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4. 사마양저열전
고대 왕자(王者)때 사마병법(司馬兵法)이 있었다. 양저는 이병법을 충분히 부연해 밝혔다. 그래서 제4에 <사마양저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사마양저는 전완(田完)의 후예이다. 제(齊)의 경공(景公) 때 진(晋)이 아(阿).견(甄: 모두 山東省 東阿縣과甄城縣)을 치고 연(燕)이 하상(河上: 黃河 南湍 滄德 二州의 北境)을 침략해 오자 경공은 이를 크게 근심했다. 이에 안영(晏영)이 경공에게 전양저를 천거했다. "양저를 기용해 보심이 어떨까요?" "그는 어떤 사람이오?" "전씨네 첩의 소생입니다만 그의 문장(文章)은 만인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문장만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겠소?" "그렇지만 무술 솜씨 또한 적을 떨게 합니다." 그렇게 되어 양저가 경공 앞으로 불려 왔다. 함께 군사(軍事)를 의논해 보니 그의 계략이 심상치 않았다. 경공은 크게 기뻐하며 그를 장군으로 삼았다. 이 때 양저가 말했다. "주군께서는 저를 사졸의 처지에서 곧바로 대부의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더구나 원래 미천한 몸이라 비록 제가 장군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은 믿지를 않으며 병사들은 따르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대의 권위가 서겠소?" "부디 주군께서도 총애하시고 백성들한테도 존경받는 인물을 골라 군대를 감독케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장가(莊賈)를 데려가도록 하시오." 연나라와 진나라를 치기 위해 출전에 앞서 양저는 장가한테 단단히 일렀다. "내일 정오까지 군문(軍門)에서 만납시다.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도 나쁠 건 없지요." "아닙니다. 약속은 분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 봅시다." 장가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튿날 일찍 양저는 군문으로 달려갔다. 나무 기둥을 세워 해시계를 만들고 물시계를 만들어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재며 장가를 기다렸다. 장가는 원래 교만했다. 더구나 왕의 총애를 받는 몸이라 양저 따위는 아예 무시했다. "제깐 게 뭔데 나더러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는 거야! 더구나 나는 감군(監軍)일 뿐이고 진짜 장군은 자기가 아닌가. 저나 정오에 시간 맞춰 가라지!" 장가는 서두르지 않았다. 측근들과 친척과 친구들이 부어 주는 송별주를 마시며 한없이 미적거렸다. 양저는 기다렸다. 훨씬 지나도 장가는 오지 않았다. 양저는 해시계로 썼던 나무를 쓰러뜨리고 물시계를 쓴 단지의 물도 쏟아버린 뒤 진중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진지를 순시하고 병사를 점검하며 군령을 거듭거듭 밝혔다. 장가는 저녁 늦게서야 비틀거리며 진지에 도착했다. "그대는 늦었소!" 양저는 정색하고 말했다. "그렇게 됐구려." "약속은 그렇지 않았잖소?" "높은 양반들과 친구들이 송별주를 보채는데 박정하게 어찌 마다하고 그냥 떠나올 수 있겠소." "그 무슨 말씀이오. 감군이란 직위는 장군과 똑같다는 사실을 모르오?" "......일이 그렇게 됐소." "대개 장(將)이란 명령을 받으면 그 날부터 집을 잊어버리고 진영에 나아가 군령이 확정되면 그 육친을 잊어버리며, 채를 들어 북치는 소리가 급하면 자기 몸을 잊어버리는 법이오." "미안하게 됐다고 말하지 않았소!" "지금 적군은 깊이 침투해 나라가 들끓고 병사들은 비바람과 싸우며 국경에서 잠을 못 이루며, 주군께서도 편한 잠자리에 들지 못하신 채 음식을 들어도 걱정으로 그 맛을 모르시오." "그러니까......." "이런 판국에 송별연이 다 뭐요. 여봐라. 어서 군정(軍政: 軍法務官)을 불러라!" 군정이 달려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대, 군법에 기약한 시간 약속을 어긴 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가?" "참(斬)에 해당합니다." "분명히 목을 베라 쓰였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서 형틀을 준비해라!" 양저의 서슬퍼런 명령에 장가는 더럭 겁이 났다. 제 종자를 시켜 경공에게 보내어 구원을 청했다. 그러나 양저는 장가의 종자가 돌아오기 전에 가차없이 장가의 목을 베어 삼군(三軍: 中軍, 上軍, 下軍 즉 전군)에 조리돌렸다. 삼군의 사졸들은 두려워 모두 벌벌 떨었다.
얼마 후 경공이 보낸 사자가 부절(符節: 왕의 사자라는 표찰)을 들고 말을 달려 진중으로 들어왔다. "장가를 용서하라는 어명이오!" 그러나 양저는 눈도 깜짝 않았다. "군영에 있는 장군은 주군의 명령이라도 듣지 않는 수가 있다. 그리고 군정!" "예에." "군영에서 말을 달려도 되는가?" "아니 됩니다. 군법에서는 참에 해당합니다." "그렇지만 왕의 사자는 죽일 수가 없다. 그 대신......." 그래서 양저는 사자의 마부와 수레의 왼쪽 곁말을 베어 삼군에 조리 돌린 뒤 말했다. "사자는 돌아가라. 그리고 그대가 본 그대로 왕께 사실대로 아뢰어라." 그제서야 양저는 군대를 몰아 출격했다. 양저는 사졸의 숙사나 우물과 아궁이와 음식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감시 감독했다. 병든 군사를 문병하고 약을 챙겨 주며 장군으로서 받는 양식을 모조리 풀어 사졸과 꼭 같이 먹고 마셨다. 뿐만 아니었다. 호화로운 장군의 침소 역시 마다했다. 사졸 중에서도 가장 파리하고 연약한 부하와 함께 잠자리를 같이했다. 이런 식으로 사흘이 지나자 군사들의 사기는 충전했다. 병자들까지도 가쁜하게 일어나서 앞다투어 출전을 희망했다. "양저 장군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려도 좋다!" 진(晋)에서는 적군의 그런 불 같은 투혼을 들었다. "제(齊)를 도무지 이길 수가 없다. 그냥 돌아가자." 연의 군사도 제의 기세를 알아차렸다. "적의 사기가 충천하니 싸워 보았자 질 게 뻔하다. 황하를 바삐 건너 달아나자." 양저는 군사를 독려해 양군을 추격해 가서 드디어 잃었던 제의 옛 땅을 말끔히 회복했다. 양저는 군사를 이끌고 도읍인 임치(臨치)에 다다랐다. "군대는 잠깐 머물거라. 그리고 군정은 가까이 오게." "대령했나이다." "주군이 도성에 계시다. 군법에 군대를 몰아 도읍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양저의 뜻밖의 물음에 군정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원칙적으로는 반역입니다만......." "됐다." "하오나 개선군(軍)의 입성은 예외로 칩니다." "임금 앞에서 예외는 없다. 설사 반역의 군대가 아닐지라도 이런 일로 주군께 오해 받을 짓을 해선 안 된다." "군령을 거두고 군의 편성을 여기서 푸실 겁니까?" "뿐만 아니다. 충성을 맹세한 다음에 도성에 들어간다. 도읍을 방위하는 군사 이외에는 다른 군대가 입성할 수 없는 게 상례 아닌가." 경공은 그런 소식을 들었다. 경공은 대부들과 함께 교외로 나아가 개선군을 맞이하며 군사들을 위로했다. 조정으로 돌아온 경공은 양저를 인견했다. "그대의 충성심을 높이 사오. 벼슬을 높여 대사마(大司馬: 三軍總司令官, 司馬는 陸軍大臣)에 임명하오."
그 이후로 전(田) 씨는 제 나라에서 더욱 존중되었다. 그렇게 되자 대부들인 포(鮑) 씨.고자(高子).국자(國子) 등의 무리가 양저를 시기했다. 그들이 양저를 끊임없이 중상모략하자 경공은 어쩔 수 없이 양저를 내쳤다. 그것이 병이 되어 양저는 끝내 죽었다.
전씨 일족인 전걸(田乞).전표(田豹) 등의 무리는 그로 인해 고자와 국자를 원망하게 되었다. 그 뒤 전상(田常)이 간공(簡公: B.C,484-481 在位)을 죽일 때 그 일은 고씨와 국씨 일족을 모조리 주살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전상의 증손인 전화(田和)에 이르러서는 자립하게 되고, 손자인 전인(田因)은 제의 위왕(威王)이라 칭했다. 위왕은 병력을 활용해 국력을 떨치는 데에 있어서 양저의 병법을 크게 본받았다. 그럼으로써 제후들은 두려워 제(齊)에 입조하게 되었다. 위왕(威王: B.C.378-342 在位)은 대부들에게 옛날 사마들의 병법을 논하게 하고 양저의 병법을 덧붙이게 해서 <사마양저병법>이라 이름하게 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사마의 병법을 읽어 보니 그 의미가 넓고 싶어서 비록 하.은.주 삼대의 왕들이 정복에 이용한 병법일지라도 이 책에 쓰인 의미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비록 미천한 양저가 만일 제보다 하찮은 작은 나라를 위하여 병법을 사용하였더라면 그의 저서에 쓰인 병법의 겸양한 예절을 어느 겨를에 지킬 수 있었겠는가. 그러하니 그의 문장이 다소 과장된 듯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게 된다. 세상에는 이미 사마의 병법이 많이 퍼져 있으니 이것을 논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양저의 열전만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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