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검의 극치 - 설검
왕이 말했다. "세 개의 칼에 대해 듣고자 하오." 장자가 말했다. "천자의 칼이 있고, 제후의 칼이 있고, 서인의 칼이 있습니다." 왕이 물었다. "천자의 칼은 어떠하오?" "천자의 칼은 연계*와 석성으로 칼끝을 삼고, 제의 대산*으로 칼날을 삼으며, 진과 위로 칼등을 삼습니다. 또 주와 송으로 손막이를 삼고, 한과 위로 칼자루를 삼습니다. 사방을 오랑캐와 춘하 추동으로 둘러싸고, 발해를 두르고 상산을 띠로 하며, 오행으로 제어하고, 형벌과 덕으로 논합니다. 음양을 열어 봄과 여름을 조화시키고, 가을과 겨울을 운행시킵니다. 이 칼은 바르게 하면 앞에 적이 없고, 위로 들면 위에 적이 없으며, 아래로 누르면 아래에 적이 없고, 움직이면 사방에 적이 없습니다. 위로는 뜬구름을 가르며, 아래로는 지기를 끊습니다. 이 칼은 한 번 쓰면 제후를 바로잡고, 온 천하를 굴복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천자의 칼입니다." 문왕이 망연 자실하여 물었다. "제후의 칼은 어떠하오?" 장자가 대답했다. "제후의 칼은 지용의 선비를 칼끝으로 하고, 청렴한 선비로 칼날을 삼습니다. 현량한 선비로 칼등을 삼고, 충성스런 선비로 손막이를 삼으며, 호걸스런 선비로 칼자루를 삼습니다. 이 칼은 바르게 하면 앞에 적이 없고, 위로 들면 위에 적이 없으며, 아래로 누르면 아래에 적이 없고, 움직이면 사방에 적이 없습니다. 위로는 둥근 하늘을 본받아 삼광을 순하게 하고, 아래로는 모난 땅을 본따서 사시를 따르며, 가운데로는 민의를 살펴서 사방 고을을 편안하게 합니다. 이 칼은 한 번 쓰면 우뢰와 번개가 떨어지는 듯하여 사방 국경이 항복하고, 군명을 따르지 않을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후의 칼입니다." 왕이 다시 말했다. "그럼 서인의 칼은 어떠하오?" 장자가 대답했다. "서인의 칼은 더벅머리에 수염투성이로서 관은 뒤에 붙고, 오랑캐의 관 끈을 늘였으며, 옷은 뒤가 짧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말이 시끄러워 임금 앞에서도 서로 치며, 위로는 몸과 옷깃을 베고 아래로는 간과 허파를 가릅니다 이것이 곧 서인의 칼로서 투계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일단 목숨이 끊어지면 나라일엔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습니다. 지금 대왕은 천자의 지위에 계시면서도 서인의 칼을 좋아하시니, 신은 대왕을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왕은 간신히 몸을 움직여 전상에 올랐다. 재인이 밥을 올렸으나 왕은 그 주위를 세 번이나 돌았다. 장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편히 앉아 기운을 차리십시오. 칼에 대한 것은 이미 다 아뢰었습니다." 이로부터 문왕은 석 달 동안이나 궁 밖에 나오지 않았고, 검사들은 모두 그곳에서 자살해 죽었다.
*연계 : 연나라의 계곡. *대산 : 태산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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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칼이란 어떤 거요?" "천자의 칼, 제후의 칼, 그리고 서민의 칼입니다." "그래, 천자의 칼이란 무엇인가?" "이 칼은 북쪽의 연계와 석성을 칼끝으로 하고, 제나라의 대산이 칼날, 진과 위가 칼등입니다. 또 손막이는 남쪽의 주와 송이며, 칼자루는 서쪽의 한과 위입니다. 그 세력과 위엄은 멀리는 발해와 상산에 까지 미치고, 동서남북의 오랑캐들을 포섭하여 춘하 추동 사철을 두릅니다. 오행을 관장하여 자연계를 운행시키고, 상벌을 분명히 하여 인간 세계를 질서있게 합니다. 그리고 음양 두 기운을 움직여 우주의 대생명을 작용시킴으로써 봄과 여름에는 이를 약동하게 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이를 숨어들게 합니다. 이 칼의 위력은 위로는 뜬구름을 찢고, 아래로는 지축을 끊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것을 한번 쓰면 제후는 숙연히 몸을 바로 하고, 온 천하가 일시에 굴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천자의 칼입니다."
문왕은 기가 질렸다
"흐음, 그럼 제후의 칼은?" "제후의 칼은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선비를 칼끝으로 하고, 청렴한 선비를 칼날로 합니다. 또 어질고 착한 선비를 칼등으로, 충성스런 선비를 손막이로, 호걸스런 선비를 칼자루로 하고 있습니다. 천자의 칼과 마찬가지로 상하 사방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위로는 해와 달과 별의 삼광에 순응함으로써 하늘의 법칙에 맞게 하며, 아래로는 사철의 변화에 순응, 땅의 법칙에 맞게 하여 민심을 부드럽게 하고 사해를 편안하게 합니다. 이 칼을 한 번 쓰면 천둥 번개와도 같은 위력이 있어서 온 사해가 다 임금의 명령에 복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후의 칼입니다." "그럼 서민의 칼은?" "머리는 더벅머리에다 관은 뒤에 붙어 있고, 옷은 전투복, 말을 주고받는 것까지 살기에 차 있는 사람들이 갖는 칼입니다. 한 번 올려 치면 상대방의 목을 자르고, 내려치면 상대방의 창자를 가릅니다. 마치 투계가 싸우는 것 같습니다. 이 칼을 쓰는 사람은 목숨이 끊어지면 그것으로 끝장이어서 나라를 위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대왕께선 천자의 높은 지위에 계시면서 이런 비천한 서민들의 칼에 매혹되어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왕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모르며 몸소 장자의 손을 잡아 전상으로 맞아 올렸다. 요리사들이 음식상을 차렸으나 왕은 정신없이 상머리를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장자가 말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자리에 앉고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이야기는 이미 끝났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문왕은 석 달 동안이나 한 발짝도 궁전 밖에 나오는 일없이 근신했다. 그리고 왕에게 버림받은 검사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쳐 자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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