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3. 살아있는 지구의 이름, 가이아
지구는 살아 있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우주선 스푸트니크 호를 발사하고 나서 4년이 흐른 뒤인 1961년의 어느 봄날, 영국 윌트셔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제임스 러브록은 처음 받아 보는 연애편지처럼 기대와 희망으로 한껏 부풀려진 편지 한 장을 받았다. 것은 미국 항공 우주국로부터 온 것이었다. 편지는 달 탐색선에 실어보낼 실험기기를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귀하를 초청한다 는 내용을 담고있었다. 러브록은 너무나 들뜨고 기쁜 나머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초청은 그동안 그가 은밀히 품고 있던 개인적 환상 을 합법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소 독특한 사람이었다. 생물학자이면서 의학박사이기도 했던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으로 마을에 살면서 다양한 실험기기들을 연구개발했다. 그는 어린 시절엔 그림 형제의 동화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즐겨 읽었으며 조금 더 켜서는 줄 베른과 웰즈의 공상 과학 소설에 깊이 빠졌는데, 그때문인지 과학자가 된 뒤에 때때로 공상 과학 소설의 현실로 바꾸는 것이 곧 과학자의 사명 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동료들은 그의 그런 말을 농담이려니 여겼지만 그는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제트추진 연구소에서 NASA는 연구원들과 함께 달 탐색용 실험장치를 개발하던 허브록은 이어서 그보다 훨씬 더 흥미를 끄는 연구에 동참하게 되었다. NASA는 화성에 탐색선을 보내 생물체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아보려고 저명한 생물학자들을 동원하여 여러 가지 실험 방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러브록이 맡은 일은 생물학자들이 제안한 다양한 실험방법들을 현실화하는데 필요한 실험기기의 설계와 관련해 자문을 해 주는 것이었다.
평소에 지구 이외의 다른 행성에서 생물체를 찾으려면 과연 어떤 실험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개인적 환상을 키워왔던 러브록은 굉장한 열의를 가지고 그 일에 덤벼들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그 프로젝트의 주역인 생물학자들이 만든 실험장치로는 화성에 생물체들이 떼로 몰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생물학자는 화성 생물체 탐사 장치라면서 한 변의 길이가 약 1센티미터쯤 되는 아름다운 상자모양의 기기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러브록이 그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물어 보자 생물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은 벼룩을 유인하는 상자입니다. 벼룩들은 이 상장 안에 놓인 미끼에 끌려 안으로 뛰어들어 오지만 결코 밖으로 다시 나가지는 못합니다." "화성에 벼룩이 살고 있을 거라고 확신을 하시는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화성에는 태양계에서 가장 커다란 사막이 발달해 있습니다. 사막으로 가득찬 행성이라고나 할까요. 사막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낙타가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낙타처럼 벼룩을 많이 붙이고 다니는 동물은 달리 찾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장치를 쓰면 화성에서 생물체를 찾는 데 결코 실패할 리가 없지요."
하지만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그는 혼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들 - 만약 화성에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어떻게 지구의 생물 스타일에 근거한 실험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체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인식될 수 있을까? - 에 해답을 구해나가다가 행성에서 생물체를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의 수송 매개체로서 대기권을 이용하고, 대사 작용의 결과 생성된 노폐물의 처분장소로 해양을 이용한다. 이러한 생물체들의 작용으로 대기권의 화학적 조성이 달라지게 되며 따라서 생물체가 존재하는 행성의 대기는 생물이 살지 않는 행성의 대기와 뚜렷하게 구별될 수 있다 는 것이 그의 가설이었다. 이 가설은 다시 그를 더 큰 가설로 이끌었다.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거창한 생명체인 지구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제까지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가설이었다. 그 가설의 핵심은 지구는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 라는 것이었다. 러브록은 지난 30억년 동안 지구 대기권의 원소 조성과 해양의 염분 농도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생물이 지구상에 출현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또한 탄소, 질소, 인, 황, 규소 등의 주요 원소들이 대륙과 해양을 순환하며, 놀랍게도 순환의 매개자가 전적으로 생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생물들은 기후를 조절하고 때로는 해안선을 변화시키고 대륙을 이동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는 지구는 그 위의 생물체뿐만 아니라 대기, 해양, 심지어 토양과 암석까지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진정 살아 있는 한 행성 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지구는 이제껏 사람들이 써 온 단순한 생물체들의 서식처로서의 지구 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러브록과 동년배이면서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소설가 윌리엄 골딩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름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살아 있는 지구의 이름, 그것은 가이아였다. 러브록은 그리스어로 대지의 여신을 의미하는 이 말보다 더 적절한 용어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하며 흡족해했다.
만물의 터전, 넓디 넓은 가이아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여신으로서 게(Ge)라고도 불렸다. 지리학(geography), 지질학(geology) 같은 학문의 명칭 앞머리 글자 ge는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모든 민족들에게는 고유한 세계 창조설이 있다. 더 범위를 좁혀서 보면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지어내고 전승해 온 이들의 독특한 심성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세계 창조설이나 원시 종교에 거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지의 신은 대개 여성형이며 그 특성도 비슷하다. 뭇 생명을 낳고 그것을 생장, 번성케하며 자비롭고 너그럽다. 가이아 역시 그리스인들에게는 생명과 풍요의 근원으로서 거룩한 모성의 원형이였다. 헤시오도스는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세계의 시작 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으며 다음에 생긴 것은 변함없는 만물의 터전으로서 넓고 넓은 가이아니라."
카오스는 누가, 또는 무엇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거기 존재했으며 무한의 공간 속에 자리한 잡탕으로 뒤섞인, 형태 없는 부동의 덩어리였다. 그래도 그 안에는 만물의 씨앗이 잠재해 있었으니 카오스는 곧 에레보스(그윽한 어둠)와 뉘스(밤)를 낳았다. 이어서 에레보스와 뉘스가 교합하니 거기서 헤메라(낮)와 아이테르(푸른 하늘)가 태어났다. 한편 가이아는 그 넓디 넓은 몸을 뒤척여 우라노스(하늘)와 폰토스(바다)를 낳았고 연후에 다시 우라노스와 교합하여 아들 여섯과 딸 여섯을 낳았다. 그 12남매가 바로 원시적인 자연력의 상징이면서 올림포스 신족의 앞 세대인 티탄 신족들이었다. 오케아노스(대양), 휘페리온(높은 곳을 달리는 자), 크로노스(시간), 레아(동물의 여주인), 므네모쉬네(기억), 테미스(이치)가 모두 티탄의 일원이었다. 티탄 열두 남매에 이어 가이아는 우라노스와의 사이에 퀴클롭스(외눈박이 거인) 3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를 낳았다. 퀴클롭스는 이마에 커다란 눈을 하나씩 달고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3형제의 이름은 각각 브론테스(천둥), 스테로페스(번개), 아르게스(벼락)이었다. 팔이 백 개나 달린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의 이름은 각각 코토스(돌진하는 자), 브리아레오스(강한 자), 귀에스(수족이 있는 자)였다. 그런데 이들은 모양새로 사납거니와 이름 그대로 언동도 얌전치 못했다. 그런 연유로 아비되는 우라노스는 자기가 낳은 자식이면서도 이들을 몹시 미워하였고 끝내는 가이아의 뱃속, 즉 타르타롯(무한지옥)에 가두어 한낮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우라노스의 모진 행동과 갇힌 아들들의 행패 때문에 몸과 마음이 고통스럽기 그지없던 가이아는 마침내 우라노스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이아는 티탄 12남매를 불러모은 뒤 물었다.
"누가 나서서 이 어미의 괴로움을 덜어주겠느냐?"
아무도 섣불리 나서지 않는 중에 막내인 크로노스가 나섰다. 크로노스는 어머니가 준 작은 낫을 들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우라노스가 오길 기다렸다. 밤이 깊어 이윽고 우라노스가 내려와 온 몸으로 가이아의 몸을 덮으려는 찰나, 크로노스는 낫으로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가이아의 몸 위로 우라노스의 피가 쏟아졌고 그 피의 정기로 가이아는 다시 복수의 세 여신과 기간테스를 낳았다. 아비 우라노스를 거세한 크로노스는 티탄 형제들과 함께 크로노스의 시대를 열었다. 티탄 형제들은 모두 자신의 누이들과 짝을 이루어 슬하에 많은 신과 여신들을 낳았는데 크로노스는 레아와 결혼하였다. (이러한 근친상간의 의미는 신들의 이름을 새겨 들여다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예컨대 높은 곳을 달리는 자를 뜻하는 휘페리온은 누이 테이아와 결혼하여 태양신 헬리오스와 달의 여신 셀레네, 그리고 새벽의 여신 에오스를 낳았다.) 그런데 크로노스는 레아가 자식을 낳자 마자 집어삼켜 버리곤 했다. 그래서 크로노스와 레아의 소생인 하데스, 포세이돈,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는 태어나자 마자 아버지의 뱃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는 아비를 내쫓은 자는 다시 그 자식에게서 내쫓김을 당하리라는 가이아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로노스는 자식을 삼켜버림으로써 후환을 없애려 했던 것이다. 낳는 족족 지아비에게 자식을 잡아먹힌 레아는 여섯 번째 임신을 하자 우라노스와 가이아에게 이 자식만이라도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였다. 이에 가이아가 방책을 일러주었다. 레아가 아기를 낳자 가이아가 아기를 데려갔다. 레아는 대신 아이 크기만한 돌덩이 하나를 강보에다 둘둘 싸 웃목에 놓았다. 크로노스는 그게 아기인 줄 알고 버릇대로 강보째 삼켜 버렸다. 레아가 크로노스를 속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이 아이가 바로 제우스(광명)였다. 가이아의 은혜로 외딴 섬의 동굴 속에서 자라난 제우스는 어느 날 테미스 여신을 찾아가 아버지를 물리칠 방도를 물었다. 테미스의 귀띔을 받은 대로 제우스는 크로노스의 시동으로 들어가 신임을 얻은 뒤 크로노스에게 토제가 섞인 술을 먹였다. 제우스에게 속아 넘어간 크로노스는 삼켰던 자식들을 도로 다 토해냈다. 이리하여 원래는 제우스의 형이요 누나였던 하데스, 포세이돈,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는 제우스의 동생이 되고 말았다. 이후 제우스는 형제들과 더불어 티탄 신족들과 전쟁을 벌여(이 전쟁을 티타노마키이라고 한다) 아버지 크로노스를 폐위시키고 올림포스 신족의 시대를 열었다.
가이아를 위한 변론
러브록이 가이아 가설을 처음으로 발표한 것은 1968년이였다. 미국 천문학회의 연구 발표회 자리에서였다. 이어서 그는 1971년 <대기 환경>이라는 과학잡지에 논문을 투고했다. 2년 후인 73년에는 <텔루스>와 <이카루스>라는 과학잡지에 보다 본격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1979년에 드디어 <가이아:생명체로서의 지구>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가설을 진화에 대한 새로운 이론 이라고 규정하였다.
이 책은 다윈의 위대한 업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생물종의 진화가 그들 주위의 물리적 환경의 진화와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을 보탬으로써 다윈의 사상을 보충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생물과 그 주위 환경은 상호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 마치 단일 시스템처럼 행동한다. 이 책에서 진실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가장 거대한 생물조직, 즉 가이아의 진화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로서는 최초의 단서로부터 시작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천문학에서 동물학에 이르기까지 온갖 관련 분야들을 종횡무진 섭렵하며 연구에 몰두한 결과로 얻은 소중한 성과였다. 그는 그 세월 동안 어떤 대학이나 연구소와도 관련을 맺지 않고 방앗간을 개조한 자신의 연구실 겸 응접실 겸 회의장에 틀어박혀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돈으로 바꾸어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가 여러 가지 과학 실험 기기들을 발명하거나 개량한 재주꾼이라는 사실은 가이아를 위해선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극히 미량의 화학물질도 감별해 내는 전자포획 감지기는 그의 가장 든든한 밑천이었다. 때문에 <가이아>의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발명품들을 꾸준히 사들여 준 휴렛펙커드 사에 따로 감사의 뜻을 전할 정도였다.
러브록은 평소에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아무리 그 견해가 심각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단 책으로 쓸 때는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갖춘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표현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지구에 대한 전혀 새로운 견해를 소개하는 그 최초의 저서를 사전만 가지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 하지만 그의 책은 바로 그점에서부터 동료 과학자들의 못마땅한 눈길을 받아야 했다. 심각한 과학자들에게는 그것이 과학을 비하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성직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공격하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그에게 정작 뉴욕에 있는 세례 요한 대성당은 강연을 요청한 반면 과학자들은-물론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그의 가설을 시대착오적인 괴짜 몽상가의 궤변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터무니없는 가설이라고 반박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되기도 전에 가이아 이론은 여러 분야 과학자들의 국제회의의 의제로 대두되었고 러브록은 1988년 그간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포함한 두 번째 저서 <가이아의 시대:살아있는 지구의 전기>를 발간했다.
가이아 이론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과학자는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를 필두로 하는 사회생물학자들이었다. 그들은 가이아 가설이 성립하여면 생물체의 유전자 속에 앞날을 예측하고 그에 대한 설계를 미리 세울 수 있는 어떤 조건이 존재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하였다. 하물며 그것이 토양, 암석, 대기, 해양 같은 물리적 환경을 포함해 전지구적 규모로 진행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가이아가 살아있는 유기체라는데 그렇다면 그 유기체의 세포와 유전자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이에 대해 러브록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집합체는 그 구성원 하나 하나에서는 도저히 예견할 수 없는 새로운 속성을 지닌다 는 일반론 위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실험으로 재반박했다. 그는 흰색과 검은 색의 데이지 꽃과 그것을 먹고 사는 초식 동물로만 구성된 단순한 생태계를 자기고 있는 행성을 가상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결과에 따르면 이 가상의 세계는 태양으로부터 전해지는 복사열이 크게 많아지거나 적어지거나를 막론하고 항상 적당한 기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데이지꽃과 초식동물이 미래를 예측하거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생물종들 사이에 무의식적인 성장과 경쟁이 진화의 원리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면 게 러브록의 주장이었다. 가이아 이론에 대한 또다른 거센 비판은 일부 환경보호론자들로부터 나왔다. 러브록은 환경오염이 가이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상당히 자세하게 논했는데 결론은 가이아에겐 그게 그리 큰 물제가 이나라는 것이었다. 생물체가 지상에 출현한 35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 어떤 재난에도 불구하고 가이아는 앞으로도 생물들의 생존에 적합학 환경을 만들어 나가리라는 믿음에 근거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가이아 이론은 산업계가 환경을 파괴해도 좋다는 면죄부나 다름없다 는 비난을 부러일으켰다. 러브록은 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가이아 이론은 우리들로 하여금 범지구적 시야를 갖도록 강요한다. 이 이론에서 중요한 것은 지구 전체의 건강성이지 일부 생물종의 안위 여부가 아니다. 환경 보호 운동은 인류의 건강성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바로 이 점에서 가이아 이론과 환경 보호 운동은 서로 그 궤를 달리하기 시작한다.
"나는 오로지 가이아를 위해서만 주장을 펼히고자 하는데 그것은 인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매우 많은데 비해 가이아를 위하여 소리를 내는 사람은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가이아를 위한 충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러브록의 이 발언은 수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다시피 지금에 와서는 환경보호운동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편의를 양보하지 않는 선상에서, 다시 말해 적당한 개발을 통해 환경도 되도록 깨끗이 보호하자는 편에서부터 모든 인공적인 것을 거부하자는 쪽까지 좌우로 넓게 포진해 있다. 그런데 인간이야말로 가이아에겐 최고의 오염물질 이라는 러브록의 생각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따라서 겸손히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는 환경 근본주의자들의 생각과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면.
"우리들은 자연계를 파괴함으로써 우리 자신들을 영락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가이아는 현재 의도적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아이가 선호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쪽으로 우리들이 계속 범지구적인 환경 파괴 행위를 일삼는다면 가이아는 결국 인간 종족들보다 더 잘 자신에게 순응하는 생물종으로 우리들을 대치하리라. 이런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만약 우리들이 이 세상을 하나의 생물체로 간주하고 우리들이 그것의 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면 - 그 소유자도 아니요 임대인도 아니며 단순한 방문객도 또한 아닌-우리들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번영을 누릴 수 있으며 신이내리신 기간 만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 대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활할 것인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는 우리 각자의 의사에 달려 있다."
그러면서 그는 묻는다. 만약 가이아와 공존하는 것이 우리 개인의 책임이라면 도대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가 실천하고 있는 몇 가지 작은 방안으로 러브록은 세가지 C를 삼가는 일을 들었다. 세가지 C란 자동차(Car)와 가축(Cattle)과 전기톱(Chair saw)이다. 예컨대 쇠고기를 지금보다 적게 먹으면 열대 지방의 삼림을 파괴하여 비육우 목장을 만드는 파괴행위도 그만큼 줄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가이아의 또다른 얼굴
러브록은 <가이아의 시대> 말미에서 "가이아 이론이 과연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 고 말했다.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킨 가설을 내세운 과학자가 했다고 믿기에는 싱거운 말이다. 그는 이어서 자신의 이론은 우리들이 속해 있는 세계에 대한 한 인간의 견해 이며 자신의 견해가 인간과 대지와의 유기적 관계를 일깨우는 역할 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가이아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과연 그렇다. 가이아 이론은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행성 지구와 우리 자신,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과 우리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지구가 살아있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거대한 생명체 가이아의 일부라고 생각해 보자. 늘 보는 하늘도,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왔다가는 사계도, 비, 눈, 바람도 무심히 꺾어드는 들꽃도 달리 보이리라. 그것은 모두 가이아가 치르는 장엄한 생명 의식의 일부인 것이다. 우리 또한 그 의식에 동참한다는 느낌을 가질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경건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체감한 것도 필경 그러한 경건함 속에서였을 것이다. 가이아의 숨결에 조용히 귀기울일 줄 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 일부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생명 조직의 피와 살, 뼈대를 그토록 쉽사리 파헤치고 부수고 더럽히지는 못하리라. 한 가지 잊어 벼려서는 안 될 사실이 있다. 가이아를 비롯해 여러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들은 생명을 관장하는 자비로운 속성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생명을 거두어 들이고 파괴하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러브록의 다음과 같은 경고는, 사망과 붕괴는 모든 생명체들의 숙명인 바, 그것은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개인으로서 생명을 소유했다는 것에 대한 작은 대가 라는 그의 신뢰할 만한 삶의 태도를 헤아려 볼 때, 경청해 마땅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내가 이해하는 가이아는 아무 그릇된 행동이나 다 허용하는 인자한 어머니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인간들의 거친 행동에 의해서 쉽게 해를 입을 수 있는 섬세하고 연약한 숫처녀도 아니다. 가이아는 꿋꿋하고 강건하여서 온 세상을 편안하게 감싸 주며 자신의 법칙에 복종하는 존재들에게는 항상 안락함을 제공한다. 그러나 자신의 법칙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을 훼손하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아주 무자비할 수도 있다. 가이아의 무의식적인 존재 목적은 이 행성을 생물들이 살기에 적당하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들이 이러한 가이아의 법칙을 거역한다면 가이아는 아무런 동정심 없이 인간을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대륙간 탄도탄에 장착된 미세한 전자 두뇌가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 미사일을 최대 속도록 정확하게 목표물에 명중시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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