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2. 관.안열전 管.晏列傳
안자(晏子)는 검소하고 관중(管仲)은 화려했다. 그렇지만 제(齊)의 환공(桓公)은 관중의 보필로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으며, 경공(景公)은 안자에 의해서만 그 나라를 잘 다스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제2에 <관.안열전>을 저술한다. <太史公自序>
"주인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어냐?" 포숙아(鮑叔牙)는 하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관중(管仲: 仲은 자이고 이름은 夷吾) 어른과는 어떠한 사이이십니까?" "새삼스레 그걸 왜 묻나? 어릴 적부터 내 친구가 아니던가. 더구나 지금은 동업자이기도 하고." "그분과 주인님이 죽마고우이기 때문에 저희들로선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무슨 얘기냐?" "어찌 친구라면서 친구를 속일 수가 있지요?" "관중 어른이 셈을 속이기라도 했다는 말이더냐." "저는 주인님이 알고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그만두어라. 그 어른이 나를 속이는 것은 마음이 나빠서가 아니라 가난 때문이다. 나는 부자이고 그분은 가난하자 않느냐. 모른 척해라."
그 후 두 친구는 정치적으로도 다른 길을 걷는다. 포숙은 제(齊)의 공자(公子)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고 관중은 공자 규(糾)를 섬기게 된다. 소백이 제위(帝位)에 올라 환공(桓公: B.C.685-643 在位)이 되고 이에 맞선 규가 소백을 치려다가 오히려 규에 패하여 전사하고 관중은 사로잡힌 몸이 되었다.
"아니 됩니다. 관중을 죽이지 마십시오." "나를 죽이려던 적장을 살려 주라고?" 환공은 완강히 말리는 포숙을 당혹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천하의 현재(賢才)입니다. 공자(公子)께서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거든 차라리 높게 들어 쓰십시오." "천하의 현재가 내 손에 잡혔다?" "다만 운이 없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씀을 믿어 보십시오. 그는 반드시 그 빛나는 재능으로 천하의 패자가 되게 할 것입니다." 포숙은 관중을 재상으로 강력히 추천한 후 자신은 항상 그 아랫자리에 가 있었다. 과연 관중의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제(齊)는 작은 나라입니다. 또한 해변의 가난한 나라입니다. 해산물 교역으로 축재하여야 부국강병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관중의 경제정책이었다. 그는 그의 저서 <관자(管子)>에서 이렇게 자신의 정치철학을 말하고 있다.
- 백성은 창고에 물자가 그득해야 예절을 알며 의식(衣食)이 풍족해져야 영화로움과 치욕을 안다. 웃사람이 법도를 지키면 육친(六親:父.母.兄.弟.妻.子)이 화목하고 사유(四維: 治國의 四大綱, 즉 禮.義.廉.恥)가 해이해지면 나라가 망한다. - 정령(政令)을 내릴 때에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백성이 쉽게 행할 수 있도록 민심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백성이 바라는 바는 그대로 들어주고 싫어하는 바는 제거해 주어야 한다. - 정치의 실제는 임기응변이다. 화(禍)를 전환시켜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전환시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 사물의 경중을 잘 파악해 그 균형을 잃지 않는 바도 좋은 정치의 요체다.
환공의 애첩 소희(少姬)가 일을 저질렀다. 채(蔡)나라 여자였는데 뱃놀이를 하다가 수영을 못 하는 환공이 물을 두려워하는 것이 재미있어 소희는 장난으로 배를 몹시 흔들었다. 이에 화가 난 환공은 소희를 채나라로 쫓아보냈다. 그러나 이혼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채나라에서는 소희를 다른 나라로 다시 시집보낸다. "괘씸한!" "마침 잘 됐습니다. 트집거리가 생긴 겁니다. 핑계로 채나라를 치겠습니다." 환공은 관중의 책략을 승락했다. "기왕 군사를 몰아 나선 김에 초(楚)나라까지 쓸어엎겠습니다." "초나라에는 무슨 핑계가 있겠소?" "주왕실(周王室)에 공물로 바쳐야 하는 포모(包茅: 참억새 묶음)를 바치지 않은 게 전쟁 명분입니다. 포모가 없으면 나라 제사 때 지게미를 걸러 낼 수가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관중은 무작정 타국을 정복하는 것만을 능사로 삼지는 않았다. 북쪽 산융(山戎)을 치다가 내친 김에 연(燕)을 공격해 그들의 조상인 소공(召公)의 선정(善政)을 부활시켜 주었다. 또 가(柯: 河南省 內黃縣, 당시는 齊의 땅)의 회맹(會盟: 제의 환공과 魯의 莊公과의 만남)에서 조말(曺沫)과의 약속을 배반하려는 환공을 말려 신의를 지키게 했다.
조말은 노나라 장공에게 등용되어 제 나라와 싸웠으나 세 번 모두 패해 5백여 리의 땅을 빼앗겼다. 그런데 강화회의 석상에서 조말은 비수를 꺼내 제나라 환공을 위협해 5백 리의 땅을 되돌려 받는다는 약속을 받았다. 엉겁결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환공은 그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았으나 관중은 간곡히 말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강요받은 약속이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지키십시오. 그래야 천하의 모든 제후들이 공이 신의 있음을 알고 제나라를 따르게 됩니다. 이를 두고 화를 복으로 바꾼다고 하는 겁니다." 과연 관중의 말대로 하자 천하는 제나라를 따랐다.
- "주는 것이 바로 얻는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정치의 요체이다.
<관자>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관중은 제의 국정을 맡음으로써 부국으로 만들 수 있었고 환공을 천하의 패자가 되도록 했다. 또한 관중은 포숙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일찍이 가난하였을 때 포숙과 장사를 함께 한 일이 있지. 이익을 나눌 때에 내가 더욱 많은 몫을 차지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욕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한 것을 그는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 포숙을 위해 일을 획책했다가 실패하여 더욱 곤궁하게 되었지만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았다. 시운(時運)에 따라 이로울 때도 불리할 때도 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또 내가 일찍이 세 번 벼슬에 나아가 세 번 다 인군에게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부덕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전쟁에 세 번 나가 세 번 도망했으나 포숙은 나를 비겁하다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노모가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할 때 친구 소홀(召忽)은 순사(殉死)했으나 나는 사로잡혀 부끄러움을 당했다.그러나 포숙은 나를 무치한(無恥漢)이라 욕하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의리에 벗어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워 떨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요 나를 알아 준 이는 포숙이다."
포숙은 관중을 추천해 놓고 자신은 항상 그 아랫자리에 있었다. 그 자손도 대대로 제나라의 녹봉을 받기를 10여 대 모두가 명대부(名大夫)였으며,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을 칭찬하기보다 오히려 포숙의 사람 알아보는 혜안을 더욱 칭찬한다.
관중의 부(富)는 제의 공실(公室)에 비견할 만해서 삼귀(三歸: 異性의 세 女人에게 각각 차려 준 살림집)와 반점(反岾: 제후가 회견 때 獻주의 禮가 끝나서 술잔을 얹는 받침. 즉 제후와 동등의 위치라는 뜻)을 가졌으나 제나라 사람들은 그를 두고 사치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관중이 죽은 후에도 제나라는 제후들 중에서 최강이었다. 제나라는 계속 관중의 정책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안평중(晏平仲) 영(영: 영은 이름, 平仲은 字)은 절약 검소 역행(力行)하는 선비였다. 관중이 죽고 백 년 후에 내(내)의 이유(夷維: 山東省 高密縣)에서 나타난다. 제의 영공(靈公: B.C.581-554 在位).장공(莊公: B.C.553-548在位).경공(景公: B.C.547-490 在位)을 섬겼다. 그는 재상이면서도 밥상에는 두 종류의 고기 반찬을 놓지 못하게 했고 아내도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조정에 나아갔을 때에는 군주가 하문(下問)하면 겸손하게 답변했고, 하문이 없을 때면 몸가짐을 조심해 조신하게 굴었다. 국정이 정당할 때에는 윗사람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정당하지 못할 때에는 그 명령을 잘 헤아려서 옳은 일만 수행했다. 그래서 삼대를 통해 그 이름이 제후들 사이에 유명해졌다.
월석보(越石父)는 현인이었지만 그만 죄를 지어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안영이 외출을 했다가 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안영은 두말 않고 삼두마차의 왼쪽 말 한 필을 풀어 속죄금으로 내주고 월석보를 마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생색내지 않는 성미의 안영이라 월석보에게 아무 말도 않고 그냥 안채로 들어가고 말았다. 얼마 후 하인에 의해 절교장 한 장이 들이밀어졌다. 살펴보니 월석보가 보낸 서신이었다. 깜짝 놀란 안영이 의관을 바로잡은 뒤 황급히 객실로 나갔다. "어디 화라도 나셨습니까?" "그러합니다." "영이 비록 어질지는 못하나 선생을 재앙에서 구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선 이토록 급하게 절교를 선언하시다니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군자란 대개 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굴복하지만 자기를 이해해 주는 자에게는 믿고 자기 뜻을 나타낸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선생을 이해하지 못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들어 보십시오. 내가 죄수들 사이에 있을 때에는 그들 옥리들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굴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이해하는 바가 있어 속죄금을 내고 나를 풀어 준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방법이 틀렸습니다. 모른 척 예의를 무시하면서 당신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결국은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를 알아 주시면서도 예의를 무시하신다면 나는 차라리 죄수들 속에 있는 편이 낫습니다."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습니다. 상객(上客)으로 모시겠습니다."
안영이 재상이 된 뒤였다. 평소에 그토록 기고만장하던 재상의 마부가 웬일인지 갑자기 겸손해지고 조신하며 자신을 억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안영은 하도 이상해서 그 연유를 물었더니 마부는 그제서야 설명하는 것이었다. 마부는 기세가 대단했다. 적어도 재상의 말을 모는 마부인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든 마치 자신이 재상이나 되는 것처럼 교만하게 굴었다. 마침 재상이 입궐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남편의 거동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쭈, 가관이네!" 커다란 일산이 쳐진 재상의 사두마차 위에서 자못 의기양양해 채찍을 휘두르는 남편의 모습을 잡은 것이다. 아내는 저녁때 돌아온 남편한테 선언했다. "당신과는 살지 않겠습니다. 이혼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말이오?" "당신의 직책이 무엇입니까." "그야 재상의 마부 아니겠소." "재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군요." "무슨 뜻이오?" "재상께선 키가 여섯 자도 안 되지만 일국의 재상이라는 지위에 계십니다." "?" "제가 그 분의 외출하시는 모습을 살펴보니 천하의 제후들도 두려워하는 그분인데도 나랏일 때문인지 깊은 수심에 잠긴 듯하였고 몹시 겸양스런 모습으로 수레 위로 오르셨습니다." "?" "그러한데도 당신은 키가 여덟 자나 되면서도 재상은 커녕 마부밖에 못된 주제에 시건방을 떨고 있었으니 그토록 못난 사람을 어찌 지아비로 모시고 살겠습니까." "내가 잘못했소. 앞으로는 내 분수에 맞추어 겸손하겠소." 마부의 전후 사정을 들은 안영은 고개를 끄덕거린 뒤 말했다. "그대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도 알고 분수에 맞게 겸손할 줄도 아는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다. 대부(大夫)로 천거할까 한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관중이 저술한 <管子>라는 책의 <목민(牧民)> <산고(山高)> <승마(乘馬)> <경중(輕重)> <구부(九府)>의 각 편과, 안자가 저술한 <안자춘추(晏子春秋)>를 읽었는데 그 논한 바가 실로 상세했다. 그 저서를 읽고 나니 그 행적을 알아보고 싶었으므로 그 전기를 적기로 했다. 이 두 사람의 저서는 세상에 많이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는 논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만을 논했다. 태사공은 다시 말한다. 관중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현신(賢臣)이다. 그렇지만 공자는 그를 두고 소인이라 했다. 주(周)의 정도(正道)가 쇠미해진 상황에서 현명한 환공을 도와 어진 왕자(王者)가 되도록 힘쓰지 않고 패자(覇者)의 이름에만 머물게 했기 때문이리라. <고기(古記: '孝經')>에 '군주의 아름다운 점을 조장하고 그 결점을 바로잡는 신하라야 군신이 서로 친목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관중을 두고 빗댄 말일 것이다. 나 태사공은 안영에 대해서 말한다. 장공이 반역의 신하 최저(崔저)에게 피살되었을 때 안자는 그 시체 앞에 엎드려 통곡하였다. 그런 예를 마친 후 반역한 신하를 치지 않고 그대로 가 버렸다. 그렇다면 안자야말로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는 비겁자였을까, 아니다. 그가 주군에게 충성으로 간할 적에 조금도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던 것을 보면 그야말로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고칠 것을 생각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었겠는가. 만일 안자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나는 그의 마부가 되는 일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나는 그를 흠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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