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8. 개혁은 어려워라 - 트로이의 목마
야합, 또는 트로이의 목마
1993년 3월부터 그 뒤의 서너 달을 떠올리면 지금도 짜릿한 느낌이 든다. 바야흐로 30여 년의 군부 정권을 끝내고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선 때였다. 문민정부의 최고 지도자인 김영삼 대통령은 과감한 개혁 을 통해 이제까지의 낡은 한국을 새로운 한국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실제로 낡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고위 공무원들의 재산이 낱낱이 공개되었고, 직위를 이용해서 재산을 축적하거나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던 부정한 관리들이 상당수 공직에서 쫓겨났다. 몇 억씩의 돈으로 별을 사고 팔았던 위세 좋던 장군들도 군복을 벗어야 했다. 쫓겨난 부패한 관리 대신에 새로 임명된 서울 시장이, 그린벨트 안에 있는 집을 허가 없이 고쳤다는, 낡은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이유로 6일만에 시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뿐만이랴. 군부 정권에 의해 불손.파괴분자들의 난동으로 매도되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투쟁으로 자리매김되었으며 더러운 돈이 오가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금융실명제도 실시되었다. 청와대의 점심상에 오른 칼국수는 또 얼마나 신선해 보였던가. 여차하면 한 대 후려갈길 기세로 이놈! 하고 눈을 부릅뜬 군사정권 밑에서 오랫동안 주눅들어 지내온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은 마치 의붓어미한테 온갖 구박을 받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옴으로써 오랜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되는 듯한 심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나아가서는 정의의 기사가 나타나 악독한 무리들을 쳐부수는 만화 영화를 볼 때의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다. 법보다는 돈, 양심보다는 권력, 성실히 일하며 흘리는 땀보다는 뇌물과 투기가 힘을 발휘했던 낡은 한국 에서 큰소리 치고 살았던 사람들-유식한 말로 기득권 계층이 그러했다. 낡은 한국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던 그들은 새로운 한국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영삼 대통령은 주로 그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다시피 김영삼 대통령은 3당합당을 통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김대통령 자신은 그것을 구국의 결단 이라 표현했지만 무혈 쿠데타 야합이라는 비난도 들끓었다. 어쨌거나 선가는 치러졌고 김영삼씨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김영삼씨의 당선이 보수적인 유권자들의 지지에 힘입은 것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 자리에 오른 김영삼씨는 그를 야합의 명수 라 비난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개혁정책을 천명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로선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 격이요, 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언론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을 트로이의 목마라고 빗대어 표현했다. 트로이의 목마란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체를 숨기거나 위장한 채로 적진에 들어가 적을 함락시키는 스파이를 말한다. 당하는 쪽에서 보면 멋모르고 받아들였다가 그로 말미암아 큰 낭패를 당하게 되는 화근 덩어리를 일컫는다.
불화의 사과와 트로이 전쟁
트로이는 지금의 소아시아 터키 지역에 있던 왕국이었다. 그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쟁이 트로이 전쟁이고 10년에 걸친 그 긴 전쟁의 전말을 서사시로 기록한 것이 바로 호머의 <일리아드>이다. 트로이 전쟁은 아주 엉뚱한 데서 비롯되었다. 여신 테티스와 영웅 펠레우스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모든 신들이 빠짐없이 이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상기한다면 잔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아 그러려니 여길 만도 하건만, 따돌림을 당한 데 양심을 품은 에리스 여신은 혼인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 중에 나타나 하객들사이에다 황금 사과를 한 알 던졌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세 여신, 즉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가 서로 그 사과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참을 입씨름 해도 결말이 나지 않자 세 여신은 제우스에게 판결을 내려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제우스는 그런 골치 아픈 문제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다 산에 살고 있는, 파리스라는 잘생긴 양치기 청년에게 판결을 맡겼다. 여신들은 파리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각기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약속했다. 헤라는 부와 권력을, 아테나는 명예와 명성을, 아프로디테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노라고 했는데 이윽고 파리스가 선택한 것은 아프로디테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파리스는 사실은 트로이 왕가의 왕자였다. 어린 시절에 이 아이는 장차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 이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인 프리아모스 왕이 궁궐에서 내보내 양치기로 키운 것이었다. 게다가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주마고 약속한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이미 결혼한 여자였으니,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였다. 그렇거나 말거나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꾀어내 조국 트로이로 가 버렸다. 어이없이 오쟁이를 진 스파르타의 왕 멜넬라오스는 그리스의 모든 왕국에다 파발을 보내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예전에 약조된 바가 있어서였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으니 만큼 결혼하기 전 헬레네에게는 메넬라오스말고도 숱한 구혼자가 있었다. 그리스 전역에서 모여든 내노라하는 구혼자들은 헬레네가 자신들 중의 한 사람을 선택하기 전에 누가 선택을 받든 이후로 헬레네와 그 지아비에게 위험이 닥칠 경우 지체 없이 하나가 되어 도와주기 로 맹세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트로이를 공격할 막강한 그리스 연합군이 꾸려졌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는 메넬라오스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이 뽑혔다. 그 아래로는 그리스에서 가장 뛰어난 무장인 아킬레우스, 슬기롭기로 이름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에 버금가는 장수 아이아스, 아킬레우스의 죽마고우인 파트로클로스 같은 영웅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에 맞서는 트로이 쪽의 진용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은 나이가 좀 들기는 했지만 옛부터 영명한 군주로 이름나 있었다. 또 그의 아들인 헥토르는 고대 작가들에게서 인간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인간 이라는 칭송을 받았을 정도로 덕과 용맹을 두루 갖춘 뛰어난 장수였다. 그외에도 아이네이아스, 데이포보스, 글라우코스, 사르페돈 같은 괄목할 만한 장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양 진영의 면면을 보면 알겠거니와 트로이 전쟁은 그야말로 뭇영웅들이 총출동한 대서사극이었다. 전쟁은 영웅들간의 혈전뿐 아니라 친구간의 의리, 지아비의 지순한 사랑, 희생 정신, 지략과 모험 등등에 얽힌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낳으며 10년간 계속되었다. 전쟁이 그렇듯 오래 간 것은 양쪽이 워낙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올림포스 신들의 탓도 적지 않았다. 이런 인연, 저런 사정으로 신들 또한 양편으로 나뉘어 전쟁의 흐름을 이리저리 뒤틀어댔던 것이다. 파리스의 부당한 심판에 승복할 수 엇었던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 편이었으며 아프로디테는 물론 트로이편이었다.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전쟁신 아레스는 트로이 편을 들었고 포세이돈은 그리스 편이었다. 아폴론과 제우스는 대체로 중립을 지켰으나 때로는 이쪽 저쪽을 번갈아가며 편드는 변덕을 부렸다. 그들은 때로는 예언자로 변신해 자기가 편드는 쪽의 사기를 북돋우기도 하고, 때로는 다 죽어가는 용사를 살려놓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하늘을 구름으로 가려 상대편을 골탕먹이기도 하며 전쟁이 간섭하였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를 비롯해 양편의 많은 장수들이 전사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끝나지 않고 있던 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그리스군의 목마 전법이었다.
트로이를 함락시킨 목마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트로이가 계속 버티자 그리스군은 무력으로는 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참에 꾀많은 오디세우스가 한 가지 작전을 제안하고 의논 끝에 오디세우스의 제안을 따르기로 결정이 났다. 그리스 군은 우선 선단의 일부를 철수시켜 가까운 섬에다 숨겨 놓았다. 그리고는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그 속을 무장한 장수들로 꽉 채웠다. 이어서 목마만 해변에 남겨둔 채, 나머지 그리스군도 각기 함선으로 돌아가 완전히 퇴각하는 척 했다. 트로이 군은 포위가 풀리고 선단이 항구를 떠나는 것을 보고 그리스 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스 군의 퇴각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성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스 군이 남기고 간 목마는 당연히 트로이 사람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전리품이니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가야 한다는 사람, 무슨 흉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경계 해야 한다는 사람, 의견이 분분했다. 이때 포세이돈 신전의 신관인 라오콘이라는 사람이 음모가 숨어 있음에 틀림없다며 목마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 그러자 신음소리 같은 게 났다. 사람들이 무언가 수상쩍다고 웅성대는 순간 저쪽에서 그리스 포로가 한 명 잡혀 왔다. 그는 자신은 시논이라는 사람인데 오디세우스의 미움을 사서 출항하는 함대에 타지 못하고 낙오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목마는 아테나 여신의 분노를 삭이기 위한 제물로 만든 것인데 그렇게 크게 만든 것은 만약 목마가 트로이 군의 수중에 들어가면 트로이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어, 목마가 성안에 끌려 들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시논의 증언은 트로이인들로 하여금 그 기분 좋은 예언을 현실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때마침 불가사의한 사건까지 일어나 트로이인들의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의혹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바다에서 커다란 뱀이 두 마리 나타나 신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을 휘감아 죽여 버렸던 것이다. 뱀에게 휘감겨 끔찍하게 죽어가는 삼부자의 모습을 목격한 트로이인들은 신성한 목마를 모독한 라오콘을 벌하려고 신들이 뱀을 보낸 것이라 믿고는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날 밤 트로이 성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마셨다. 그러나 시논은 오디세우스가 만약을 위해 남겨 놓고 간 첩자였다. 그는 트로이 병사들이 모두 술에 곯아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목마의 뱃속에 신호를 보냈다. 목마 속에서 쏟아져 나온 장수들이 성문을 활짝 열어제치자 야음을 틈타 이미 성 앞까지 와 있던 그리스 군들이 성 안으로 들이닥쳤다. 성은 곧 불바다가 되었다. 배불리 먹고 잠에 곯아 떨어져 있던 트로이 군사와 백성들은 그리스 군의 창칼 아래 무참히 도륙되었다. 이로써 전쟁은 그리스 군의 승리로 끝났다.
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병법에서, 트로이의 목마 와 같은 위장 전술은 그 역사가 대단히 깊고 또 수법도 다양하다. 선물을 가장한 폭탄, 미인계, 거짓 정보 흘리기, 스파이 전술 등등이 모두 그에 속한다. 위장 전술이 널리 이용되는 까닭은 아마도 적의 헛점이나 급소를 파고듦으로써 피를 별로 흘리지 않고서도 큰 전과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권.유비의 연합군과 조조의 군사가 맞붙은 삼국지의 적벽대전은 위장 전술의 백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조의 패배는 물고 물리는 위장 전술에서의 패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조는 적장 주유를 꾀러 장간을 세객으로 보내는 꾀를 쓴다. 하지만 주유는 오히려 장간을 역이용해 조조 진영의 뛰어난 두 지도자 채모.장윤이 자신의 첩자인 양 거짓 정보를 흘리고 조조는 그 계략에 속아 아까운 장수 둘을 제손으로 죽여 버린다. 그 뒤 조조는 다시 채중.채화 두 사람을 주유에게 거짓으로 항복시켜 적진을 탐지하려 하나 이번에도 주유는 그 둘을 역이용해 충신 황개를 조조에게 거짓 항복시키는 데 성공한다. 더욱이 방통까지 첩자로 보내 조조로 하여금 방통의 제안대로 연환계를 쓰게 만든다. 30∼50척의 배를 쇠사슬로 엮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서로 오갈 수 있게 하면 멀미를 막을 수 있어 수전에 유리하다는 소위 연환계로 말미암아 조조는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자초한다. 주유는 제갈공명이 일으킨 동남풍을 이용하여, 거짓 항복한 황개가 이끄는 스무 척의 화선을 앞세워 화공을 펼침으로써 조조의 막강한 수군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트로이의 목마나 적벽대전 이야기를 듣고 보면 위장 전술이라는게 퍽 깜찍하고 경제적인 전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신화나 전설, 영웅담 속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 산뜻하게 결말을 맺진 않았다. 법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힘있고 배경 든든한 사람들의 바람막이가 되는 현실에 의분을 느낀 많은 법관 지망생들이 늘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지켜주는 법관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혀 왔다. 하지만 실제로 법관이 된 뒤에, 말하자면 트로이 성 안에 들어간 뒤에 젊은 시절의 그 의기를 올곧게 지켜낸 법관은 그리 흔치 않다. 그보다 트로이 쪽에 항복해 버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낡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학생운동에 뛰어든 아들딸을 보고 한국의 많은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해 왔다.
"너의 분노와 정의감은 이해한다. 하지만 학생 신분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니. 무의미한 희생이 있을 뿐이야. 열심히 공부해서 힘있는 자리에 올라선 뒤 네 뜻을 펼쳐라. 힘이 있어야 쇠를 고쳐도 고칠 거 아니냐."
분노와 정의감을 잠시 눅이고(목마가 되어), 국가의 정책을 좌우하거나 집행하는 힘있는 자리, 자신의 듯대로 사람을 부릴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올라(트로이 성에 들어간 뒤), 그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변혁을 시작하라(성을 함락시키라)는 뜻이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는 이런 논리가 가진 함정을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정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한국을 만들자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으나 다리며 백화점이 어이없이 무너지고, 낡은 한국을 다스렸던 낡은 인물들이 그것봐라. 옛날이 좋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낡은 한국이라는 성은 신화 속의 트로이 성처럼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낱 간계로 무너지기엔 그 뿌리가 너무나 깊고 완강하기 때문이다. 비리 공무원 몇 명을 솎아낸다고 해서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뇌물과 촌지의 관행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진 않는다. 12·12를 군사 반란이라고 규정한다고 해서 낡은 한국에서 온갖 부당한 이듯을 누려온 사람들이 잘못했습니다 고 고개를 숙이진 않는다. 오히려 빈틈이 생긴 때마다 낡은 생각, 낡은 가치, 낡은 구조를 부활시키려 든다. 그들은 트로이 왕국의 군사나 백성들처럼 술 취한 채 잠들지 않는다.
개혁은 어렵다. 낡은 사회의 역사가 너무 오래기 때문이다. 개혁은 혼자 할 수 없다. 혼자 하려다간 낡은 사회의 구조 속에 자신마저 빠져 버린다. 트로이 성 안에 들어갔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항복해 버린 수많은 옛날의 젊은이 들처럼. 개혁은 진정으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의지와 힘을 하나로 묶어 밀고 나가는 것이다. 트로이를 함락시킨 것은 나무로 만든 목마가 아니라 그리스 연합군의 병사들이었다. 개혁을 밀고 나가는 힘은 근사한 수사나 멋있는 선언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고난의 연대를 살아 오며 우리가 흘린 땀과 눈물 속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나온다. 꼭 그 이 만큼, 꼭 그 넓이 만큼. 그 혈루의 대하는 섣부른 간계 따위로는 씻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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