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18. 춘신군열전 春申君列傳
주군을 위해 한몸을 바쳐 획책하고 강한 진(秦)의 수중에서 초의 고열왕(考烈王: B.C. 262-238 在位)을 탈출시키고 유세하는 선비들을 남쪽 초로 오게 한 것은 황헐(黃歇: 春申君)의 의기(意氣)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제18에 <춘신군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춘신군은 초(楚)나라 사람이다. 이름은 헐(歇)이었으며 성은 황씨(黃氏)이다. 여러 나라에 유학하여 아는 것이 많았으며 초의 경양왕(頃襄王)을 모시고 있었다. 황헐은 변설(辯舌)에 능했으므로 경양왕은 그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그 때 진의 소왕은 백기(白起)를 시켜 한(韓)과 위를 공격해 화양(華陽)에서 크게 무찔렀으며 위의 장수 망묘(芒卯)까지 사로잡았다. 이렇게 되자 한과 위는 진에게 굴복해 진을 섬겼으며 진의 소왕은 백기를 시켜 한.위와의 연합군으로 초나라를 치려 하고 있었다. 그런 찰라에 춘신군은 진나라에 사신으로 도착하게 되었고, 그 일이 있기 이전에 진나라는 백기를 초에 원정 보내어 무(巫).검중(黔中)등의 군을탈취했으며 언.영을 함락시켰고 동쪽의 경릉(竟陵)에까지 이르렀다. 그로 인하여 초의 경양왕은 동으로 파천해 수도는 진현(陳縣)에까지 물러나와 있었다. 전날, 초의 회왕이 진의 속임수에 넘어가 진에 입조했다가 귀국하지 못한 채 그곳에서 객사한 일이 있었다. 경양왕은 바로 그 회왕의 아들로 진으로서는 초를 만만하게 보았으며, 황헐은 진이 군대를 몰아 초로 쳐들어오지나 않을까 몹시 초조해하고 있던 중이었다. 진에 도착한 황헐은 우선 진왕에게 글부터 올렸다.
- 천하에 진과 초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듣자오니 대왕께서 지금 초를 치려 하신다는데 이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두 호랑이가 싸우는 바와 같아 두 맹수가 동시에 기진맥진해지면 그 피폐한 틈을 타는 것은 볼품 없는 사냥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를 치실 게 아니라 초와 친해지십시오. 우선 그 이로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이 듣건대, '모든 사물은 극단에 이르면 제자리로 돌아오며, 겨울이 다하면 여름으로 돌아오고, 쌓은 일이 극한에 달하면 붕괴의 위기가 오니 마치 장기짝을 쌓는 일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귀국의 팽창 상태가 바로 이와 비슷합니다. 지금 진의 파도는 천하에 두루 퍼져 있습니다. 토지는 동서의 변경까지 뻗어 인류가 생긴 이래 귀국처럼 만승의 땅을 소유한 경우는 아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제이신 혜문왕과 장왕 그리고 대왕에 걸친 3대에 이르러서도 제(齊)나라와 국경을 접함으로써 한과 위의 허리를 끊으려는 뜻을 아직도 여전히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성교(盛橋)를 한나라 재상으로 보내 한의 땅을 진의 판도에 넣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대왕께서 군사를 사용하시거나 위협을 가하지 않고도 백 리의 땅을 그냥 손에 넣은 바가 되니 역시 이는 대왕께서 유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은 다시 병사를 일으켜 위를 쳐서 대량의 출입구를 막고 하내를 공략하고 연(燕).산조(酸棗).허(虛).도(桃: 모두 河南省의 魏地)를 함락시키고 형(邢)으로 돌입하니 위의 군사는 구름처럼 흩어지고 겁이 나서 그 누구도 구원하려 들지 않았으니 이 또한 대왕의 무공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대왕은 병사들을 일단 쉬게 한 뒤 3년 후 군사를 다시 일으켜 포(蒲).연(衍).수(首).원(垣)을 병합하고 인(仁).평구(平丘)에 박두하며 황(黃).제양(濟陽: 모두 山西省의 魏地)의 성문을 닫아 나오지 못하게 하니 결국 위는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대왕은 다시 복수(복水: 河南.河北省을 흐름).마(磨: 복수에 임한 邑)의 북쪽을 쪼개고 제.진 사이의 허리를 뺏고 초.조 사이의 등골뼈 부분을 절단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천하의 제후들이 대여섯 차례나 회동했으면서도 감히 구원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역시 대왕의 위력이 극도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 만약 이제까지의 공을 견지하고 위력을 지키며 더 이상의 공략 야심을 물리치고 인의(仁義)에 맞는 정당한 영토를 살찌게 하여 훗일의 우환이나 경계하신다면 삼왕(三王: 夏의 禹.殷의 湯.周의 文王)에 다시 대왕을 더할 필요도 없이 대왕께선 위대하시며, 다섯( 齊의 桓公.宋의 襄公.秦의 穆公.晋의 文公.楚의 莊王)에 대왕을 더하여 여섯 패로 할 번거로움도 없이 대왕의 업적은 크나큰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만약 백성의 숫자 많음을 믿고 병력의 강대함만 빌려 위를 깨뜨린 위세를 몰아 무력으로 천하 제후를 신하로 삼으려는 무리를 하신다면 후환이 있지 않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시경(詩經)> <大雅.탕편(蕩篇)>을 보면 '시작을 잘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끝맺음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라고 되어 있으며, <역경(易經)> <미제괘(未濟卦)>에는 '여우가 물을 건널 때 처음에는 꼬리를 적시지 않으려고 조심하다가 물을 다 건넌 순간 방심하여 기어코 꼬리를 적셔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작하기는 쉽고 끝맺음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는 지씨(智氏: 晋의 卿으로 智伯瑤)는 조를 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유차(楡次)의 화(禍: 楡次는 山西省 陽曲縣 남동, 지백요가 여기서 죽었음)는 알지 못했음과 같습니다. 오(吳)나라가 제나라를 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간수(干隧)의 패(敗: 간수는 江蘇省 吳縣의 북서, 吳王 大差가 여기서 죽었음)를 짐작 못 했음과도 같습니다. 지씨와 오는 큰 공적이 없었던 바는 아니나 목전의 이익에만 몰두하다가 후환을 감지하지 못한 것이며, 오왕이 월나라를 믿고 제를 쳐 애릉(艾陵)에서 승리했습니다만 돌아와 월왕에게 삼저(三渚: 江蘇省 太湖에서 흘러나가는 松江.누江.東江, 즉 三江)의 물가에서 사로잡히는 경계는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씨는 한.위를 믿고 그들의 군사로 조를 쳐 진양성(晋陽城: 趙氏의 居城, 山西省 太原縣)에서 승리의 순간을 맛보았으나 한.위가 반기를 들어 지백요는 착대(鑿臺) 밑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초를 망하게 하는 것이 한.위를 강하게 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잊고 계십니다. <일시(逸詩)>에 보면, '큰 세력을 지닌 자는 먼 곳을 안정시키고 굳이 건너가 공격치 않는다네'라고 돼 있습니다. 이런 시(詩)로 판단한다면 초는 우방이요 이웃 한.위는 적국입니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교언편(巧言篇)>을 읽으면, '팔팔 뛰는 교활한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사로잡히고, 저쪽이 어떤 야심을 품고 있으면 이쪽도 그걸 헤아릴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왕은 한.위를 공격하다 한.위가 대왕께 호의를 가졌다고 생각하시는 건 마치 오가 월을 믿었던 경우와 유사합니다. 신은, '적은 용서해선 안 되며 또한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진의 침공을 우려해 한.위가 언사를 낮춤은 속임수로 짐작됩니다. 왜냐하면, 귀국에선 대대로 한.위에 베푼 덕이 없고 차라리 원한만 사 왔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한.위의 부자(父子) 형제가 귀국과의 전쟁에서 죽음을 당한 게 어언 10대(代)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직과 종묘는 파괴되고 배가 갈리고 창자가 끊어지고 목이 잘리고 턱이 부서지며 목과 몸이 떨어져 풀밭과 진펄에 멋대로 뒹굴고 두개골이 거꾸로 처박힌 채 국경에서 마주보고 있습니다. 거기다 남녀노소의 목과 손목이 줄에 묶인 채 포로의 무리로 길게 거리를 잇고 죽은 자의 영혼이 외롭게 슬퍼해도 제사를 지내 줄 유족조차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안주하지 못하고 가족들은 산지사방 흩어져 남의 종이 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한.위를 믿고 그들의 힘을 빌려 함께 초나라를 치려 하시니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뿐만 아니라 대왕께서 초를 친다면 어느 지점부터 출병하시렵니까. 원수인 한.위에게 진군로를 빌리겠습니까. 혹시 대왕의 군사들이 출병 그 날로 돌아오지 못할까 사뭇 두렵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통로를 한.위에게 빌리지 않는다면 필시 수수(隨水)의 오른쪽 기슭의 땅〔河南省〕을 치게 됩니다. 그 땅은 넓고 큰 강과 산림 계곡이어서 식량이 생산되지 않는 곳입니다. 이런 땅을 설혹 얻는다 하더라도 초나라를 쳤다는 명목은 있을지 모르나 실속은 없습니다. 그리고 대왕께서 초를 공격하는 날에는 제.한.위.조 네 나라가 한꺼번에 대왕에게 덤빌 것입니다. 진.초의 병사가 장기간 어우러져 싸우고 있을 때 위가 출병해 유(留).방여(方與).질(질).호릉(湖陵).탕(탕).소(蕭).상(相:모두 宋의 故地로 여기서는 楚地)을 칠 것이니 송의 옛 땅은 모두 위의 것이 될 것입니다. 또 제는 남쪽으로 초를 칠 것이니 사수(泗水: 山東.江蘇 兩省을 흐르는 江) 연안은 모두 제에게 뺏길 것입니다. 이 곳은 모두가 사통팔달의 비옥한 땅입니다. 결국 위.제가 옥토를 균점(均霑)하게 됩니다. 즉 대왕께서 초를 깨뜨림으로써 한.위를 중원 지대에서 살찌게 하고 제를 강국으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 한.위가 강하게 되면 진에 대적할 것이고 제는 남쪽으로 사수를 경계하여 동으로 바다를 지고 북으로 황하를 의지하게 됨으로 그들에겐 배후의 우환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제.위보다 강한 나라가 천하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위가 땅을 얻고 이익을 챙긴 뒤 진의 하급 관리들을 받드는 척 속인 후 한 해 뒤엔 비록 그들이 황제는 못 된다 하더라도 대왕께서 황제가 되는 일을 충분히 방해할 수 있는 힘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광활한 국토와 많은 인구와 강한 병력을 가지고 사단(事端)을 일으킨다는 점은 대왕의 실책이라 사료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초와 친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습니다. 진.초가 동맹하여 한에 대처하면 한은 반드시 복종할 것입니다. 산동의 험준한 지리(地利)로써 옷깃을 삼고 굽이진 황하의 이로움으로 띠를 삼는다면 한나라는 반드시 귀국의 관문이나 지키는 제후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한 후 10만의 병사로 정(鄭: 韓都, 河南省)나라에 진주하면 양(梁: 魏)은 간담이 서늘해질 것이고 위의 허(許).언릉(언陵)은 성문을 걸어 잠그고 상채(上蔡).소릉(召陵: 모두 魏地, 河南省)과 왕래가 끊겨 위 또한 귀국의 제후국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대왕께선 일단 초와 우호 관계를 맺고 만 대의 전차를 가진 두 나라를 진의 영향권 안에 두고 제와 국경선을 사이에 두게 하여 견제토록 하면 제의 오른쪽 땅을 팔짱만 낀 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대왕의 판도는 동해에서 서해(西海: 西方)를 하나로 꿰뚫어 천하의 허리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렇게만 되면 연.조는 제.초의 원조를 받을 수 없고 제.초는 연.조와 가깝게 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연후에 연.조를 위협하면서 제.초를 흔들면 네 나라는 맹공을 퍼붓지 않더라도 항복해 올 것입니다.
진의 소왕이 모두 읽은 후 흡족한 듯이 말했다. [백기의 출발을 중지시켜라. 황헐의 설득이 가하다.] 진은 곧 한.위에 대하여 사과하고 초에는 예물을 보내 동맹국이 될 것을 약속했다. 황헐은 진왕의 약속을 받아낸 뒤 일단 초로 돌아왔다가 태자 완(完)과 함께 진으로 인질이 되어 들어갔다. 이들은 진에서 오래 억류되었다. 경양왕이 병이 들었는데도 태자를 귀국시켜 주지 않는 진의 처사가 문제였다. 황헐은 곰곰이 생각한 뒤 한 가지 계략을 짜냈다. 마침 태자 완이 진의 재상 응후와 친분이 두터웠던 점을 빌미로 한 것이다. 황헐은 응후를 찾아갔다. [승상, 격무에 무고하신지요? 방문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 태자 완과 친밀하시다는 얘기를 들어서.......] [친하게 지내지요. 예절바른 분이시라...... 한데?] [지금 초왕께서 병이 위중하십니다.]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아들된 태자 완이 귀국을 하셔야 될 텐데.......] [저희 진왕께서 허락을 내리시지 않을 겁니다.] [대왕께 한번 말씀드려 주십시오.] [헛수고일 뿐입니다.] [다시 상기시켜 드리지만 저희 태자와 친한 사이시니 밑져 봐야 본전이니까 제발 조금만 수고 좀 해 주십시오.] [초왕께서 위독하다 하시어 금세 태자를 귀국시켜 드리자는 간청은 명분이 약하지 않습니까.] [명분은 비중을 더함에 따라 듣기에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우선 상국(相國)인 저한테부터 설득해 보시지요.] [초의 태자가 귀국함으로써 진에게 유리한 점부터 말씀드리지요. 태자는 현왕이 서거하는 즉시 귀국하는 대로 즉위하게 될 것입니다. 우선 승상의 덕을 입어 귀국한 데다 평소에 친분이 두터우셨으니 승상의 은덕이 한없이 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초는 진나라를 정중하게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동맹국과 찬선하는 길이며 만승지국에 은덕을 입히는 길이 되니 그것이 명분입니다.] [태자를 귀국시키지 않을 경우의 진의 불이익은 무엇입니까?] [귀국하지 못한 태자는 함양의 무위무관(無位無官)한 일개 백성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초는 다른 인물로 태자를 세우면 되는 일이고 그가 허락지 않음으로써 동맹국으로서의 약속은 깨어지고 화친은 끝날 수도 있게 됩니다. 진으로선 양책이라 볼 수 없지요.] 고개를 끄덕거린 응후가 입궐해 그대로 진왕에게 상주(上奏)했다. 그러나 진왕의 결심은 요지부동이었다. [상국의 의견이 그럴 듯하긴 하나 우선 초나라 태자의 사인(舍人)을 사신으로 보내 초왕의 병문안을 드리게 하고...... 그들이 돌아온 뒤에나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이를 전해 들은 황헐은 할 수 없다 생각하고 태자 완에게 은밀히 계략을 건넸다. [진나라가 태자를 억류해 두려는 것은 그로 인한 어떤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데 실제로 태자께선 그들에게 줄 만한 힘도 이익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진을 빠져 나가셔야 되겠는데.......] [도망을?] [모험을 감행하셔야 되겠습니다. 만약 초왕께서 급작스레 수명을 다하시게 될 때 태자께서 초에 계시지 않으면 양문군(陽文君: 楚王의 兄弟)의 두 아들 중 한 분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런 사태를 가만히 앉아서 맞지 않으시겠다면 탈출의 모험을 감행하십시오.] [태부께서도 함께 가시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남아서 뒤처리를 맡겠으니 걱정 마시고 먼저 떠나 주십시오.] 결국 태자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인의 마부로 위장하고 함곡관을 빠져 나갔다. 황헐은 태자의 숙사에 대신 머물며 태자의 병을 칭탁(稱託)해 한동안 외출도 하지 않았다. 진군이 추적할 수 없을 만큼 태자가 멀리 도망쳤을 것이라고 가늠되는 즈음해서, 황헐은 자진해 진왕 앞으로 나아갔다. [초의 태자는 진작 귀국 길에 올라 관문을 멀리 벗어났을 것이옵니다. 모든 일은 제가 시킨 것이오니 신에게 죽음을 내려 주십시오.] [저놈을 당장 하옥시켜라!] 초 태자가 탈출한 사실이 확실해지자 진왕은 황헐에게 자살을 명했다. 이 때 응후가 나섰다. [대왕, 그것은 현명치 못한 처사이옵니다. 황헐은 신하된 자로서 주군을 위해 한몸을 내던져 할 일을 다했습니다.] [그렇더라도 과인을 감히 능멸한 죄가 있다.] [작은 잘못은 책하지 마시고 큰 이득을 챙기십시오.] [큰 이득이라고?] [태자가 즉위하면 반드시 황헐을 등용할 것입니다. 벌하지 않고 돌려 보냄으로써 그를 은혜 입게 하시고 그로 인해 초와 화친을 계속 도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되어 황헐은 무사히 초나라로 돌아갔다. 헐이 도착한 지 석 달 만에 경양왕이 죽고 태자 완이 즉위하니 이가 곧 고열왕(考烈王)이다. 고열왕 원년에 황헐을 재상에 임명하고 춘신군(春申君)에 봉해 회수(淮水)의 북쪽 땅 12현을 하사했다. 얼마 지나서 황헐은 생각하는 바가 있어 초왕에게 진언했다. [회수 북쪽 땅은 초의 변경이며 제와 접해 있어 정치적으로 급속히 처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군(郡)으로 개편해 직할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차제에 신의 봉읍인 회북(淮北) 12현을 되돌려 받으시고 대신 강동(江東: 楊子江 下流 남부)으로 바꿔 주십시오.] [승상의 뜻대로 하시오.] 초왕은 쾌히 승락했다. 그렇게 되어 춘신군은 옛적 오의 폐허에 성을 쌓고 자신의 도읍으로 만들었다. 춘신군이 초나라 재상이 되었을 즈음에는 제의 맹상군.조의 평원군.위의 신릉군이 있어 유능한 선비들을 앞다투어 빈객으로 맞이하려 서로 힘을 기울이고, 그들의 힘으로 국력을 신장시키고 또한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춘신군이 초의 재상이 된 지 4년 만에 진나라가 조의 장평에서 40만 대군을 격파하고 이듬해 한단을 포위하자 병사를 이끌고 가서 조나라를 구했다. 또 고열왕 8년에는 북쪽으로 진격해 노나라를 멸하고 순경(筍卿)을 난릉(蘭陵)의 현령으로 삼았다. 초나라로선 이 무렵이 가장 강대했던 시절이었다. 강대함을 자랑하는 초나라로 조의 평원군이 감사 시절을 보냈다. 조나라에선 자국이 허약한 나라가 아니라는 과시를 하느라고 사신들에게 대모(대瑁)로 비녀를 만들고, 도검(刀劍)의 칼집을 주옥으로 장식한 차림으로 우선 춘신군에게 면회를 청했다. 춘신군에게는 3천여의 빈객이 있었는데 거의가 주옥으로 장식한 신을 신고 나왔으므로 되려 사절들은 크게 망신만 당했다. 진나라에서는 장양왕이 즉위해 여불위를 재상으로 삼아 문신후(文信侯)에 봉하고 동주(東周)를 탈취했다. 진의 인근국들은 끊임없이 진의 침공에 시달렸으므로 모두들 전전긍긍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22년이었다. 제후들을 불러모아 합종(合從)을 맹약하고 서쪽 진나라에 대항하기로 했다. 초왕이 합종의 맹주가 되었으며 춘신군이 실제의 종약장(從約長)이었다. 그런데 제후의 군대가 함곡관에서 진의 군대에게 대파되었다. 초왕은 그 책임을 춘신군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무슨 망신살이오. 상국의 지혜가 옛적만 못한 게 아니오!] 그 사건으로 인해 춘신군은 고열왕과의 사이가 많이 서먹서먹해졌다. 춘신군의 빈객 중에 관진(觀津) 출신인 주영(朱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이런 건의를 했다. [사람들은 초나라는 강대한데 승상께서 군대를 약화시켜 나라가 약해졌으며 자주 침공을 당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왕 시절에 진나라와의 선린을 20년 동안이나 지속해 오는 동안 초는 진으로부터 한 번도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진이 초나라를 예뻐해서가 아니라 맹애(맹隘: 河南省 信陽縣의 南東 平靖關)의 요새를 넘어 초를 친다는 사실이 불편했기 때문이며, 진군로를 동서 양주(兩周)에게서 빌려 한.위를 배후에 두고 초를 친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위나라는 곧 멸망할 형편이므로 도무지 허.언릉 땅을 아낄 처지가 아니어서 진나라에게 할양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제 진나라의 군대는 우리 초나라의 수도 진(陳)과 불과 160리 거리를 두고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고로 제가 보는 바로는 진나라와 초나라는 매일 전쟁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대왕의 신임도 한 번 더 묻는 뜻에서 차제에 수도를 수춘(壽春: 安徽省 壽縣)으로 옮기도록 건의해 보십시오.] 주영의 말대로 천도의 허락이 내려지자 춘신군은 그제서야 가슴을 쓸었다. 초의 고열왕에게는 지식이 없었다. 재상인 춘신군은 걱정이 되어 자식 잘 낳는다는 체형의 여인을 골라 왕에게 여럿 바쳤으나 끝내 허사였다. [문제는 왕에게 있다. 어떻한다......?] 그럴 즈음이었다. 이원(李園)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절색의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다. 이원은 동생을 바쳐 벼슬이나 얻어 보려고 초왕에게 접근할 계략을 꾸미고 있던 중 주막에서 우연히 고열왕이 고자일지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 별수없이 그 계획을 포기하기로 했다. 차라리 재상인 춘신군에게 넘겨 그를 통해 벼슬 자리를 얻는게 빠르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원은 춘신군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빈객으로서보다는 그의 가신이 되는 게 목적 달성에 첩경이라 믿었다. 어느 날 이원은 휴가를 얻어 나갔다가 고의로 귀가하는 기일을 늦추었다. 춘신군이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마음대로 늦어도 되는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소인은 소인대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니?] [죄가 있다면 제 여동생이 경국지색이기 때문입니다.] [무어라?] [소인은 조나라가 고향입니다. 부모님이 거기 계시기로 뵈러 갔다가 기왕에 누이의 미색이 궁중까지 알려짐으로 해서 부모님이 고통을 당하고 계시므로 그걸 해결하느라 늦었습니다.] [그대 동생이 미색과 부모의 고난이 무슨 상관이냐?] [조왕께서 동생을 바치라 하셨습니다.] [왕의 요구인데 바치면 될 게 아니더냐?] [동생은 죽어도 조왕한테는 시집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처리를 해 놓고 왔느냐?] [초나라로 데려왔습니다.] [이 곳에 와 있다는 얘기더냐?] [소인이 숨겨 두고 있습니다.] [한 번 만나 보아도 괜찮겠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소청을 거절하겠습니까. 곧 데려오지요.] 이원의 동생을 만나 본 춘신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호기심으로 불러 본 것이었는데 만나 보니 과연 절색이었다. [네 여동생을 나한테 줄수는 없겠느냐?] [뜻밖입니다만...... 제 동생이 원한다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부터 이원의 여동생은 춘신군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이 춘신군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이원을 알게 되었다. 슬그머니 엉뚱한 욕심이 생겨 동생을 불러내어 괴이한 계략을 짜고 그녀를 설득했다. 동생은 별수없이 오라비의 계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가한 틈을 타서 이원의 누이동생은 춘신군에게 간곡히 말했다. [초왕께서 나리를 사랑하고 대접하는 정도가 대왕의 형제라 해도 그만큼 깊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왕께서는 자식이 아니 계십니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나리께선 스무 해 넘어 재상 자리에 계셨습니다. 대왕께서 서거하시어 자식 아닌 공자들 중의 한 분이 즉위하셨을 때의 나리의 처지가 걱정스럽다는 말씀을 올릴 참이었습니다.] [그 점을 내가 생각 못 해 본 바는 아니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아닌가?] [나리께서 오래 상국의 자리에 계시면서 부지중에 공자들께 실례를 범한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닌 줄로 짐작됩니다. 때문에 대왕의 형제분이 즉위하였을 때 나리께 화가 미치지 않을까 그것이 심히 두렵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어찌하겠느냐?] [재상의 인수와 강동의 봉지는 말할 것도 없고 신변에 참화가 미치지 않을까 그게 심히 두렵습니다.] [네 얼굴을 보니 묘책이 있는 것 같은데, 두렵다 두렵다 하지만 말고 어서 네 심중이나 아뢰어라.] [감히 말씀드리지요. 나리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은 저와 나리밖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상국 나리의 존귀한 지위를 이용하셔서 저를 대왕께 바쳐 주십시오.] [무어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대왕의 아이를 낳아 드리면 대왕께선 반드시 저를 총애하실 것입니다. 혹시 하늘이 도와 아들을 낳게 되면 공자께서 왕으로 즉위하는 불상사도 없이 우리 아이는 태자가 될 것이고, 태자가 즉위하면 나리께서 섭정할 수밖에 없게 되며, 나리께선 왕의 실제 아버지가 되고 초나라 전부는 나리의 것이 됩니다. 화를 입는 일보다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두 번 다시 그런 소릴 입밖에 내지 말라!] 그렇게 큰소리쳤지만 춘신군은 애첩의 간청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애첩을 자택에서 멀리 내보낸 춘신군은 가만히 왕께 아뢰었다. 이원의 누이동생을 만나 본 초왕은 혹하여 이내 총애하게 되었다. 그 후 사내아이를 낳자 태자로 책봉했으며 그녀를 왕후로 삼았다. 초왕은 왕후의 오라비 이원을 중용하여 측근에 두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25년이었다. 왕이 병들었을 때 모사 주영이 가만히 춘신군을 찾아왔다. [세상에는 뜻밖에 오는 복이 있으며 또 뜻밖에 오는 화도 있습니다. 그런데 승상께선 뜻밖의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 사시면서 뜻밖에 수명을 달리하실 군주를 모시고 계시면서도 어찌 뜻밖의 일을 감당할 사람을 측근에 두지 않으십니까?] 황당스런 말이라 춘신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뜻밖에 찾아오는 복이라 했소?] [승상께선 초의 재상이 되신 지 어언 스물 다섯 해입니다. 대왕께선 위중하시니 언제 승하하실지 모릅니다. 그 때 승상께선 어린 군주를 도와 옛날의 이윤(伊尹: 殷의 賢相)이나 주공(周公: 周武王의 아우, 周公旦)처럼 섭정을 하시다 왕이 성장하면 권력을 돌려 주든지 아니면 남면하여 고(孤: 諸侯의 自稱代名詞)라 칭하며 초나라를 접수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뜻밖의 복이라 합니다.] [그럼, 뜻밖의 화는 또 무엇이오?] [왕후의 오라비 이원의 문제입니다. 그는 사악한 자로 춘신군의 존재 때문에 권력을 좌지우지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승상을 원수처럼 여겨 거세할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그는 병권을 잡고 있는 처지도 아니면서 벌써 오래 전부터 사병(私兵)을 은밀히 양성하고 있으니 그 기미가 아주 심상치 않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갑자기 운명하시는 날 그는 틀림없이 사병을 이끌고 왕궁으로 쳐들어와 권력을 장악한 뒤 승상을 척살할 것입니다. 이것이 뜻밖의 화라는 것입니다.] [뜻밖의 인물이란 또 누구이겠소?] [두고 보십시오. 대왕이 승하하는 날 반드시 이원이 먼저 입궐해 승상을 해칠 것이니, 제가 입궐해 있다가 들어오는 이원을 먼저 처치할 수 있도록 승상께선 저를 낭중(郎中: 宮中의 官)에 임명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뜻밖의 화를 막아 줄 뜻밖의 인사(人士)인 것입니다.] 곰곰 생각에 잠겨 있던 춘신군은 흔연히 말하였다. [그대가 하신 말씀들은 나와 전연 무관하오.] [저런!] [내가 이원의 연약한 성품을 미리 알거늘 어찌 그토록 엄청난 일을 꾸미겠소. 그냥 내버려 두시오.] 주영은 자신의 말이 춘신군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머잖아 자신의 몸에 화가 미칠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멀리 도망쳐 버렸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17일 만에 고열왕이 죽었다. 이원은 과연 사병들을 거느리고 입궐해 극문(棘門: 宮門名)에서 매복해 있다가 춘신군이 들어오자 그를 찔러 죽였다. [이 자의 입에서 왕후 임신의 비밀이 새어나올까 얼마나 걱정했던지!] 이원은 춘신군의 머리를 베어 극문 밖으로 던진 후 사병들을 몰아가서 춘신군의 가족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다. 춘신군의 아들, 이원의 누이동생이 낳은 어린 태자가 즉위하니 이가 곧 초의 유왕(幽王)이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일찍이 춘신군이 제 한 몸을 던져 진의 소왕을 설득하고 초의 태자를 귀국시킬 때만 해도 얼마나 충성스럽고 지혜로왔던가. 나중에 이원의 간계에 넘어가고 목숨까지 잃게 된 것은 그의 노망 탓이었으리라. 옛말에 있던 대로 '바로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입는다'던 말이 맞는가 보다. 주영의 말을 믿지 않은 것도 그의 노쇠 탓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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