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15. 맹상군열전 孟嘗君列傳
맹상군은 빈객을 좋아하고 일기일예(一技一藝)에 뛰어난 선비들과 접촉하기를 즐겼으므로 인재가 설(薛: 孟嘗君의 封邑) 땅으로 몰려들었다. 맹상군은 제나라를 위하여 초.위(魏)의 침략을 막았다. 그래서 제15에 <맹상군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맹상군의 이름은 문(文)이고 성은 전(田) 씨다 그의 아버지는 정곽군(靖郭君) 전영(田영)이라 했다. 전영은 제나라 위왕(威王)의 작은 아들이며 제나라 선왕(宣王)의 배다른 아우이다. 전영은 위왕 시대부터 요직에 임명되어 국정을 담당했다. 성후(成侯) 추기(鄒忌) 및 전기(田忌) 등과 함께 장군으로서 한을 구원하기 위해 위(魏)를 친 적이 있었다. 성후와 전기는 임금의 총애를 다투다가 성후가 전기를 모함했다. 두려워진 전기는 제의 변읍을 두들기다 말고 역부족이어서 도망치고 말았다. 때마침 위왕이 죽고 선왕이 즉위했다. 선왕은 성후가 전기를 모함한 것을 알고 다시 전기를 불러서 장군으로 삼았다. 선왕 2년에 전기는 손빈(孫子).전영과 함께 위를 공격해 마릉(馬陵)에서 격파하고 위나라 태자 신(申)을 사로잡았으며 위의 장군 방연(龐涓)까지 죽였다. 선왕 7년에 전영은 사자로 한과 위로 가서 두 나라를 제에 복종케 했다. 전영은 한의 소후(昭侯)와 위의 혜왕(惠王)을 데리고 동아(東阿: 山東省 陽穀縣 북동의 阿城鎭)로 가서 제의 선왕과 회맹케 했다. 그 이듬해에는 다시 양혜왕(梁惠王: 실상은 魏侯 영인데, 위나라 서울이 大梁이어서 梁惠王이라 부름)과 견(甄: 山東省 복縣 동쪽)에서 회맹했는데 그 해에 양혜왕은 죽었다.
선왕 9년에 전영이 제의 재상이 되었다. 제의 선왕이 위의 양왕(襄王)과 서주(徐州: 江蘇省 舊徐州府.비현)에서 회맹하여 서로 왕이라 칭하기로 합의했다. 전영의 공작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안 초의 위왕은 전영을 두고 노발대발했다. 초는 이듬해에 총공세를 취해 제의 서주를 격파하고 전영을 추방하라고 요구했다. 전영이 장추(張丑)를 보내 초왕을 달랬으므로 전영은 간신히 초왕의 진노를 무마시킬 수가 있었다. 전영이 제의 재상자리에 있은 지 11년 만에 선왕이 서거했다. 곧 민왕(민王)이 즉위하여 3년 만에 전영을 설(薛: 山東省 騰縣 남쪽) 땅에 봉했다. 전영에게는 40여 명의 아들이 있었다. 전문(田文)은 전영의 천첩(賤妾)소생이다. 문은 5월 5일에 태어났다. 전영은 처음에 문의 어미에게 아이를 낳지 말도록 했다. 5월생은 불길하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영의 천첩은 몰래 아이를 낳아서 길렀고, 문이 장성했을 때 어미는 전영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아비 앞으로 나서도록 했다. "뭐라고? 내가 이 아이를 낳지 말라고 그렇게도 신신당부하지 않았더냐!" 전영은 문의 어미에게 소리질렀다. 천첩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머리만 숙이고 있었다. "나는 이 자식을 버리라고 했다. 그런데 너는 내 명령을 거역했다. 벌을 내리기 전에 왜 이 아이를 낳아 길렀는지 그 이유나 들어 보자." 그 때 문은 모친을 대신해서 물었다. "아버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5월에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이놈아, 아버님 아버님 하지 말아라. 그래, 네놈도 몰라서 그것을 묻느냐!" "모릅니다." "5월에 난 자식은 키가 지게문 높이만큼 성장했을 때 그 부모에게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속설이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버님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 운명은 하늘로부터 받는 것입니까 아니면 지게문한테서 받는 것입니까?" "모르겠다, 이놈아." "사람이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선 아무 근심하실 필요가 없을 것이고 지게문한테서 받는다면 그까짓 문이야 높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 머리가 닿을 수 없도록 말입니다." "그놈 대꾸 한 번 잘한다." 얼마쯤 지나 전영이 한가한 틈을 타서 문은 다시 부친에게 질문했다. "아들의 아들은 무엇입니까." "손자지, 왜?" "손자의 아들은 무엇입니까." "증손자다." "증손자의 아들은 무엇입니까." "그 참 귀찮게 묻네, 현손 아닌가." "현손자의 손자는 무엇입니까." "모르겠다." "모르시겠습니까." "알 수 없다." 다시 얼마쯤 지나서 문은 무언가에 단단히 벼르고 왔다는 표정으로 부친 앞에 꿇어앉았다. "또 무어냐?"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정권을 잡으시고 제의 재상이 되셔서 지금까지 세 임금[威王.宣王.민王]을 섬기셨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제의 국토는 확장된 바도 없는데 아버님의 사가(私家)에만 천만금의 부력(富力)이 축적되었습니다." "나쁘냐?" "그런데도 문하에 단 한 사람의 어진 이도 찾아볼 수 없으니 어인 일입니까. 장군 가문에 장군 나고 재상 가문에 재상 난다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무얼 말하고 싶은 거냐?" "지금 아버님의 후궁에는 미인들이 비단옷을 질질 끌고 다닙니다만 선비들은 짧은 잠방이 하나 얻어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과 첩들은 쌀밥과 고기를 실컷 먹고서도 남아돌아 내다 버릴 정도인데 선비들은 쌀겨나 지게미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핵심을 말해라." "아버님께선 그토록 넘치는 재물을 창고 속에 간직해 두고서 그 '알 수 없다'는 사람에게 남겨 주려 하시는 겁니까. 날로 소퇴해 가는 국력을 생각하십시오." "으음...... 네가 기특한 말을 하는구나." 그 때부터 전영은 아들 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오늘부터 네가 우리 집안일을 맡아 다스리고 손님 접대하는 일을 맡아 보아라." 그 때부터 전영의 집안에는 빈객들이 더욱 많이 들끓었다. 전문의 명성도 제후들 사이에서 날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문을 태자로 삼으십시오. 무척 현명합니다." 제후들은 모두 사자를 시켜 설공(薛公) 전영에게 충고했다. "그으래? 내 아들이 그토록 현명하다더냐." "벌써 명성이 천하에 자자합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얼마 뒤 전영은 문을 후계자로 정한 후 죽었다. 전영이 사거하자 시호를 정곽군이라 했다. 문은 예상대로 부친을 대신해 설의 영주(領主)가 되었다. 그가 바로 맹상군이다.
맹상군은 설에 거주하면서 제후의 손님들을 불러들이자 죄를 짓고 도망한 자까지도 모두 맹상군의 문하로 모여들었다. 맹상군은 가산을 기울여 그들을 후대했다. 때문인지 천하의 별의별 인물들이 다 모여들었다. 식객이 수천이나 되었지만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후대했다. 특히 손님과 대좌할 때는 병풍 뒤에 시사(侍史: 비서)를 대기시켜서는 손님의 신상명세서를 기록해 두도록 했다. 손님이 물러갈 무렵에는 벌써 그 손님의 집을 위문하고 선물까지 보내 주도록, 시사에게 단단히 시행하도록 해 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맹상군이 손님에게 밤참을 대접하고 있었다. 불빛이 어두웠기 때문인지 손님은 무작정 자신의 밥상이 주인 맹상군의 식탁보다 못하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럴 리가 있겠소?" "식탁에 차등을 두려고 일부러 불빛을 어둡게 한 게 아니겠소. 난 가겠소." "어디 봅시다." 맹상군은 일어나서 자신의 소반을 들고 손님 곁으로 갔다. 비교해 보니 똑같았다. 부끄러움을 참지 못한 손님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런 일로 인해 더욱 많은 인재가 맹상군 문하로 몰려들었고 한결같이 잘 대우해 주었으므로 손님들은 누구나 자기가 맹상군과 친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이 훌륭한 인물이라는 소문을 듣고 자기의 아우 경양군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낸 뒤 맹상군을 초청했다. "정중한 초청이니 가야겠지요." "가지 마십시오. 저쪽의 기미가 심상치 않습니다." "설마 별다른 변고야 있겠소." 맹상군은 떠나겠다고 나섰고 빈객들은 하나같이 말렸다. 이 때 소대(蘇代: 蘇秦의 아우)가 나섰다. "들어 보십시오. 오늘 아침 제가 이리로 오는 도중에 나무인형과 흙인형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무인형이 먼저 말하더군요. '비만 오면 자넨 낭패겠어. 녹아 없어지니까.' 그러자 흙인형이 대꾸했습니다. '나야 뭐 본디 흙에서 나왔으니 녹아 봐야 흙으로밖에 더 돌아가겠나. 문제는 자네일세. 비가 와서 떠내려가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갈지도 모르지 않아.더구나 돌아올 수도 없을 테고.'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납고 믿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떠나시려 합니까. 만약 되돌아올 수가 없어서 토우(土偶)의 웃음꺼리가 되면 어떻게 하지요?" "그대조차 나를 말리니 행차를 포기하겠소."
제의 민왕 25년에 맹상군은 어쩔 수 없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진의 소왕은 맹상군이 도착하자 그를 극진히 맞으며 재상으로 앉히려고 했다. 그 때 진왕의 측근이 말했다. "대왕, 맹상군이 명민하고 훌륭한 인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제나라 왕의 일족임을 기억하십시오." "재상의 인수를 내리는데도?" "그래도 진나라보다는 제나라의 이익을 먼저 챙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는 인물입니다. 죽이십시오." "죽여?" "일단 재상 임명을 중지하시고 슬그머니 연금해 두십시오. 죄를 씌워 죽일 수 있는 계략을 마련해 두겠습니다." "음......." 맹상군은 속절없이 연금당하고 말았다. "이제 어떻게 한다?" 맹상군은 애를 태우며 함께 간 빈객들을 둘러보았다. 그 때 한 빈객이 나섰다. "제가 갔다 오지요." "어디로?" "소왕이 몹시 총애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제가 가서 군께서 석방될 수 있도록 탄원해 달라고 부탁해 보겠습니다. 제가 소왕의 애희(愛姬)를 잘 압니다." 빈객이 애희를 만났다. 그런데 애희의 교환조건은 사뭇 엉뚱한 것이었다. "나는 맹상군께서 호백구(狐白구: 여우 겨드랑이 흰 털로 만든 고급 皮衣)를 가지고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갖고 싶은데......." "그렇게 말씀드려 보지요. 그 대신 끝내 비밀로 해 주십시오. 워낙 비싼 물건이라......." 빈객은 돌아와 맹상군에게 그런 사실을 전했다. 실상 맹상군한테는 한벌의 호백구가 있었다. 값이 1천 금이나 가는 천하에 둘도 없는 옷이었다. 그러나 그 옷은 맹상군이 진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소왕에게 바쳐 버렸기 때문에 여벌이 없었다. "어떻게 한다?" 고민을 해도 뾰족한 수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 때 빈객들의 가장 말석에 앉아 있던 사내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제가 해결하지요." "그대가?" 바라보니 볼품 없이 생긴 사내였다. "호백구를 가져오기만 하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물론이오. 한데…?" "저한데 어떤 재주가 있는지 모르시지요." "모르오." "직업이 도둑질입니다." "아하!" "마음대로 물건을 훔쳐나오는데 아직 실패해 본 적이 없는 게 저의 자랑입니다." "부디!" 이윽고 밤이 이슥해졌다. 맹상군을 위시해 빈객들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도둑질 잘 하는 빈객이 돌아왔다. "어떻게 되었소?" "여기......." 과연 호백구였다. "이걸 어디서 훔쳤소?" "어디긴 어디겠습니까. 진나라 궁중의 보물창고지요. 어차피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니까요." 맹상군은 그것을 애희한테 갖다 바쳤다. 애희는 좋아라 하고 소왕한테로 달려가 사정사정해서 맹상군이 석방되도록 해 주었다. "자,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겠소." 맹상군 일행은 풀려 나오자마자 말을 달려 도망쳤다. 봉전(封傳: 關門을 드나들 수 있는 통행증)을 위조하고, 변성명을 하고, 천신만고 끝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함곡관에 도착했다. 거기 관문만 지나면 진군의 추격권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관소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장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관법(關法)에는 첫닭이 울어야 문을 따고 여객들을 밖으로 내보내 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야단났다! 추격해 올 텐데." 한편 진의 소왕은 맹상군을 석방한 사실을 두고 뒤늦게 후회했다. 더구나 그가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애통해했다. "과인의 실수였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추격병을 보내어 그들을 묶어오라. 어차피 새벽까지는 관문이 열리지 않을 테니까." 진에서는 관병을 시켜 역마차를 갈아타면서까지 맹렬하게 추격케 했다. "진왕의 성격으로 보아 틀림없이 추격병을 보낼 텐데!" 맹상군 일행은 전전긍긍했다. 그 때였다. 역시 보통 때 식객들의 말석만 차지하고 있던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해 보지요." "어떻게?" "관문만 열리면 될 게 아닙니까." "여부 있겠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식객은 간드러지게 어둔 밤하늘을 향하여 닭울음 소리를 뽑아대었다. 영락없이 장닭의 울음소리였다. 그러자 부근의 닭들이 온통 울어제꼈다. 관문이 열렸다. 통행증을 제시하고 맹상군 일행은 무사히 함곡관을 벗어나왔다. 나간 지 한 식경(食頃)이 지나서야 진의 추격병이 관소로 들이닥쳤지만 이미 도망자들은 멀찌감치 달아나고 난 후였다. 처음에 맹상군이 좀도둑과 닭울음쟁이를 다른 식객들과 똑같이 대접했을 때 빈객들은 속으로 기분 나빠하며 그들과 동석하기를 무척 꺼렸었다. 그러나 진나라에서 어려움을 겪고 나서 그들을 다시 빈객들 사이에 앉히자 이번에는 빈객들이 그들 두 사람과 함께 앉기를 몹시 부끄러워했다.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빈객들 누구나 맹상군에게 심복하게 되었다.
맹상군 일행이 조나라를 통과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조의 평원군이 맹상군의 위인됨을 익히 들었던 터라 극진히 대접했다. 조나라 사람들 모두가 맹상군의 위명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지나갈 때마다 그를 보려고 길거리로 몰려 나오곤 했다. 한 고을을 지날 때였다. 혁혁한 명성에 비하여 맹상군의 몰골이 어처구니없이 왜소한 데 대하여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린 지금까지 맹상군이라면 체구가 당당한 위장부로 알고 있었는데 저것 좀 보게. 훅 불면 날아갈 듯한 좀팽이가 아닌가!" 그 말을 들은 맹상군은 화를 내었다. "지나치게 무엄하다!" 호위병들도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 주인을 모욕했으니 누구건 용서할 수 없다. 모두 베어 버려라!" 그래서 수행원들은 마차에서 뛰어내려 비웃던 마을 사람들을 가차없이 베어 버렸다. 마을 하나가 삽시간에 쑥밭이 되었다. 제나라 민왕은 고민 속에 있었다. 맹상군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었던 일 때문이었다. 점차 맹상군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민왕은 맹상군에게 재상의 인수를 내리고 말았다. 국정 모두를 그에게 일임한 꼴이었다. 맹상군은 진나라에 대해 원한이 많았다. "어디 두고 보자. 복수의 아픈 맛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고 말 테다!" 마침 제나라가 한.위를 위해 초나라를 치게 되었다. 맹상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 기회에 연합군으로 아예 진나라까지 징벌한다는 계획이었다. "군량미는 서주(西周)에서 빌려 오면 되오." 이 때 제에 와 있던 소대(蘇代: <戰國策>에는 韓慶으로 나옴)가 맹상군에게 서주를 대변해서 말했다. "군께서는 지금 제나라를 이끌고 한과 위를 위해 초나라를 공격한 지가 벌써 9년째나 됩니다. 그 동안 원(宛).섭(葉) 이북의 지역을 점령해 한과 위의 국력을 강화시켜 주었는데 지금 다시 진나라를 공격해 두 나라를 더욱 강하게 해 주려 하십니까. 한.위가 남쪽의 초나라에 대한 근심이 없고 서쪽의 진나리에 대한 걱정이 없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어찌 되오?" "제나라가 즉시 위험한 입장에 처하게 되지요." "어째서 그렇소?" "한.위가 틀림없이 제나라를 우습게 보는 동시에 진나라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를 위해 좋은 일이 없겠소." "맞습니다. 고로 군께서는 서주와 진나라가 깊은 관계를 맺게 하고 서주에서 군량미도 빌려 가지 마십시오. 다만 함곡관까지만 가시되 진을 공격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한테 좋은 일이라도 있겠소?" "있지요. 물론 저희 서주를 시켜 군의 진심을 진의 소왕에게 전달해야 하겠습니다만." "진왕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오?" "우리는 진왕에게 이렇게 말할 참입니다. '맹상군은 결코 진나라를 격파해서 한과 위를 강하게 해 주지는 않을 겁니다. 제나라가 진을 칠 것 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은 지금 진에 억류돼 있는 초의 회왕에게 진나라가 설득해 초의 동쪽 땅을 베어서 제나라에 할양하는 한편 진에게 초의 회왕을 석방해 화목하게 지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진왕이 그렇게 들을 것 같소?" "군께서 저희 서주를 시켜 진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면 진으로서는 패전의 위험을 겪지 않고 초의 동쪽 영역을 할양하게 한 대가로 제나라의 공격을 모면하므로 진나라는 반드시 들을 것입니다. 초나라도 자기의 왕이 진나라의 억류에서 벗어나면 모두 제나라의 덕택이라 생각해서 땅을 베어 주어도 억울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제에서 초의 동쪽 영역을 얻게 되면 제나라는 더욱 막강해짐과 동시에 무엇보다 군의 영지인 설 땅은 대대로 안전하게 됩니다." "좋군."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진나라가 크게 약화되지 않은 채로 삼진(三晋:韓.魏.趙)의 서쪽에 있게 되기 때문에 삼진은 반드시 제나라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이점이 있지요." "절묘하다." 맹상군은 승낙하고 한.위에 명하여 진나라에 하례(賀禮)케 하고, 삼진에 대해서는 진을 공격하지 못하게 했으며, 결국 서주로부터는 군량미를 빌려 오지 않았다. 그 무렵에 초의 회왕이 진으로 들어갔다가 억류되어 있었는데 초나라는 물론 제에서도 초왕을 구출하려고 노력했으나 진은 끝내 초왕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맹상군은 제의 재상으로 있었으므로 자신의 봉읍인 설 땅으로 갈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가신인 위자(魏子)를 시켜 봉읍의 조세를 받아오게 했다. 그러나 위자가 설 땅으로 세 차례나 왕복하면서도 조세 수입을 한 번도 바치지 않았다. 맹상군으로서는 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 된 거냐?" "조세를 거두긴 했습니다만 현자(賢子)가 있기에 몰래 빌려 주었습니다. "무어야? 자네 돈도 아니면서 남에게 빌려 주어!" 맹상군은 화가 나서 위자를 해고했다. 얼마 뒤 어떤 자가 제왕에게 맹상군을 모함했다. "반란을 일으키려고 맹상군이 모의하고 있는데 모르셨습니까?" 때마침 전갑(田甲)이 민왕을 위협한 일이 있었는데 맹상군이 시킨 일이라고 연계시켜 민왕은 의심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맹상군은 망명했다. 그 때였다. 앞서 위자가 맹상군의 조세를 대여해 주었다던 어진 이가 나타났다. 그는 맹상군이 망명했다는 소문을듣고 민왕에게 글을 올렸다. '맹상군은 반란을 계획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반심을 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실 인품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조사해 보십시오. 이 한 몸 바쳐 그분의 결백을 대신 맹세합니다.' 그리고는 궁문 앞으로 가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깜짝 놀란 민왕은 맹상군의 종적을 다시 조사케 했다. 과연 모반의 혐의는 찾을 길이 없었다. "과인의 실수다." 민왕은 맹상군을 다시 불렀다. 그러나 맹상군은 그런 일로 인해 정사에 염증을 느꼈다. "기왕에 물러난 몸, 건강도 좋지 않으니 이대로 내려 주신 봉읍지로 돌아가 만년을 의탁코자 합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은퇴 의사가 너무 완강하였으므로 민왕은 허락하고 말았다.
그 후 진나라에서 망명해 온 장군 여례(呂禮)가 제의 재상이 되었다. 여례가 소대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생겨 소대는 맹상군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주나라 주최(周最)는 제나라에서 매우 신임이 두터웠습니다만 제왕은 결국 그를 내쫓고 친불(親弗)의 말만 들어 여례를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제왕이 진나라의 환심을 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와 진이 화합하게 되면 친불과 여례를 중용할 수밖에 없지요." "그들이 중용되면 제왕은 나를 잊겠지요." "어디 잊다 뿐입니까. 제왕과 진왕까지도 군을 경시할 텐데요. 그러니 군께선 서둘러 제나라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조나라를 도와 진과 위가 화친하게 하고, 주최를 거두어 후하게 대하며 그에 대한 제왕의 신임을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하 제후들이 제나라를 배척하는 변을 미리 막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묘한 논리이긴 하나 일리는 있구려." "문제는 제나라가 진나라와 합심하지 않으면 천하 제후들이 제나라를 중심으로 모여들 테고 친불은 반드시 달아납니다. 그렇게 되면 제왕은 군을 제외한 그 누구와 나라일을 의논하겠습니까?" 맹상군은 소대의 계략을 따르기로 했으나 여례가 질시했으므로 다른 방법을 채택하기로 했다. 우선 진나라 재상 양후 위염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가 듣기로는 진에서 그대와 사이가 벌어져 망명해 온 여례의 힘을 빌려 제나라의 환심을 사려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나라는 천하의 강국입니다. 여례의 힘으로 제와 진이 화합하게 되면 그대가 진에서 경시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제.진이 협력해 삼진(三晋)에 군림하면 여례는 반드시 제.진의 재상을 겸합니다. 그것은 그대가 제나라를 통해 그를 중용하는 셈이 됩니다. 만약 제.진의 화친으로 제가 천하 공략의 화를 모면하게 된다면 여례의 공적이 평가되는 만큼 제나라에서는 그대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러니 그대로서는 최상책은 진왕에게 권해 제나라를 치게 하는 것입니다. "제나라를 치라고?" -제나라가 격파당하면 진이 점령한 땅을 그대의 봉령(封領)으로 해 줄 것을 진왕에게 청하겠습니다. "쓸 만한 계략이다." -제나라가 격파된 뒤에 진은 삼진이 강해질 것을 두려워할 테니 진나라에서는 반드시 그대를 중용해 삼진과 친교를 맺도록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편 삼진도 제와의 전투에 지쳐 있으므로 진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반드시 그대를 중용해 진과 화친하려 들겠지요. 저의 말을 들으시면 그대는 제나라를 쳐서 공을 세우고 삼진을 이용해 진에서 중용되는 것이므로, 다시 말해 그대는 제를 격파해 봉령을 얻고 진과 삼진에서도 결국 그대를 중용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만에 하나 제나라가 패하지 않으면 여례는 제에서 재기용되고 그대는 반드시 크게 궁지에 빠질 것입니다.......
그래서 양후는 진의 소왕에게 진언해 제를 치게 했다. 여례는 도망치고 말았다. 그 후 제의 민왕은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더욱 교만해지더니 맹상군을 물리치려고 했다. 실망한 맹상군은 위나라로 갔다. 위나라 소왕이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맹상군이 위로 간 것은 확실하나 재상이 되었다는 설은 다른 자료로 미루어 보아 잘못된 듯하다]. 맹상군은 서쪽의 진.조와 동맹하고, 연(燕)과 함께 제를 격파했다. 제의 민왕은 거(거: 山東省 거縣)로 도주해 있다가 거기서 사거하고 제에는 양왕(襄王)이 즉위했다.
맹상군은 제후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고 어느 나라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새로 즉위한 제의 양왕은 맹상군을 두려워하여 여러 제후들과도 화친하니 결국 맹상군과도 친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전문(田文)이 죽으니 시호를 맹상군이라 했다. 여러 아들들이 상속 분쟁을 하고 있는 동안 제나라와 위나라가 함께 쳐들어와 설(薛)을 멸망시켰다. 그래서 맹상군에게는 후사는 물론 자손도 없다. 풍환(馮驩)은 맹상군이 빈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짚신을 끌면서 찾아왔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선생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나는 가난하고 당신은 선비를 좋아한다기에 의지할까 싶어서 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맹상군은 풍환을 열흘 동안 전사(傳舍: 三等客舍)에 두었다. 열흘 후 맹상군은 전사장(長)을 불러 물었다. "그 걸인 같은 손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더냐?" "남루하긴 해도 한 자루의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칼자루를 방울고랭이풀(괴)로 꼰 노끈을 감은 보잘것 없는 칼입니다." "칼자루가 보잘것 없다 해서 날(刀)까지 무디다고는 볼 수 없지 않느냐." "그렇겠지요. 한데, 그는 그 칼을 손가락으로 튕기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무슨 노래를." "'장검(長劍)아, 돌아갈거나, 식탁에 생선이 없구나.......'" "숙사(宿舍)를 옮겨 드려라." 그래서 맹상군은 풍환을 행사(幸舍: 中等의 宿舍)로 옮겨 주도록 했다. 행사에서의 식탁에서는 생선이 나갔다. 닷새가 지난 후 맹상군은 행사장을 불러 물었다. "풍환 어른은 요즘 무얼 하고 계시더냐?" "칼을 튕기면서 노상 노래만 부르고 계시지요. '장검아, 돌아갈거나, 나가려 해도 수레가 없네.......' 하시면서요." "숙사를 옮겨 드려라." 그래서 이번에는 풍환을 대사(代舍: 上等의 宿舍)로 옮겨 주었다. 물론 거기서는 외출시 수레를 탈 수 있었다. 다시 닷세가 지난 후 맹상군은 대사장을 불러 풍환의 근황을 물었다. "'장검아, 돌아갈거나, 살림집을 가질 수가 없네.......' 그렇게 노랠 부릅디다." "그냥 두어라."
1년이 지나도록 풍환은 아무런 진언도 하지 않았다. 맹상군은 그 당시 제나라의 재상으로 1만 호의 봉령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식객이 3년이나 되다 보니 조세수입으로 봉양하기는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설읍 사람들에게 돈놀이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돈을 빌려간 사람들 대부분이 이자도 갚지 못하고 있었다. 머잖아 식객의 봉양자금이 떨어질 판이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맹상군이 좌우를 돌아보며 근심스런 얼굴로 물었다. 그 때 숙사장이 의견을 말했다. "결국은 설읍에 대여한 금전을 회수하는 길밖에 없겠지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구나. 그런데 누구를 그 곳으로 보낸다?" "풍공을 보내면 어떨까요?" "풍환을?" "풍채도 훌륭하고 구변도 좋습니다. 온후 독실한 성품이나 특별한 재주가 없어 무위도식하는 처지이니 그런 일이라도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도 없고 해서 맹상군은 풍환을 불러 조심스럽게 의뢰 말을 했다. "빈객들은 내가 불초한 인간이란 것도 모르고 내게 몸을 맡겨 주신 분들이 3천이나 됩니다. 그러나 봉읍의 조세수입으로는 도저히 빈객을 봉양할 길이 없어 설읍 사람들에게 이자 돈을 대여했소만 1년이 지나도 회수는커녕 이자돈도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빈객들의 식사마저 제공키가 어렵게 된 처지에서 원컨대 선생께서 설읍으로 가셔서 빚독촉을 한 번 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풍환은 흔쾌히 대답하고는 설 땅으로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맹상군의 돈을 빌려 쓴 자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그 자리에서 이자돈 10만 전(錢)이 모였다. 풍환은 10만 전 모두를 털어 좋은 술을 빚고 살찐 소를 잡았다. 그리고 채무자 모두를 다시 잔치에 초대했다. 일단 장부와 차용증서를 일일이 대조해 가며, 이자를 낼 수 있는 자, 이자와 원금을 상환할 수 있는 자, 원금은 물론 이자조차 낼 수 없는 자 등등으로 구분한 뒤에 말했다. "맹상군께서 여러분에게 금전을 대여했던 이유는 가난한 백성이라도 그 돈을 밑천으로 가업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이자를 요구한 이유는 빈객들을 봉양할 만한 자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지금 부유한 사람은 대여금의 반환날짜를 정해 회수할 것이고, 이자라도 낼 수 있는 분은 또 그렇게 기재해 둘 것이며, 너무나 빈궁하여 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분들은 차용증서를 불살라 대여금 환수를 포기하도록 군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렇게 차용증서를 불살라 그 채권을 포기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십시오. 우리에게는 이토록 훌륭한 주인이 계시지, 부디 배반이나 말아 주십시오."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일어서서 풍환에게 두 번 절했다. 풍환은 돌아왔지만 아무런 보고가 없었다. "설 땅에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다더냐?" 맹상군의 물음에 한 측근이 대답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버리고 빈손으로 돌아왔답니다." "무어라고? 어서 이 곳으로 불러들여라." 화가 난 맹상군은 풍환을 불러 따졌다. "아시다시피 나에겐 봉양해야 될 식객이 3천이나 됩니다. 그래서 설 땅의 사람들에게 돈놀이를 했는데 영민의 대부분이 이자조차 내지 않았소이다. 빈객의 식사가 끊어질까 그것이 걱정되어 선생을 청해 그들을 독촉해서 원금을 회수해 오라 했거늘 원금이나 이자는 고사하고 차용증서까지 불살라 버렸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그런데도 풍환은 태연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게다가 많은 술과 음식을 마련하지 않으면 채무자를 다 모을 수 없겠기에 그나마도 얼마 받은 이자를 몽땅 써버렸습니다." "몽땅!" "물론 여유 있는 사람에게는 기일을 정해 주었고....... 그러나 실상인즉 누가 여유 있고 누가 부족한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양심 있는 부자는 재촉하지 않아도 상황해 줄 터이고 가난한 채무자는 10년을 독촉해 보아야 갚을 길이 난감할 것이기에 차라리 인심을 확실히 써 버렸습니다." "남의 돈으로 인심을 써요? 결국 내 돈을 몽땅 떼였다는 얘기겠구려." "성급히 재촉하면 군주가 이식(利殖)에만 눈이 어두워 백성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원망만 할 것이고, 결국 도망치고 말 것이옵니다. 그래서 차라리 그토록 유명무실한 차용증서일 바에야 깨끗이 불살라 실없는 계산을 포기함으로써 설 땅의 백성에게 군주의 고마운 뜻을 전하고 군주의 명성이나 높임만 못하다고 생각되어 그렇게 처리했던 것입니다. 어디 제가 잘못한 데라도 있습니까." 맹상군으로서는 어처구니없는 보고를 받은 격이었지만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었다. "선생의 판단이 옳겠지요......."
한편 즈음에 제왕은 진나라와 초나라 신하들의 중상모략에 미혹된 데다 맹상군의 명성이 군주보다 높아지자 제나라 정권을 그가 마음대로 휘두른다고 착각하고 파면해 버렸다. 더불어 여러 빈객들은 맹상군의 파면을 보며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가셨구려......." 그러나 웬일인지 풍환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예에, 저로선 아직 할 일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하실 일이 있다고요?" "진나라로 타고 살 수 있는 수레 한 대만 주십시오." "수레라면...... 한데, 진나라에는 무슨 일로 가십니까?" "군(君)을 위해서 간다는 사실만 알고 계십시오." 맹상군은 더 묻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도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줄로만 이해했다. "적으나마 선물입니다. 가지고 가십시오." 맹상군은 수레에다 선물까지 실어 풍환을 마지막으로 떠나 보냈다. 풍환은 그 길로 서행(西行)해 진나라로 들어가 진왕을 알현했다. "천하에 유세하는 선비로서 수레를 몰고 말을 달려 서쪽 진나라에 들어오는 자 치고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어 주겠노라 말하지 않는 자 있습니까?" "없었소." "수레를 몰고 말을 달려 동쪽 제나라로 들어가는 선비치고 제나라를 강하게 만들어 주겠노라고 큰소리치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없었을 거요." "그것은 두 나라야말로 천하의 자웅(雌雄)이기 때문입니다." "진나라가 웅(雄)이고 싶소." "자웅의 형세로 겨루다가 결국 웅이 되는 나라가 천하를 병탄하지요." "좋은 계략이 없겠소?" "제나라에서 맹상군을 파면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들었소." "대왕께서는 사자를 시켜 수레에 예물을 싣고 가게 해서 아무도 모르게 맹상군을 맞아 오십시오." "무슨 뜻이오?" "제나라는 맹상군을 중요시했기 때무에 그를 중용하였고 또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참언을 들어 그를 파면시켰습니다. 그런데 지금 맹상군은 그런 제나라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맹상군을 데려옴으로써 진에 무슨 유익이 있겠소?" "웅의 나라가 되지요. 그가 만일 진나라로 들어오기만 하면 제나라의 내정이나 인사 문제 등 제를 배신해서 진에게 모든 실정을 털어놓을 것입니다. 제의 약점을 파악한 뒤라면 그가짓 제나라 땅을 공략하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절묘한 계략이오. 수레 10대에 예물을 싣고 황금 1백 일(鎰)을 보내어 맹상군을 맞이하겠소." "은밀히 데려오는 바도 중요하지만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제에서 잘못을 깨닫고 맹상군을 재기용하기 전에 일을 서두는 게 좋습니다." 풍환은 물러나왔다. 그 길로 한 발 앞서서 제나라로 달려가 제왕에게 말했다. "천하에 유세하는 선비치고 제나라에 와서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을 약하게 해 주겠다고 큰소리치지 않은 자가 있습니까?" "없었소." "진나라에 가서는 진을 강하게 하고 제를 약화시켜 주겠노라고 말하지 않는 유세자가 있습니까?" "없었을 게요." "그것은 진과 제가 천하 자웅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자웅은 겨루다가 웅 하나만 남게 되지요." "제나라가 웅이고 싶소." "그러나 불행하게도 진나라가 웅이 되겠습니다." "무슨 뜻이오?" "진나라에서 사자를 시켜 수레 10대에 예물과 황금 1백 일을 싣고 맹상군을 맞으로 떠났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까?" "그게 사실이오?" "진의 사자가 도착이 늦어 맹상군이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면 천만다행입니다만 만일 출발했다면 다 글렀습니다. 맹상군이 진의 재상이 된다면 천하 인심도 그 쪽으로 쏠려 진나라가 천하 병탄의 대업을 이루고 말 것입니다." "맹상군의 위치가 그토록 중요하오?" "판단은 대왕께서 하십시오. 맹상군이 그토록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면 이리 같은 진나라가 그토록 극진히 그를 모셔 가려 하겠습니까. '제나라가 자(雌)가 된다면 수도 임치(臨淄)는 말할 것도 없고 즉묵(卽墨)도 위태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나라가 남의 나라 재상을 모셔 가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 아니겠습니까?" 제왕은 그래도 긴가민가하여 일단 사자를 국경으로 보내 진의 동정을 살펴보게 했다. 아니나다를까 풍환이 말한 대로 선물을 실은 진나라 수레가 제나라 국경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제의 사자는 서둘러 돌아가 제왕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깜짝 놀란 제왕은 맹상군을 급히 불러들였다. "과인의 잘못이 크오!" 맹상군은 재상의 자리에 복직되었다. 본시의 영지 외에도 1천 호의 영지를 증봉받았다. 진나라 사자는 맹상군의 다시 제의 재상자리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 수레를 돌려서 진나라로 돌아갔다. 제왕이 신하들의 참언을 듣고 맹상군을 파면시켰을 때 식객들은 서슴없이 맹상군으로부터 떠났었다. 그런데 다시 복직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식객들은 예전처럼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풍환이 자기 일처럼 희색이 만면하여 손님을 맞아들이는 것을 보고 맹상군은 탄식하여 말했다. "나는 일찍이 빈객을 좋아하여 그들 대접에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파면되자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돌봐 주는 사람 한 자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선생 덕택으로 내가 복직될 수가 있었지만 나를 버리고 떠났던 자들은 또 무슨 염치로 꾸역꾸역 다시 기어든단 말입니까.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 크게 모욕을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맹상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풍환이 얼른 땅에 엎드려 절했다. 어리둥절해진 맹상군이 덩달아 맞절을 하며 물었다. "선생께선 지금 빈객들을 위하여 대신 사과하시는 겁니까?" "아니올시다. 빈객들을 대신해서 하는 사과가 아니라 당신을 위하여 빈객들에게 사과하는 중입니다." "우둔한 나로서는 선생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뜻이지요. 만물에는 필연의 결과라는 것이 있으며 일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는 도리라는 것도 있습니다. 살아 있던 자가 반드시 죽게 되는 일도 그런 일들 중의 하나같이 필연입니다." "부귀하면 많은 인사가 모여들고 빈천해지면 벗이 적어지는 것이 인륜의 옳은 도리라면 저는 섬기지 않겠습니다." "군께서는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새벽같이 어깨들을 비비며 앞을 다투어 문 안으로 들어가지만 해만 저물어 보십시오. 팔을 붙들어도 뿌리치며 시장에서 떠나버립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침에는 시장을 좋아하다가 저녁에는 시장이 미워졌기 때문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저녁 시장에는 기대하는 물건이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지상정의 자연스러운 필연입니다. 군께서 재상의 지위를 잃자 빈객들은 모두 떠나갔습니다. 그런 빈객들을 원망해선 안 되듯이 다시 찾아오는 빈객들을 내치셔도 안 됩니다. 군께선 부디 예전처럼 그들을 대우해 주십시오. 이는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맹상군은 두 번 절하며 말했다. "교시하는 바가 큽니다. 삼가 선생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일찍이 설 땅을 들른 적이 있는데, 마을에 거칠고 사나운 젊은이들이 많아 맹자의 고향인 추(鄒)나 공자의 고향인 노(魯)의 풍속과는 사뭇 달랐다. 어떤 노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들을 불러모으고 간악한 인간들까지 긁어모아 왔으니 어찌 그 풍속이 온전하겠소. 당시에 따라 들어온 무리가 무려 6만 가(家)가 되었다 하오." 세상에서는 맹상군이 빈객을 몹시 좋아했다 하며 또한 그런 평판을 스스로 즐겼다는 소문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설 땅 노인의 증언도 과장된 것이 아닌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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