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저자 : 슘패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
이책은 자본주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가? 라는 명제하에 자본주의는 기업가의 혁신에 의해 끊임없이 발전하지만, 자본주의는 바로 그 발전 때문에 필연적으로 붕괴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되며, 사회주의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민주주의와 양립이 가능한 체제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슘페터식 자본주의 붕괴론은 마르크스의 주장과는 내용이 다르며, 오히려 슘페트는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이 책의 장을 열고 있다.
기술혁신의 숭배자
케인스와 함께 20세기 전반을 대표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슘페터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모라비아에서 출생했다. 그의 생은 만년의 18년 동안의 하버드 대학 교수생활을 제외하고는 굴절이 많은 인생이었다. 또 케인스와는 달리 초학파적인 연구성향 때문에 자신의 학파를 남기지도 않았다. 4살 때 부친을 잃은 그는 어머니가 오스트리아 군사령관과 재혼하는 바람에 일찍부터 귀족사회에서 생활했다. 빈 대학의 법학부에 입학한 후 처음에는 역사학에 관심을 가졌으나, 경제학으로 전환하여 벰바베르크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개화기로서 비저, 필립포비치, 벰바베르크 등이 활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오히려 로잔 학파의 발라스의 영향 아래 골격을 형성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12세 연상의 영국 부인과 결혼하여 이집트의 카이로에 왕실고문 변호사로 부임했다. 이 결혼은 얼마 안 가 곧 파탄에 빠져 이혼하게 된다. 제1차 대전 직후에 오스트리아의 재무장관과 민간 은행장을 지내고, 1925년에 본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32년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937년에는 젊은 경제학자인 미국여성과 세번째 결혼했는데, 그녀는 깊은 이해와 따뜻한 애정으로 그를 뒷받침하여 슘페터의 만년을 더욱 빛나게 했다.
저술활동으로는 25세 때 처음으로(이론경제학의 본질과 주요내용)을 집필했다. 무명의 슘페터는 이 저작의 발간으로 일약 오스트리아학파(빈 학파의 선구)의 젊은 세대 중의 선두주자로 부각되었다. 이 처녀작 발간에서부터 4년 후인 1912년 그의 창조적인 구상의 성과가 불후의 명저(경제발전의 이론)으로 나타났다. 이는 종래의 경제학을 정태적 순환의 이론으로 보고,그 위에 동태적 발전이론을 수립하고자 하는 획기적인 역작으로,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서의 기업가의 기능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특징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자본주의 발전의 담당자인 기업가가 도입하는 새로운 방안 즉, 기술의 진보, 생산조직의 개선, 신제품의 개발, 새로운 판로의 개척 등이 경제 발전의 동력이고, 그것을 가능하게하는 것이 은행에 의한 신용창조라 했다. 이러한 중심적인 구상은 (경기순환론)에서도 계승되는데, 새로운 방안의 도입에 따른 창조적 파괴 가 경기순환을 일으키는 원천이라고 보고,이론적, 역사적, 통계적 분석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는 경제사회적인 고찰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기업가 기능이 쇠퇴하는 것과, 정부의 개입이 증대함에 따라 민간부문의 활력이 약화되는 요인도 함께 고려하여 독특한 자본주의 붕괴론 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사회주의가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비교체제론적인 분야에까지 시야를 넓혔다. 미국 이주 이후 그는 하버드 대학의 훌륭한 스승으로서 젊은 학도들에게 열정적인 지도를 아끼지 않았고, 경제학계의 지도자로서 바쁜 삶을 살다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슘페터의 지적 배경
슘페터는 케인스와 함께 근대 경제학의 최고봉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케인스의 이론이 거시체계로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낳은 반면,슘페터의 경제학은 그 전모가 파악되지 않은 채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먼저 그의 저작이 다방면에 걸쳐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실 슘페터는 단순한 경제학자라기보다는 광범위한 사회과학자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는 이전의 모든 학설과 이론을 계승, 종합하여 독자적인 이론을 창조했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뵘바베르크, 비저를 출발점으로 하여 발라스의 일반균형 이론체계를 근본적 기초로 삼고, 마샬 빅셀의 보다 앞선 분석용구를 섭취해서 광범한 일반균형 체계를 이룩했다. 살아 있는 경제학의 권위자인 미국의 새뮤얼슨은 슘페터에는 많은 얼굴이 있다. 고 말했다. 그는 광범한 문헌지식과 모든 학설이나 사상을 객관적으로 공평하게 판단하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풍부한 역사감각, 그리고 훌륭한 예술적 감각 등을 완비한 그는 경제학사에 족적을 남긴 개개인에 대한 평전을 담은 (학설사 및 방법론사의 제시대)를 저술했는데,이는 독일어로 씌어진 이 분야의 역저다.그의 사후 편찬된(10대 경제학자)도 역시 경제학자의 평전에 관한 고전으로 간주된다. 그 이후 이론경제학계에서 그의 높은 지위는 평생 변하지 않았다. 그는 생애가 다할 때까지 항상 새로운 경제이론을 탐구하는데 소홀하지 않았고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파악함으로써 경제학 발전의 미래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이론경제학의 테두리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연구범위는 사회과학의 전반에 걸쳤으며 하버드 재직시 순수이론의 기수로서 계량경제학에서 수리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이론에 적극적으로 대결했다. 그 당시의 성과가 다름아닌 필생의 대저 (경기순환론)이었다. 그것은 이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 자본주의 과정의 이론적, 역사적 통계적 분석 이며 그 안에는 그때까지의 그의 다방면에 걸친 연구의 성과가 전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보다 대중적인 저작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붕괴와 사회주의 도래 예견서
본서의 핵심은 자본주의는 기업가의 혁신(inovation)에 의해 끊임없이 발전하지만, 자본주의는 바로 그 발전 때문에 필연적으로 붕괴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한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몇몇 조건이 충족된다면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한 사회로 형성될 수 있다 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러한 슘페터식 자본주의 붕괴론이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론과 유사하게 보이나 사실은 크게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제1부를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고 있다. 주요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의 학설비판
예언자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분리되어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경제체재이며,바로 그 때문에 생산력은 향상되나 생산관계는 악화되어 자본주의는 저절로 붕괴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마르크스의 논리는 자본주의 붕괴과정을 현실적으로 해명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자본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빠진 것 같지만 또 다른 발전의 여지를 자체 내에서 지니고 있다.
자본주의의 생존 가능성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야먈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는 부단히 발전해왔다. 철도와 발전소의 건설, 자동차나 제철공업 등 모든 새로운 생산활동은 카네기, 록펠러와 같은 기업이 끊임없이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반복한 결과다.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달리 자본주의,특히 미국의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이 없지는 않지만 발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물론 이런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독점기업이 생겨나며 이 독점의 경향은 흔히 동맥경화증 같은 증상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독점의 경향은 생산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이같이 자본주의 훌륭한 업적을 이루어냈으나 결국은 붕괴될 체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있다. 첫째는 기업가 무용론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기업은 자본가의 천재적인 영감보다는 경영전문가의 전문성에 따라 운영된다. 따라서 자본가의 기능은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둘째는 자본주의 수호계층의 몰락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중소기업은 파멸하게 되며, 이들은 자본주의의 기반을 이루는 사유재산제도와 자유시장경제를 포기하게 된다. 결국 이들은 부르주아 정당보다는 사회주의 정당을 선호하는 등 정치세력의 분포에서 큰 변화가 생기게 된다. 셋째,소유와 경영이 분리됨으로 기업의 중역도 자신이 고용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제 기업가는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이윤을 배당받는 소유자에 불과하게 된다. 그래서 기업가들은 자본주의적 기질을 잃고 자본주의를 사수하려는 정열을 잃게 된다. 그러나 과연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을까?
사회주의의 대체 가능성
사회주의란 생산수단과 생산과정의 운영권을 중앙당국이 쥐고 있는 체제로,경제 각 부분은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시장경쟁의 메커니즘을 갖추지 못한 사회는 합리적인 경제운영이 불가능하고 모순 없는 정책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주의에서도 합리적인 경제운영이 가능하다. 사회주의에서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배재함으로써 비용의 낭비를 없애고 과잉생산 부분을 후생 부분에 이용할 수 있으며, 수입 원천을 국가가 관리함으로써 조세를 폐지할 수 있다는등 자본주의보다도 유리한 점도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라 해도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가에 따라 사회주의로의 이행과정은 큰 차이가 있다. 영국과 같이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여 사회주의화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조성되어 있을 경우,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헌법개정이라는 점진적, 평화적 방법을 종원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반면 경제발전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의회를 통한 점진적, 평화적 방법보다 혁명적 방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이 이 경우로, 여기서는 노동지도자가 정부관청을 점령하고 강력한 혁명군을 동원, 사회주의를 이룩하게 된다.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이 두 가지 방식 가운데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점진적, 평화적 방법이 혁명에 의한 것보다 사회주의의 장점을 보다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장점이 많지만 이 장점은 비민주적 사회주의가 실제 존제함으로써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역사를 돌아볼 때 비민주적 사회주의가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정치적 영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자유경제를 의미하며, 민주주의 자체가목적일 수는 없다. 즉 일종의 정치방식 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반드시 최상의 방법이 아닐수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회, 경제적 조건이 필요하며, 이런 조건을 이해하지 못한 채 민주주의를 이상화, 절대화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소수가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체제를 철폐하고 (인민에 의한 지배)를 확립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과도기에 한해서는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는데, 바로 이 과도기가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회피할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도 근대 시민사회 이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는 민주주의를 자신의 무기로 삼고 싶겠지만, 실제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 연관이 없다. 사회주의에서도 민주주의가 성립될 수 있으나 이것이 사회주의의 본질로부터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자본주의는 죽었는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주의의 소멸과 사회주의의 도래를 예견했던 슘페터가 오늘날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승리를 보고 뭐라고 말할까? 그의 사상으로 보아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첫째, 공산주의, 특히 스탈린 주의가 망한 것이지 사회주의가 망한 것은 아니다. 둘째, 아직도 자본주의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승리했다고는 볼 수 없다. 내가 말했지 않는가. 이런 문제를 논할때는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하며 50년도 단기간에 불과하다고 물론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논리다.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을 기업가의 기술혁신 이라는 창을 통해서 설명한 슘페터의 견해는, 자본주의 발전을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로 설명하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사망선고를 내린 마르크스의 이론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물론 슘페터의 결론 역시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멸망이지만. 그는 자본가들이 열정적인 기사처럼 행동하는 동안에만 자본주의는 생존할 수 있는 체제로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추진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용감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그는 보았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올수록 자본주의의 눈부신 발전은 경제발전 자체까지도 자동 기계화하여 발전의 추진력인 기업가의 창조적 정신을 무색하게 만든다. 결국 그는 기업가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려는 의욕을 잃게 되며, 그들의 관심도 사회주의 쪽으로 기울게 되어 체제의 수호자들을 잃게 된 자본주의는 결국 사회주의 체제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이은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또 양자가 결합되어 존재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처럼 그는 자본주의의 우울한 장래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슘페터가 예견한 사회주의는 사회제도로서는 흥망이 있을 수 있으나,하나의 이상으로서의 사회주의는 긴 생명력을 가지며 오히려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주의를 도울 수 있다. 그가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의 끊임없는 강풍에 의하여 발전하는 경제체제이며 그 강풍이 멎으면 살아남기가 어렵게 된다. 그 강풍은 끊임없는 자유경쟁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는 안온한 체제가 아니다. 약자는 도태되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비정적인 체제다. 강자에게는 너무 많은 포상이 주어지고 약자의 몫은 너무 적게 주어지는 제도다. 따라서 이 제도는 어떤 다른 제도보다도 불평등을 가시적으로 만들어내는 체제다. 또 이 체제하에서 승패를 가름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금전이기 때문에 황금만능의 천민적 가치관이 자리잡기 쉽다.이 두가지, 즉 강자와 약자 사이의 지나친 불평등과 건전한 가치관의 마모가 자본주의 약점이라 할수있다. 자본주의가 건전한 발전을 하려면 항상 이 두 가지가 시장원리에 보완되어야 한다. 불평등이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적인 이념이 필요하며, 가치관 마모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종교나 철학이 자본주의를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상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대체하거나 자본주의에 의해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를 도와주는 일종의 방부제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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