 굉요.주공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상군.오기.대부 종이 미치지 못하지.] [그렇다면 승상의 주군께서 자비로우시어 충성된 신하를 신임하고, 오래 정든 신하를 후대하며, 현명하고 지혜로워 도를 지킬 줄 아는 선비들과 밀접하게 교제하고, 의를 지켜서 공신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진의 효공, 초의 도왕, 월왕 구천과 비교해 어느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은 알 수 없군 그래.] [지금 승상의 주군께서 충신을 신임하는 정도는 진의 효공, 초의 도왕, 월왕 구천만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무슨 근거로.] [승상께선 재주를 발휘해 주군을 위하여 위태로운 것을 안정시키고, 정사를 정비해 난을 다스리고, 병력을 강화해 우환을 없애고 곤란을 타개했으며 영토를 넓히고 곡식을 넉넉히 심어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가정을 풍족하게 하며 주군을 하게 하여 사직을 존중하고 종묘를 빛냄으로써 천하에서 감히 주군을 업신여겨 속이지 못하게 하여 주군의 위엄이 국내를 뒤덮게 하여 떨게 만들고, 공력이 만리 밖으로 나타나고 명성과 그 광휘가 천 대에까지 전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승상과 상군.오기.대부 종과 비교해 어느 쪽이 낫습니까?] [그건 내가 못하지.] [좋습니다. 지금 승상께선 주군이 충신을 신임하고 오래 정든 신하를 잊지 않기로는 효공.도왕.구천만 못하고 승상의 공적이나 주군의 총애나 신임받는 정도가 상군.오기.대부 종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승상의 봉록과 지위는 많고 높아 그 재산은 앞의 세 사람보다 많습니다.] [그건.......] 범수는 처음으로 당황했다. [만약 승상이 지금 자리에서 물러가지 않고 있다가 닥쳐올 환란이 앞의 세 사람보다 심하게 위태롭다는 점을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옛말도있습니다. 만물이 왕성했다 쇠퇴하는 것은 천지간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그 시대의 사정에 따라 변하는 것이 바로 성인(聖人)의 변치 않는 도리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은퇴해야 합니다.] [은퇴라.......] [성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飛〕 용이 하늘에 있으니 덕 있는 자를 보기에 편리하고 〔<易經>乾卦, 聖人이 天子가 되면 벼슬한다는 뜻〕' '의롭지 못하면서 부귀하다는 것은 나에게 뜬구름이나 다름없다〔<論語><述而篇>〕'라고요. 지금 승상께선 옛적 품었던 원한을 이미 풀고 입었던 은덕도 모두 갚아 하고자 하는 바들이 모조리 달성되었습니다. 그러고서도 변화에 대응하는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물총새.따오기.코뿔소.코끼리 같은 새나 짐승은 그들 거처가 그렇게 안전한 곳은 아니지만 실제로 잡혀 죽게 되는 이유는 먹이를 탐내기 때문입니다. 소진과 지백의 지혜가, 욕된 것을 피하고 피살된 위험에서 멀리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나 실상 피살될 이유는 이익을 탐내기에 정신없이 날뛰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예의를 마련해 욕심을 절감하고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이는 조세에도 한계를 정했고, 사역시키는 데도 한가한 틈을 타서 시키는 제한을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지향하는 바가 지나치지 않고 행동하는 바가 교만하지 않고 항상 도에 어긋남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천하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 그를 영원히 성인으로 떠받들게 되는 것입니다.] 범수는 묵묵부답으로 듣고 있었다. [옛날 제의 환공은 제후를 아홉 차례나 규합해 천하를 크게 바로잡았지만 규구(葵丘: 河南省 考城縣)의 회맹 때에 가서는 교만한 생각을 품었기 때문에 이반한 나라가 9개 국이나 생겼습니다. 오왕 부차는 그 병력이 강하기가 천하 무적이었지만 그 용맹과 강대함만 믿고 제후들을 가볍게 보아 제.진(晋)을 담박에 능가하려다 오히려 제 한몸도 죽고 나라까지 멸망했습니다. 하육(夏育).태사 교(太史교: 인물 미상) 같은 용사가 고함 소리 하나로 3군을 놀라게 했으나 하찮은 잡병에게 죽었습니다. 이것 모두가 극성의 형세를 타고 본연의 도리로는 돌아오지 않으며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고 절제할 줄 모르는 데서 온 화였습니다. 저 상군(商君)은 진의 효공을 위해 법령을 밝히어 부정의 근원을 막고, 공이 있으면 작위를 높여 반드시 상 주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 주고, 저울을 공평하게 하고 길이를 재는 일과 부피를 헤아리는 것을 바르게 하는 등 도량형을 바로잡았으며, 물가를 조절하고 밭고랑을 정리하였습니다. 이토록 백성의 직업을 안정시켜 풍속을 통일하고, 농업을 권장해 생산력을 중대시켰으며, 한 집안에서 두 가지 생업을 못 가지게 하고 농업에 힘써 식량을 축적시키고 군사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그래서 그 군사를 출동시키면 영토가 확장되고, 휴전하면 국가의 부력이 증대돼 있으므로 진은 천하 무적의 위력을 제후에 과시해 진나라의 대업은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업을 이룬 후에 상군은 드디어 자신이 거열형을 받아 죽었습니다.] 채택이 그쯤 얘기했을 때에 범수는 아무 대꾸없이 가늘게 한숨만 쉬었다. [초나라는 사방이 수천 리, 갈래진 창을 가진 병사가 백만이나 되는 대국입니다. 그러나 백기는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초군과 싸워 한 번 싸움에 언.영을 공략하고, 이릉을 불태우고, 두 번 싸움에 촉.한을 병합하고 또 한.위를 넘어서 강대한 조나라까지 공격해 북쪽으로 마복군〔趙括〕을 묻어 죽이고 장평성 밑에서 40여만 명의 군사를 섬멸하니 흐르는 피는 내가 되고 아우성 소리는 우레와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한단을 포위함으로써 진의 제업(帝業)은 이루어졌습니다. 초와 조가 천하의 강국이면서도 원수인 진을 감히 치지 못한 것은 백기의 위세 때문이었습니다. 백기가 항복시킨 성채만도 70여 성이나 됩니다. 그런 대공을 성취한 뒤에 백기는 드디어 검을 받아 두우(杜郵)에서 자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기(吳起)는 초의 도왕을 위해 법률을 세우고, 대신들의 지나친 권위를 삭감하며, 무능한 자를 파면시키고, 불필요한 행사를 없애고, 급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관직을 줄이고, 왕실의 사사로운 청탁을 막고, 초나라 풍속을 통일하며, 놀면서 돌아다니는 백성이 없게 하고, 용사와 전투를 겸하는 병사를 정예화 하여 남쪽으로 양주(楊州)의 월나라를 수중에 넣고, 북쪽 진(陳).채(蔡)의 땅을 병합하고 연횡책을 깨뜨리며 합종책을 흐트러뜨리고, 유세하는 자가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파당을 맺는 것을 금하고, 백성들이 신바람이 나도록 격려하고, 초나라의 정사를 확고 부동하게 하였으므로 그 군대는 천하를 떨게 하여 위세로 제후들을 복종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공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드디어 지해(枝解: 몸.손발을 잘라내는 형벌)의 형을 받았습니다."] 범수는 무슨 소리인가를 속으로 중얼거렸고 채택은 못 들은 척 말을 계속했다. [대부 종은 월왕 구천을 위해 계획을 깊이하고 원대한 꾀를 짜내어 회계에서 위기를 모면케 하고, 망할 뻔한 나라를 존속시키고 오욕을 영광으로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초야를 개간해 성읍(城邑)으로 만들고 토지를 개척해 곡식을 심었습니다. 사방의 선비들을 이끌고 상하의 힘을 모아 구천의 현명함을 보좌해 오왕 부차에게 원수를 갚고 드디어 강포한 오왕을 사로잡아 월의 패업을 성취시켰습니다. 그의 공적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고 위대했는데도 월왕 구천은 그를 배신해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째서 앞에 든 네 사람이 그토록 큰 공을 이루고도 화가 몸에 미쳤을까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영광의 절정에서 은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펴기만 하고 굽힐 줄은 모르며,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른다'는 격언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범여(范여)는 그 이치를 알았으며 그렇기에 초연하게 세상을 비껴나가서 도(陶) 땅의 주공(朱公)으로 길이 번영했습니다.] [그럴 듯하오.] [승상께선 도박하는 자들을 본 적이 있으시겠지요. 어떤 사람은 크게 걸어 단판 승부를 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씩 걸어 서서히 승부를 내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축에 속하오?] [당신께선 진의 재상이 되어 계략이 자리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게 하고, 그 꾀가 궁전 바깥으로 나가지 않게 하면서 가만히 앉아 제후들을 제어하고, 삼천(三川: 河南省 伊水.洛水.黃河가 合流하는 지방) 땅의 부를 옮겨 의양(宜陽)을 충실하게 만들고, 양장(羊腸)의 험한 지형을 돌파해 태항산(太行山)으로 가는 길을 막고, 또 범(范)과 중행(中行)으로 가는 삼진(三晋)의 길을 차단해 6국이 합종할 수 없게 하고, 천릿길에 잔도(棧道: 산골짜기나 절벽 사이에 놓는 다리)를 놓아 촉(蜀).한(漢)과 교통할 수 있게 하여 천하 제후들이 모두 진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래서 진의 욕망은 달성되고 승상의 공적은 극도에 달했습니다. 도박꾼으로 치면 어떤 축에 드시냐고요? 그야 승상께선 당연히 단판 승부형이지요.] [그것이 어째서 나쁘다는 거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제는 부자 몸 아끼듯 조금씩 조금씩 걸어 승부를 걸 때가 왔다는 뜻입니다. 즉 승상께서 은퇴할 때가 왔다는 의미이며, 만일 이제까지의 공을 나누어 가지지 않는 한 승상께서도 상군.백기.대부 종과 다를 게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듣기로는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제 용모를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그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서(逸書)>에도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승상께선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돌려 현자(賢者)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여 암혈(巖穴)에 거주하며 냇가로 산보나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만 하신다면 백이(伯夷)같이 청렴하다고 칭송될 것이고 영원한 응후로 불리어져 자자손손 제후의 지위가 보장될 것입니다.] [옳은 말씀이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허유(許由)나 연릉(延陵)의 계자(季子: 李禮)같이 겸양하다는 칭찬을 받을 것이고 왕자교(王子喬)나 적송자(赤松子: 둘다 仙人)같이 장수할 것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역경>에 '항룡(亢龍: 높게 올라간 용, 즉 부귀 영달한 인간)에게는 후회가 있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범수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좋은 말씀이오. 내가 듣기로도 '하고자 하여 그칠 줄을 모르면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소유하고서도 만족할 줄 모르면 그 소유하고 있는 것조차 잃는다'고 했소.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선생이 나를 일깨워 주어서 감사하오. 삼가 가르쳐 주신대로 따르리다.] 범수는 채택을 상객으로 대우했다.
며칠 후 범수는 궁중으로 들어가 진의 소왕에게 말했다. [신의 빈객 중에 요즘 산동(山東)에서 새로 온 채택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어떤 인물이오?] [삼왕(三王)의 사적와 오패의 업적이며 세속의 변화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는 천하의 재사(在士)입니다.] [그대와 비교해 어떻소?] [신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그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진나라 정사를 맡기기에 충분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감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소왕이 채택을 불러 함께 담소해 보니 그 재주가 썩 마음에 들었다. 몹시 기뻐하며 그를 객경(客卿)으로 삼았다. 한편 범수는 신병을 핑계삼아 재상의 인수를 돌렸다. 소왕은 굳이 응후를 유임시키려 했으나, 범수가 신병이 위독하다고 하자 할 수 없이 재상의 인수를 받아들였다. 소왕은 범수의 충고를 받아들여 채택을 재상에 임명했다. 그리고 채택의 계략대로 주나라 왕실의 토지를 손에 넣었다. 채택이 진나라 재상이 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채택을 참소했다. [내가 앉을 자리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채택은 재상의 인수를 돌려 주었다. 그러나 채택은 강성군(綱成君)으로 호칭되었다. 진나라에 거주한 것이 10년이었고, 그 동안 소왕.효문왕(孝文王).장양왕(莊襄王)을 섬겼으며, 나중에 시황제도 섬겼다. 진나라를 위하여 연나라에 사신을 갔으며, 3년 후 연의 태자 단(丹)을 진나라에 볼모로 오게 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한비자의 말 중에 '소매가 긴 자는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은 사람은 물건을 잘 산다〔買〕'는 것이 있다. 그 말은 옳은 것 같다. 범수와 채택은 둘 다 변설이 종횡 무진하고 권모 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다른 나라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백발이 되도록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은 그들의 계책이 졸렬해서가 아니라 유세한 그 나라의 실력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비록 나그네 신세로 진나라에 들어갔으나 연속해서 경상(卿相)의 지위에 올랐으며, 천하에 그 공적을 드날린 것은 참으로 진나라와 열국의 힘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비에게는 역시 운.불운이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는 이 두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쨌든 이 두 사람도 곤궁에 처하지 않았던들 그토록 분발하여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