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권리를 위한 투쟁(Der Kampf ums Recht) -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1892)
이 책은 <권리는 싸워서 얻는 것>이라는 예링의 권리론을 집약한 소책자이며 대중용으로도 널리 알려진 법학서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 <권리추구자의 권리 주장은 그 자신의 인격의 주장이다> 등의 명제는 그의 평화적시민적 법사상을 잘 나타낸다. 즉, 이 책의 요지는 법의 목표인 평화를 위해서는 각자가 투철한 법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실현해야 한다는 취지의 인권선언적 연설이다.
법 사상가로서의 삶
19세기 독일의 대표적 법학자인 예링은 <법사회학>의 시조라고도 불린다. 하노버의 약 300년간에 걸친 법률가문에서 태어나 로마법학과 법사회학의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로마법에 정통하여 실증적 자료를 많이 수집하고 있었고, 로마법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역사적실증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목적론적, 법기술적, 문화적 견지에서 새로운 역사 법학파의 입장을 취했다. 그가 이기적인 이익을 법률생활의 기초적, 창조적 힘으로 보았다는 것은 유명하며, 이것은 봉건시대가 끝나고 자본주의 시민사회가 정착하여 그 시대의 분위기가 이기적인 개인을 옹호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845년 바젤 대학 교수를 역임한 후, 이어 몇몇 대학에서 로마법을 가르치면서 주로 사회주의 철학을 발전시켰다. 사회의 요구를 강조하는 그의 입장은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영국의 벤담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예링은 역사법학파의 입장에서 쓴 초기의 대저 <로마법의 정신>에서 법률의 조문이나 법해석이 현실사회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로마법을 연구했고, 이 책 발간 이후 전통적인 법학에 비판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 개념 위주의 전통법학에서 벗어나 사회적 실용성을 중시한 <목적법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의 사상적 변모를 보여주는 책이 바로 <권리를 위한 투쟁>인데, 여기서 <역사법학>과 <개념법학>을 비판하고 각 개인의 <이익>에 기초한 <목적법학>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 책에서는 그의 법의 목적은 현실사회에 있어서 서로의 이익을 위한 투쟁을 통해서 실현된다고 보고 끊임없이 권리를 확보하는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여 단순한 역사법학파의 입장을 극복했다. 이어서 그는 <법에서의 목적>을 내놓아 법이론에서 목적법학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목적법합을 체계적으로 확립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쓴 이 책에서 그는 성문법을 절대화하여 모든 법률 문제를 해석하는 전통적인 법형식주의를 비판하고, 법을 <인류의 평화라는 목적을 이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파악하는 자신의 법철학의 기초를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또한 법해석에만 중점을 둔 나머지 법의 목적은 고려하지 않는 개념법학에 반대했는데, 예링에게 있어서 법개념은 논리적인 개념이 아니고 실천적인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예링의 실용주의적 실증주의적 방법은 19세기 후반의 새로운 법학 연구방법론을 제시하여 근대 사법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역사법학자에서 법사회학자로
예링은 초기에 사상적으로 역사법학파의 대표자인 사비니와 그의 수제자인 푸흐타의 영향을 받았으나 후에는 이들 역사학파의 이론은 극복했다. 역사법학파란 오늘의 법이 과거의 역사적 발전에 얼마만큼 영향을 받았으며 과거 역사의 유산을 얼마만큼 담고 있는가, 또 법의 역사에 있어서 장기적인 경향성이란 존재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법학 연구방법을 말한다. 예링은 이들의 비합리적이고 형식적인 경향에 합리주의적이고 목적론적인 개념을 구성하여 대립시킴으로써 당시의 지배적인 학풍에 과감하게 도전했던 것이다. 법사회학적 지식의 맹아는 일찍이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근대에 들어와서는 몽테스키외와 예링과 같은 역사법학자들 사이에서 발전되었다. 법사회학이란 말은 <법>과 <사회학>의 합성어다. 법사회학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사회적 실재로서의 법이다. 법을 연구대상으로 하되 규범으로서의 법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법해석학과 구별된다. 사회적 실재로서의 법이란 달리 말하면 <사회 속에서의 법>을 뜻한다. 예링은 19세기 독일의 형식논리적 법해석학을 개념법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법에 있어서 <목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법을 생활관계 위에 정초지움으로써 법사회학의 형성에 귀중한 공헌을 했다. 예링은 권리의 내용을 <이익>으로 파악했다. 즉, 법에 의해서 확보된 이익이 법적 권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동시에 이익을 위한 투쟁이 된다. 이러한 예링의 법관념이 헤크를 중심으로 하는 <이익법학>의 기초를 제공했다. 이익법학은 이익의 개념을 법학방법론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특히 이익교량론을 전개한 일종의 사회학적 법률학이다. 예링과 헤크의 이익법학은 미국의 파운드와 사회학적 법학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으며, 또한 목적의 요소를 강조한 그의 법관념은 정책 지향적인 미국의 법현실주의자들의 선구를 이룬다.
법의 목적은 평화, 그 수단은 투쟁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빈 법률학회에서 행한 강연내용을 보완하여 책으로 엮은 것인데, 출간 즉시 유럽 전역에서 환영을 받았고,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권리란 싸워서 얻는 것>이란 그의 법사상이 전편을 관통하고 있는 이 책은 내용상 크게 5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인용해본다.
1.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
이 세상의 모든 법은 쟁취된 것이며, 이에 대항했던 사람들로부터 싸워서 빼앗은 것이다. 어느 개인의 권리든, 민족의 권리든 모든 권리는 그것의 주장을 위해서 끊임없는 투쟁준비가 전제된다.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권리의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판과 다른 손에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검을 쥐고 있다. 절제를 모르는 검은 하나의 폭력이며, 반대로 검을 갖지 못한 절제는 법의 무력을 뜻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법의 실현이란 검을 찬 정의의 여신이 검을 사용하는 힘의 저울판을 잘 조정하는 숙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아무 노력없이 얻은 법은 여우나 독수리가 다시 채어갈 수도 있다. 어떤 민족이 그들의 법에 애착심을 가져 그것을 주장하는 사랑의 힘은 그 법을 얻기 위하여 바친 노력과 고통의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 즉, 탄생을 위해 법이 요구하는 투쟁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2. 권리 추구자의 권리주장은 그 자신의 인격의 주장이다.
내면의 소리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너는 뒤로 물러서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가치없는 투쟁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명예, 법감정이며 자기존중이기 때문이다."라고. 인격 자체에 도전하는 비열한 불법에 대해서, 다시 말해서 실행방법에서의 권리의 경시는 물론 인격모독의 성격을 띰으로써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에 대한 저항은 의무다. 그와 같은 저항은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다. 그 저항은 도덕적인 자기 보존의 명령이며 사회에 대한 의무이다. 왜냐하면 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저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 권리에 대한 투쟁은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자의 의무다.
자기 존재의 주장은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의 최고의 법칙이다. 즉, 모든 생물은 자기 보존의 본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육체적인 생존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신적인 생존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권리의 주장이다. 그와 같은 권리가 없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동물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침해받은 권리에 대한 주장은 자기 보존을 위한 행위이며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은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인 것이다.
4. 권리의 주장은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다.
만약 내가 "공격받은 구체적인 권리의 방어는 다만 권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면 이 문제에 관해서 너무 지나친 말은 아닐까? 만약 권리자는 그의 권리에서 동시에 법규를, 법규에서 동시에 사회공동체의 필요불가결한 질서를 방어하고 있다는 나의 논술이 옳다면, 권리자가 그럼으로써 동시에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만약 사회공동체를 위해서 권리자가 그의 생명을 바쳐야 할 외부의 적에 대해서 사회공동체가 그를 투쟁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면 사회공동체의 질서를 외부의 적 못지않게 위태롭게 하는 내부의 적에 대해서 싸우도록 왜 그를 격려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면, 외부의 적에 대한 투쟁에서의 비겁한 도망이 공동의 일에 대한 배반을 뜻한다면 같은 명분을 내부의 적에 대한 투쟁에서도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5. 권리를 위한 투쟁의 이익은 사법 또는 사적 생활뿐만 아니라 국법 또는 국민생활에까지 미친다.
자기 자신의 권리조차 용감하게 방어하려 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전체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과 재산을 기꺼이 바치려는 충돌을 하겠는가? 안일 때문에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자기의 명예와 인격에 가해지는 관습적 손해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권리의 문제에서 다만 물질적 이해의 척도만을 고려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민족의 권리와 명예가 문제시되는 유사시에 그가 다른 척도를 사용하고 다른 감정을 갖도록 기대할 수 있는가? 대외적으로 존경받고 대내적으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향유하고자 하는 국가를 위해서는 국민의 법감정만큼 보호와 장려를 필요로 하는 값진 보물은 없다. 이 보호와 장려는 정치교육상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다. 국민 각자의 이와 같은 건전하고 굳건한 법감정 속에서 국가는 자기 힘의 가장 줄기찬 원천, 즉 대내적대외적으로 자기 존립의 확실한 보증을 갖게 된다.
역사법학개념법학을 비판, 이익법학 제시
불과 70여 쪽밖에 안되는, 거기다가 다소 결함도 가지고 있는 이 책이 가장 널리 읽히는 법서 중의 하나가 된 것은 이 책에 담긴 예링의 사상이 당대의 시대정신을 자극했음은 물론, <법의 원천은 사회적 투쟁에서 찾아야 한>>는 그의 일관된 신념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저자가 서문에서 기술한 "이론면보다는 윤리적이고 실제적인 면을, 법의 학문적인 인식보다는 법감정을 주장하는 용감하고 확고부동한 태도를 촉진하는 데 있다"고 말한 이 책의 집필목적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다. 기존의 역사법학과 개념법학을 비판하고 목적법학(이익법학)을 제시했던 예링은 권리 내용의 핵심으로 파악했고, 이때의 <이익>은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이익은 물론,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이익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권리를 위한 투쟁은 자신의 경제적정신적 이익을 위한 투쟁이 된다. 그의 권리수호의 주장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그 기저를 이루고 있고, 이것을 수호하기 위해 인간은 자신의 권리침해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법이 투쟁하는 사람들에게만 권리를 보장한다고 생각했고, 이 책에서 "나는 법률을 요구합니다."라고 외치는 샤일록의 권리주장을 찬미하는 등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소송을 즐기는 영국 상인들을 칭찬하고 있다.
그러나 예링은 오직 각 개인이 자기의 생존의 기본적인 조건을 방어할 것을 기대했을 뿐, 모든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예링은 개인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나 개인의 이익은 물론 사회전체적인 이익에도 부합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개인의 권리수호 의식이 확고하지 못한 국민은 결국 사회와 국가의 권리에 대한 의식도 희박하리라고 보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방예산보다 국민들이 내 것을 지키겠다는 철저한 권리의식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침략자보다 침략당하는 자를 더 경멸했다. 그러나 <권리란 싸워서 얻는 것>이란 그의 법사상은 아직도 많은 오해를 받고 있으며 그의 인격주의적 윤리관, 진보적 역사관과 낙관주의를, 전체로서 파악하지 않는 한 이 연설에 반영된 그의 진정한 인간적 사상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법사상은 인간의 기본권이 금력과 권력에 짓밟히는 오늘의 우리에게 더욱 큰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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